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un 소설 2화] 파란 표지판 아래
파란 표지판은 하늘에서 떨어진 조각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정말 하늘과 구분되지 않았다. 도로 끝에 걸린 푸른 사각형이 햇빛 속에서 조금씩 흔들렸고, 그 아래의 흰 글자는 아직 읽히지 않았다. 그는 글자를 억지로 읽으려 하지 않았다.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읽으려 하면 가까운 길을 놓친다. 지금은 표지판보다 그 표지판까지 이어지는 커브가 먼저였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번쩍였다.
길은 절벽과 흰 난간 사이를 따라 낮게 휘었다. 난간은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선이었지만, 가까워질수록 단단한 경계가 되었다. 그 너머로 밀려오는 파란빛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위험했다. 눈을 빼앗기면 차는 아주 조금씩 바깥으로 밀려난다. 아주 조금이면 충분하다.

조수석의 여자가 문 위에 손을 얹었다. 손목의 팔찌가 바람에 흔들리며 짧게 울렸다.
"속도 줄일 거야?"
"아직."
"아직이라는 말은 늘 너무 늦게 끝나."
그는 대답 대신 핸들을 조금 안쪽으로 당겼다. 차체가 커브의 안쪽으로 붙었다. 타이어가 길 위의 작은 굴곡을 지나며 낮게 떨었다. 음악은 계속 흘렀다. 출발선에서 고른 그 곡은 이제 차 안의 장식이 아니었다.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도로가 조금씩 바뀌었다. 멜로디가 길을 따라오는 건지, 길이 멜로디를 밀어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앞쪽에 차 두 대가 보였다.
한 대는 왼쪽 차선에, 다른 한 대는 오른쪽 차선에 있었다. 멀리서 보면 두 차 사이에는 충분한 틈이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그 틈은 줄어들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계기판 위의 숫자는 작아지고 있었다. 숫자는 아무 감정 없이 줄었다. 바다도, 음악도, 조수석의 침묵도 숫자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숫자를 오래 보지 않았다.
시간을 보면 길이 흐려진다. 길을 보면 시간은 더 차갑게 줄어든다. 둘 다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도로를 택했다. 표지판은 아직 멀었고, 두 차 사이의 틈은 지금뿐이었다.
"지금?"
여자가 물었다.
"조금만 더."
"조금은 없어. 여기서는 있거나 없거나야."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왼쪽 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른쪽 차와의 사이가 손바닥 하나만큼 열렸다. 그는 그 틈으로 들어갔다. 붉은 차체가 두 차 사이를 지나갈 때, 양쪽 창문에 하늘과 바다가 각각 다른 색으로 스쳤다. 왼쪽에서는 흰 빛이, 오른쪽에서는 파란 빛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여자의 손이 문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게 고마웠다. 길 위에서 어떤 침묵은 말보다 더 단단하다. 그는 그 침묵을 옆에 태운 채 두 차 사이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뒤에도 바로 숨을 놓지 않았다. 차가 완전히 앞쪽으로 나가고, 뒤따르던 그림자가 백미러 속으로 줄어든 뒤에야 손가락의 힘을 조금 풀었다.
"좋았어."
여자가 말했다.
"아슬아슬했어."
"그게 좋았다는 뜻이야."
"네가 좋았다는 뜻이지."
이번에는 그녀가 조금 웃었다. 웃음은 바람에 금세 찢어졌지만, 그는 그 조각을 들었다. 도로 위에서 오래 함께 있으면 사람은 표정보다 호흡을 먼저 읽는다. 말이 없어도 안다. 방금 전의 위험이 완전히 싫지만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다음에도 그렇게 하라는 허락은 아니라는 것.
파란 표지판은 이제 글자를 조금 드러냈다.
체크포인트.
글자는 단순했다. 거창한 약속도 아니고, 도착이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야 할 지점. 그러나 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이상하게 좁아졌다. 목적지보다 작은 말이 목적지보다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그랬다. 저 아래를 지나가면 시간이 조금 늘어날 것이다. 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위안인지, 또 다른 요구인지 알 수 없었다.
도로가 다시 오른쪽으로 깊게 휘었다.
그는 발끝을 아주 조금 들었다. 차체가 앞으로 숙였다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밀려 얼굴 옆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았고, 다른 손은 여전히 문 위에 놓았다. 그 손등 위로 햇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지나갔다. 마치 길이 그녀의 손 위에 짧은 선을 계속 그리는 것 같았다.
"표지판 지나면 뭐가 나와?"
"길."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
"이 길에서는 그게 제일 정확한 대답이야."
그녀는 한숨을 쉬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이 도로는 모든 걸 미리 알려 주지 않는다. 멀리서는 하나의 길처럼 보이다가 가까워지면 둘로 갈라지고, 넓어 보이던 차선은 다른 차가 들어서는 순간 좁아진다. 표지판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기다릴 때는 하늘 전체만큼 커 보이다가, 막상 지나고 나면 뒤쪽의 작은 색점이 된다.
그 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는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도착이라는 말은 아직 차 안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도착은 음악의 끝을 데리고 온다. 그는 아직 이 곡이 끝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첫 번째 표지판을 지나기 전에는.
길가에 낮은 노란 벽이 스쳐 지나갔다.
벽에는 작은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창문 같은 것이 있었지만 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 앞에 걸린 천 조각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장면은 너무 짧아서 제대로 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간 뒤에 더 선명해졌다. 빠르게 달릴 때 풍경은 눈보다 늦게 마음에 닿는다.
"방금 봤어?"
여자가 물었다.
"노란 벽?"
"봤네."
"조금."
"조금 본 것도 본 거야?"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앞에 느린 차 한 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필 표지판 바로 앞이었다. 오른쪽 차선을 따라 묵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표지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늦는다. 왼쪽으로 나가면 커브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있으면 늦는다는 것만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왼쪽."
그는 이미 핸들을 왼쪽으로 틀고 있었다.
차는 바깥쪽으로 나갔다. 난간이 가까워졌다. 가까워지는 흰 선은 생각보다 차갑게 보였다. 바다는 그 너머에서 너무 아름답게 빛났다. 그는 그 빛을 보지 않으려 했다. 보지 않으려 하자 더 크게 보였다. 음악이 한순간 멀어지고, 타이어 소리가 앞으로 나왔다.
차체가 흔들렸다.
여자의 팔찌가 문에 부딪혔다. 짧은 금속음이 났다. 그는 핸들을 다시 안쪽으로 밀었다. 붉은 차는 느린 차의 옆을 지나쳐 표지판 아래로 들어갔다. 머리 위에서 푸른 그림자가 차 안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리가 울렸다.
짧고 밝은 소리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열리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계기판의 숫자가 숨을 되찾았다. 줄어들던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그는 숫자를 보자마자 이상하게 안도하지 않았다. 시간이 늘었다는 건 멈춰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직 더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표지판 뒤의 도로는 잠깐 넓어졌다.
그 넓어짐은 선물 같았다. 방금까지 길을 조이던 커브와 차들, 난간과 숫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그 짧은 틈에서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핸들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있었다. 음악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마디로 넘어갔다. 방금 전의 위험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넓어진 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차가 스스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잠깐 부드러워졌고, 바다는 오른쪽에서 멀어지는 대신 더 넓게 펼쳐졌다. 해안선의 흰 난간이 낮아지고, 그 너머로 파란 면이 길게 이어졌다. 그는 그 장면을 오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본다는 건 이 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눈이 머무는 순간, 다음 커브가 먼저 도착한다.
도로 바닥에 짧은 검은 자국들이 보였다.
누군가 먼저 지나가며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그는 그 자국 위로 차를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도 못했다. 타이어가 검은 선 하나를 밟고 지나가자 차체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여자가 그 흔들림을 느끼고 손을 다시 문 위에 올렸다.
"여기, 아까보다 길이 거칠어."
"넓은 길이 꼭 쉬운 건 아니야."
"너는 쉬운 길을 싫어해?"
그는 잠깐 웃었다.
"싫어한다기보다, 쉬운 길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그건 길 탓이야?"
"가끔은."
"아까부터 가끔이라는 말이 많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말들이 있었다. 도로가 넓어졌는데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이유, 표지판을 지나왔는데도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 느낌, 시간이 늘어났는데도 더 급해진 몸. 그런 것들은 설명하려고 하면 납작해진다. 그는 그냥 앞을 보았다.
멀리서 흰 새 모양의 장식이 난간 위에 잠깐 보였다.
정말 새인지, 표식인지, 길가의 조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눈에 들어온 순간 이미 뒤로 사라졌다. 여자가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건 뭐였지?"
"못 봤어."
"이번엔 내가 봤네."
"조금 본 것도 본 거야?"
그녀는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는 웃지 않았지만 입 안쪽이 조금 느슨해졌다. 방금 전까지 도로는 전부 앞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그 말 하나로 지나간 장면이 차 안에 다시 들어왔다. 놓친 풍경도 가끔은 늦게 도착한다.
"지나왔네."
여자가 말했다.
"응."
"좋아?"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체크포인트를 지나왔는데도 마음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이미 앞쪽을 보고 있었다. 도로 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다. 햇빛과 그림자가 겹쳐 하나의 길이 둘처럼 보이는 것인지, 정말로 두 길이 벌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른쪽 길은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고, 왼쪽 길은 바다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아직."
그가 말했다.
"아직?"
"다음 길을 봐야 좋아질 것 같아."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앞을 보았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턱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인지 긴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려고 옆을 보면 갈림길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체크포인트의 파란 표지판은 백미러 속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전부였던 것이 벌써 뒤로 밀려났다. 그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길 위의 약속들은 늘 그렇게 사라진다. 닿기 전에는 간절하고, 닿는 순간에는 환하고, 지나고 나면 다음 약속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래서 사람은 계속 달린다. 이미 얻은 것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여자는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방금 표지판 말이야."
"응."
"지나갈 때보다 지나가기 전이 더 커 보였어."
"뭐든 그래."
"목적지도?"
그는 대답을 늦췄다. 목적지라는 말이 차 안에 들어오자 음악이 잠깐 얇아진 것 같았다. 목적지는 있을 것이다. 언젠가 도로는 끝나고, 차는 멈추고, 음악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직 너무 멀었다. 아니, 멀어야 했다.
"지금은 다음 길만 보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더 묻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길 위에서 어떤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이미 낡아 버린다. 목적지에 대해 말하는 순간, 지금 지나가는 난간과 바람과 음악이 배경으로 밀려날 것 같았다. 그는 아직 그것들을 배경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길에서는 사라지는 것들이 오히려 중심이었다.
갈림길은 빠르게 다가왔다.
왼쪽 길의 바깥쪽에는 바다가 열려 있었다. 오른쪽 길은 언덕 사이로 들어가며 그늘을 품고 있었다. 두 길 모두 맞는 것처럼 보였고, 두 길 모두 뭔가를 잃게 할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손은 핸들 위에 있었고, 발은 액셀을 밟고 있었다. 선택은 아주 가까이 왔지만, 아직 그의 손 안에 머물렀다.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기다렸다.
길이 둘로 갈라지기 직전의 그 짧은 시간은, 이상하게도 표지판을 통과한 순간보다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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