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61화] 날개 위의 발자국
환기 통로 아래에서 쇠붙이가 굴러갔다.
마르는 내밀던 손을 멈췄다. 가느다란 틈으로 빛이 올라왔다. 그 위에 무릎을 대면 아래에서도 그림자가 보일 것 같아 몸을 뒤로 당겼다. 루카가 따라 멈췄다. 어깨를 돌릴 수도 없는 곳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숨소리를 들었다.
“더 조여! 내 왕좌를 그따위로 만들 셈이냐!”
달톤이었다. 마르는 턱을 낮추고 틈을 내려다보았다. 넓은 방 한가운데 실버드가 놓여 있었다. 선체 밑에서 병사 둘이 무엇인가 붙잡고 있었고, 달톤은 그들보다 훨씬 멀리 서서 손가락을 휘둘렀다. 작업대에는 떼어 낸 덮개와 새 금속판이 섞여 있었다.
실버드의 양옆이 전보다 넓었다. 긴 뼈대에 판을 대고 있었다. 마르가 뒤로 손을 뻗자 루카의 손가락이 닿았다. 자리를 바꾸기에는 통로가 좁았다. 그녀는 옆으로 최대한 붙었고, 루카가 어깨 너머로 아래를 보았다.
“저걸 왜…….”
루카의 말이 잦아들었다. 달톤이 위쪽을 본 탓은 아니었다. 누군가 새 뼈대를 들어 올리자 선체에 붙은 모양이 분명해졌다. 날개였다. 마르는 실버드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루카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는 없었다. 틈도 손가락 몇 개가 들어갈 크기였다. 달톤이 이동하자 병사들이 뒤따랐고, 마지막 사람은 문을 닫으며 열쇠를 돌렸다. 루카는 그 소리를 듣고 마르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가방부터 찾자.”
마르는 다시 앞을 향했다. 실버드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갔다.
통로는 갈라졌다가 다른 방 위에서 다시 만났다. 첫 방에는 병사가 앉아 있었고, 다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르는 덮개의 먼지에 손가락으로 짧은 선을 그어 지나온 방향을 남겼다. 같은 곳을 되짚으며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사람의 말보다 끊임없이 도는 기관 소리가 컸다. 그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무릎을 옮겼다.
빈방 구석에서 활을 발견했다.
상자의 뚜껑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익숙한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마르는 서둘러 덮개를 들다가 나사 머리에 손톱이 걸렸다. 루카가 뒤에서 구부러진 머리핀을 내밀었다. 둘은 덮개 한쪽만 밀어 놓고 몸을 낮춰 내려갔다. 발이 닿자 무릎이 저릿했지만 몇 번 굽혔다 펴니 나아졌다.
활 아래에는 화살 세 발이 있었다. 하나의 깃이 눌려 있었다. 마르는 손끝으로 펴고 시위를 살폈다. 상자 밑바닥까지 만져 보았으나 펜던트는 없었다. 루카가 문에 귀를 댔다. 복도에서 두 사람의 걸음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나갈 수 있어.”
루카가 말했다. 마르는 활을 들고 그 옆에 섰다.
복도 바닥의 일부가 움직이고 있었다. 넓은 띠가 느리게 돌아 짐을 옮겼다. 마르는 올라서기 전에 옆의 고정된 가장자리를 보았다. 루카가 먼저 거기로 발을 옮겼다. 둘은 벽을 따라 다음 모퉁이까지 갔지만 건너편에서 병사가 나오자 돌아서야 했다.
늦었다. 병사의 시선이 활에 멎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마르는 화살을 쏘았다. 어깨를 겨눈 것은 아니었다. 들고 있던 무기의 자루를 맞혔다. 금속이 바닥에 떨어지고 병사가 몸을 숙였다. 루카가 열린 손으로 짧은 불꽃을 보냈다. 병사는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나다 벽에 부딪쳤다.
마르는 다가가 발로 무기를 밀어냈다. 루카가 그의 허리에서 열쇠를 빼는 동안 활을 겨누었다. 병사가 다시 움직이려 하자 마르는 고개를 저었다.
“소리 내지 마.”
두 사람은 그를 빈방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마르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주웠다. 촉이 무뎌졌지만 자루는 부러지지 않았다. 옷에 닦아 다른 두 발과 나란히 넣었다. 루카는 열쇠 꾸러미를 꽉 쥐었다가 풀었다. 문 너머에서 욕설이 터졌다. 오래 조용할 수는 없었다.
다음 보관실에는 가방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루카는 자기 것을 열어 공구부터 확인했다. 작은 드라이버가 다른 쪽 주머니에 옮겨져 있었고, 천에 싼 종이는 풀려 있었다. 그녀는 다시 싸서 넣었다. 총과 게이트 키도 있었다. 마르는 따로 놓인 상자에서 펜던트를 찾았다. 사슬이 동전 사이에 끼어 따라 올라왔다.
“이것도.”
루카가 지갑을 집었다. 내용물을 세는 대신 자기 매듭을 확인하고 가방에 넣었다. 마르는 펜던트를 걸고 옷 안으로 밀었다.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루카는 열쇠를 손에 쥔 채 마르를 환기구 쪽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활과 가방이 어깨에 걸렸다. 마르가 먼저 짐을 받아 통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루카의 손목을 잡았다.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루카의 발이 바닥을 떠날 때 문이 조금 열렸다. 마르는 몸을 뒤로 눕히며 당겼다.
아래에서 누군가 상자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마르는 덮개를 제자리에 당겨 놓았다. 마지막 틈 사이로 빛이 남았다. 그녀는 루카를 보지 않고 먼저 기었다. 뒤따르는 가방이 벽을 긁었으나 아래의 고함에 묻혔다.
*
사다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루카는 마르보다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뒤로 날렸다. 양손으로 가장자리를 잡지 않았다면 다시 통로 아래로 밀렸을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깥을 살폈다. 비행선의 왼쪽 날개가 멀리 뻗어 있었다. 넓기는 했지만 난간이 없었다.
“나오면 바로 낮춰.”
마르는 루카의 말대로 어깨부터 밖으로 밀었다. 바람이 귀 안에서 터졌다. 날개 아래로 흰 구름이 흘렀다. 그 틈에 바다가 보였다. 감방 바닥을 통해 느꼈던 진동이 이제 신발 밑창에서 곧바로 올라왔다.
가방 끈을 몸에 짧게 감은 루카가 앞쪽을 가리켰다. 기체를 따라 나아가면 실버드가 있던 방 바깥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안에서 열 수 없으니 다른 입구를 찾아야 했다. 마르는 날개를 가로지르는 이음매에 발을 대며 움직였다.
멀리서 작은 금속 형체들이 들떴다. 마르는 활을 들었지만 바람에 시위가 흔들렸다. 루카가 그녀의 팔을 눌렀다. 둘은 돌출된 기관 덮개 뒤로 몸을 붙였다. 날아다니던 형체들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갔다. 마르는 화살을 꺼내지 않았다.

다시 나가려는 순간 날개가 울렸다.
앞쪽에 검은 틈이 열렸다. 그곳에서 내려온 발 하나가 금속판을 눌렀고, 곧 다른 발도 닿았다. 마르는 몸을 돌려 루카와 거리를 벌렸다. 쌍둥이 골렘과 싸울 때처럼 양쪽에서 받아치는 공격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마리였다. 어깨는 통로를 막던 둘보다도 넓었다.
“대장이다!”
굵은 목소리가 바람을 눌렀다. 골렘은 팔을 벌려 자신을 가리켰다. 마르는 활을 세웠고 루카의 손가락 사이에 불이 생겼다.
“내 필살 마법을 보면…….”
골렘이 말을 멈췄다. 한쪽 발 뒤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머리가 그쪽으로 조금 돌아갔다. 다시 일행을 보려 했지만 시선이 자꾸 아래로 떨어졌다. 마르는 쏘지 않고 기다렸다. 가슴 안에서 빠르게 뛰던 것이 더 빨라졌다. 공격하기 직전 힘을 모으는 모습일 수도 있었다.

골렘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루카는 마르와 반대쪽으로 더 움직였다. 둘이 한곳에 있으면 피할 길이 없었다. 마르는 무거운 발의 방향과 날개 끝 사이를 보았다. 뒤로 물러설수록 디딜 곳이 좁아졌다. 발꿈치를 돌려 기체에 가까운 쪽으로 옮겼다.
숫자가 끊어졌다.
골렘의 입이 움직였지만 바람 소리에 묻혔다. 큰 몸이 낮아졌다. 마르는 몸통을 던지는 공격을 예상해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골렘은 두 손을 금속판에 붙이고 엎드렸다. 손가락이 이음매를 긁었다.
“높은 데는 싫어!”
루카의 손에 있던 불이 작아졌다. 그녀는 마르를 보고 다시 골렘을 보았다. 그것은 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눈을 감고 있었다. 다가오기는커녕 발을 조금 움직였다가 배까지 바닥에 붙였다.
마르는 활을 천천히 내렸다. 불과 얼마 전에는 저 몸집의 적들이 자신들의 마법을 돌려주며 길을 막았다. 지금 앞에 있는 것은 날개가 흔들릴 때마다 비명을 삼켰다. 죽이려고 다가가면 일어나 덤빌까. 그냥 지나가면 붙잡을까. 판단할 동안 바람이 옷을 세게 당겼다.
“옆으로 가자.”
루카가 짧게 말했다. 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골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 걸음씩 옮겼다. 큰 손과 충분히 떨어진 자리를 골랐다. 골렘이 눈을 뜨자 둘 다 멈췄다.
“오지 마!”
“안 가.”
마르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루카의 입술이 잠깐 움직였다. 웃으려는 것 같았지만 곧 손으로 안경을 눌렀다. 마르는 발을 더 옮기지 않고 기다렸다. 골렘 뒤에 어둠이 벌어졌다. 그것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났고, 거대한 팔이 틈 안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손가락이 날개를 놓자 금속판이 튀어 올랐다.
둘은 동시에 무릎을 굽혔다. 바람이 다시 빈 자리를 채웠다.
마르는 움켜쥐고 있던 활을 느슨하게 잡았다. 골렘 앞에서는 시위를 한 번도 놓지 않았는데 손가락 끝이 굳어 있었다. 루카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우리도 밑을 보지 말자.”
그때 기체 안쪽에서 다른 진동이 전해졌다. 격납고의 큰 문이 벌어지고 있었다. 루카가 고개를 돌렸다. 문틈의 빛 속으로 길고 둥근 선체가 나왔다. 양옆의 금속판이 완전히 펼쳐져 있었다.
실버드는 받침대 없이 떠 있었다.
마르는 반가워 손을 들었다가, 투명한 덮개 안의 얼굴을 보았다. 달톤이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이쪽을 발견하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선체 앞부분에 빛이 맺혔다.
루카가 마르를 잡아당겼다. 두 사람이 엎어진 바로 뒤에서 날개가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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