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55화] 빈 왕좌의 문지기

하늘길의 빛 속에서 루카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유리에 비친 것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눈 안에 남는 잔상인지 구분하려 했다. 발밑의 감촉이 사라졌다가 돌아올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닿은 것은 따뜻한 공기였다. 다음으로 젖은 흙과 풀 냄새가 났다.

그녀는 빛의 원 밖으로 나와 멈췄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땅에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가지 사이로 멀리 다른 대륙의 가장자리가 보였다. 그 밑에는 기둥도 벽도 없었다. 루카는 배에서 처음 시간을 건넜을 때보다 오래 그곳을 보았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경계보다 먼저 고개를 들었다.

마르가 곁에서 기다렸다.

“직접 보면 다르지?”

루카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려다 다시 넣었다.

“많이.”

길가의 꽃에 작은 날벌레가 앉아 있었다. 설원에서 조금 전까지 같은 해를 보고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힘이 들 것이다.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은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매일 생각할까. 루카는 묻지 않은 질문을 그대로 두고 일행을 따라갔다.

마르와 크로노가 번갈아 길을 확인했다. 한 번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른 하늘길로 올라서야 왕궁에 가까워졌다. 눈 위에서 보았던 거리가 구름 위에서는 달라졌다. 루카는 자기가 지도를 들었다는 이유로 앞장서지 않았다. 대신 지나온 빛의 원이 뒤에서도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

구름 위 질 왕국의 산과 길 - Vorxu
구름 위 질 왕국의 산과 길 - Vorxu

왕궁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짐을 든 사람 셋을 만났다. 그들은 일행의 신발에 묻은 흙을 보더니 비켜섰다. 마르가 안쪽 사정을 묻자 가운데의 여자가 궁 쪽을 돌아보았다.

“모두 아래로 가셨어요. 중요한 날이라고 하니.”

그 말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투가 아니었다. 옆의 남자는 손에 든 묶음을 다른 팔로 바꾸었다. 문지기가 자리를 비운 동안 개인 짐을 가져온 것인지, 돌아오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것인지 루카는 알 수 없었다.

“여기 남아 있으래요?”

그녀가 묻자 여자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없었어요.”

마르가 길을 내주었다. 크로노도 칼집을 몸 가까이 당겨 그들이 지나갈 폭을 넓혔다. 셋은 인사를 거의 하지 못한 채 내려갔다. 루카는 그중 한 사람의 묶음 밖으로 작은 찻잔 손잡이가 나온 것을 보았다.

왕궁 안은 더 따뜻했다. 긴 바닥에는 기둥 사이의 빛이 얇고 반듯하게 놓였다. 조각과 벽화는 낯선 기술보다도 놀라웠다. 사람들은 떠 있는 땅 위에 다시 돌을 쌓고, 그 위에 쓸모와 상관없는 무늬를 새겼다. 루카는 그런 것까지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빈 회랑이 더 이상했다.

멀리서 옷자락 소리가 나자 크로노가 손을 들었다. 세 사람은 기둥 옆에 멈췄다. 나이 든 시종 하나가 방에서 나와 그들을 보고 굳었다. 마르가 먼저 손바닥을 보였다.

“사라를 찾으러 왔어요.”

시종은 마르를 알아본 듯했다. 목의 펜던트를 보고 얼굴을 다시 보더니 알현실 쪽을 가리켰다.

“달톤 님이 계십니다.”

“사라는요?”

“먼저 신전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루카가 그 말에 크로노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가 시종에게 비켜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시종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다만 가까운 문을 닫으려다 손을 멈추고,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나오라고 낮게 말했다.

알현실 앞의 문양은 루카가 본 어떤 잠금장치와도 달랐다. 마르가 펜던트를 들자 빛이 선을 따라 움직였다. 맞물린 문이 갈라졌다. 루카는 움직이는 두께와 경첩이 없는 가장자리를 눈에 담았다. 지금은 기록할 때가 아니었다.

왕궁 안쪽으로 이어지는 문 - Vorxu
왕궁 안쪽으로 이어지는 문 - Vorxu

안쪽의 높은 자리에 달톤이 앉아 있었다.

여왕의 자리는 그의 몸에 너무 컸다. 한쪽 팔걸이에 기대고 있던 그는 일행을 보자 등을 폈다. 반가움과 짜증이 얼굴을 차례로 스쳤다. 루카는 방 가운데를 훑었다. 긴 바닥, 좌우의 굵은 기둥, 왕좌로 오르는 낮은 계단. 달톤 뒤쪽으로 빛이 흐르는 작은 원이 보였다. 이번에는 그와 일행 사이에 아무도 없었다.

“결국 왔군.”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

“예언자도 너희만큼 부지런했으면 좋겠는데. 그자는 안에 들어가고 나는 문이나 지키라니.”

크로노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비켜.”

달톤의 턱이 조금 들렸다. 루카는 가방을 뒤쪽 기둥에 내려놓았다.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자리였다. 마르는 오른쪽으로 벌어졌다. 달톤은 둘의 움직임을 번갈아 보며 손을 폈다.

검은 쇠구슬이 크로노 앞으로 날았다.

크로노는 몸을 틀었다. 구슬은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가 바닥 가까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그의 어깨가 순간 내려갔다. 루카는 충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크로노도 칼에 무언가 맞았는지 살피지 않고 발을 다시 놓았다.

달톤은 곧바로 두 번째 구슬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루카를 향했다. 그녀는 기둥 뒤로 비켰으나 검은 기운이 옆구리를 지나갈 때 온몸의 힘이 한 번에 빠지는 듯했다. 무릎을 굽혀 버틴 뒤 고개를 들었다. 뼈를 때리는 무게와는 달랐다. 기둥 표면에도 금은 없었다.

“한꺼번에 붙지 마!”

그녀가 말했다. 마르가 손을 뻗자 차분한 온기가 돌아왔다. 루카는 길게 숨을 내쉬고 달톤을 보았다. 그의 손이 이미 크로노 쪽을 향해 있었다. 치료하는 쪽을 노리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빠르고 확실하게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상대부터 고르는 것 같았다.

크로노는 이번에는 달톤에게 곧장 가지 않았다. 계단 아래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그의 팔이 돌아오게 만들었다. 검은 구슬이 손끝을 벗어나는 순간 옆으로 뛰고, 발을 바꾸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달톤이 급히 팔을 거두자 검날이 소매를 갈랐다.

그는 욕설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루카는 그 틈에 불을 보냈다. 길게 펼치지 않고 어깨 옆의 빈 공간을 막았다. 달톤이 피할 방향을 고르기도 전에 마르의 화살이 반대쪽 계단에 박혔다. 그가 발을 다시 바꾸는 순간 크로노가 따라붙었다.

칼자루가 달톤의 손목을 쳤다. 손끝에 모이던 어둠이 흩어졌다. 크로노는 같은 자리에 남아 다음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계단 아래로 빠졌다. 세 사람 사이를 벌려 놓으려던 달톤이 이번에는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왕좌 앞에서 맞선 달톤 - ArrPeeGeeZ
왕좌 앞에서 맞선 달톤 - ArrPeeGeeZ

루카는 마르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화살을 또 꺼내지 않고 달톤의 발목 쪽에 냉기를 모았다. 바닥이 희게 변하자 그가 다리를 들었다. 크로노가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달톤은 시선만 따라가다가 몸까지 돌렸다.

“셋이서 이러면 공평하지 않지.”

그의 말에 루카는 웃지 않았다. 불가의 아이들을 앞에 두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녀는 기둥에서 나와 조금 더 가까이 섰다. 달톤이 즉시 손을 뻗었다.

구슬이 이번에는 허벅지 가까이 지나갔다. 힘이 꺼지는 순간을 알아도 피하기 어려웠다. 루카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마르가 다시 치유하려 하자 고개를 저었다.

“크로노부터.”

그는 달톤의 바로 앞에 있었다. 다음 동작에 힘이 필요했다. 마르의 온기가 그에게 닿는 동안 루카는 자기 손바닥 아래의 차가운 바닥을 느꼈다. 몸이 저절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무릎을 세웠다. 불을 쓸 손은 아직 움직였다.

달톤의 얼굴에 작은 여유가 생겼다. 한 사람을 앉혀 놓았다는 판단이었다. 루카는 그가 자기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손을 들었다. 불길이 계단 옆을 스쳐 그의 옷자락에 붙었다. 달톤은 놀라 몸을 틀었고, 마르의 냉기가 발목을 감쌌다.

크로노가 계단을 두 칸에 올랐다. 큰 동작으로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 상대가 앞으로 넘어지는 방향을 보고 검의 옆면으로 뻗은 팔을 밀었다. 달톤의 균형이 무너지자 어깨로 가슴을 받아 왕좌 앞까지 몰아붙였다. 그가 벽을 짚으려는 순간 칼끝이 목 아래에서 멈췄다.

“길.”

크로노가 말했다.

달톤은 눈을 내리깔았다. 손을 펴 보였다. 루카는 일어나 마르에게 다가갔다. 끝났다고 생각하기에는 그의 입이 너무 굳어 있었다. 몸을 굽힌 달톤의 목 안에서 낮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떨어져!”

루카가 외치는 순간 달톤이 얼굴을 들었다. 입에서 터진 탁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크로노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계단을 뛰어내렸다. 루카와 마르도 몸을 돌렸다. 속을 뒤집는 냄새와 압력이 함께 지나갔다. 루카는 숨을 막고 기둥을 짚었다. 공격은 짧았으나 셋 모두 움직임이 끊겼다.

달톤이 그 틈에 뒤쪽 원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다 됐는데 여기서 끝낼 수야 없지!”

빛이 그를 삼켰다. 크로노가 뒤따라 두 계단을 올랐지만 손이 닿을 때에는 옷자락도 없었다. 그는 빛 앞에 멈추고 일행을 돌아보았다.

루카는 기둥 옆에 주저앉지 않았다. 물을 꺼내 입을 헹구고 마르에게 넘겼다. 마르는 한 모금 삼킨 뒤 기초 치유를 셋에게 차례로 나누었다. 아까 쇠구슬에 빼앗긴 힘이 돌아왔다. 루카가 몇 걸음 걸어 가방을 메는 동안 크로노는 계단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이건 못 쓰겠어.”

그가 둘로 갈라진 촉을 보여 주었다. 마르는 받아 벽 옆에 놓았다. 다섯 발이 남았다. 아쉽다는 말 대신 화살통을 한 번 당겨 메었다.

루카는 전송 장치 앞으로 갔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닥의 얕은 홈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환해졌다가 잦아드는 물결이 돌았다. 게이트 키를 꺼내지는 않았다. 다른 원리일 수 있는 것에 익숙한 도구부터 대고 싶지 않았다.

마르가 물었다.

“열려 있지?”

“지금은.”

루카가 원의 가장자리 밖에서 대답했다. 반대편을 미리 볼 수는 없었다. 사라의 설명과 방금 달톤이 지나간 사실이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둘에게 그대로 말했다.

크로노는 붉은 나이프가 잘 묶여 있는지 확인했다. 루카는 그 물건을 조금 오래 보았다. 자신이라면 장치를 멈추는 방법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 있을까. 그림도 충분히 못 주고, 결과도 확실히 약속하지 못한 채.

“뭐 생각해?” 마르가 물었다.

“보슈 아저씨.”

루카는 가방 끈을 어깨 위로 올렸다.

“자기가 만든 걸 부수러 보내는 기분이 어떨까 해서.”

마르는 빈 왕좌를 보았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돌아와서 물어보자.”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끝낸 것은 아니었지만 발을 옮길 수는 있었다.

크로노가 먼저 원 안에 들어섰다. 마르가 곁에 섰고 루카도 따라갔다. 세 사람의 신발 아래로 빛이 번졌다. 왕좌와 기둥이 길게 늘어나다 사라졌다. 루카는 마지막 순간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그려진 사람들은 모두 팔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왕좌 뒤에 열린 전송 장치 - Vorxu
왕좌 뒤에 열린 전송 장치 - Vorxu

다시 발바닥이 바닥을 찾았을 때에는 공기가 무거웠다.

낮은 진동이 신발 밑창을 통해 올라왔다. 벽 안에서 움직이는 무엇인가의 소리가 이어졌다. 빛은 있었지만 햇빛이 아니었다. 루카는 돌아서서 자신들이 도착한 원이 아직 밝은지 확인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긴 회랑 끝에 작은 사람이 서 있었다. 아이만 한 키의 그 형체가 세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크로노의 손이 칼자루에서 떨어졌다. 마르도 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루카는 먼저 묻지 않았다. 둘이 알아본 얼굴이 이 바다 아래에 있는 이유를, 그 작은 존재가 말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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