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60화] 남은 사람들의 길

천막의 한쪽이 바람에 들렸다.

마르는 바로 옆에 있던 줄을 잡았다. 젖은 천이 팔을 때렸다. 안쪽에서 그릇을 들고 나오던 여자가 놀라 멈췄고, 마르는 줄을 낮춰 다시 말뚝에 걸었다. 헐거워진 땅에서 말뚝이 기울자 루카가 돌을 가져와 밑동을 눌렀다.

여자가 빈 그릇 두 개를 내밀었다.

“아직 따뜻해.”

마르는 거절하려다가 받았다. 루카도 그릇을 들고 천막 옆에 앉았다. 무엇을 끓였는지 물을 기운은 없었지만 국물이 목으로 내려가자 추위가 조금 물러났다. 마르는 두어 숟갈을 먹은 뒤 남은 그릇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맞은편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물었다.

“집은 언제 가?”

대답 대신 아이의 젖은 소매를 걷어 주는 손이 움직였다. 마르는 그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른이 다시 숟가락을 들어 아이에게 내밀자 그녀도 자기 그릇을 들었다.

루카가 먼저 식사를 마쳤다.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물이 들어간 종이는 서로 붙어 있었다. 펼치려다 한 장이 찢어지자 그녀는 손을 멈추고 마른 천 사이에 그대로 끼웠다. 공구는 닦아서 옆에 놓고, 게이트 키는 두 손으로 들어 표면의 소금을 훔쳤다.

마르가 물었다.

“쓸 수 있어?”

“확인해야 해. 멀쩡해 보여도 안쪽은 모르겠어.”

루카는 장치를 흔들지 않고 다시 감쌌다. 흐린 빛에서는 작은 틈의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마르는 기구를 받아 밝은 쪽으로 돌려 주었다.

그때 노인이 다가왔다. 잠에서 깼을 때 물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손 안에 작은 물건을 쥐고 있었다.

“너희 것인지 보아라.”

손바닥이 펴졌다. 붉은 보석이 흐린 햇빛을 받았다.

마르는 그릇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펜던트의 사슬이 노인의 손가락에 감겨 있었다. 그녀가 받아 들자 익숙한 무게가 손바닥 가운데에 놓였다.

“어디서 찾으셨어요?”

“너희를 데려온 곳 가까이에 떨어져 있었다. 귀한 물건 같아 맡아 두었지.”

마르는 보석을 뒤집어 보았다. 뒤의 작은 흠집까지 자기 것이었다. 한참 만에 사슬을 목에 걸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자 축제 날 이것을 주워 주던 손이 떠올랐다. 그녀는 보석을 옷 속으로 넣고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루카가 젖은 공구를 가방에 넣었다.

“알게티에 있던 사람들은요? 보슈라는 어른하고 쟈키라는 아이를 찾고 있어요.”

노인의 얼굴이 달라졌다. 마르는 그가 처음으로 대답을 미루는 것을 보았다. 곁에 서 있던 여자가 조용히 그릇을 가져갔다.

“그곳에 있었구나.”

“떠나기 전까지 둘이 같이 있었어요.”

“함께 있었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도.”

노인은 마르와 루카를 바람이 덜 부는 쪽으로 데려갔다. 막아 놓은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그에게 물통을 어디에 놓을지 물었다. 노인은 자리를 짚어 준 뒤 말을 이었다.

“검은 구멍이 생겼어. 그냥 땅이 꺼지는 것과는 달랐다. 보슈가 아이에게 가려 했는데 둘 다 그 안으로 사라졌다. 너무 빨라 아무도 손을 못 썼다.”

마을 빈터에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 - Vorxu
마을 빈터에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 - Vorxu

마르는 사라가 떠나기 전 쟈키에게 남긴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보슈의 곁이면 아이가 있을 줄 알았다.

루카가 먼저 물었다.

“물에 휩쓸린 건 아니고요?”

“그건 아니었다.”

루카는 더 캐묻지 않았다. 마르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둘은 그런 구멍을 지나 시간을 건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렇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루카는 입술을 눌렀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시 열린 적은요?”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본 사람이 없다.”

그는 사라의 소식도 물었다. 마르는 대답하기 전에 목걸이를 한 번 쥐었다.

“우리를 밖으로 보내 줬어요. 자기는 남았고요.”

노인은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왕이나 왕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마르는 그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가져온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지 알았다. 사라가 살아 있는지 알려 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것밖에는 줄 것이 없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적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남자가 나무판을 보여 주었다. 이름들이 거칠게 새겨져 있었다. 마르는 그 판을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크로노의 이름을 여기에 써 달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찾을 곳에 이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물에 떠밀려 어딘가에 닿았을 것처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루카가 대신 물었다.

“바다 말고 지상에 남은 곳도 돌아봤나요? 길고 둥근 금속 배가 있어요. 눈 덮인 능선 곁에 두고 왔는데.”

남자가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배라면 본 사람들이 있다. 떠밀려 온 것을 해안에서 찾았어.”

마르가 루카의 소매를 잡았다. 루카도 손에 든 가방 끈을 멈췄다.

“어디요?”

노인이 해안을 따라 난 길을 가리켰다.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이었다. 루카는 그 방향을 보고 신발끈부터 고쳐 묶었다. 마르는 그녀가 가방을 메기 전에 젖은 천의 끝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실버드가 있다면 돌아갈 수 있었다. 시간의 끝에는 카에루와 에이라와 로보가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야 했다. 그리고 크로노의 집으로 가는 일도,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마르는 그 생각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루카도 앞서 가지 않고 곁에 서 있었다.

“배부터 보자.”

루카가 말했다. 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 수 있는 크기의 일이었다.

그들이 길로 내려서려 할 때 땅 위로 큰 그림자가 지나갔다.

마르는 하늘을 보았다. 잠깐 동안 돌아온 대륙이라고 생각했다. 곧 금속의 날개와 검은 배 밑바닥이 보였다. 낮은 진동이 천막을 흔들었다. 바람에 그릇이 넘어지고 누군가 아이들을 안으로 불렀다.

루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새…….”

왕국이 무너졌는데도 거대한 비행선은 하늘에 남아 있었다. 마르는 날개가 햇빛을 가리는 동안 루카의 옆으로 한 걸음 더 붙었다. 내려올 곳을 찾는 그림자는 생존자를 구조하러 온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먼저 나타난 병사들은 물도 담요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인 빈터 양옆으로 벌어졌다. 달톤이 그 사이를 걸어왔다. 옷은 바뀌지 않았고 장갑도 그대로였다. 해저 신전에서 달아날 때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나 사람들 앞에 서자 턱부터 들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다 여기 모였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직 찾고 있습니다. 배를 보내 주면—”

“배는 내가 쓸 일이 있어.”

달톤은 노인의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르는 그의 시선이 천막과 장작, 사람들이 모아 둔 음식 위를 지나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번 멈칫했다가 웃었다.

“너희도 살아 있었군.”

마르는 활을 잡았다. 라보스를 향해 한 발을 쏜 뒤 세 발이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시위에 걸기 전에 루카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뒤에 사람이 있어.”

달톤의 뒤쪽에는 병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음식을 가져오던 여자와 아이 둘이 길을 막힌 채 서 있었다. 마르는 활을 내리지 않고 겨누는 방향을 바꿨다. 달톤은 그것을 보고 병사에게 손짓했다. 병사가 여자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알게티에서 있었던 일이 되풀이되려 하고 있었다.

마르는 화살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크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빈터의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달톤도 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는 모두를 묶어 두는 대신 자기에게 말을 하게 해야 했다.

“내 왕국의 질서를 세우는 중이지.”

노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달톤은 그 시선을 기다린 듯 양팔을 벌렸다.

“여왕은 없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 자가 필요해.”

병사들을 거느리고 마을에 나타난 달톤 - RPGClassics
병사들을 거느리고 마을에 나타난 달톤 - RPGClassics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람에 헐거워진 천이 펄럭였다. 달톤의 미소가 조금 굳었다. 루카가 한 발 옆으로 움직였다.

“그 금속 배도 가져갔어?”

달톤이 그녀를 보았다. 질문을 받은 것이 오히려 반가운 얼굴이었다.

“훌륭한 물건이더군. 주인을 제대로 만나야 했던 모양이야.”

루카의 손이 가방 끈에서 떨어졌다. 마르는 그 작은 움직임을 보고 자기 발도 바꿨다. 둘이 힘을 합치면 이 거리에서 달톤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병사가 여자의 팔을 비틀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마르는 달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한테 할 말이면 우리만 데려가.”

루카가 마르를 보았다. 그녀는 달톤의 뒤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루카는 턱을 굳혔지만 손을 들지 않았다.

달톤이 웃었다.

“아까부터 그러려고 했지.”

그의 손에 빛이 맺혔다. 루카가 마르를 옆으로 밀었다. 마르는 활을 들어 올렸지만 사방에서 병사들이 움직였다. 등 뒤에서 둔한 충격이 왔고, 시야가 아래로 꺾였다. 땅에 손을 짚기도 전에 팔이 잡혔다. 루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는 끌려가며 여자를 보았다. 병사가 팔을 놓았다. 아이 둘이 어머니에게 붙었다. 그다음의 광경은 어두워져 보이지 않았다.

*

눈을 뜨니 바닥이 떨리고 있었다.

마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돌바닥이 아니었다. 차가운 금속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머리들이 박혀 있었다. 벽에서도 같은 진동이 났다. 위쪽에는 짧은 사다리가 있었고, 문밖으로 발소리가 지나갔다.

“일어나지는 마. 잠깐 앉아 있어.”

루카가 곁에 있었다. 마르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숨을 골랐다. 머리가 무겁기는 했지만 사방이 도는 느낌은 차츰 가라앉았다. 루카는 손을 놓고 벽에 등을 기댔다.

“가방은?”

“없어. 네 활도.”

마르는 목을 만졌다. 사슬도 없었다. 겨우 돌려받은 보석까지 가져갔다. 이번에는 손을 빈 목에 오래 두지 않았다.

“우리가 탄 뒤에 뺏었겠지?”

“여기 어딘가에 둘 거야. 배까지 손에 넣었는데 버리진 않았을 테고.”

루카의 말이 끝나자 머리 위에서 낮은 굉음이 났다. 마르는 사다리를 보았다.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은 감옥이 아니었다. 달톤의 비행선 안이었다. 바닥에 손을 대니 발밑의 진동이 얼마나 멀리 이어져 있는지 느껴졌다.

장비를 빼앗긴 채 검은 새 안에 갇힌 일행 - RPG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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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가 일어나 벽을 살폈다. 마르가 따라 일어서자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문을 당기고 경첩을 확인했다.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마르가 손끝에 냉기를 모았다. 자물쇠 주위에 옅은 서리가 생겼다. 안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더 크게 힘을 쓰기 전에 멈췄다. 문 너머에 병사가 몇 명인지, 붙잡혀 온 사람이 더 있는지도 몰랐다.

“여길 부수면 바로 들켜.”

루카가 말했다. 마르는 손을 거두고 사다리 밑을 보았다. 그 아래 벽에는 낮고 긴 틈이 있었다. 환기용 덮개처럼 보였다. 방 안의 다른 이음새와 달리 그쪽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나왔다.

“여기.”

루카가 무릎을 꿇었다. 공구를 찾듯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가 빈손을 내려놓았다. 마르는 머리에서 핀 하나를 빼 건넸다. 루카가 그것을 받아 덮개의 틈에 넣어 보았다.

“부러질 수도 있어.”

“괜찮아.”

핀 끝이 미끄러졌다. 두 번째에는 안쪽 가장자리에 걸렸다. 루카가 잡아당기는 동안 마르는 덮개를 양손으로 받쳤다. 금속이 삐걱거리자 둘은 동시에 멈췄다. 문밖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마르는 손을 그대로 둔 채 루카를 보았다. 친구의 눈이 덮개와 문 사이를 오갔다. 신전에서는 언제나 셋의 위치를 살폈다. 지금 루카가 확인할 곳은 둘뿐이었다.

그 빈자리를 생각하자 손에 힘이 풀렸다. 덮개가 조금 내려앉았다. 루카가 재빨리 받쳤다. 마르는 다시 손을 밀어 넣었다.

“잡았어.”

루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핀을 비틀었다. 덮개 한쪽이 빠졌다. 둘은 바닥에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안쪽으로 사람 하나가 엎드려 갈 만한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다른 방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방과 방 사이로 이어지는 검은 새의 환기 통로 - RPGClassics
방과 방 사이로 이어지는 검은 새의 환기 통로 - RPGClassics

마르는 먼저 몸을 낮췄다. 루카가 소매를 잡았다.

“무기부터 찾고, 그다음 배로 가자.”

“응.”

마르는 통로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렸다. 뒤에서 루카의 무릎이 금속판에 닿았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좁은 공간에 호흡이 찼다. 마르는 손바닥으로 앞을 더듬어 꺾이는 방향을 확인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먼저 정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바람이 오는 쪽으로 손을 옮기고, 뒤의 루카가 따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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