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un 소설 4화] 흰 벽의 마을

파란 분기 표지판은 생각보다 빨리 뒤로 밀려났다.

2. OutRun 아케이드 캐비닛 · Wikimedia Commons / 空練
2. OutRun 아케이드 캐비닛 · Wikimedia Commons / 空練

한쪽에는 바다가 더 오래 붙어 있을 것 같은 이름 없는 푸른 기색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을 정면으로 튕겨내는 밝은 길이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손은 핸들을 두 시 방향과 열 시 방향 사이에 가볍게 걸쳐 두고 있었고, 발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눌렀다. 붉은 차는 짧게 몸을 기울인 뒤, 빛이 더 많은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여자는 창밖을 한 번 보고, 그를 한 번 봤다.

“바다가 더 오래 보이는 쪽은 아니네.”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앞유리 너머로 길게 뻗은 도로를 보며 말했다.

“조금만 지나면 다른 게 보여.”

“그 말, 믿어도 돼?”

“안 믿어도 늦었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길의 성질이 달라졌다.

해안 도로에서 바람은 옆으로 흘렀다. 차체를 스치고, 머리카락을 흔들고, 음악의 빈 곳을 채우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길의 바람은 앞에서 왔다. 정면의 열기와 함께 밀려와 유리창을 두드리고, 흰빛이 섞인 먼지를 얇게 끌고 지나갔다. 도로는 넓지 않았다. 차선은 여전히 둘이었지만, 양옆의 여유가 사라졌다. 낮은 담이 먼저 나타났고, 그 뒤로 햇빛을 삼킨 듯한 흰 벽들이 줄지어 섰다. 벽은 가까웠다. 너무 가까워서, 속도가 조금만 더 붙으면 차체의 붉은색이 그 표면에 묻어날 것 같았다.

멀리서 보면 그림엽서 같았을 것이다. 흰 벽, 작은 창, 벽에 걸린 그림자, 언덕을 따라 층층이 얹힌 집들. 하지만 그 풍경 안으로 들어오자 아름다움은 금세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길은 곧게 뻗지 않았다. 벽과 벽 사이에서 자꾸만 접혔고, 시야는 다음 모퉁이까지만 허락됐다. 앞차의 지붕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트럭의 둔한 뒷모습이 벽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계기판의 숫자는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지만, 이 구간에서 진짜 문제는 속도가 아니었다. 속도를 어디에 둘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액셀을 밟은 채로, 아주 잠깐만 힘을 덜었다. 차가 한 호흡 쉬는 듯했다가 다시 앞으로 나갔다. 음악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해안 도로에서처럼 넓게 퍼지지 못했다. 드럼은 벽에 부딪혀 짧아졌고, 베이스는 차 바닥 아래에서만 울리는 것 같았다. 멜로디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갇힌 길에서는 소리도 도망갈 데가 없었다.

첫 번째 추월은 무리하지 않았다. 앞서 가던 작은 차가 코너를 돌며 속도를 잃는 순간, 그는 중앙선 쪽으로 반 박자 미리 나갔다가 짧게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창문 위를 짚고 있던 손을 조금 세게 쥐었다. 손등에 햇빛이 번졌다.

“여긴 바다보다 벽이 더 많네.”

“그래도 길은 있어.”

“그건 보여.”

“보이는 것보다 좁지는 않아.”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웃은 건지, 어이없어한 건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건 운전하는 사람만 하는 말이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다음 코너를 읽었다. 벽의 그림자 길이, 앞차의 흔들림, 맞은편에서 번쩍하고 나타나는 헤드라이트. 길은 사람의 말보다 빨랐다.

마을은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벽 아래쪽엔 오래된 먼지의 색이 남아 있었고, 창틀은 바다를 잊지 못한 듯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가끔 열린 창문 안쪽으로는 어두운 실내가 잠깐 드러났다. 빨랫감이 낮게 걸린 골목도 있었고, 담장 너머로 야자수가 얇게 흔들리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한순간이었다. 차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남는 것은 흰 벽과 좁은 길, 그리고 다음 코너를 가리는 햇빛뿐이었다.

앞에 트럭이 하나 나타났다. 해안 도로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커 보였다. 실제로 큰 게 아니라, 이 길이 그만큼 좁아서였다. 네모난 짐칸이 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채 느리게 올라가고 있었다. 뒤에 붙자 시야가 거의 사라졌다. 트럭 아래로 보이는 아스팔트와, 왼쪽 바퀴가 노란 선을 살짝 밟는 모습만이 앞을 대신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이번엔 못 가겠지?”

그는 트럭의 왼쪽 가장자리와 벽의 간격을 보았다. 맞은편 길은 아직 비어 있었지만, 이 마을의 길은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다. 다음 모퉁이 뒤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못 가.”

그녀는 그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창밖을 다시 보았다. 차는 트럭 뒤에서 잠시 속도를 죽였다. 그 짧은 감속만으로도 시간은 눈에 보이게 줄어드는 것 같았다. 화면 어딘가에 떠 있을 법한 숫자가 실제로는 보이지 않아도, 둘 다 그것이 깎여 나가는 감각을 알고 있었다. 이 길에서는 몇 초가 길의 폭만큼 귀해졌다.

트럭은 느렸다. 느린데도 쉽게 추월할 수 없었다. 코너가 이어졌고, 벽이 이어졌고, 오르막이 이어졌다. 그는 두 번, 세 번 중앙선 쪽으로 몸을 뺐다가 다시 들어왔다. 차는 참을성 없는 짐승처럼 앞머리를 흔들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타이밍 하나가 어긋날 것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그러다 길이 아주 잠깐 열렸다.

왼쪽 벽이 뒤로 물러나며 작은 광장 같은 빈 곳이 나타났고, 그 바깥으로는 마을 아래쪽의 푸른 면이 언뜻 비쳤다. 바다는 정말 있었다. 다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그 한 조각의 푸른빛보다, 트럭 옆으로 난 짧은 직선을 먼저 보았다.

엔진 소리가 한 번 낮게 가라앉았다가 곧바로 치솟았다. 붉은 차가 중앙선을 넘었다. 트럭의 옆면이 바로 옆으로 미끄러졌다. 흰 벽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잠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맞은편 길 끝에서 작은 차 하나가 코너를 돌며 나타났다. 아직 거리는 있었지만, 이 좁은 길에서는 그 거리도 금세 닫힐 것이었다.

여자의 손이 대시보드 위로 올라왔다.

그는 핸들을 아주 조금만 더 왼쪽으로 밀었다가, 트럭의 앞머리를 지나자마자 다시 오른쪽으로 접어 넣었다. 차체가 짧게 흔들렸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벽에 튕겨 두 번 들렸다. 맞은편 차는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다음에야 옆을 스쳤다. 하얀 차였다. 지나가는 순간 서로의 사이드미러가 같은 햇빛을 받았다.

여자는 숨을 참고 있었던 것을 그제야 내쉬었다.

“지금은 못 간다더니.”

“지금은 아니었잖아.”

“말장난 잘하네.”

“살아남는 데 도움 되면 괜찮지.”

그녀는 그를 쳐다보다가, 결국 웃었다. 짧고 날카로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 가지 못했다. 길이 다시 접혔기 때문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벽은 더 높아졌다. 어떤 구간에서는 하늘이 가늘게 잘린 파란 띠처럼만 보였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곳은 갑자기 서늘했고, 그늘에서 그늘로 넘어갈 때마다 차의 붉은색이 짙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바퀴 아래의 노면도 일정하지 않았다. 매끈한 아스팔트가 이어지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오래된 패치가 덧대어져 미세하게 울퉁불퉁했다. 그 작은 진동이 핸들을 통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그는 점점 말을 줄였다. 차를 모는 사람의 침묵이란 대개 무심한 것이 아니라 바쁜 것이다. 눈은 앞을 보지만, 실제로는 앞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벽의 모서리, 창문에 비친 반사광, 코너 안쪽 그림자의 깊이,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가능성, 맞은편의 엔진음.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들어오고, 그중 하나라도 늦게 읽으면 길이 갑자기 닫혔다.

여자는 그 침묵의 종류를 알아차린 듯했다.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스카프 끝을 눌러 잡고, 다른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가끔 창밖을 보다가, 가끔 계기판을 보고, 가끔 그의 옆얼굴을 봤다. 바람은 여전히 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해안에서의 바람과는 달리 이곳의 바람은 향기가 짧았다. 흰 벽에서 튕겨 나온 더운 냄새, 어딘가에서 잠깐 스쳐 온 꽃 냄새, 지나가는 골목의 서늘한 먼지 냄새가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체크포인트 표지판이 멀리 보였을 때도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직전에 가장 위험한 구간이 있었다. 마을 중심을 가르는 듯한 좁은 직선로에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작은 차 둘, 트럭 하나, 다시 작은 차 하나. 길은 곧아 보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살짝 꺾여 있었고, 그 꺾임 너머는 흰 벽이 막고 있었다. 한 번에 다 넘기기엔 길이가 애매했고, 나눠 가기엔 앞차들이 서로 너무 가까웠다.

여자가 먼저 표지판을 봤다.

“저기.”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이미 보고 있었다. 파란 기둥과 체크 문양, 그 아래로 열려 있는 다음 구간의 입구. 하지만 그 앞을 차들이 채우고 있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고, 길은 넓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엔진음이 다시 낮아졌다. 그는 앞차의 리듬을 맞추는 척하며 붙었다. 작은 차의 뒤유리에 햇빛이 맺혔다. 그 반짝임이 흔들리는 각도를 보며 그는 앞차 운전자의 망설임을 읽는 것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사람인지, 코너를 겁내는 사람인지, 트럭 뒤에 안심하는 사람인지. 그 짧은 관찰 끝에 그는 결심했다.

붉은 차가 왼쪽으로 튀어나갔다.

첫 번째 작은 차를 넘을 때는 여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없었다. 트럭 옆으로 붙는 순간 길이 갑자기 좁아졌다. 오른쪽에는 회색 철판, 왼쪽에는 흰 벽, 앞에는 아직 남은 작은 차의 꼬리. 맞은편에서 차가 오지 않는다는 확신은 없었다. 확신이 생길 만큼 먼 곳까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확신 대신 타이밍을 믿었다.

트럭의 운전석 높이를 지나며 잠깐 그림자가 차 안으로 덮쳤다. 이어서 다시 햇빛. 그는 마지막 작은 차의 왼쪽 뒷부분을 스치듯 지나며 핸들을 안으로 꺾었다. 차가 제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체크포인트가 바로 앞이었다. 파란 표식이 유리창을 가득 채웠다가, 순식간에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특유의 짧은 해방감이 찾아왔다. 시간의 숫자가 다시 채워지는 느낌. 숨을 오래 참고 있다가 겨우 들이마시는 것 같은 틈. 하지만 이 마을은 그 틈마저 넉넉하게 주지 않았다. 체크포인트를 통과한 바로 뒤에서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휘었고, 흰 벽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자는 뒤늦게 웃음과 한숨을 섞어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는 이번에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여긴 그렇게 생겼어.”

“길이?”

“응. 예쁘게 생겼는데, 양보는 안 해.”

그녀는 창밖의 벽을 보았다. 햇빛을 머금은 흰색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오히려 빈틈이 없어 보였다.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은데, 막상 부딪치면 이쪽이 먼저 깨질 것 같은 표면. 그녀는 손끝으로 문짝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처음엔 엽서 같았는데.”

“지금은?”

“봉투 안쪽 같아.”

그는 그 말에 아주 조금 웃었다. 입꼬리가 잠깐 움직였을 뿐이지만, 그녀는 본 것 같았다.

마을의 가장 높은 쪽으로 올라갈수록 바다는 더 자주 보였다. 다만 넓게 펼쳐지지 않고, 집과 집 사이, 벽과 담 사이, 코너가 풀리는 찰나에만 잘린 조각으로 나타났다. 그 푸른 조각이 보일 때마다 여자의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차는 늘 그보다 빨랐다. 푸른빛은 금세 뒤로 밀리고 다시 흰 벽이 앞을 채웠다.

길가의 야자수 잎이 높은 담 너머로 넘어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가 앞유리를 쓸고 지나갈 때마다 차 안의 표정도 잠깐씩 달라졌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졌다. 그의 턱선은 그늘에서 더 단단해 보였고, 그녀의 눈은 햇빛에서 더 멀리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을의 집들이 조금씩 성글어지기 시작했다.

벽과 벽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길 옆으로 낮은 돌담이 나타났다. 흰색은 그대로였지만 폐쇄감은 옅어졌다. 대신 경사가 더 분명해졌다. 도로는 언덕을 감아 오르며, 다음 구간을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채 위로만 이어졌다.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위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길이 다시 열릴지 더 조여들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먼저 그 변화를 느꼈는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이제 끝나가?”

그는 언덕 위를 보았다. 보인 것은 하늘뿐이었다. 길은 마지막까지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마을은 거의.”

“거의?”

“저 너머는 아직 몰라.”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계속 올라갔다. 엔진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울렸고, 바람은 다시 조금 넓어졌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방금 전보다 말이 적었다. 좁은 길과 흰 벽 사이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지나온 탓인지도 몰랐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너무 바빴고, 위험했다고 말하기엔 이미 지나와 버린 구간이었다. 남은 것은 언덕 너머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바람이 다시 그것을 흐트러뜨렸다. 그는 고치지 않았다. 그녀도 다시 넘기지 않았다.

붉은 차는 흰 마을의 마지막 벽을 스치듯 지나, 보이지 않는 다음 구간을 향해 올라갔다. 언덕 위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길에서는 오히려 더 길게 침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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