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52화] 얼음 밖의 이름

크로노는 뒤로 물러나다가 발끝에 걸린 돌을 느꼈다. 시선을 내리지 않고 발을 옮겼다. 왼편에는 내려갈 사슬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마르가 서 있었다. 루카는 얼음 덩어리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곁으로 움직였다. 셋이 한꺼번에 몰리면 저 손 하나에 길이 막힐 터였다.

거인의 붉은 손이 들렸다. 손바닥 아래로 빛이 모이자 크로노는 몸을 낮췄다. 불길이 바위 표면을 훑었다. 열기가 먼저 얼굴에 닿고 곧이어 옷과 머리카락을 밀었다. 그는 팔로 눈을 가린 채 바위 뒤로 들어갔다. 마르가 물러나는 발소리는 들렸지만 루카는 보이지 않았다.

불이 걷히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루카는 아까보다 뒤로 밀려나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마르는 그녀와 크로노 사이에서 냉기를 모았다. 그러나 다음에 다가온 것은 불이 아니었다.

두 손이 안쪽으로 굽혀졌다. 사이에 맺힌 어둠이 커지는 동안 주위의 빛이 흐려졌다. 크로노는 바위 뒤로 더 들어갔지만 소용없었다. 검은 기운이 어깨와 가슴을 짓눌렀다. 숨을 내쉴 틈 없이 배 속이 뒤집혔고 무릎에 힘이 빠졌다. 그는 검끝으로 바닥을 짚으려다가 날을 거두었다. 손바닥으로 버텨야 했다.

마르가 부르는 소리가 먼 데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면서도 한 손을 그에게 뻗었다. 조금 뒤 가슴을 조이던 힘이 풀렸다. 크로노는 겨우 숨을 삼켰다. 그녀에게 더 쓰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거인의 얼굴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크로노는 손바닥을 바위에서 떼었다. 쓸린 살에 자잘한 모래가 박혀 있었다. 손을 몇 번 쥐었다 펴고 일어섰다.

왼편의 붉은 손이 바닥 가까이 내려왔다. 크로노는 손가락이 굽혀지는 방향을 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손바닥을 정면으로 맞받지 않고 옆으로 지나가 검을 내리그었다. 겉을 덮은 단단한 층이 깨져 검붉은 틈이 벌어졌다.

손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두 번째 칼을 넣기 전에 물러났다. 손끝이 바닥을 긁으며 지나갔다. 뒤에서 루카가 불을 보내 거인의 이마를 때렸다. 얼굴이 잠깐 기울었으나, 곧 오른편의 창백한 손에서 빛이 흘렀다.

이마에 난 검은 흔적이 옅어졌다. 크로노가 베어 놓은 손가락의 틈도 닫히기 시작했다.

“오른쪽 손!” 루카가 외쳤다. “저쪽이 되돌려!”

두 손을 펼친 기가 가이아 - Studio P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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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이 다시 들렸다. 크로노는 불길이 퍼지기 전에 루카에게 달려갔다. 그녀를 잡아끌기보다 가방을 들어 바위 뒤로 던졌다. 루카가 그 뒤로 몸을 붙였다. 불은 두 사람의 등 가까이까지 따라와, 바닥에 놓인 줄 끝을 그슬렸다.

마르는 반대쪽에 있었다. 크로노가 이름을 부르려 할 때 흰 냉기가 오른편 손을 덮었다. 창백한 손가락 사이에 얼음이 엉겼다. 거인은 그쪽을 돌려 마르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물러서며 왼팔을 가슴에 붙였다.

크로노는 오른쪽으로 뛰었다. 매번 크게 몸을 돌릴 때마다 옆구리가 당겼다. 두 손의 가운데를 지나는 거리를 줄이려고 바위턱을 밟았다가 발을 헛디뎠다. 자세를 낮춰 넘어지지 않았지만, 그사이 붉은 손이 그를 향해 돌아왔다.

불꽃이 모이고 있었다. 루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계속 가!”

그녀의 불이 거인의 얼굴에 닿았다. 동시에 마르가 창백한 손을 더 단단히 얼렸다. 고개가 흔들리고 오른편 손이 펴지지 못하자, 붉은 손은 두 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바꿨다. 크로노는 그 틈에 얼어붙은 손가락에 닿았다.

칼을 두 손으로 쥐었다. 손가락 사이의 관절에 날을 넣고 몸을 실어 밀었다. 얼음이 부서져 목덜미로 떨어졌다. 그는 같은 곳을 다시 찍었다. 손이 몸을 뒤틀자 발판이 흔들렸지만 마르가 냉기를 놓지 않았다. 세 번째에 단단한 마디가 꺾였다.

창백한 손이 절벽 밑으로 처박혔다. 크로노는 검을 빼고 바닥으로 물러났다. 짧은 낙차였는데도 두 발로 받지 못해 손을 짚었다. 바로 옆에서 마르가 주저앉았다. 그는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받쳤다.

“아직 할 수 있어.”

마르가 말했다.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허리에 매달린 물주머니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고 다시 일어났다. 그녀가 앉은 바위와 거인의 얼굴 사이를 가리지 않도록 비켜섰다.

남은 손에서 불이 뿜어졌다. 어둠은 뒤따르지 않았다. 크로노는 불길의 가장자리를 피해 바깥으로 움직였다. 루카도 그가 가는 쪽을 보고 반대편으로 벌렸다. 붉은 손이 한 사람을 쫓으면 다른 한 사람이 옆에 설 수 있었다.

크로노는 손등을 향해 번개를 보냈다. 빛이 손목을 가르며 흐르자 거대한 손가락들이 움츠러들었다. 루카가 곧이어 같은 자리에 불을 모았다. 짐승의 둥지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상처가 닫히지 않았다. 겉층이 더 검게 갈라졌다.

붉은 손이 크로노를 덮치려 내려왔다. 그는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옆으로 굴렀다. 손바닥이 바위를 쳤다. 파편이 어깨를 때렸고 통증에 눈앞이 번쩍였다. 그러나 손목은 이제 땅 가까이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세워 상체를 일으킨 채 번개를 다시 밀어 넣었다.

루카의 불이 갈라진 틈을 파고들었다. 손등에서 빛이 터지고 거대한 형체가 무너졌다. 바위 끝에 걸려 있던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산 위의 소리가 갑자기 줄었다. 거인의 얼굴만 남아 있었다.

크로노가 숨을 고르는 동안 마르가 다가왔다. 그의 어깨에 얹힌 손이 떨렸다. 약한 온기가 스며들자 뻣뻣하던 팔이 조금 움직였다. 그녀는 피가 배어 나온 손바닥에도 잠깐 손을 댔다가 거두었다. 크로노는 손을 쥐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가 거인의 이마를 향해 불을 보냈다. 이번에는 상처가 그대로 남았다. 크로노는 그 옆으로 번개를 뻗었다. 두 빛이 차례로 얼굴을 때릴 때마다 거대한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세 번째 공격을 준비하려는 순간 이마의 깊은 틈에서 다른 빛이 새어 나왔다.

부서진 손들이 다시 솟고 있었다.

크로노는 검을 들어 올린 채 멈췄다. 잘라 낸 마디가 이전과 비슷한 모양으로 모이고, 텅 빈 손목에 형체가 채워졌다. 마르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루카는 얼굴을 보고 있었다.

“손은 돌아왔는데 이마는 그대로야.”

크로노도 깨진 이마를 보았다. 깊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얼굴만 노리면 오른쪽 손이 그것마저 아물게 할 것이다. 그는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어깨를 움직이자 아까 박힌 파편의 자리가 뜨거웠다.

마르가 마지막 화살을 꺼냈다. 크로노는 그 손을 보고 가던 속도를 늦췄다. 그녀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르는 거인의 얼굴을 겨누지 않았다. 빛을 모으기 시작한 창백한 손의 굽은 마디를 보고 있었다.

화살이 날았다. 촉이 마디 사이에 박히며 깃이 떨렸다. 뒤이어 마르의 냉기가 손가락을 덮었다. 손이 움켜쥐어지지 못하고 조금 벌어졌다. 크로노는 낮아진 마디 위로 검을 내리쳤다. 처음과 달리 두 번을 버티지 못하고 관절이 갈라졌다. 채워지던 빛이 밖으로 쏟아졌다.

손이 떨어져 나가며 화살도 함께 사라졌다. 크로노는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붉은 손 쪽으로 달렸다. 루카가 이미 불을 보내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손등의 겉층은 전보다 얇았다. 크로노의 번개가 닿자 손가락 하나가 먼저 부서졌고, 굽혀져 있던 나머지가 잇달아 풀렸다.

마지막 손이 가라앉았다. 루카가 비틀거렸다. 크로노는 그녀의 팔을 잡으려고 다가갔지만 루카가 먼저 그의 어깨를 밀어 방향을 돌렸다.

“지금 해야 해.”

거인의 얼굴이 바위 쪽으로 기울었다. 이마에서 다시 빛이 맺히려 하고 있었다. 크로노는 그 앞에 섰다. 크게 뛰어오를 힘은 없었다. 가까이 내려온 턱 아래에 검끝을 밀어 넣고 두 손으로 자루를 붙잡았다. 팔꿈치가 접히려 하자 한쪽 발을 뒤로 뻗어 버텼다.

루카의 불이 위쪽 균열을 때렸다. 얼굴이 들썩이며 칼을 밀어냈다. 크로노는 한 걸음 밀렸다가 버텼다. 검끝에 모은 번개가 금 간 표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짧은 빛이 두 번 끊겨 번쩍이고, 마지막에 긴 갈래가 얼굴 전체를 가로질렀다.

그는 더 밀지 못했다. 손에서 힘이 빠져 옆으로 넘어졌다. 바위에 어깨가 부딪쳤으나 뒤따를 손은 없었다. 거인의 이마가 갈라지며 안쪽의 빛이 흩어졌다. 커다란 눈이 기울어지고, 얼굴이 절벽 아래로 무너졌다.

루카가 크로노의 허리띠를 붙잡아 뒤로 끌었다. 바로 앞의 바위 끝이 떨어져 나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엉킨 채 움직이지 못했다. 먼지가 지나간 뒤 마르가 걸어와 무릎을 꿇었다. 손을 대기 전에 먼저 크로노의 얼굴을 돌려 호흡을 보았다.

그는 눈을 떴다. 마르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서 검을 빼 바닥에 놓았다. 자루를 너무 오래 쥐어 손가락이 굽은 채 남아 있었다.

기가 가이아가 사라진 정상 - Studio P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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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보슈를 가두었던 얼음에 세로로 금이 가고 있었다. 크로노는 몸을 일으켰다. 마르가 팔을 어깨에 걸쳐 주었고, 그는 그녀에게 전부 기대지 않으려고 발을 끌어 모았다. 두 사람이 다가가는 동안 얼음은 조각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장자리부터 희게 부서져 사라졌다.

노인이 앞으로 쓰러졌다. 크로노와 마르가 양쪽에서 받았다. 차가울 줄 알았던 몸에 온기가 있었다. 보슈는 기침하며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끝이 크로노의 소매에 걸렸다.

“기가 가이아를…… 너희가?”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르가 물을 조금 마시게 했다. 물주머니를 감싼 노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보슈 아저씨.”

마르가 불렀다.

그가 얼굴을 들었다. 크로노를 보고, 마르를 보고, 뒤에서 짐을 챙기는 루카를 보았다. 눈에 반가움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아는 이유를 찾는 눈이었다.

크로노는 인사를 하려던 손을 내렸다. 마르도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들이 알던 사람과 이곳에 갇혀 있던 사람 사이에는 아직 나누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봉인에서 풀려난 보슈 - Studio P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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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말씀해 주셨어요.” 마르가 말했다. “여기 계신다고.”

보슈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그 아이는 어디 있느냐?”

대답하기 전에 발밑이 울렸다. 처음에는 거인의 몸이 떨어진 충격인 줄 알았다. 그러나 흔들림은 멎지 않았다. 먼 곳에서 쇠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바위 끝에 걸린 사슬이 조금씩 각도를 바꾸었다.

보슈가 고개를 돌렸다.

“내려가야 한다. 산이 버티지 못할 게야.”

그는 혼자 일어서려다 무릎이 꺾였다. 크로노가 받았지만 함께 기울었다. 루카가 다가와 노인의 다른 팔을 어깨에 걸었다. 마르는 가져온 줄을 폈다. 그슬린 끝을 잘라 내고 남은 부분으로 보슈의 몸을 받칠 고리를 만들었다.

크로노는 바닥에 놓인 검을 주워 칼집에 넣었다. 손바닥이 아파 허리띠를 고치는 데 두 번이나 실패했다. 마르가 매듭을 대신 묶어 주었다. 루카는 지도를 챙기며 아래쪽을 보았다. 그들이 쉬었던 넓은 바위는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크로노는 앞서 달리지 않았다. 사슬에 먼저 내려서서 보슈가 딛을 곳을 보여 주었다. 노인은 완전히 매달려 있지는 않았다. 무릎이 떨려도 발을 옮겼고, 쉬어야 할 때에는 직접 손을 들었다. 루카가 등 뒤를 받치고 마르가 줄을 고리에 걸어 조금씩 풀었다.

마지막 사람이 사슬을 벗어나기도 전에 반대편 바위가 낮아졌다. 크로노는 루카의 가방 끈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땅을 짚자 바로 뒤에서 고리 하나가 뒤집혔다. 산 아래에서 터진 구름이 얼굴을 덮었다.

그들은 다음 길로 움직였다. 보슈는 바위가 흔들릴 때마다 멈춰 몸을 낮췄다. 손에 기대는 힘이 점차 덜해졌지만 빨리 걷지는 못했다. 평탄한 곳에서도 크로노가 한쪽을 받쳐야 했다. 루카가 지도를 펼치려다가 휘청하자 크로노는 낮은 바위의 모서리를 가리켰다. 쉬면서 표시해 두었던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마르가 뒤처지면 셋은 멈췄다. 크로노가 호흡을 고르느라 허리를 굽히면 이번에는 보슈가 그 옆의 바위를 짚고 기다렸다. 그때마다 멀리서 쇠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누구도 그 소리를 세지 않았다.

처음 올라왔던 비탈에 닿았을 때 아래의 구름이 걷혔다. 짐승의 둥지로 이어지는 긴 사슬이 보였다. 오를 때보다 기울기가 완만했다. 산이 내려가고 있었다. 느슨해진 중간 부분은 바람에 크게 흔들렸다.

크로노는 보슈를 돌아보았다. 노인의 입술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그는 물을 더 달라고 하지 않고 먼저 사슬에 손을 올렸다.

“발을 어디에 놓으면 되느냐?”

크로노가 아래의 넓은 고리를 가리켰다.

내려갈 때는 위를 돌아볼 수 없었다. 뒤에 사람 셋이 있다는 것을 줄의 무게와 발소리로 알았다. 바람이 불면 쇠에 붙어 기다렸다. 손이 미끄러지면 바로 아래의 거친 부분을 잡았다. 크로노는 젖은 쇠 위에 붉은 자국이 남는 것을 보았으나 닦을 수 없었다.

굴 입구에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소리쳤다. 창을 들고 있던 남자와 다른 주민들이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은 네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굴 안에서 줄을 더 가져왔다. 보슈가 마지막 고리에서 발을 옮길 때 두 사람이 팔을 받았다.

크로노는 루카와 마르가 모두 들어올 때까지 입구에 남았다. 루카가 안으로 굴러들어 오며 그에게도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뒤에서 무서운 소리가 났다. 쇠가 끊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뒤이어 끝을 알 수 없는 무게가 굴 밖의 공기를 끌고 내려갔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사슬은 사라져 있었다.

산은 구름 아래로 기울었다. 바닥이 흔들리고, 먼 곳의 바다가 솟았다. 주민 한 사람이 크로노의 옷을 잡아 안으로 당겼다. 굴 입구로 흰 먼지와 바람이 밀려들었다. 크로노는 팔로 얼굴을 막고 마지막 바위턱을 넘었다.

지상으로 추락하는 탄식의 산 - Studio P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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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티로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은 보슈의 이름을 불렀다. 먼저 그를 본 사람이 다음 굴에 알리고, 사다리 아래의 사람이 또 안쪽으로 전했다. 크로노는 그 이름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들으며 벽에 기대어 섰다. 다리가 떨려 사다리를 바로 탈 수 없었다.

마르가 곁에 섰다. 화살통은 비어 있었고, 활에는 하얀 돌가루가 앉아 있었다. 루카는 빌린 밧줄을 두 손에 말아 들었다. 줄은 짧아지고 여러 곳이 해져 있었다.

그들을 재워 준 여자가 올라왔다. 루카가 밧줄을 내밀며 입을 열려 하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따 보고. 사람부터 내려와.”

크로노가 아래를 보았다. 촌장이 불 곁의 자리를 넓히고 있었다. 보슈는 사람들의 손을 빌려 거기에 앉았고, 따뜻한 그릇 하나를 받았다. 떨리는 두 손으로 그릇을 감싸는 모습이 보였다.

크로노는 사다리의 첫 칸에 발을 놓았다. 이번에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아래에서 부르는 이름에 대답할 사람이, 그 불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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