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50화] 사슬 앞의 세 그림자
굴은 끝에 가까워질수록 넓어졌다. 천장에서 떨어진 돌들이 가운데 쌓여 있었고, 양옆으로 짐승이 드나든 길이 나 있었다. 크로노는 돌무더기 앞에서 기다리다가 루카가 비추는 쪽을 살폈다. 좁은 길에 발을 들이기 전에 건너편을 볼 수 있는 틈부터 찾아야 했다.
오른쪽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났다. 두 마리가 몸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크로노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 뒤 왼쪽 길을 가리켰다. 마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활이 바위에 부딪치지 않도록 어깨를 돌렸다.
그들이 거의 다 지나갔을 때 돌 위로 긴 손 하나가 넘어왔다.
앞에 있던 짐승과 같은 종류였다. 크로노는 칼등으로 내려오는 팔을 밀어 흘리고 뒤로 빠졌다. 곧바로 뒤쫓는 다른 놈을 보자 루카가 바위 사이로 불을 보냈다. 마르는 불길이 닿지 않은 쪽 바닥을 얼렸다. 먼저 달려든 짐승이 발을 헛디디며 옆으로 쓰러져 뒤의 놈과 부딪쳤다. 크로노는 둘이 엉킨 동안 칼을 크게 휘두르는 대신 가까이 들어가 짧게 찔렀다.
쓰러진 몸이 좁은 길을 막았다. 남은 한 마리가 그 위로 올라오려다 발을 딛지 못했다. 루카가 다시 불을 모으는 것을 보고 크로노는 바위 뒤로 몸을 뺐다. 불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돌 위에 얹힌 짐승의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세 사람은 길을 건넜다.

크로노는 검에 묻은 것을 닦다가 손을 멈췄다. 단단히 묶은 붕대 안쪽이 뜨거웠다.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인지 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마르가 그를 보았고, 그는 옷 위를 눌러 본 다음 피가 묻지 않은 손을 보여 주었다. 마르는 그래도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굴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눅눅한 공기가 걷히며 훨씬 차고 마른 냄새가 났다. 루카가 조명을 낮추자 저편에 회색빛이 보였다. 입구였다. 그 아래로 쇠가 길게 누워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크로노는 눈앞의 것이 사슬 한 가닥임을 알아보았다. 고리 하나만 해도 사람이 두 발을 벌리고 설 만큼 컸다. 바위에 박힌 끝에서 시작해 굴 밖으로 뻗은 사슬은 구름 속으로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 아주 멀리, 흰 흐림 위로 검은 바위의 밑면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산이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그가 위를 올려다보는 동안 사슬 앞에서 작은 돌이 굴렀다. 붉은 짐승이 머리를 들었다. 둥지에서 만난 것보다 몸이 컸고,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진 털은 젖은 쇳가루처럼 짙었다. 반대편에서는 푸른 짐승이 일어나 낮게 몸을 흔들었다. 둘 사이의 바위에는 진흙빛 피부를 가진 작은 마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마물은 크로노를 보고 웃었다. 짧은 팔을 들어 사슬을 가리킨 다음, 손가락을 제 목 앞에 가로질렀다.
“말은 알아듣는 것 같은데.” 루카가 말했다.
마르가 앞으로 반걸음 나갔다.
“우린 위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왔어. 길을 비켜 주면 싸울 이유 없어.”
마물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땅을 짚은 손끝에서 돌 하나가 솟아 크로노의 얼굴로 날아왔다. 그가 피하자 뒤에서 돌 깨지는 소리가 났다. 붉은 짐승은 그 틈에 달려들었다.

크로노는 옆으로 빠지며 팔 안쪽을 그었다. 날에 걸리는 저항이 전보다 훨씬 컸다. 짐승은 멈추지 않고 몸을 틀어 어깨로 그를 밀었다. 크로노가 젖은 바닥을 미끄러지는 동안 루카의 불이 둘 사이로 솟았다.
붉은 털에 불이 붙었다가 가라앉았다. 타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짐승의 어깨에 벌어졌던 상처가 좁아졌다. 크로노는 털에 남은 피와 다시 닫힌 살을 보고 루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두 번째 불꽃을 모으던 루카의 손이 멎었다.
푸른 짐승이 그녀를 향해 달렸다. 마르는 발을 붙잡으려고 냉기를 보냈지만, 푸른 발등에 희게 맺힌 얼음은 곧 털 속으로 스며들었다. 오히려 걸음이 빨라졌다. 루카는 조명을 내려놓고 몸을 던졌다. 발톱이 가방 겉면을 뜯었고, 작은 공구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크로노는 두 짐승 사이를 가로지르지 않고 바위 바깥을 돌았다. 푸른 놈의 시선이 따라왔다. 마르가 루카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 동안 작은 마물이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허리보다 낮은 곳에서 날아온 돌이 크로노의 무릎을 때렸다. 그가 휘청하자 마물은 다시 이를 드러냈다.
이번에는 크로노가 물러서지 않았다. 몸을 낮춘 채 검을 가로로 밀었다. 마물의 옆구리를 분명히 맞혔는데 날이 바위를 친 듯 튕겨 나왔다. 손목까지 충격이 올라왔다. 마물은 피부에 난 흰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짐승 뒤로 물러났다.
“작은 놈부터는 안 되겠어!”
루카가 외쳤다. 그녀는 주운 조명을 낮은 바위에 올려놓고, 크로노에게 굴 왼편의 넓은 자리를 가리켰다. 세 사람은 그쪽으로 물러났다. 퇴로를 등지고 모여들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벌렸다.
마르는 두 짐승을 번갈아 보았다. 붉은 놈의 털에는 아직 열기가 일렁였고, 푸른 놈의 발치에는 그녀가 보낸 냉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반대로 해 보자.”
루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는 이번에는 붉은 짐승의 가슴을 향해 냉기를 던졌다. 달려들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털 위에 얼음이 달라붙었고, 짐승이 그것을 털어내려 앞발로 가슴을 긁었다. 루카가 푸른 짐승에게 보낸 불도 달랐다. 불꽃이 살갗에 닿자 놈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크로노는 붉은 놈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작은 마물이 바위에서 손을 내리긋자 짐승이 그를 놓아두고 마르 쪽으로 달렸다. 그가 따라잡기도 전에 푸른 놈이 길을 가로막았다.
마르는 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크로노의 자리에서는 그녀가 달려오는 짐승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냉기를 보낸 뒤 오른쪽으로 피하던 그녀의 발뒤꿈치가 돌에 걸렸다. 몸을 돌려 왼팔을 감싸고 넘어졌으나 곧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크로노는 푸른 짐승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왼발을 내딛는 시늉을 해 시선을 끌고는 반대쪽으로 빠져나왔다. 루카의 불길이 푸른 몸을 멈춘 사이 마르에게 닿았다. 붉은 놈의 팔이 내려오기 직전, 손목 바깥을 베어 궤적을 틀었다. 돌바닥에서 튄 조각이 그의 뺨을 스쳤다.
마르는 그의 뒤에서 일어났다. 크로노는 짐승과 너무 가까워 팔을 뻗을 수 없었다. 마르는 얼음을 크게 만들지 않고 놈의 발목 둘레로 냉기를 모았다. 뻣뻣해진 관절을 짐승이 힘으로 비트는 동안 크로노가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나란히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까지 베였던 짐승의 팔에서 피가 덜 흘렀다. 뒤쪽 마물의 손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저게 낫게 해 줘.” 마르가 말했다.
크로노는 바위 위의 작은 형체를 보았다. 쫓아가 봐야 검이 튕길 것이다. 그사이 두 짐승이 마르와 루카에게 붙는다. 놈은 그것을 아는 것처럼 사슬 앞에 버티고 있었다.
루카가 물러나며 두 사람 곁으로 왔다. 안경 한쪽에 진흙이 튀어 있었다. 그녀는 소매로 그것을 훔치고 붉은 짐승을 가리켰다.
“하나씩. 파란 건 내가 붙잡을게.”
마르가 크로노를 돌아보았다. 그는 검을 어깨 위로 들지 않고 허리 가까이 낮추었다. 짐승이 앞발을 내밀 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마르의 시선이 칼끝에서 그 앞발로 옮겨 갔다. 크로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루카의 불이 푸른 짐승 앞에 떨어졌다. 놈이 멎었다가 바깥으로 돌았다. 그녀도 함께 움직여 붉은 놈에게서 떼어 놓았다. 싸움을 한눈에 보며 지시하던 작은 마물이 둘 사이를 오갔다.
마르는 붉은 짐승이 크로노를 향해 몸을 낮출 때 가슴 아래로 냉기를 보냈다. 첫 얼음은 털 끝에서 깨졌다. 그는 기다렸다. 그녀가 손을 다시 모으고, 짐승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을 때 흰 결정이 팔 안쪽을 덮었다.
크로노가 그제야 들어갔다. 얼어 굽혀지지 않는 팔 밑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짐승이 어깨를 내리며 그를 덮치려 했으나 칼을 뽑는 대신 몸 전체를 돌려 옆으로 벗어났다. 마르는 드러난 목 쪽에 냉기를 더했다. 짐승이 뒤로 젖힌 턱에서 흰 입김이 터졌다.

작은 마물이 손을 들었다.
마르가 화살 하나를 꺼내 걸었다. 크로노는 곁눈으로 그녀의 활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아래로 처진 활 끝이 조금 들리고 시위가 울렸다. 화살은 마물의 어깨에 맞고 튕겼다. 상처를 내지 못했지만 들었던 손이 내려갔다.
그 짧은 틈에 크로노가 붉은 짐승의 몸 깊숙이 검을 찔렀다. 놈은 한 발로 버티며 앞을 더듬다가 무릎부터 꺾였다. 크로노는 쓰러지는 무게를 피하려 바닥을 굴렀다. 뒤에서 불이 꺼지고 루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푸른 짐승이 돌아오고 있었다.
크로노는 일어나려다 무릎을 다시 짚었다. 마르는 그의 앞을 막는 대신 옆으로 달려 돌 하나를 집어 던졌다. 짐승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만큼 열린 뒤편으로 루카의 불이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피할 곳을 주지 않았다. 루카는 짐승의 움직임을 따라 불을 나누어 보냈다. 처음 불길이 어깨를 덮었고, 돌아서는 몸 앞에 두 번째가 솟았다. 짐승은 포위된 자리에서 바닥을 긁었다. 루카의 팔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갔다. 크로노는 다리를 펴면서 검을 고쳐 쥐었다.
마르는 남은 화살에 손대지 않았다. 작은 마물이 푸른 짐승을 살피며 앞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마물의 발밑을 얼렸다. 놈이 미끄러져 두 팔을 휘젓는 동안 크로노가 푸른 짐승의 옆에 닿았다.
불길이 내려가는 순간에 맞추려 했지만 반 박자 빨랐다. 소매 끝에 불이 옮겨붙었다. 그는 팔을 털며 물러났고, 루카가 이를 악문 채 불을 거두었다. 짐승이 고개를 뻗었다. 크로노는 몸을 비켜 목덜미를 찔렀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자루를 눌러 버텼다. 놈이 몇 걸음이나 그를 끌고 가다 멎었다.
크로노가 검을 빼는 동안 루카는 그에게 달려왔다. 소매의 남은 불을 두드려 끄고 안쪽을 걷었다. 뜨거워진 천 아래 피부가 붉었지만 넓게 벗겨지지는 않았다. 그가 팔을 내리려 하자 루카는 잠깐만 있으라는 듯 더 세게 잡았다.
마르는 사슬 앞을 보았다. 두 짐승이 쓰러진 사이에 작은 마물만 남아 있었다. 놈이 손을 모으자 희미한 빛이 제 몸을 감쌌다. 마르가 보낸 냉기가 그 위를 덮었다. 이번에는 어깨의 피부가 굳으며 작은 비명이 났다. 마물은 눈을 크게 뜨고 뒤로 물러섰다.
크로노가 일어나 다가가자 놈은 사슬 쪽으로 달리는 척했다. 그러고는 바위 아래의 좁은 틈으로 뛰어들었다. 꼬리 같은 발끝이 흙을 걷어찼고, 긁히는 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크로노는 그 앞에서 멈췄다. 몸을 넣기에는 너무 좁았다. 루카가 뒤에서 말했다.
“쫓지 마.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몰라.”
그는 검을 내렸다. 싸움이 끝나자 굴 밖의 바람이 다시 들렸다. 마르는 화살이 튕겨 나간 자리를 찾았다. 바위 사이에서 꺼낸 화살촉은 한쪽으로 휘어 있었다. 억지로 펴다 부러뜨리지 않도록 그대로 화살통 바깥 끈에 꽂았다. 안에는 쓸 수 있는 한 발이 남았다.
루카는 바닥에 흩어진 공구를 주웠다. 작은 것 하나가 보이지 않아 한동안 웅크린 채 돌 밑을 비추었다. 크로노도 곁에 앉아 찾았다. 어느 틈에 끼어 있던 드라이버를 그가 건네자 루카는 받아 가방 깊이 넣었다. 감사의 말이 나오기 전에 긴 숨부터 새어 나왔다.
마르는 사슬이 시작되는 바위까지 걸어가 고리 위에 손을 얹었다. 크로노도 그쪽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 보슈가 있었다. 지금 더 가면 어쩌면 오늘 안에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곁에서 루카가 가방 끈을 세 번이나 다시 매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크로노가 다가가자 마르가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그는 사슬 아래 걸린 돌 하나를 발로 밀었다. 되돌아왔을 때 길을 알아볼 수 있는 곳에 돌을 놓고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크로노가 말했다.
마르는 사슬에서 손을 떼었다. 크로노는 먼저 발을 떼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위를 올려다보던 마르가 루카에게 가서 풀린 가방 끈을 묶어 주었다.
되짚어 가는 길에는 짐승이 나타나지 않았다. 쓰러진 놈들이 막은 구간을 한 사람씩 지나고, 젖은 턱에서는 앞사람이 넘어간 뒤 다음 사람이 손을 잡았다. 알게티의 불빛이 보였을 때 앞서 걷던 마르가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늦췄다. 크로노는 그녀가 돌아보는 것을 보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창을 든 남자가 길을 비켰다. 촌장은 그들의 빈손을 보더니 사슬에 닿았느냐고 물었다. 루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짐승들이 더는 길을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은 굴 쪽을 오래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을 불러 통로를 살피게 했다.

그들을 재워 준 여자가 솥을 불에 다시 얹었다. 마르의 허리에 묶인 밧줄을 보고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마르는 구석에 앉아 오른손으로 왼팔을 받쳤다.
크로노는 문 가까이에 앉았다. 멀리서 사슬이 우는 소리가 아직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검을 내려놓고 신발 끈부터 풀었다. 다음에는 그 고리 위에 발을 딛어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은, 아픈 다리를 뻗을 자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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