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un 소설 5화] 그늘이 먼저 오는 언덕
그늘이 먼저 오는 언덕
언덕의 꼭대기는 끝내 보이지 않았고, 먼저 온 것은 그늘이었다.
붉은 차의 앞유리 위로 햇빛이 한 번 길게 번졌다가, 다음 순간 누군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은 것처럼 빛이 접혔다. 방금까지 흰 벽에 튕겨 눈부시던 길이, 언덕을 타고 오르며 갑자기 온도를 바꿨다. 뒤에 두고 온 마을은 아직도 환했는데, 앞은 이미 색이 한 톤 가라앉아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의 낮은 돌담이 짧게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나무 그림자가 길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림자는 차보다 먼저 커브를 돌았고, 차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다만 발목의 각도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손은 스티어링 휠의 윗부분을 가볍게 쥔 채였고, 손등에 닿는 빛이 커브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조수석의 여자는 한쪽 팔을 문에 기대고 앉아 있다가, 창밖으로 미끄러지는 나무의 줄기들을 바라보았다. 흰 마을을 지날 때까지는 벽과 창문과 빨랫줄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 대신 같은 간격으로 서 있지 않은 것들,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부터가 떨어지는 비탈인지 한눈에 다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엔진 소리는 오르막에서 조금 더 낮고 단단해졌다. 음악은 그 위에 얇게 깔려 있었지만, 처음 출발할 때처럼 차 안을 가득 채우지는 못했다. 음은 분명히 흐르고 있었는데, 길이 그보다 먼저 귀에 들어왔다. 타이어가 노면의 이음새를 밟을 때마다 짧은 진동이 올라왔고, 커브의 안쪽으로 몸이 쏠릴 때마다 좌석의 가죽이 미세하게 밀렸다. 여자는 안전띠가 어깨를 당기는 감각을 한 번 느끼고, 손끝으로 벨트 가장자리를 만졌다가 놓았다.
“여긴 바다가 안 보이네.”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대답 대신 앞유리 오른편을 턱으로 가리켰다. 나무 사이가 잠깐 벌어진 틈으로, 아주 멀리 물빛이 한 줄 보였다. 금속처럼 반짝이는 선이었다. 그러나 다음 커브가 오자 그것도 바로 끊겼다.
“저렇게 잠깐 보이는 건 본 걸로 안 쳐.” 그녀가 말했다.
그는 웃는 대신 기어를 한 단 내렸다. 엔진이 짧게 울리고 차가 몸을 낮춘 채 언덕을 붙들었다. 앞에는 같은 방향으로 오르는 차 한 대가 있었다. 짙은 색 차체가 그늘 속에 들어가면 거의 검게 보였고, 햇빛을 밟으면 다시 원래 색을 찾았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이 길에서는 직선이 짧았다. 추월을 하려면 커브 하나를 읽고, 그 다음 커브가 어디서 닫히는지 먼저 알아야 했다.
여자는 앞차의 뒤를 보다가 계기판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숫자는 꾸준히 줄고 있었다. 아까 마을을 빠져나오며 잠깐 느슨해졌던 마음이 다시 조여 오는 속도였다. 시간은 늘 같은 얼굴로 줄어드는데, 길은 구간마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해안에서는 바람과 트럭이 있었고, 마을에서는 벽과 버스가 있었다. 여기서는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다음 풍경. 언덕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는데, 시간만 먼저 알고 있는 듯한 느낌.

“앞질러?”
그녀가 묻자 그는 잠깐만, 하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앞차와 그 앞의 빈 공간과, 커브 바깥으로 기울어진 나무 그림자를 한 번에 훑었다. 오른발에 힘이 조금 더 실렸다가, 다시 빠졌다. 붉은 차는 앞차에 바짝 붙었다. 뒤 범퍼가 커졌다. 그 차의 배기음이 이쪽 음악 위로 겹쳐졌다.
그늘이 한 번 더 깊어졌다. 이번에는 길 왼편의 나무가 아니라, 언덕이 자체로 만든 그늘이었다. 도로가 산의 어깨를 감고 도는 짧은 구간에서, 햇빛은 아예 다른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사이, 앞차의 테일램프가 잠깐 붉게 살아났다. 브레이크였다.
그도 바로 발을 옮겼다. 차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바로 앞 커브의 안쪽에서 느린 차 한 대가 더 나타났다. 앞차는 그것을 보고 속도를 줄인 것이었다. 순식간에 세 대가 한 줄이 되었다. 언덕길은 갑자기 좁아 보였다. 실제로 좁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앞과 뒤와 바깥쪽 낭떠러지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면 길은 늘 조금씩 줄어드는 법이었다.
여자는 창밖을 보았다. 돌담 아래로는 풀과 마른 흙이 있었고, 그 아래는 경사가 급했다. 바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는 다른 냄새였다. 따뜻한 흙 냄새와 잎이 비벼지는 냄새. 길 위의 공기가 식은 것은 햇빛이 가려져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고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앞의 느린 차는 짐을 실은 작은 트럭이었다. 적재함 위에 눌러 씌운 천이 바람에 약하게 떨렸다. 그 천의 모서리가 펄럭일 때마다 여자는 이유 없이 신경이 쓰였다. 저게 풀리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아니라, 길 위에서 흔들리는 것은 다 시간을 가져간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왼쪽 거울을 보고, 중앙을 보고, 다시 앞을 봤다. 반대편 차선은 지금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길의 비어 있음은 오래 믿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커브 하나만 돌아도 상황은 바뀌었다. 그가 추월을 미루는 동안 계기판의 숫자가 한 칸씩 떨어졌다. 여자는 그 숫자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줄어드는 것은 숫자뿐인데, 사람은 거기에 다른 것까지 겹쳐 보게 된다. 여유, 선택, 다음 분기까지의 거리 같은 것들.
“지금은 아니지?” 그녀가 물었다.
“지금은 보여.”
“보이는 거랑 되는 거랑은 다르잖아.”

그는 그제야 짧게 웃었다. “그래서 아직 안 했지.”
앞차가 먼저 움직였다. 반대 차선으로 반쯤 몸을 내밀었다가, 곧장 다시 들어왔다. 커브 뒤에서 회색 승용차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두 차가 스치며 지나가는 동안, 언덕의 그늘은 더 짙어 보였다. 내려오는 차는 짧은 순간 햇빛을 등에 지고 있었고, 그 빛 때문에 차체 윤곽이 날카로워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스티어링 휠을 한 번 두드렸다. 음악의 박자와 맞지 않는 두 번의 짧은 탁탁 소리였다. 여자는 그 소리를 듣고 그가 계산을 다시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조급할 때 오히려 말을 줄였다. 길을 읽는 동안에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말도, 자신을 다독이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무심해서가 아니라, 다른 데 쓸 틈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었다.
언덕은 한 번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곧 다시 꺾였다. 나무가 적어지는 구간에서 하늘이 넓게 열렸다. 빛이 갑자기 돌아오자 둘은 동시에 눈을 약간 찡그렸다. 그리고 바로 보였다. 앞쪽 멀리, 도로가 산허리를 따라 길게 누운 모습. 몇 번의 커브가 겹쳐 보였고, 그 위로 파란 표지판이 아주 작게 서 있었다. 아직 읽을 수는 없었지만, 색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기.”
여자가 먼저 말했다.
그는 대답 대신 가속했다.
앞차와 트럭 사이의 거리가 아주 조금 벌어진 순간이었다. 붉은 차가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나갔다. 엔진 소리가 열리고 바람이 차 옆면을 때렸다. 트럭의 적재함이 옆으로 지나가며 시야를 잠깐 가렸다. 천 모서리가 바로 눈앞에서 떨렸다. 그 다음은 앞차의 옆면이었다. 짙은 색 차체에 햇빛이 번쩍 붙었다가 뒤로 날아갔다. 여자는 숨을 들이켰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반대편 차선 저 멀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아직은.
그는 한 번에 둘을 넘기지 않았다. 앞차를 지나자마자 차를 다시 안쪽으로 넣었다. 트럭 앞, 앞차 뒤도 아닌, 트럭 앞쪽의 짧은 빈칸에 차체를 꽂아 넣듯 들어갔다. 붉은 차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서스펜션이 한 번 눌렸다가 풀렸다. 여자는 그때서야 숨을 내쉬었다.
“둘 다 갈 줄 알았어.”

“길이 짧아.”
“시간도 짧고.”
그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계기판으로 한 번 내렸다가, 다시 앞의 트럭으로 돌렸다. 파란 표지판은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언덕길은 표지판이 보인다고 해서 곧장 닿는 법이 없었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감겨 있었고, 직선처럼 보이는 구간도 막상 들어가면 미묘하게 기울고 휘어 있었다.
트럭 뒤를 따라가는 몇 초가 길게 늘어졌다. 여자는 차창 위쪽에 붙은 햇빛의 모양을 보았다. 나무가 다시 늘어나며 빛이 잘게 쪼개졌다. 얼굴과 무릎 위로 잎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 그림자는 물결처럼 흔들렸지만, 바다의 반짝임과는 달랐다. 여기의 흔들림은 더 가까웠고, 더 불안했다. 언덕 아래가 보이지 않는 탓인지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것은 늘 상상할 자리를 남겼다.
“아까보다 차가 적은데 더 답답해.”
그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앞이 안 보여서.”
“앞이 안 보이면 느려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다 느려.”
그는 트럭 뒤에서 차를 살짝 오른쪽으로 붙였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렸다. 앞바퀴가 노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번갈아 밟았다. 바깥쪽으로 시선을 던져 보면, 저 아래 멀리 다른 도로가 보였다. 아주 가늘고 하얀 선처럼. 방금 지나온 마을인지, 아직 가야 할 다른 구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거리였다. 그 선이 보였다 사라질 때마다, 이 언덕이 단지 하나의 언덕이 아니라 여러 풍경 사이에 끼인 접속부처럼 느껴졌다. 바다와 마을과 산길과,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 사이의.

파란 표지판이 조금 더 커졌다. 화살표의 방향 정도는 읽힐 만큼. 그러나 그 표지판이 가리키는 것은 길이지 풍경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무엇이 나오는지, 왼쪽으로 가면 무엇이 오래 이어지는지, 그런 것은 이 거리에서 알 수 없었다. 그는 표지판을 보는 대신 그 앞의 도로를 봤다. 어느 쪽이 더 빠를까가 아니라, 어느 쪽이 지금 이 차의 속도를 덜 꺾게 할까를 계산하는 눈이었다.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계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다가 더 오래 보이는 쪽을 말했던 건 지난번이 처음이었고, 이번에는 그조차 확신이 없었다. 언덕 위의 길은, 멀리서 보기엔 다 비슷해 보였다. 하나는 그늘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것 같고, 하나는 빛으로 나갈 것 같았지만, 그런 인상은 커브 하나면 뒤집혔다.
트럭이 갑자기 속도를 더 늦췄다. 표지판 직전의 급한 굽이였다. 뒤쪽 바퀴가 노면의 패인 곳을 밟으며 적재함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는 바로 바깥으로 차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짧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붉은 차는 트럭의 왼편으로 튀어나갔다. 엔진이 높게 울고, 바람이 차 안으로 파고들었다. 트럭 운전석 창문이 스치는 순간, 여자는 그 안의 사람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만 팔 하나가 창틀에 걸쳐져 있었던 것만 보였다. 그 짧은 인간의 형체가 이상하게도 이 언덕 전체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 저마다 다른 목적지로 가는 차들이 같은 시간 아래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트럭을 넘긴 뒤 길은 바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파란 표지판이 머리 위를 스쳤다. 화살표가 둘로 갈라져 있었고, 각 방향 아래에 적힌 글자는 너무 짧은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는 이미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른쪽이었다. 차가 분기점의 흰 선을 타고 미끄러지듯 넘어가며 새로운 차선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몸이 바깥으로 쏠리는 것을 어깨로 버티며, 뒤로 멀어지는 왼쪽 길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쪽은 잠깐 더 밝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나무와 지형이 시야를 가렸다.
“왜 이쪽이야?”
그녀가 묻자 그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언덕이 덜 꺾여.”
“그게 보여?”
“조금.”
그녀는 창밖을 다시 보았다. 선택은 이미 지나갔다. 지나간 표지판은 늘 뒤에서 더 또렷해지는 법인데, 뒤를 볼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길은 처음 몇 초 동안만 넓어 보였고, 곧 다시 산의 몸체를 따라 감겼다. 대신 높이가 더 빨리 붙었다. 바깥쪽으로 시야가 트이는 순간이 늘어났다. 아래쪽 풍경이 한 조각씩 보였다. 흰 점 같은 집들, 실선처럼 누운 도로, 멀리 물빛.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잠깐씩만 허락되었다. 길은 보여 주고, 바로 감췄다.

계기판의 숫자는 여전히 줄고 있었다.
체크포인트까지는 아직 남아 있었다. 파란 아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시간을 더 빨리 닳게 했다. 눈앞에는 분명히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어디서 숨을 돌려 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속도를 더 올렸다. 새로 들어선 길은 노면이 조금 거칠었다. 차체 아래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달라졌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 잔잔한 떨림이 붙었다. 여자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포개 쥐었다.
“아까 마을이 더 쉬웠던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벽은 보여.”
“여긴 안 보이는 게 너무 많아.”
그는 이번에도 반박하지 않았다. 앞에 나타난 긴 커브를 보며 차를 바깥으로 붙였다가, 안쪽으로 깊게 잘라 넣었다. 돌담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타이어가 안쪽 선을 스치듯 지나갔다. 차는 안정적으로 돌아 나갔지만, 여자의 시선은 자꾸 커브 너머에 멈췄다. 거기에는 늘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내려오는 차일 수도 있고, 더 느린 차량일 수도 있고, 갑자기 열리는 긴 직선일 수도 있었다.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셋은 비슷했다.
바람이 세졌다. 언덕 위쪽으로 열린 구간에 들어서자, 차는 옆에서 미는 힘을 한 번 받았다. 그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스티어링을 바로잡았다. 여자는 그 작은 수정이 더 긴장되었다. 큰 위험은 누구나 알지만, 이런 식의 미세한 대응은 차가 이미 위험과 같은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멀리서 짧은 경적 소리가 들렸다. 앞쪽은 아니었다. 뒤에서 다른 차가 분기 이후 같은 길로 따라붙고 있는 것인지, 아래쪽 다른 도로에서 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산길에서는 소리의 방향이 자주 틀렸다. 한 번 튕겨서 오고, 늦게 도착했다. 여자는 잠깐 뒤를 돌아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뒤를 보는 순간 앞이 더 낯설어질 것 같았다.
길가에 세워진 작은 표식 하나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검은 화살표가 흰 바탕 위에 꺾여 있었다. 급커브 예고였다. 그는 이미 브레이크에 발을 얹고 있었다. 차가 짧게 속도를 줄이자, 음악이 다시 귀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사라진 줄 알았던 멜로디가 브레이크와 함께 선명해졌다가, 다시 가속과 함께 멀어졌다. 여자는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음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길이 허락할 때만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급커브는 생각보다 깊었다. 산의 안쪽을 파고들었다가, 다시 바깥으로 던져 내는 형태였다. 안쪽 벽은 거칠고 어두웠고, 바깥은 갑자기 탁 트여 있었다. 차가 커브를 빠져나오자 시야가 한 번에 열렸다. 아래로 겹겹이 깔린 도로와, 더 멀리 엷게 누운 물빛,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작은 다리 같은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보여서였다. 방금 전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 사람은 잠시 방향 감각을 잃는다.
그 열린 시야의 맨 앞, 도로 위로 파란 구조물이 아주 멀리 떠 있었다.
체크포인트였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보인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지 않을 만큼.
“보여.”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에 기쁨보다 계산이 먼저 섞였다.
그도 봤다. 하지만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체크포인트가 보이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남은 거리가 실감났다. 닿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숫자와 도로의 길이로 나뉘기 시작하는 구간. 희망이 아니라 측정의 문제로 바뀌는 구간.
계기판의 숫자는 그 측정에 친절하지 않았다.
앞길은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끝나자마자 안도할 틈도 없이, 차는 내리막의 속도 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내리막은 시간을 벌어 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산길에서는 그만큼 더 많은 결정을 빨리 요구했다. 커브는 더 날카로워 보였고, 가드레일은 드문드문 끊겨 있었다. 체크포인트의 파란 문은 멀리서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처럼 떠 있었다.
그는 기어를 맞추고, 차를 내리막의 리듬에 얹었다. 엔진 브레이크의 낮은 울림이 차체를 받쳤다. 여자는 손을 포갠 채 앞을 보았다. 이제는 바다를 오래 보는 쪽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부터 커져 온 불안이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다음 풍경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에 닿기 전에 시간이 먼저 닫힐지도 모른다는 종류의 불안.
붉은 차는 그 불안이 먼저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점점 더 빨리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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