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39화] 바람의 둥지
산은 위로 갈수록 좁아졌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비에 깎인 검은 바위만 남았다. 발을 디딜 만한 틈은 물이 흘렀고, 손을 걸 만한 돌은 조금만 힘을 주면 겉면이 떨어져 나왔다. 아래에서 불던 바람은 절벽 사이를 통과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한 걸음 전에는 등을 밀다가 다음 걸음에는 가슴을 후려쳤다.
에이라는 바람이 세질 때마다 몸을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들어 소리를 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울음과 짧게 끊기는 울음을 구분하고, 바위 위에 남은 흰 자국을 살폈다.
“어린 프테라 저쪽. 큰 것 위.”
마르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걷힐 때 가죽 날개 한쪽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어떻게 알아?”
“어린 것 배고프면 많이 운다. 큰 것 화나면 안 운다.”
그 말이 끝나자 머리 위의 울음이 갑자기 멎었다.
에이라가 모두를 바위벽 쪽으로 밀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구름을 찢고 내려왔다. 프테라의 날개 끝이 절벽을 스치며 돌조각을 쏟아 냈다. 긴 부리가 조금 전까지 에이라가 서 있던 자리를 찍었다. 충격에 바닥이 흔들렸다.
크로노가 검에 손을 댔으나 에이라가 팔을 뻗어 막았다.
“칼 쓰면 프테라 적 된다.”
그녀는 빈손으로 바위 앞으로 나갔다. 프테라가 목을 낮추고 다시 부리를 내밀었다. 에이라는 피하지 않고 코 위의 단단한 비늘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사람 하나쯤 절벽 밖으로 던질 힘이 부리에서 전해졌지만, 그녀의 발은 젖은 바위 위에서 반 걸음만 밀렸다.
“에이라, 싸우러 안 왔다. 같이 싸우러 왔다.”
말을 알아들어서인지 힘을 알아보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프테라는 부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더 밀지도 않았다. 노란 눈동자가 에이라의 얼굴에서 허리의 목걸이로 옮겨 갔다.
그때 오른쪽 바위틈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회색 털로 덮인 큰 짐승 둘이 네 발로 기어 나왔다. 팔이 다리보다 길었고, 등에는 둥근 돌껍질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한 놈이 바닥의 돌을 들어 프테라의 날개 관절을 향해 던졌다.
에이라가 몸을 돌려 돌을 주먹으로 쳐 냈다. 깨진 조각이 빗속으로 흩어졌다.
두 번째 짐승이 달려들었다. 카에루가 앞을 막았지만 젖은 손에서 검자루가 아주 조금 돌아갔다. 그는 베는 대신 칼등으로 긴 팔을 눌러 바닥에 박았다. 손끝의 떨림 때문에 힘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크로노가 옆으로 들어가 짐승의 무릎 뒤를 검 손잡이로 쳤다.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 옆구리가 당겨 보폭이 끊겼다. 쓰러뜨리기에는 반 걸음이 모자랐다.
마르의 화살이 그 반 걸음을 메웠다.
새로 만든 뼈촉이 짐승의 발 앞에 박혔다. 화살촉에서 번진 얼음이 젖은 바위와 발가락을 붙였다. 짐승이 힘으로 발을 빼려다가 자기 무게에 앞으로 넘어졌다. 에이라는 기다리고 있던 듯 목덜미를 붙잡아 다른 놈 위로 던졌다.
두 짐승은 절벽 가장자리까지 굴렀다. 프테라가 날개를 한 번 펼치자 돌풍이 일어났다. 회색 털이 뒤집힌 놈들은 더 싸우지 않고 바위틈으로 달아났다.
에이라는 프테라의 날개 관절을 살폈다. 돌에 맞은 자리에 얕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녀가 약초 잎을 씹어 붙이자 프테라는 불쾌한 듯 목을 흔들었지만 물지는 않았다.
“이제 친구인가?” 마르가 물었다.
“아직.”
“그럼 언제 친구가 돼?”
“같이 내려오면.”
에이라는 프테라의 목 뒤로 올라탔다. 안장도 고삐도 없었다. 비늘 사이의 두꺼운 돌기를 무릎으로 잡고 목덜미를 두드렸다. 프테라는 날개를 펴는 대신 그녀를 떨쳐 내려고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에이라는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목을 꺾지도 않았다. 흔들리는 방향에 맞춰 허리를 움직이며 기다렸다. 한참 뒤 프테라가 먼저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친구.”
둥지 위쪽에는 세 마리가 더 있었다. 처음의 한 마리가 울음을 내자 다른 프테라들이 바위 끝으로 내려왔다. 에이라는 각자의 등에 누가 탈지 손가락으로 정했다.
마르는 크로노와 한 마리에 타겠다고 했으나 에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크로 옆구리 아프다. 둘 타면 떨어진다. 마르 혼자.”
카에루는 가장 작은 프테라를 배정받았다. 생물은 그의 젖은 피부 냄새를 맡더니 노골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나 역시 이 선택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네.”
그는 그랜드리온을 등에 단단히 묶고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프테라가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넓적한 발이 비늘 위에서 미끄러졌다. 에이라가 질긴 덩굴을 던져 주었고, 카에루는 그것을 목의 돌기에 감았다.
“목 조르면 화낸다.”
“내가 먼저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럴 일도 없을 걸세.”
크로노는 마지막 프테라 앞에 섰다. 짐승은 붕대에서 배어 나온 피 냄새를 맡고 머리를 기울였다. 그는 칼집을 풀어 마르에게 건네려다 멈췄다. 대신 칼집을 등 쪽으로 돌려 날개에 닿지 않게 묶었다. 빈손을 프테라의 부리 위에 올리고 기다렸다.
짐승이 먼저 무릎을 굽혔다.
네 마리는 차례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날개가 바람을 받기 전까지는 또 한 번의 추락이었다. 산기슭과 불탄 숲이 빠르게 솟아오르자 마르는 본능적으로 목의 돌기를 끌어안았다. 바로 다음 순간 날개 아래에 공기가 차오르며 몸이 위로 들렸다.
땅이 멀어졌다.
라루바의 검은 연기, 이오카의 작은 불빛, 숲을 가르는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르는 자신들이 걸어온 시대들이 모두 이처럼 내려다보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서기 600년의 전쟁도, 서기 2300년의 폐허도 높은 곳에서는 작은 흉터처럼 보일지 몰랐다. 그러나 작아 보인다고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크로노의 프테라가 갑자기 고도를 잃었다. 크로노가 목의 돌기를 당기지 않고 몸을 앞으로 숙이자 짐승은 왼쪽 날개를 기울여 상승 기류를 찾았다. 산의 따뜻한 공기가 날개 아래로 들어가며 둘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는 힘으로 방향을 빼앗기보다 프테라가 먼저 알고 있는 바람을 따랐다.
마르는 그 움직임을 보고 자기 손의 힘을 풀었다. 비늘을 움켜쥐고 있던 손가락이 저렸다. 고삐가 없는 비행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이었다. 시간의 문을 건널 때와 닮았지만 한 가지는 달랐다. 이번에는 등에 탄 생물이 같은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카에루의 프테라는 다른 셋보다 낮게 날았다. 카에루는 덩굴을 당겨 억지로 올리려 하지 않고, 긴 발을 몸 가까이 붙여 공기 저항을 줄였다. 잠시 뒤 가장 작은 프테라도 무리와 같은 높이에 닿았다.
에이라는 앞쪽에서 손을 내렸다. 네 마리가 고도를 낮췄다.
검은 산 너머의 요새가 가까워졌다. 거대한 짐승의 등뼈를 돌로 덮어 만든 듯한 형태였다. 중앙 탑은 다른 벽보다 높았고, 꼭대기에는 뿔 모양의 기둥 두 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벽 위를 순찰하는 공룡 인간들의 창끝이 불빛을 반사했다.
“저기로 바로 가면 보여.” 마르가 바람 속에서 외쳤다.
에이라는 대답 대신 아래를 가리켰다.
요새 서쪽 절벽 밑으로 좁은 물길이 들어가고 있었다. 물길 옆에는 짐승 발자국과 끌린 흔적이 이어졌다. 라루바에서 보았던 포로 운반로였다. 위에서 보니 길은 성벽을 통과하지 않고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네 사람은 요새에서 멀리 떨어진 돌기둥 뒤에 내렸다.
카에루는 땅에 발을 대자마자 한동안 프테라의 목을 붙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프테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친구, 됐다.” 에이라가 말했다.
“저쪽의 판단도 들어 보아야겠군.”
카에루가 손을 놓자 프테라는 곧바로 세 걸음 물러났다.
에이라는 프테라들을 낮은 바위 골짜기로 보냈다. 날개가 성벽 위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돌아오라는 신호를 정한 뒤 네 사람은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절벽 아래의 통로 입구에는 녹색 비늘로 만든 문이 걸려 있었다. 문 앞의 보초 둘은 위쪽 하늘만 보고 있었다. 프테라를 탄 침입자가 성벽으로 올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마르는 화살 한 대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보초를 쓰러뜨리면 남은 화살이 줄고 흔적이 남았다.
카에루가 물가의 작은 돌을 집어 반대쪽 동굴로 던졌다. 소리가 나자 보초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에이라는 물속으로 들어가 숨도 흔들지 않고 다가갔다. 첫 번째 보초의 입을 막아 아래로 끌어내렸고, 크로노는 남은 한 명이 창을 들기 전에 손목을 쳐 무기를 떨어뜨렸다.
카에루가 검끝을 목 가까이에 대자 보초는 저항을 멈췄다. 네 사람은 둘을 죽이지 않고 덩굴로 묶어 물길 위 바위틈에 숨겼다.
문 안쪽은 짐승 냄새와 차가운 돌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이 낮은 통로에 횃불은 없었지만, 벽에 박힌 푸른 광석이 희미한 빛을 냈다. 길바닥에는 큰 짐승의 발자국과 사람의 맨발 자국이 겹쳐 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북소리 같은 진동이 들렸다.
한 번, 쉬고, 두 번.
요새 전체에 명령을 보내는 신호였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벽의 먼지가 떨어졌다.
에이라가 갑자기 멈췄다.
오른쪽 벽 너머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누군가가 낮고 빠르게 이오카의 말을 했다.
“에이라 오면 너희 끝이야.”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허세만은 남아 있었다.
에이라의 손이 허리의 끊어진 목걸이로 갔다.
“키노.”
그녀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구하러 온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조차, 요새 안에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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