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9화] 선의가 증거가 되는 법
가르디아 성으로 오르는 길에서 축제의 소리는 오래 따라왔다.

숲 아래쪽으로 해가 기울자 리네 광장의 종과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졌다. 크로노의 양옆을 걷는 경비병들은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창을 고쳐 잡았다. 그들에게 오늘은 아직 축제일이었고, 손목에 쇠고리를 찬 소년은 축제를 망친 죄인이었다.
마르는 호송대 뒤에서 계속 항의했다.
“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요. 크로노는 내 이름도,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고요.”
선두의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주의 말에 무례하게 굴 수는 없지만 명령을 거스를 생각도 없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성문을 통과한 뒤 세 사람은 갈라졌다.
마르는 중앙 계단으로 끌려가듯 안내되었고, 루카는 왕실 관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현관에서 제지당했다. 크로노는 두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돌리고 걸었다. 마르가 병사의 팔을 뿌리치는 모습과, 루카가 성의 창문 수를 세듯 위를 살피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앞을 봐.”
뒤따르던 병사가 쇠고리 사이의 사슬을 당겼다.
크로노는 몸을 돌렸다. 손바닥의 붕대가 거친 쇠에 쓸려 따끔거렸다.
그가 들어간 방에는 창이 없었다. 벽 한쪽에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 철문에는 사람 얼굴 높이의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경비병은 수갑을 벽 고리에 묶고 나가면서 내일 아침 재판이 열린다고 말했다.
“말할 게 있으면 그때 해. 재상이 전부 들을 테니까.”
문이 닫힌 뒤에도 ‘재상’이라는 말이 방 안에 남았다.
서기 600년의 성당에서 꺼낸 진짜 재상이 떠올랐다. 상자 안에 접힌 채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 얼굴은 달랐지만 직위의 이름만큼은 같았다. 천 년제 아침까지 크로노에게 재상이란 왕 옆에 서는 사람을 뜻했으나, 이제는 사람의 얼굴을 빌려 명령과 보고를 바꾸는 존재부터 생각났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쇠고리가 옆구리 상처를 당길 때마다 야크라의 가시가 스친 자리가 욱신거렸다. 금이 간 검은 성문에서 압수당했다. 칼을 가져간 병사는 날을 살펴보며 이런 물건으로 공주를 위협했느냐고 물었다. 크로노가 대답하지 않자 침묵까지 자백처럼 받아 적었다.
밤이 깊어지자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 전하께서 직접 진술하겠다고 하십니다.”
낯선 남자의 말에 다른 사람이 낮게 웃었다.
“가출한 당사자의 판단이 온전했다고 인정하면 왕실 체면은 어떻게 되겠나?”
“하지만 납치가 아니었다는 증언은—”
“보호받아야 할 분이 보호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증언이 아니라 병증이지.”
발소리가 멀어졌다.
크로노는 손목의 쇠고리를 내려다보았다. 마르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말은 성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증거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같은 사슬에 이끌려 법정으로 들어갔다.
높은 천장 아래로 긴 창이 줄지어 있었지만 햇빛은 피고석까지 닿지 않았다. 중앙에는 왕실 문장이 새겨진 원형 바닥이 있었고, 양옆의 좌석에는 귀족과 관리들이 앉아 있었다. 맨 앞줄에는 일곱 명의 배심원이 굳은 얼굴로 나란히 서 있었다.
국왕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다.
어젯밤 마르와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눈 밑은 어두웠고, 왕관을 쓴 얼굴은 아버지의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그 오른편에는 재상이 붉은 서류철을 들고 서 있었다.

크로노를 위한 변호인은 피에르라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공주님이 납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사실대로만 답하면 됩니다.”
말은 침착했으나 종이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재상은 피고석 앞으로 나왔다.
그는 공주를 납치한 혐의보다 먼저 크로노가 어떤 사람인지 묻겠다고 했다. 우연히 만난 소녀를 유인할 의도가 있었는지, 왕실 장신구를 탐냈는지, 축제에서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밝히면 사건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논리였다.
“둘 중 누가 먼저 접근했는가?”
재상이 물었다.
크로노는 광장 입구의 햇빛을 떠올렸다. 종소리를 보며 뒤로 걷던 마르와, 고양이를 피하려 몸을 돌리던 자신. 충돌은 한쪽만의 일이 아니었다.
“우연이었습니다.”
법정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크로노가 한 문장보다 긴 말을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듯했다.
“우연이라.” 재상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그 뒤에 동행을 제안한 사람은?”
“마르가.”
“공주 전하를 그렇게 부를 만큼 가까워지는 데 얼마나 걸렸지?”
피에르가 즉시 일어났다.
“당시 피고인은 신분을 몰랐습니다.”
“바로 그 점을 확인하는 중이오.”
재상은 배심원을 돌아보았다. 낯선 소녀가 먼저 같이 다니자고 했다는 사실은 분명 크로노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재상의 입을 거치자 그것은 왕족에게 예를 갖추지 않은 친밀함으로 변했다.
두 번째 증인은 천년제의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넓은 법정에 들어오자 겁을 먹고 어머니의 치마를 붙들었다. 피에르가 몸을 낮추어 고양이에 관해 묻자, 아이는 크로노가 도망간 고양이를 찾아 주었다고 말했다.
“대가를 요구했나요?”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쁜 사람이었나요?”
이번에는 더 세게 저었다.
배심원 한 명의 굳은 입가가 조금 풀렸다.
재상은 아이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머니에게 왕실에서 사례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한 뒤 증인을 내보냈다. 선의를 반박하지 않고 왕실의 호의 안에 넣어 작게 만드는 솜씨였다.

다음으로 사탕 상인이 불려 나왔다.
그는 마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크로노가 재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뒤에 선 손님들이 불평했지만 소년은 묵묵히 기다렸고, 값을 대신 내거나 소녀의 팔을 잡아끌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그 소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두었군요.” 피에르가 말했다.
“그랬지요.”
“납치범의 행동으로 보였습니까?”
상인은 잠시 재상을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재상이 일어섰다.
“상인은 그 소녀가 공주인 줄 몰랐습니다. 피고인도 몰랐다고 주장하지요. 그렇다면 이 증언은 납치 의도와 무관합니다. 단지 피고인이 장사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말일 뿐입니다.”
법정의 웃음은 작았지만 상인의 얼굴을 붉히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 증언은 타반의 서면으로 제출되었다.
순간 이동 장치의 시연은 마르가 스스로 자원했으며, 사고 뒤 크로노가 펜던트를 이용해 그녀를 찾으러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루카가 밤새 적어 보낸 측정 기록도 첨부되어 있었다. 시간의 문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고, 설명할 수 없는 공간 현상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재상은 그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왕실은 아직 그 기계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피고인이 공주와 함께 사라졌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하루 가까이 머물렀다는 사실입니다.”
“피고인은 공주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뒤따라갔습니다.”
피에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위험 속에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위험을 만든 자의 친구인데도?”
루카가 법정에 있었다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크로노는 빈 방청석 쪽을 바라보았다. 마르의 자리도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재판 내내 문밖에 갇혀 있었다.
피에르는 크로노의 손바닥에 남은 상처와 옆구리의 붕대를 증거로 요청했다. 공주가 무사히 돌아왔고, 피고인이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은 결과가 보여 준다고 말했다.
재상은 상처의 원인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맞섰다.
같은 하루가 두 개의 이야기로 갈라졌다.
고양이를 돌려준 일은 우연한 친절이 되었고, 사탕을 고를 때 기다린 일은 아무 의미 없는 태도가 되었다. 마르의 선택은 판단력 부족으로, 크로노의 추적은 사건을 감추기 위한 도주로 바뀌었다. 거짓말은 많지 않았다. 사실의 앞뒤를 잘라 다른 줄에 놓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국왕은 재판 내내 크로노보다 닫힌 문을 더 자주 보았다.
그 문 너머에 마르가 있을 것이다.
최후 진술을 요구받았을 때 크로노는 잠시 침묵했다. 자신의 결백을 설명하려면 서기 600년의 성, 사라진 왕비, 마족의 성당과 소멸한 마르를 모두 말해야 했다. 믿게 만들 수도 없었고, 믿는 순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는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마르는 스스로 갔습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배심원들은 한 명씩 뒤쪽 방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지나는 구름이 바닥의 빛을 옮겼다. 피에르는 손에 든 깃펜을 몇 번이나 굴렸고, 재상은 이미 결과를 아는 사람처럼 서류철의 끈을 묶었다.
일곱 사람이 돌아왔다.
판사가 첫 번째 이름을 불렀다.
“무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같은 말을 했다.
고양이를 안은 아이, 사탕 앞에서 기다리던 시간, 떨어진 펜던트보다 쓰러진 사람을 먼저 본 순간이 한 표씩 크로노 곁에 서는 듯했다.
마지막 배심원이 무죄를 말하자 방청석에서 억눌린 숨이 한꺼번에 풀렸다.
판사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납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한다. 다만 왕실의 허가 없이 공주 전하를 위험에 노출한 책임을 물어 사흘간 구금한 뒤 석방한다.”

문밖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들었죠? 이제 열어요!”
국왕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재상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크로노가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갈 때, 피에르가 뒤따라와 말했다.
“사흘이면 끝납니다. 공주님도 진정하실 테고요.”
그들은 북쪽 탑으로 이어진 통로에서 교도대장과 마주쳤다. 재상은 붉은 서류철에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집행은 사흘 뒤다. 그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말게.”
교도대장이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집행이라니요? 판결은 구금 후 석방으로 들었습니다만.”
재상의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그대는 법정 기록관인가, 감옥지기인가?”
“하지만 서류에는 사형이라고—”
“정식 문서는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왕실의 명령을 의심하겠다는 뜻인가?”
교도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크로노가 멈춰 서자 등 뒤의 창끝이 옷을 눌렀다. 피에르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얼굴이 굳은 채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재상이 손짓했고, 감옥의 철문이 크로노와 법정 사이를 가로막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축제의 종이 정오를 알렸다.
사흘 뒤 풀려나리라는 판결과 사흘 뒤 죽으리라는 명령이 같은 성 안에서 함께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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