[OutRun 소설 3화] 갈림길은 먼저 말하지 않는다
바람이 먼저 표지판을 흔들었다.
해안선을 따라 선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파란 바탕의 화살표가 햇빛을 받아 한 번 번들거렸다. 아직은 멀었다. 멀어서 더 분명했다. 길이 둘로 갈라질 곳은 저기라고, 바다는 길보다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흰 포말이 낮은 절벽 아래에서 터지고, 소금기 섞인 공기가 차창 위를 얇게 문질렀다.
붉은 차는 그 아래로 미끄러지듯 달렸다. 엔진음은 높게 떠 있지 않고 낮게 깔려 있었다. 힘을 아끼는 짐승처럼, 필요할 때만 목을 세울 준비를 한 소리였다. 앞유리 너머로 펼쳐진 도로는 매끈했지만 얌전하지는 않았다. 완만한 곡선 뒤에 다시 곡선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다른 차들이 박혀 있었다. 밝은 차, 어두운 차, 유난히 느린 차. 길은 넓었지만 빈틈은 넓지 않았다.
계기판 한쪽에서 숫자가 줄었다. 규칙적으로, 망설임 없이.
조수석의 여자가 그쪽을 힐끗 보고는 입꼬리를 조금 움직였다.
“저 숫자는 늘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어.”
운전자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사람보다 차를 더 조급하게 만들지.”
“차가 조급해해?”
“내가 그러면 그렇지.”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문 위를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음악은 여전히 차 안에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온다는 느낌보다, 도로 위에 먼저 깔려 있고 차가 그 위를 타고 간다는 쪽에 가까웠다. 일정한 박자 위로 엔진이 얹히고, 바람이 뒤에서 밀고,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얇은 소리가 그 사이를 메웠다. 한 번 속도를 올리면 곡선의 끝에서 다음 박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차가 하나, 둘.
첫 번째는 쉬웠다. 바깥쪽으로 살짝 벌어진 차로에 차체를 밀어 넣자 은빛 차의 뒤가 금세 옆으로 밀렸다. 여자는 몸을 창 쪽으로 기대지도 않았다. 이 정도는 이미 길의 일부라는 듯, 머리카락만 조금 흔들렸다. 두 번째는 더 가까웠다. 노란 차가 중앙 쪽으로 애매하게 붙어 있었고, 그 앞에 짙은 녹색 차가 느리게 가고 있었다. 둘 사이 간격은 눈으로 볼 때보다 좁았다.
운전자의 왼손이 핸들을 조금 더 단단히 쥐었다. 오른손은 기어를 짧게 건드렸다. 엔진이 한 톤 높아졌다가,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지금?”
여자가 물었지만 말끝은 이미 바람에 잘리고 있었다.
붉은 차는 노란 차의 뒤를 거의 핥듯이 붙더니, 곡선이 풀리는 순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녹색 차의 옆면이 창문 너머에서 한순간 길게 늘어졌다. 차선의 흰 선이 바퀴 아래서 번개처럼 끊겨 나갔다. 짧은 시간, 세 대의 차가 같은 숨을 쉬는 것처럼 가까워졌다가, 다음 순간 붉은 차만 앞으로 빠져나왔다.
여자는 그제야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당신은 늘 너무 늦게 들어가거나 너무 일찍 들어가.”
“그래서 아직 안 부딪혔지.”
“그건 자랑이 아니라 통계야.”
그는 대답 대신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앞을 보는 사람의 표정이라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 정도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가 다시 제 리듬을 찾았다.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더 올라 있었다. 방금의 추월이 남긴 떨림이 스티어링 휠과 시트 아래에 얇게 남아 있었다.
도로 오른편으로 야자수가 짧은 간격으로 지나갔다. 그 너머 바다는 햇빛을 잘게 부수고 있었다. 눈부심이 심한 구간이었다. 멀리 있는 것은 선명하고 가까운 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가드레일이 하얗게 번쩍이고, 표지판 기둥이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조금 올려 이마에 걸쳤다가 다시 내렸다. 그러고는 앞유리 위쪽, 아직 작게 보이는 파란 표지판을 다시 바라봤다.
“저기까지는 여유 있어 보이는데.”
“보이는 건 늘 그렇지.”
숫자는 이제 여유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창밖을 보았다. 해안 도로는 어딘가 관대해 보인다. 하늘은 넓고, 바다는 옆에 있고, 길은 햇빛 아래 환하게 열려 있다. 그런데 그 관대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차 몇 대만 엉키고, 곡선 하나만 깊어지고, 시간이 조금만 줄면 금세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 길은 서두르는 쪽을 벌주기도 하고, 망설이는 쪽을 더 빠르게 내버리기도 한다.
앞에 트럭이 나타났다.
지붕 높은 짙은 색 트럭이었다. 해안 도로와는 어울리지 않게 둔하고 무거워 보였다. 그 뒤로 승용차 두 대가 줄지어 막혀 있었다. 바깥쪽은 바다 쪽으로 열려 있었지만 곡선이 시작되고 있었고, 안쪽은 절벽 쪽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쪽도 깔끔한 답처럼 보이지 않았다.
운전자는 액셀에서 발을 아주 조금만 뗐다. 차가 숨을 죽였다. 음악의 박자가 그 순간 더 또렷해졌다. 여자는 그걸 들었다. 차가 달릴 때는 잘 들리지 않던 작은 음 하나가, 망설임이 생기자 오히려 또렷해졌다. 그는 트럭 뒤를 따라 잠깐 붙었다. 너무 잠깐이라 따라간다는 말도 맞지 않을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앞차들의 움직임이 모두 읽혔다. 트럭은 바깥으로 조금씩 흔들렸고, 그 앞의 밝은 차는 너무 조심스러웠다. 맨 앞의 회색 차는 이미 길을 포기한 듯 일정했다.
“안쪽은 그림자.”
그녀가 말했다.
“바깥은 곡선.”
그가 받았다.
“둘 다 싫네.”
“좋아하는 길은 없잖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대시보드 위에 올렸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린 것은 차의 진동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붉은 차가 먼저 바깥으로 살짝 나갔다. 트럭의 뒤를 벗어나며 바다가 한꺼번에 열렸다. 시야가 넓어지는 대신 곡선도 깊어졌다. 가드레일 밖의 허공이 잠깐 너무 가까웠다. 여자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정면만 봤다. 트럭의 옆구리가 느리게 미끄러지고, 그 앞의 차가 예상보다 더 안쪽으로 붙었다. 공간이 닫히는 듯하다가, 트럭이 다시 바깥으로 조금 밀렸다. 딱 그만큼.
운전자가 핸들을 안으로 꺾었다.
붉은 차는 트럭과 앞차 사이의 공기를 비집고 들어갔다. 아주 잠깐, 햇빛이 사라졌다. 트럭의 그림자가 차를 덮었다가 바로 벗겨졌다. 엔진이 낮게 울고, 타이어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어깨가 시트에 붙었다. 회색 차의 후미가 옆으로 밀려나고, 다음 순간 길이 다시 훤해졌다.
트럭은 뒤로 멀어졌다.
여자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머리카락 끝을 뒤로 당겼고, 음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박자를 이어갔다. 그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시계를 보듯 계기판을 흘끔 봤다. 줄어들던 숫자가 아직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노골적으로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방금은 멋있었어.”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 다음엔 보통 ‘하지만’이 오지.”
“그래도 멋있었어.”
“하지만?”
“다음엔 하지 마.”
그는 웃었다. 이번엔 확실히 웃었다. 짧고, 옆으로 새는 웃음이었다.
“다음이 오면 생각해볼게.”
“그게 제일 믿기 어려운 대답인 건 알아?”
“알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동작에 짜증보다 다른 것이 더 섞여 있었다. 익숙함에 가까운 것. 아니면 포기와 신뢰가 아주 얇게 겹쳐진 것.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길을 통과한다. 무모한 것 같다가도 마지막 한 칸은 남겨 두고, 여유가 있는 척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망설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걸 싫어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싫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길은 다시 곧아졌다. 해안선도 잠깐 물러났다. 오른쪽으로는 낮은 언덕과 드문 나무들, 왼쪽으로는 햇빛에 뜬 바다. 멀리서 흰 건물 몇 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로 체크포인트를 알리는 구조물이 작게 보였다가, 차 한 대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시간이 줄어드는 속도와 차가 앞으로 먹어 치우는 거리 사이에, 이제는 계산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운 균형이 생겼다.
앞차 세 대가 넓게 퍼져 있었다.
가운데 흰색, 왼쪽 짙은 파랑, 오른쪽 갈색. 누가 일부러 막은 것처럼 보일 만큼 절묘한 위치였다. 길은 넓지만 셋이 나란히 있으면 갑자기 좁아진다. 체크포인트 구조물은 그 너머에 있었다. 그냥 뒤를 따라가면 늦는다. 무리하게 파고들면 끝나기 쉽다.
여자는 그 셋을 보고 낮게 말했다.
“이건 좀 뻔하네.”
“뻔한 건 대개 어렵지.”
“어느 쪽?”
그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차들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가운데 차는 속도가 애매했고, 왼쪽 차는 바깥으로 조금씩 밀리고 있었고, 오른쪽 차는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안정적인 차는 오히려 읽기 쉽다. 문제는 가운데였다. 망설이는 차는 방향을 늦게 정하고, 늦게 정한 방향은 대개 남에게 불친절하다.
“가운데는 안 돼.”
그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말이 끝나기 전에 차가 움직였다.
붉은 차는 먼저 오른쪽으로 붙었다. 갈색 차의 뒤를 노리는 척하다가, 그 차가 그대로 직진을 유지하는 순간 왼쪽으로 짧게 꺾였다. 가운데 흰 차가 그 움직임에 놀란 듯 안쪽으로 붙었고, 그 바람에 왼쪽 짙은 파랑 차와의 사이가 한 뼘 넓어졌다. 그 한 뼘이면 충분했다. 붉은 차는 그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세 대를 한 번에 넘었다.
체크포인트 구조물이 눈앞으로 커졌다.
기둥, 간판, 그 아래 드리운 짧은 그림자. 여자는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숫자는 거의 끝에 닿아 있었다. 차는 마지막 직선에서 한 번 더 속도를 끌어올렸다. 엔진음이 높아지고, 바람이 차체를 두드리고, 구조물이 앞유리를 가득 채웠다.
통과하는 순간, 무언가가 풀렸다.
계기판의 숫자가 다시 살아났다. 죽어가던 것이 아니라, 잠깐 숨을 참고 있었던 것처럼. 여자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가 천천히 바로 앉았다. 손을 대시보드에서 떼자 손바닥에 남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액셀을 완전히 풀지 않은 채, 그러나 아주 미세하게 어깨의 힘을 뺐다. 차는 여전히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방금 전과는 다른 속도였다. 쫓기는 속도에서, 다음을 향해 미끄러지는 속도로.
체크포인트를 지나자 길의 표정도 달라졌다. 아주 크게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달린 사람은 그런 작은 변화를 먼저 안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고, 도로의 색이 약간 깊어지고, 멀리 선 표지판의 모양이 더 분명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이 가까워진다.
파란 표지판이 이제는 멀지 않았다.
화살표가 둘이었다.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아직 글자는 읽히지 않았지만, 갈라진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같은 속도로 달려온 길이 곧 서로 다른 풍경을 갖게 된다는 뜻이었다. 한쪽은 더 밝고 넓어 보였고, 다른 한쪽은 안쪽으로 굽으며 색이 짙어 보였다. 착시일 수도 있었다. 이런 거리에서는 늘 그렇다. 길은 멀리서 자신을 실제보다 더 친절하게, 혹은 더 험하게 보이게 만든다.
여자는 표지판을 보다가 그를 보았다.
“이번엔 먼저 말해.”
“뭘?”
“어느 쪽으로 갈지.”
그는 잠깐 웃지 않았다. 앞을 보는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 방금까지는 차들 사이 빈틈을 읽는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종류의 간격을 재는 얼굴이었다. 속도로 넘을 수 없는 것, 지나가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런 표지판 앞에서는 운전 솜씨와는 다른 망설임이 생긴다.
“아직 안 정했어.”
“거짓말.”
“왜?”
“당신은 이미 정한 얼굴이야.”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바람이 차 안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왔다. 음악은 여전히 같은 곡이었지만, 어딘가 후렴을 지나 다른 구간으로 들어선 것처럼 들렸다. 반복되던 리듬 사이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알아차리는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차이.
도로는 분기점 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표지판은 점점 커졌고, 화살표의 파란색은 햇빛 아래서 더 선명해졌다. 왼편 길 위로는 밝은 하늘이 열려 있었고, 오른편 길 너머로는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둘 다 길이었다. 둘 다 앞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같은 길은 아니었다.
여자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 듯하다가 멈췄다. 손끝이 바람을 느끼기 직전에서 접혔다. 그녀는 손을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주 가볍게 말했다.
“나는 바다가 더 오래 보이는 쪽이 좋아.”
그는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표지판을 향해 차를 몰았다. 붉은 차의 보닛 위로 햇빛이 미끄러졌고, 두 갈래 화살표가 앞유리 위에 잠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기 전까지, 둘 중 누구도 다시 말을 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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