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62화] 돌려받은 하늘

찢어진 금속판이 바람에 펄럭였다. 마르는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지도 못하고 기어갔다. 조금 전까지 발을 놓았던 곳으로 하늘이 보였다. 루카의 손은 아직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실버드가 날개와 나란히 날았다.

투명한 덮개가 뒤로 밀렸다. 달톤의 머리카락이 이마에서 곧추섰다. 그는 그것을 한 번 쓸어 넘기더니 몸을 일으켰다.

“제국의 새 비행선 앞에서 고개를 숙여라! 에어 달톤 임페리얼이다!”

날개를 단 실버드에서 새 이름을 외치는 달톤 - RPGClassics
날개를 단 실버드에서 새 이름을 외치는 달톤 - RPGClassics

바람이 끝말을 찢어 가져갔다. 이름을 들은 루카의 눈썹이 올라갔다. 마르는 그 표정을 보고도 웃지 못했다. 실버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날개 끝에서 선체까지는 두어 걸음이면 닿을 거리였지만, 그 두 걸음을 받쳐 줄 바닥은 없었다.

달톤이 팔을 벌렸다.

“어떤가! 이제 누가 하늘의 주인인지—”

루카가 먼저 뛰었다.

마르는 숨을 들이킬 틈도 없이 뒤따랐다. 발밑의 금속이 사라졌다. 허공에서 활이 등을 때렸다. 펼쳐진 작은 날개 위로 무릎이 떨어졌고, 두 팔로 선체 가장자리를 끌어안았다. 발끝이 한 번 허공을 긁었다. 누군가 팔꿈치를 잡았다. 루카가 몸을 뒤로 젖혔다.

마르는 배를 끌며 올라왔다. 옷 아래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숨을 내쉬자 목에서 짧고 거친 소리가 났다.

달톤은 두 사람과 빈 날개를 번갈아 보았다. 벌어진 입이 천천히 다물어졌다.

“남의 배에 올라타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지?”

루카가 총을 뽑았다.

“내려.”

그가 손을 내밀었다. 공기 속에서 둥근 쇳덩이가 생겨났다. 마르는 그것이 떨어지는 방향을 보았지만 몸을 피할 수 없었다. 갈비뼈 안쪽까지 울리는 충격이 왔다. 손에서 힘이 빠졌다. 실버드의 날개가 등 밑에서 기울었다.

루카가 한쪽 무릎으로 그녀의 다리를 눌렀다. 마르는 손톱을 이음매에 밀어 넣었다. 머리 위에서 총성이 났다. 달톤이 덮개 뒤로 몸을 숙였다.

마르는 입을 벌려 숨을 찾았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는 사라졌는데 몸이 그 자리를 기억했다. 목덜미가 축축했다.

“마르.”

“잡고 있어.”

대답하고 나니 실제로 손에 힘을 줄 수 있었다. 그녀는 팔을 당겨 무릎을 날개 위에 올렸다. 루카는 총을 쥔 채 다른 손바닥을 펴고 있었다. 작은 불꽃이 손가락 사이로 모였다.

불길이 열린 조종석을 핥았다. 달톤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입가가 움직였다.

마르는 루카의 소매에 하얀 것이 달라붙는 것을 보았다. 눈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것들이 단단해졌다. 얼음이 팔뚝을 감싸며 이어졌다. 루카가 이를 악물고 팔을 접었다. 금이 갔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구부러진 팔에서 총구가 하늘로 들렸다.

“같은 건 두 번 안 통하지!”

달톤은 웃었다. 마르의 발밑에서도 서리가 번졌다. 그녀는 굳어 가는 손으로 선체의 고리를 붙잡았다. 떨어지지 않는 것이 먼저였다. 달톤의 얼굴을 겨냥할 생각도, 그의 웃음을 지울 생각도 그다음으로 밀렸다.

마르는 손바닥 아래에 냉기를 모았다. 달톤이 뒤로 물러나는 자리에 얼음이 솟았다. 그의 옷자락이 좌석에 얼어붙었다.

그가 손목을 뒤집었다.

불길이 날개 바깥으로 밀려왔다. 마르는 얼굴을 감쌌다. 열이 손등을 훑고 지나갔다. 선체를 타고 흐르던 얼음물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루카는 낮게 엎드렸고, 머리 위로 주황색 불꽃이 날렸다.

불이 걷혔을 때 마르는 활을 꺼냈다. 굽힌 무릎 사이에 활 아랫부분을 끼웠다.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자 떨리는 손가락이 깃을 구겼다. 달톤은 자기 옷에 붙은 얼음을 떼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겨누었다.

화살이 날아갔다. 달톤이 몸을 비틀었다. 촉이 윗팔을 스치고, 찢어진 천 조각이 허공에 떴다. 화살은 조종석 가장자리에 부딪쳐 아래로 사라졌다. 마르는 남은 두 발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몸을 붙였다. 다시 쇳덩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루카가 맞았다.

안경이 코끝에서 미끄러졌다. 그녀가 떨어뜨린 총이 날개 위를 굴렀다. 마르는 발로 총을 막았다. 루카의 뺨이 선체에 닿았고, 눈은 뜨여 있었다.

“루카.”

대답 대신 손가락이 움직였다. 마르는 그 손등에 자기 손을 얹었다. 빛을 모으는 동안 달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에 느껴지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루카가 팔꿈치를 세웠다.

“불에는 얼음.”

루카의 목소리가 낮았다.

“네 얼음에는 불. 공격을 보고 돌려주는 거야.”

하늘을 나는 실버드 위에서 벌어지는 달톤과의 전투 - RPGClassics
하늘을 나는 실버드 위에서 벌어지는 달톤과의 전투 - RPGClassics

달톤은 찢어진 소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가 저절로 곧게 날고 있어서 그에게는 두 손이 다 자유로웠다. 그가 소매를 뜯어 냈다. 마르는 손에서 빛이 새지 않게 손가락을 오므렸다.

“그럼 어떻게 해?”

루카는 자신의 팔을 감싼 얼음 조각을 조종석 모서리에 내리쳤다. 금 간 조각들이 떨어졌다. 그녀는 총을 집어 허리띠에 끼웠다.

“내가 할게. 넌 나를 잡아 줘.”

마르는 활을 등에 걸고 루카의 허리띠를 잡았다. 팔을 한 번 감아 당겼다. 손잡이처럼 쓸 수 있는 튼튼한 가죽이었다. 루카의 가방끈이 그 옆에서 바람에 떨렸다.

“잡았어.”

루카가 몸을 일으켰다. 달톤이 이쪽을 보았다. 이번 불꽃은 흩어지지 않았다. 덮개 안쪽에 모여 그의 손과 얼굴을 향해 치솟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차가운 빛이 돌아왔다. 마르는 루카의 허리를 힘껏 당겼다. 둘은 선체 옆으로 몸을 낮췄다. 어깨에 얼음이 부딪쳤다. 마르는 이를 악문 채 가죽끈을 놓지 않았다. 루카가 손을 펴기까지 기다렸다가, 얼어 굽지 않는 손가락 위로 회복의 빛을 흘렸다.

그 사이 달톤이 조종석에서 기어 나왔다. 한쪽 장화가 좌석에 걸렸다. 그가 발을 빼려다 기체가 흔들렸다. 마르는 루카의 허리띠를 놓고 곧장 이음매를 붙잡았다.

달톤도 멈췄다. 발 아래로 바다가 지나갔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날개를 스치는 바람과 실버드의 낮은 진동이 그 짧은 틈을 채웠다. 마르는 자기 숨이 너무 크게 들려, 달톤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그가 손을 들었다.

루카가 먼저 불을 놓았다.

달톤은 덮개에 등을 부딪쳤다. 손끝에서 맺히던 것이 풀려 흩어졌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바로 웃지 못했다. 타다 만 소매 끝에서 작은 불씨가 떨어졌다.

“이런 데서…… 내가…….”

그의 눈이 검은 새 쪽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날개가 뒤에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달톤은 두 팔을 뻗었다. 손 사이의 공기가 검게 접혔다.

“나와라! 이놈들을 치워!”

갈라진 틈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달톤이 안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르는 날개 위에 납작 엎드렸던 거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달톤에게 그것을 알려 줄 이유는 없었다.

틈이 갑자기 커졌다. 달톤의 소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팔을 빼려 했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다른 손이 실버드의 덮개를 움켜쥐었지만 손가락이 하나씩 미끄러졌다.

짧은 고함과 함께 그의 장화가 보였다. 두 발이 허공을 차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틈이 닫혔다.

마르는 한동안 그 자리를 보았다. 가라앉는 소리도, 물에 닿는 소리도 없었다. 그의 손이 놓인 덮개에는 손가락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실버드가 기울었다.

루카가 조종석으로 넘어갔다. 마르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좌석 사이로 굴러들었다. 무릎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쳤다. 덮개가 닫히자 바람 소리가 갑자기 멀어졌다. 마르는 그 조용함 때문에 귀가 먹은 줄 알았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루카가 조종판을 내려다보았다. 원래 없던 손잡이가 옆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당겼다.

선체 앞에서 빛이 뻗었다.

검은 새의 날개가 한 줄로 갈라졌다.

루카의 손이 굳었다. 거대한 기체가 서서히 옆으로 기울었다. 부러진 날개 끝에서 작은 검은 조각들이 떨어졌다. 선체가 바다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하자 마르는 저 안의 좁은 통로를 생각했다. 문이 잠긴 창고도. 그녀는 유리에 손을 대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폭발에 휩싸인 검은 새의 선체 - RPG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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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있어?”

루카는 다른 조종간을 움직였다. 실버드가 크게 흔들렸다. 마르의 이마가 유리에 닿았다. 루카는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조금 되돌렸다. 바다가 시야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 새가 수면에 부딪쳤다.

물보라가 창을 가득 채웠다. 실버드는 옆으로 떠밀렸다. 마르는 손잡이를 붙든 채 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먼저 드러난 것은 날개 한쪽이었다. 이어 배의 등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 뒤로는 물이 둥글게 밀려왔다.

루카는 입술을 물고 있었다. 마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래로 내려가려면 다시 조종간을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물은 어느 곳이나 똑같이 어두웠다.

실버드는 한 바퀴를 돌았다. 루카는 속도를 늦췄다. 떠 있는 나무 조각들 사이에서 사람을 찾았으나 이 높이에서는 분간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낮추려 하자 선체가 떨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조종간을 붙잡았다.

마르는 뒷자리로 물러났다. 옆 좌석에는 뜯어진 천 조각이 있었다. 달톤의 옷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닥으로 밀어 놓고, 빈 자리에 내려앉으려던 손을 무릎으로 가져왔다.

한참 뒤에야 루카가 육지를 찾았다.

마을 바깥 눈밭에 내려앉을 때 실버드는 두 번 튀었다. 루카는 완전히 멈출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덮개가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마르는 밖으로 나와 바닥을 밟았다. 움직이지 않는 땅인데도 무릎이 자꾸 굽었다.

사람들이 집에서 나왔다. 누군가 달톤을 물었다. 루카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 검은 새가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마르가 고개를 저었다. 말을 만들려 하자 바닷물이 닫히던 모습만 떠올랐다.

불가에 앉혀 준 여자가 물 한 그릇을 내밀었다. 마르는 두 손으로 받았다. 따뜻해서 손가락이 아팠다.

“북쪽 곶에 사람이 있더구나.”

여자는 마르의 젖은 옷을 보며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불러도 돌아보질 않아. 너희 일행인가 해서.”

북쪽 곶의 낯선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민 - RPG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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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는 그릇을 내려놓지 못한 채 루카를 보았다.

루카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릇 안의 물이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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