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un 소설 1화] 라디오가 시작되기 전
신호등은 아직 붉었다.
그 붉은빛이 앞유리 없는 차 안으로 들어와 계기판 가장자리에 얇게 묻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 쪽에서 오는 빛은 이미 도로 위에 와 있었다. 흰 난간은 햇빛을 받아 조금씩 번졌고, 난간 너머의 하늘은 너무 파래서 실제보다 멀어 보였다.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것은 하늘이 아니라, 뜨거워진 가죽 핸들과 작은 라디오 버튼뿐이었다.

붉은 차는 정지선 앞에서 낮게 떨었다.
멈춰 있는데도 멈춘 것 같지 않았다. 엔진은 조용한 척했지만, 조용함 안쪽에 힘을 숨기고 있었다. 그 힘은 발끝으로 올라와 종아리 안쪽을 건드렸다. 조금만 밟으면 차는 앞으로 나갈 것이다. 조금만 더 밟으면 도로가 사람을 밀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밟지 않았다.
조수석의 여자는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밀어 올렸다.
"또 기다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핸들에서 떼어 라디오 쪽으로 옮겼다. 손끝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표시창에는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음악 제목들이었다. 첫 번째 제목은 햇빛을 잘 닦아 놓은 유리처럼 반듯했다. 두 번째 제목은 길가 천막이 바람에 부딪힐 때처럼 가벼웠다. 세 번째 제목은 아직 오지 않은 저녁을 품고 있었다.
여자가 웃었다.
"길보다 음악이 먼저야?"
"이 길은 음악을 고르고 나서야 시작돼."
말은 쉽게 나왔지만, 말하고 나서야 그는 그것이 꽤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도로에는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체크포인트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줄어드는 숫자도 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표지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직 닿지 않은 일이다. 지금 차 안에서 실제로 손에 닿는 건 작은 버튼과, 누르기 전의 망설임뿐이었다.
여자는 손목을 차문 위에 올렸다. 얇은 팔찌가 햇빛을 받아 한 번 반짝였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건데?"
"갈 수 있는 데까지."
"늘 그렇게 말해."
"늘 길이 먼저 정하니까."
"그래도 음악은 네가 정하잖아."
그는 표시창을 다시 보았다. 글자는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같은 제목인데 두 번째로 보니 조금 달랐다. 첫 번째 곡은 너무 매끈했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이 길에는 그런 음악이 어울리지 않았다. 길은 아마 틀릴 것이고, 차는 흔들릴 것이고, 그는 어느 순간 무언가를 놓칠 것이다. 세 번째 곡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끝난 뒤의 색을 데리고 오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제목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제목에는 바다를 보기 전부터 바다를 아는 사람의 태연함이 있었다. 너무 들뜨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곡.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조급하게 몰아붙이지는 않을 곡. 그는 그 정도면 오늘의 첫 길을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여자가 물었다.
"그걸로."
버튼을 누르자 아주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그 침묵은 음악보다 작았지만, 이상하게 넓었다. 엔진의 낮은 떨림, 여자의 팔찌가 문에 닿는 소리, 도로 옆 야자수 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어오는 바람의 얇은 숨소리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곧 음악이 시작되면 많은 소리가 뒤로 밀릴 것이다. 그래서일까. 음악이 나오기 직전에는 세상이 잠깐 더 자세해진다.
첫 음이 나왔다.
소리는 계기판 아래에서 시작해 그의 무릎 사이를 지나고, 열린 지붕 위로 빠져나갔다. 야자수 잎이 그 소리를 건드리는 것처럼 흔들렸다. 실제로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이 길에서는 그런 구분이 금방 쓸모없어질 것 같았다. 음악인지 바람인지, 속도인지 마음인지, 선택인지 우연인지.
여자는 선글라스를 다시 내렸다.
"나쁘지 않네."
"아직 출발도 안 했어."
"출발하기 전에 좋은지 아닌지 알 때도 있어."
그 말은 차 안에 남아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는 정면을 보았다. 붉은 신호 아래로 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가까운 차선은 선명했지만, 멀어질수록 흰 선은 햇빛에 녹아 흐려졌다. 그 끝에 첫 번째 커브가 숨어 있었다. 보이지 않아서 더 분명했다. 이 길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미리 보여 주지 않는다.
음악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차 안의 공기를 바꿔 놓기에는 충분했다. 방금 전까지 정지선은 출발을 막는 선이었는데, 이제는 첫 마디가 끝나기 전에 넘어야 할 얇은 경계처럼 보였다. 그는 오른발을 액셀 위에 올렸다. 아직 밟지는 않았다. 발바닥 아래에서 엔진의 맥박이 올라왔다.
"늦게 출발하면 따라잡아야 해."
여자가 말했다.
"알아."
"넌 따라잡는 걸 좋아해?"
그는 잠시 생각했다. 대답은 어렵지 않았지만,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잡는 것보다, 따라갈 길이 남아 있는 게 좋아."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을 보았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턱의 각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가 완전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좋았다. 길 위에 오르기 전에는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신호가 바뀌었다.
초록빛이 들어오는 순간, 도로는 갑자기 깊이를 얻었다. 멀리 있던 표지판은 더 멀어졌고, 바로 앞의 흰 선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는 액셀을 밟았다. 차는 앞으로 나갔다. 처음 몇 미터는 부드러웠다. 그다음은 빠르게 풀렸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음악의 첫 마디가 뒤쪽으로 밀려났다.
야자수가 하나, 둘 지나갔다. 셀 수 있을 때는 아직 느린 것이다. 곧 줄기와 잎은 숫자가 아니라 초록빛 흔들림이 되었다. 여자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겁먹은 소리는 아니었다. 몸이 속도를 받아들이는 소리였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도 옆을 보지 않았다. 지금 옆을 보면 첫 커브가 먼저 올 것이다.
출발선은 뒤로 사라졌다.
그는 백미러를 보지 않았다. 뒤를 보면 음악이 작아질 것 같았다. 정지해 있던 차 안의 질문들도 이미 뒤에 있었다. 남은 것은 손안의 핸들, 발아래의 떨림, 그리고 첫 커브까지 이어지는 짧은 직선이었다.
도로는 오른쪽으로 살짝 휘었다.
커브 바깥쪽에서 파란 조각이 번쩍였다. 아직 바다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색 하나면 충분했다. 목적지를 몰라도 방향을 믿게 만드는 색. 그는 핸들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차는 생각보다 민첩하게 반응했다. 민첩하다는 건 곧 까다롭다는 뜻이기도 했다.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 된다.
"이 길, 생각보다 조용하네."
여자가 말했다.
"곧 시끄러워질 거야."
"차들?"
"커브들."
그녀는 그 대답을 듣고 앞을 더 오래 보았다. 직선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빠르다고 믿는다. 진짜 속도는 길이 휘어질 때 드러난다. 그는 그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아직 첫 커브일 뿐인데도 손바닥 안쪽에 땀이 맺혔다. 음악은 그 땀을 모르는 척하고 다음 마디로 넘어갔다.
멀리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흰 점이었다. 곧 차체가 되었고, 그다음에는 지나쳐야 할 대상이 되었다. 도로는 넓어 보였지만, 음악의 박자는 그보다 좁았다. 그는 다음 마디가 오기 전에 차선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다. 이유는 없었다. 길 위의 판단은 종종 말보다 먼저 온다.
그는 왼쪽으로 나갔다.
붉은 차가 흰 차의 옆을 스쳤다. 지나치는 순간 상대 차의 창문에 하늘이 한 번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는 자신이 고른 음악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고, 밝지만 가볍기만 하지 않았다. 출발 전의 망설임까지 데리고 달릴 수 있는 곡이었다.
여자가 낮게 말했다.
"이제 보여."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보였다. 야자수와 흰 벽 사이로 열린 파란 면이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곧 커브 뒤로 사라졌다. 이 길은 보여 주고 빼앗는 식으로 사람을 앞으로 끌었다. 모든 풍경을 오래 주지 않았다. 잠깐 보여 주고, 조금 더 달리게 했다.
그는 액셀을 조금 더 깊게 밟았다.
엔진음이 올라갔고, 음악은 그 위를 미끄러졌다. 여자의 팔찌가 다시 한 번 문에 닿았다. 작은 금속음이 음악 사이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이 길에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차 안의 모든 소리는 이제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각자 자리를 찾은 듯했다.
그때 도로 옆으로 낮은 표지 하나가 지나갔다.
너무 빨라서 글자는 읽지 못했다. 대신 파란 가장자리와 흰 화살표만 눈에 남았다. 그는 그 짧은 표식을 놓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큰 표지판은 아직 앞에 있었지만, 작은 표식들은 이미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길은 언제나 큰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놓쳐도 달릴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이 사람의 손을 조금씩 고친다.
"방금 봤어?"
여자가 물었다.
"화살표?"
"응."
"방향은 봤어."
"글자는?"
"못 봤어."
"그럼 봤다고 할 수 있어?"
그는 대답 대신 핸들을 조금 바로잡았다. 그녀의 질문은 가벼웠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이 길에서 본다는 건 무엇일까. 멀리 있는 바다를 보는 것, 가까이 지나가는 흰 선을 보는 것, 조수석의 손이 문을 잡는 방식을 보는 것, 아니면 놓친 것을 놓쳤다고 아는 것. 그는 아직 잘 몰랐다. 다만 너무 많이 보려 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만 알았다.
차 앞쪽으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야자수들이 잠깐 도로 위에 만든 어두운 줄이었다. 차는 그 줄들을 하나씩 밟고 지나갔다. 빛, 그늘, 빛, 그늘. 음악의 박자와 딱 맞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그 리듬이 좋았다. 그는 그 어긋남에 맞춰 숨을 조금 늦게 내쉬었다. 정지선 앞에서 품고 있던 조바심이 그제야 조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팔을 문 안쪽으로 거두었다.
"바람이 세졌어."
"우리가 빨라진 거야."
"그게 같은 말은 아니지?"
"가끔은."
그녀는 웃었다. 이번에는 그가 보았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 웃음은 길을 믿는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길을 믿지 않지만, 지금은 믿는 척해 보기로 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는 그 차이를 알아차렸고,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앞쪽 도로가 아래로 살짝 내려앉았다.
그 너머에 파란 표지판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직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표지판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앞으로 가야 할 이유가 하늘에서 떨어진 조각처럼 도로 위에 걸려 있었다. 그는 그 표지판을 보자마자 마음이 조금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목표가 생기면 마음은 잠깐 정리된다. 문제는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다시 흩어진다는 것이다.
"저기까지는 갈 수 있겠지?"
여자가 물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길은 꼭 다른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표지판까지 가는 일은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길일수록 한 번쯤 사람을 얕잡아본다.
"가 봐야 알지."
"그 말 마음에 안 들어."
"나도 그래."
둘은 웃지 않았다. 웃을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고, 웃지 않을 만큼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차는 계속 달렸다. 파란 표지판은 조금씩 커졌다.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바다는 보였다가 사라졌고, 사라졌다가 다시 얇게 돌아왔다.
그는 문득 출발선 앞의 침묵을 떠올렸다. 음악이 나오기 전, 신호가 바뀌기 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그 짧은 시간. 지금은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와 닮아 있었다. 아직 첫 표지판에 닿지 않았고, 아직 다음 길은 보이지 않았고, 아직 그는 자신이 이 길에서 무엇을 놓치게 될지 몰랐다.
그는 출발 전에 고른 그 한 곡이, 어쩌면 목적지보다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곧 바람에 찢어졌다. 다음 커브가 가까웠다. 그는 핸들을 다시 잡았다.
도로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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