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67화] 빈 껍질 위로
막힌 길 끝에서 빛이 깜박였다.
마르는 루카의 어깨 너머로 그것을 보았다. 얼음에 비친 불빛인 줄 알았지만 셋이 멈춘 뒤에도 같은 자리에서 빛났다. 동굴을 빠져나와 바위를 돌아온 길은 여기서 끝이었다. 돌아가면 방금 쓰러뜨린 것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루카가 장갑을 벗었다. 손등의 붕대에 피가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바위의 작은 빛을 더듬었다. 얼음이 떨어졌고, 안쪽의 돌이 조금 들어갔다.
낮은 소리가 발바닥으로 올라왔다.
뒤쪽 바위틈에서 눈이 무너졌다. 숨겨져 있던 입구가 벌어졌다. 마왕이 돌아섰다. 마르는 그가 몸을 낮출 때 등에 묶인 인형이 바위에 부딪치지 않도록 손을 대었다. 천 너머의 어깨는 움직이지 않았다.

입구 안에서는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셋은 잠깐 멈춰 마른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마르는 씹다가 입 안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혀가 닿을 때마다 조금 아팠다. 물을 마시려니 손이 말을 듣지 않아 루카가 물통을 받아 주었다.
“네 것도 먹어.”
마르가 말했다.
루카는 물통을 내려놓고 남겨 둔 빵을 들었다. 마왕은 동굴 바깥을 보고 있었다. 마르는 그에게도 조각을 내밀었다. 그가 받지 않을 것 같아 손을 거두려는데 검은 장갑이 앞으로 나왔다. 마왕은 서서 먹었다.
루카는 끈이 느슨해진 곳을 다시 묶었다. 두 번째 동굴 끝에는 회색빛이 보였다. 출구 아래로 눈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는 바람이 불었지만 그곳의 눈은 이상할 만큼 낮고 평평했다.
그 한가운데에 가시들이 솟아 있었다.
마르는 이번에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활을 꺼내며 벽 가까이로 붙었다. 루카도 껍질을 보자 총구를 낮추었다. 마왕은 인형을 큰 바위 뒤에 놓았다. 셋은 그 바위를 등지지 않고 양옆으로 나누어 섰다.
앞쪽의 입이 들렸다. 차가운 김이 낮게 흘러나왔다.
루카가 한 번 쏘았다. 탄환은 입 가장자리에 맞았다. 가시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르는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도 같았다.

루카가 두 번째로 팔을 뻗을 때 김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안경 안쪽이 흐려졌다. 그녀는 렌즈를 닦으려다 손을 떨어뜨렸다. 총구가 천천히 내려갔다. 마르가 이름을 부르자 루카가 고개를 들었다.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곧 한쪽 무릎이 눈 속에 묻혔다.
마르가 달려가 총을 받쳤다. 루카의 입에서 긴 숨이 나왔다. 어깨를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았다.
마왕이 입 앞으로 들어섰다. 낫의 날이 껍질과 나란히 움직였다. 생물이 고개를 돌리자 그도 옆으로 옮겼다. 한 번 공격할 수 있었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이 루카 쪽을 보지 못하게 하는 움직임이었다.
마르는 친구의 뺨을 두드렸다.
“일어나.”
대답이 없었다. 뒤에서 불이 터졌다. 마왕의 옷자락이 그을렸다. 마르는 더 세게 손바닥을 대었다. 뺨에 붉은 자국이 났다. 루카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미안. 일어나야 해.”
루카의 눈이 열렸다. 마르를 보다가 자기 손에 없는 총을 찾았다. 마르는 손잡이를 돌려주었다. 루카는 일어서지 않고 무릎을 세워 겨누었다.
“저 숨, 마시지 마.”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생물이 몸을 흔들었다. 흰 덩어리가 마르 쪽으로 날아왔다.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관자놀이에 충격이 왔다. 눈밭이 옆으로 기울었다.
마르는 활에 화살을 걸었다. 앞쪽에 검은 것이 움직였다. 가시가 달린 몸이 또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쪽으로 돌아섰는데 화살촉 앞에 손이 나타났다.
마왕이었다.
그는 활을 아래로 눌렀다. 마르는 팔을 빼려 했다. 눈을 깜박이자 낫의 자루와 검은 옷이 따로 보였다. 인형은 바위 뒤에 있었다. 눈앞에 괴물은 없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말로 묶을 수 없었다.
“저쪽이다.”
그가 말했다.
마르는 숨을 세 번 나누어 쉬었다. 활을 돌렸다. 이번에는 입이 보였다. 루카의 총성이 그쪽에서 났다. 김이 흐르는 방향을 보고 한 걸음 옮겼다. 시위가 손가락을 벗어났다.
화살이 젖은 살에 박혔다. 루카가 같은 곳으로 불을 보냈다. 생물이 입을 움츠렸고, 마왕이 날을 깊이 걸었다. 자루를 비트는 동안 껍질은 그대로 있었다. 입이 벌어져 날이 빠져나왔다. 마왕이 물러나자 몸 전체가 눈 위로 무너졌다.
이번 껍질도 금이 갔다. 깨진 조각들이 비탈을 타고 미끄러졌다. 마르는 손을 든 채 기다리다 천천히 내렸다.
화살은 돌려받지 못했다. 열 발이 남았다.
루카가 마르의 관자놀이를 살폈다. 이마를 짚는 손이 따뜻했다. 마르는 자기가 그 손에 활을 겨누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가, 누구에게 겨누었는지를 생각했다.
마왕은 인형을 다시 묶고 있었다.
“아까는…….”
“다음 길이나 봐라.”
그가 말했다. 마르는 말을 잇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중 어느 것을 하려 했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
두 번째 푸른 인형은 가느다란 눈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떨어지면 다시 올라와야 해.”
마르는 길 아래를 보았다. 비탈이 크게 돌아, 훨씬 아래에서 지나온 길과 만났다. 돌아 올라오는 동안 바람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었다. 길의 폭은 두 발을 나란히 놓으면 거의 차 버릴 만큼 좁았다.
루카가 밧줄을 꺼냈다. 셋은 서로를 잡아당기지 않을 간격을 두고 같은 줄을 잡았다. 마르는 앞에서 갔다. 아래를 보면 몸이 저절로 그쪽으로 기울어 눈 위의 발자국 자리만 보았다.

몇 걸음째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무릎을 굽히자 활 끝이 눈에 닿았다. 뒤쪽 줄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 루카가 급히 당기지 않고 버텨 주었다. 마르는 몸을 낮춘 채 발을 제자리로 돌렸다.
바람이 옆구리를 쳤다.
그녀는 멈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숨소리도 잠깐 고요해졌다. 마왕의 낫자루 끝이 뒤에서 얼음을 긁었다. 바람이 지나간 뒤 마르는 다시 발을 옮겼다.
길이 넓어지자 루카가 먼저 줄을 놓았다. 손바닥에 가느다란 자국이 파여 있었다. 마르는 그 자국을 보다가 자기 장갑을 고쳐 꼈다. 끝난 줄 알고 허리를 펴자 위쪽 눈이 움직였다.
둥근 것들이 비탈을 타고 내려왔다.
마왕이 팔을 가로로 내밀었다. 셋은 멈춰 섰다. 검은 몸 하나가 마르의 발 앞을 스치고 낮은 길로 굴러갔다. 뒤따르는 것들도 곧 지나갔다. 마르는 마지막 소리가 멀어진 뒤에야 발을 들었다. 이번에는 달려들어 싸울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 인형이 바위 옆에 서 있었다.
“빈 껍질을 밀어. 그 위로 올라가.”
루카가 걸음을 멈췄다. 마르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지나온 곳에 쓸 수 있는 껍질은 없었다. 작은 인형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위쪽에서 돌이 떨어졌다.
셋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경사면 끝에는 사람이 올라설 만한 턱이 있었다. 그러나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그 앞에 마지막 가시 등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르는 바위 뒤에 알을 놓을까 생각했다가 옷을 여몄다. 품에 둔 채 움직이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인형은 루카와 함께 낮은 바위 그늘로 옮겼다. 얼굴이 위를 향하도록 눕히고 천을 눌러 두었다.
생물의 입이 아래쪽을 향했다.
마왕이 옆으로 움직였다. 경사가 있어 위로 베면 날이 껍질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몇 걸음 더 돌아 입과 같은 높이에 섰다. 루카는 아래에서 무릎을 굽혔다. 총구가 가시를 향하지 않는지 옆으로 기울여 확인했다.
마르가 앞으로 손을 폈다. 좁은 냉기가 입 끝에 맺혔다. 생물이 머리를 떨자 얼음 조각들이 떨어졌다. 그 틈에 루카가 쏘았다.
벌어진 입이 갑자기 더 넓어졌다.
가느다란 것들이 빛났다. 마르가 얼굴을 가리자 장갑에 뜨거운 통증이 박혔다. 어깨의 붕대가 다시 젖었다. 루카가 옆으로 쓰러졌다가 팔꿈치로 몸을 받쳤다.
“껍질은 안 건드렸어!”
그녀가 외쳤다. 마르도 보았다. 껍질의 가시들은 잠잠했다. 바늘들은 입에서 나왔다.
약한 곳이 공격도 하고 있었다.
마르는 장갑에서 작은 가시를 뽑았다. 손가락 두 개가 잘 굽지 않았다.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얹어 온기를 모았다. 루카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의 어깨로 손을 옮겼다. 모든 상처를 닫을 만큼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불덩이가 아래로 날았다. 마왕이 낫을 거두고 물러났다. 눈이 녹으며 발밑이 낮아졌다. 그가 미끄러지는 순간 생물의 머리가 앞으로 나왔다. 루카의 총성이 울렸고, 벌어진 입이 옆으로 틀어졌다. 마왕은 발을 빼 다른 돌에 디뎠다.
마르는 그가 잠깐 무릎을 굽히는 것을 보았다.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신전의 모습이 겹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자루를 짚고 스스로 일어났다.
“한 번 더.”
루카가 말했다.
마르는 남은 화살 중 하나를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시위를 당기자 가시에 찔린 자리가 벌어졌다. 입이 루카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더 기다리면 친구가 맞았다.
화살을 놓았다.
루카가 몸을 낮추었다. 화살은 그녀의 머리 위를 지나 입 안에 박혔다. 생물이 고개를 들었다. 마왕은 앞에서 뛰어들지 않고 옆으로 붙었다. 낫의 날이 살 아래로 들어갔다.
루카가 좁게 모은 불을 보냈다. 마르는 온몸을 덮는 불길을 생각했으나, 눈앞에는 입 안쪽만 밝히는 작은 불이 있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 끊어졌다.
벌어진 입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마왕이 자루를 당겨 날을 빼냈다. 몸이 한 번 크게 떨렸다. 그 뒤에는 껍질만 남았다.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았다.
아홉 발. 마르는 화살통을 손으로 짚고 활을 내려놓았다. 루카가 껍질에 가까이 갔다. 손을 대기 전에 총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왕이 뒤에서 밀었다. 껍질이 조금 움직이며 눈 밑의 돌을 긁었다. 마르는 그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더는 바늘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녀도 가시가 없는 옆면에 손을 댔다.
셋이 함께 밀었다.
바닥이 기울어 한 번씩 손을 바꿔야 했다. 루카가 방향을 잡고, 마왕이 무게를 받았다. 마르는 껍질 밑에 걸린 돌을 치웠다. 턱 아래에 닿자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인형을 먼저 올렸다. 루카가 껍질의 앞쪽을 딛고 올라가 매듭에 걸린 줄을 받았다. 마왕이 아래에서 밀어 주었다. 천 꾸러미가 턱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마르는 밑에서 보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되자 손을 둘 곳을 찾는 데 오래 걸렸다. 조금 전까지 공격하던 몸이었다. 가시 사이에 손을 대고, 껍질 앞쪽의 움푹한 곳을 디뎠다. 루카가 손목을 잡았다. 마르는 턱 위로 배를 끌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마왕이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는 바람이 뜻밖에 맑았다. 눈가루가 얼굴을 때리지 않았다. 마르는 일어나 앞을 보았다. 더 올라갈 바위가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녀는 옷 안에서 천 꾸러미를 꺼냈다. 천은 땀에 젖어 있었지만, 안쪽의 알은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