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un 소설 6화] 시간보다 조금 늦은 마음
시간보다 조금 늦은 마음
초침은 없는데도, 줄어드는 것은 늘 소리부터였다.
계기판 한쪽에서 남은 시간이 깎여 나갈 때마다, 차 안의 음악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짧고 맑은 음 몇 개가 먼저 앞유리를 두드리고, 그 뒤를 낮은 리듬이 받쳤다. 언덕의 끝을 넘자 빛이 한 번에 쏟아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을 눌러오던 그늘은 뒤로 미끄러졌고, 도로는 갑자기 넓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풍경이 주는 착각에 가까웠다. 실제로 넓어진 것은 하늘뿐이었고, 길 위에는 여전히 느린 차들이 간격을 흐트러뜨린 채 이어져 있었다.
붉은 차는 정상에서 잠깐 떠오르듯 가벼워졌다가, 곧바로 내리막의 속도를 얻었다. 바람이 앞유리 위를 길게 쓸고 지나갔다. 조수석의 여자는 손등으로 머리카락을 눌렀다. 언덕을 오를 때는 입술을 다문 채 앞만 보더니,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한 번 숨을 놓았다.
“조금 벌었어?”
그는 대답하지 않고 계기판을 한 번 봤다. 숫자는 벌었다기보다, 덜 잃고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가 지금은 전부였다.
“아니면,” 여자가 말했다. “그렇게 보이게만 하는 거야?”
그가 웃는 대신 핸들을 아주 조금 꺾었다. 앞차의 뒤를 따라가던 선이 부드럽게 비켜났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낮의 끝자락에 짧게 번뜩였다. 아직 들어갈 틈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제자리로 붙었다. 엔진 소리가 억눌린 채 길게 당겨졌다.
도로 양옆의 풍경이 또 바뀌고 있었다. 언덕 위의 거친 바위와 마른 풀 대신, 아래쪽에는 잘 정리된 나무들이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가지 끝은 바람에 흔들렸지만, 줄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멀리서는 밝은 물빛이 잠깐씩 보였다. 바다인지 강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푸른 빛이었다. 길은 그 물가를 향해 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서며 시간을 낭비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길은 늘 솔직하지 않았다.
앞에는 작은 승용차 하나와 짐을 실은 트럭 하나가 있었다. 둘 사이 간격은 넓지 않았고, 맞은편 차선에서는 은색 차가 느린 확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가속을 올렸다가, 다시 조금 놓았다. 조수석의 여자는 그 움직임을 몸으로 먼저 알아챘다. 발끝이 바닥을 한 번 짚고, 손이 문짝 위를 더듬었다.
“지금은 아니지?”
“아직.”
“아직이라는 말은 늘 금방 끝나더라.”
그는 대답 대신 트럭의 뒤쪽을 보았다. 햇빛이 금속 모서리에 걸려 짧게 튀었다. 짐칸의 그림자가 도로 위에서 떨렸다. 맞은편의 은색 차가 지나가고, 그 뒤에 비어 있는 구간이 잠깐 열렸다. 그는 그 순간을 재듯 숨을 멈췄다. 음악의 리듬이 마침 그 짧은 틈과 맞물렸다. 드럼이 한 번 치고, 멜로디가 위로 튀는 사이, 붉은 차가 차선을 넘어갔다.
트럭 옆을 스치는 동안 세상은 갑자기 가까워졌다. 바퀴 소리, 바람 소리, 엔진의 떨림, 금속과 금속이 서로를 의식하는 좁은 거리. 조수석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먼저 나오면 차가 그 말을 따라 흔들릴 것처럼, 그대로 앞만 봤다. 트럭의 앞머리를 넘는 순간, 그는 다시 핸들을 안쪽으로 접었다. 붉은 차가 제 차선으로 돌아오자마자 맞은편에서 흰 차 한 대가 낮게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차체를 때렸다.
그제야 여자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전엔 아니라고 했잖아.”

“조금 전엔 아니었지.”
“그 한마디가 제일 위험해.”
그는 웃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짧았다. 차는 이미 다음 차량의 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방금 만든 여유는 금세 길 위의 다른 속도들에 잡아먹혔다. 내리막은 끝나지 않았고, 시간도 멈추지 않았다. 남은 숫자는 줄고 있었다. 그 숫자가 줄어드는 방식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멀리 있을 때는 아직 많아 보이는데, 가까워지면 갑자기 다 써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목적지란 대개 그런 식이었다. 눈앞에 보이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다가, 보이는 순간 사람을 몰아세웠다.
음악이 한 구절을 반복했다. 익숙해질 법한 타이밍인데도, 이상하게 이번에는 처음 듣는 것처럼 들렸다. 같은 멜로디가 같은 악기로 돌아오는데, 배경이 달라져서인지 의미가 달랐다. 해안에서 들을 때는 길이 열리는 소리였고, 흰 마을에서는 벽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였다. 지금은 어딘가를 향해 가는 소리라기보다, 어딘가에 너무 빨리 닿지 않게 붙들어 두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자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저기 봐.”
그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뭘.”
“길 말고.”
그는 그제야 아주 잠깐 옆을 봤다. 나무들 사이로 물빛이 넓게 열렸다. 빛이 표면 위를 얇게 미끄러졌고, 그 위에 작은 흰 점 몇 개가 떠 있었다. 배인지, 햇빛이 남긴 눈속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멀리 있는 것은 늘 조금 아름다웠다.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에.
“좋네.” 그가 말했다.
“좋네, 하고 지나가네.”
“안 지나가면 늦어.”
“늘 그 말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해놓고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고, 풍경은 보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떤 장면들은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더 오래 남는다. 그녀는 아마 그걸 알고 있었고,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쪽을 택하고 있었다. 하나는 오래 보고 싶은 쪽을, 하나는 놓치지 않아야 하는 쪽을.
앞쪽에서 파란 표지판이 작게 나타났다. 아직 글자는 읽히지 않았지만, 그 모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남은 길을 재는 사람에게 파란 표지판은 늘 약속과 협박을 함께 들고 왔다. 가까워질수록 안심이 아니라 긴장이 생겼다. 저기까지 닿으면 된다, 라는 생각과 저기까지도 못 가면 끝난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액셀을 조금 더 밟았다. 엔진음이 낮은 곳에서 올라와 차 안을 채웠다. 조수석의 여자가 그를 돌아봤다.
“또?”
“이번엔 해야 해.”
“해야 하는 일만 하다 보면, 도착한 다음엔 아무것도 안 남을 때가 있어.”
그 말은 핀잔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생각해 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꺼낸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앞차의 움직임을 보며, 다음 틈이 열릴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바람처럼 지나가지 않고 차 안 어딘가에 머물렀다.
도착한 다음엔 아무것도 안 남을 때가 있다.
그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는 늘 다음 구간이 있었고, 다음 표지판이 있었고, 다음 풍경이 있었다. 닿는 순간 끝나는 것들이 있었다. 목적지는 이름을 갖는 대신, 길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닿고 싶어 했고, 어떤 사람은 조금 덜 닿고 싶어 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그 차이 때문에 같은 차 안에서도 다른 시간이 흘렀다.
앞차가 오른쪽으로 아주 조금 흔들렸다. 트럭 뒤에 붙어 있던 작은 차가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차선을 넘어갈 공간이 열리기 전에, 먼저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그는 그 순간을 오래 배워왔다. 붉은 차가 다시 바깥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이번에는 더 길었다. 작은 차와 트럭을 한 번에 넘기려면 속도를 오래 유지해야 했다. 맞은편 도로는 비어 있었지만, 저 멀리 점 하나가 있었다. 그 점은 늘 생각보다 빨리 커졌다. 조수석의 여자는 이번엔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이제 그가 언제 들어가고 언제 못 들어가는지, 그 차이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무작정 위험한 것보다, 계산된 위험이 더 오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트럭의 옆면이 길게 이어졌다. 붉은 차의 그림자가 금속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점 하나가 점점 차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더 가야 했다. 트럭 앞을 넘는 순간, 앞쪽 도로가 한 번 아래로 기울었다. 그 경사 끝에서 파란 표지판이 훨씬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도로가 좌우로 갈리는 기색이 아주 멀리서부터 드러났다. 아직 분기점까지는 남았지만, 길은 벌써 선택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안쪽으로 들어왔다. 맞은편 차가 지나가며 차체를 흔들어 놓고 갔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 뜨고 말했다.
“이번엔 너무 길었어.”
“알아.”
“알면서 하네.”
“안 하면 더 늦으니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침묵이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해서 마음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창밖을 봤다. 나무들 사이의 물빛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가의 난간이 이어졌고, 그 너머로 낮은 지붕 몇 개가 멀리 나타났다. 누군가의 생활이 있다는 뜻인데도, 그 풍경은 이상하게 더 쓸쓸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지붕도 한순간의 색일 뿐이었다.
차 안의 음악이 후렴으로 들어갔다. 가벼워 보이던 선율이 이번에는 조금 애틋하게 들렸다. 여자는 계기판을 보았다. 남은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넉넉하다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숫자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앞만 보았다. 숫자를 자주 보면 마음이 먼저 줄어드는 때가 있었다.

“있잖아.”
그녀가 말했다.
“응.”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돼?”
그는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 다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앞쪽 도로는 잠시 비어 있었고, 그 빈 길이 오히려 질문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그 말은 단순했지만, 이 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부탁처럼 들렸다. 시간을 포기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떼를 쓰는 기색이 없었다. 그냥 정말로, 그렇게 해볼 수 없느냐는 질문이었다.
“왜?”
“모르겠어.”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자꾸 도착하기 아까워.”
그는 그제야 그녀를 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짧은 시선 안에 많은 것이 지나갔다. 해안의 빛, 흰 벽의 그림자, 언덕의 그늘, 방금 스쳐 지나간 물빛.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는 목적지로 가는 중간 단계였는데, 그녀에게는 이미 하루의 대부분이 되어 있었다. 아까운 것은 늘 지나간 쪽에 있었다.
그는 다시 앞을 봤다. 파란 표지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글자가 읽히기 시작했고, 그 아래 숫자처럼 짧은 거리감이 생겼다. 체크포인트까지의 마지막 구간은 대개 가장 짧아 보이면서 가장 멀었다. 길은 곧 끝날 것처럼 말해놓고, 마지막에 꼭 한 번 사람을 시험했다.
“천천히 가면,” 그가 말했다. “못 닿을 수도 있어.”
“알아.”
“그럼?”
“그래도 묻고 싶었어.”
그는 대답 대신 속도를 유지했다. 더 밟지도, 놓지도 않았다. 그 애매한 선택이야말로 지금 그가 줄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시간에게 완전히 지지 않으면서, 길에게도 전부 양보하지 않는 속도. 하지만 그런 속도는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곧 앞에 또 다른 차가 나타났고, 남은 시간은 다시 숫자의 얼굴을 드러냈다.
표지판 아래로 도로가 길게 휘었다. 그 바깥쪽에는 낮은 난간과, 그 아래로 떨어지는 빛이 있었다. 그는 브레이크를 짧게 밟고, 곧바로 풀었다. 차가 휘청이듯 선을 따라갔다. 여자는 몸을 문 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코너를 빠져나오자 체크포인트의 구조물이 멀리 보였다. 길 위에 걸쳐 선 단순한 문. 저것을 지나면 일단 시간은 다시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녀의 말이 더 선명해졌다. 도착하기 아깝다.
체크포인트가 보이자 대부분의 사람은 안도했을 것이다. 그는 안도 대신 이상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 구간이 끝난다는 생각이 먼저 왔다. 방금 전까지는 시간이 모자랐는데, 이제는 시간이 모자라서 좋았던 것들까지 생각났다. 바다를 더 오래 보지 못한 것, 흰 마을의 그림자를 천천히 지나지 못한 것, 언덕 정상에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지 못한 것. 길은 늘 앞으로만 열렸고, 아쉬움은 늘 뒤에 남았다.

“저기야.”
여자가 먼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심과 서운함이 함께 있었다. 서로 반대되는 감정인데도, 이상하게 같은 자리에서 들렸다.
“응.”
“닿겠네.”
“닿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기뻐하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난간과 빛을 보며, 아주 작게 웃었다.
“이상하지.”
“뭐가.”
“늦을까 봐 그렇게 달렸는데, 막상 닿기 직전엔 조금 늦어도 될 것 같아.”
그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지금 그의 손끝에도 와 있었기 때문이다. 액셀을 더 밟으면 된다. 그러면 더 확실하게, 더 빨리 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발은 그만큼 깊이 내려가지 않았다. 음악이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는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끝으로 갈수록 더 선명해졌다. 어떤 곡들은 마지막에야 비로소 자기 얼굴을 보여준다.
체크포인트가 가까워졌다. 문 아래의 그림자가 도로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 숫자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다음 길, 다음 풍경, 다음 선택.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그 다음이 오기 전의 몇 초가 이상할 만큼 길었다. 그는 그 몇 초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앞유리 너머로 길이 반짝였다. 난간 너머의 빛이 마지막으로 크게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조수석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지금은 말보다 음악이 더 정확하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빠르게 지나갔지만, 차 안에서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도착과 미련이 같은 속도로 다가오는 시간.
그는 아주 미세하게 발의 힘을 조절했다. 빨라지지도, 완전히 느려지지도 않는 그 애매한 순간에, 음악의 마지막 구절이 시작됐다. 멜로디는 더 이상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이 끝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다 들려주려는 것처럼, 맑고 단정하게 이어졌다.
체크포인트의 그림자가 앞범퍼에 닿기 직전, 여자가 낮게 말했다.
“지금은 길이 이기면 좋겠어.”
그는 그 말을 듣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에 들어간 힘이 아주 조금 풀렸다. 붉은 차는 여전히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남아 있었고, 도착도 거의 손에 잡혔다. 그런데 그 마지막 몇 초 동안만은, 숫자보다 음악이 더 또렷했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에 남은 것은 음악뿐인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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