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6화] 돌벽 안의 잔치

계단은 생각보다 깊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숨은 통로를 찾는 크로노 일행 - 不惑の惑星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숨은 통로를 찾는 크로노 일행 - 不惑の惑星

세 사람의 발소리가 돌벽을 타고 아래로 이어졌다. 카에루가 앞에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잠시 멈춰 바닥과 천장을 살폈고, 크로노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속도를 맞췄다. 루카는 뒤에서 열린 돌문이 완전히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 손안의 작은 장치에 표시를 남겼다.

“돌아갈 때 같은 음을 연주하면 열릴까?”

그녀가 낮게 물었다.

“안에서 여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이오.”

카에루가 앞을 살핀 채 대답했다. “안에서 여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이오.”

“없으면?” 루카가 묻자 그가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때는 만들면 되지 않소.”

루카는 앞사람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할 법한 말을 하네.”

계단 끝에는 좁은 복도가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지만 습기를 먹어 색이 검게 변해 있었다. 벽에 걸린 푸른 불꽃은 가까이 손을 대도 온기가 없었다. 불꽃 아래에는 사람과 짐승의 얼굴을 뒤섞은 작은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크로노는 가장 가까운 석상의 입안에서 굳은 피를 발견했다.

카에루도 보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길이 셋으로 갈라졌다. 왼쪽에서는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오른쪽에서는 낮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정면의 문틈에서는 따뜻한 빛과 음식 냄새가 새어 나왔다.

루카의 배가 아주 작게 울렸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사기를 고쳐 잡았다.

카에루가 정면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안에서는 여러 사람이 웃고 있었다. 접시와 잔이 부딪치고, 누군가는 왕비의 귀환을 축하한다며 건배를 제안했다. 성당 지하에서 들릴 법한 소리는 아니었다.

카에루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크로노는 문 왼쪽, 루카는 오른쪽 벽에 붙었다. 그가 문을 아주 조금 밀었다.

방 안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다.

촛불 수십 개가 은식기를 비추었고, 구운 새와 과일, 빵이 접시마다 가득했다. 가르디아 병사 복장을 한 남자 셋과 귀족 옷을 입은 부부, 어린 여자아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두 지나치게 즐거운 얼굴로 잔을 들고 있었다.

사람의 잔치를 흉내 낸 성당 지하의 괴물들 - 不惑の惑星
사람의 잔치를 흉내 낸 성당 지하의 괴물들 - 不惑の惑星

식탁 맨 끝에는 리네 왕비를 닮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크로노는 한순간 마르가 돌아온 줄 알았다.

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 왕실 드레스까지 성에서 보았던 초상과 비슷했다. 그러나 웃는 입술이 움직이는 동안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여자가 문 쪽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카에루의 손이 검자루에 놓였다.

“먼 길을 오셨으니 배가 고프시겠죠.”

병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목이 사람에게 허락된 각도보다 더 많이 꺾였다.

루카가 속삭였다.

“저 음식, 냄새가 이상해.”

구운 새처럼 보였던 것은 깃털을 뽑은 박쥐였고, 붉은 과일은 껍질이 아니라 얇은 막으로 덮여 있었다. 빵 위에는 곰팡이가 설탕처럼 뿌려져 있었다. 따뜻한 냄새 아래에서 썩은 내장이 풍겼다.

카에루가 문을 완전히 열었다.

“왕비님은 어디 계시오?”

식탁 끝의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내가 여기 있잖아요.”

“그분의 얼굴을 흉내 내지 마라.”

카에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자의 미소가 조금씩 벌어졌다.

귀족 부부와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부 아래에서 뿔과 비늘이 솟고, 옷이 찢어졌다. 어린아이의 몸은 검은 연기처럼 무너졌다가 날개 달린 작은 괴물로 다시 뭉쳤다.

카에루는 문턱을 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크로노는 처음에 그가 겁을 먹은 줄 알았다. 그러나 식탁 아래에서 여러 개의 철선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방 안으로 두 걸음만 더 들어가면 발목을 걸어 천장의 창살을 떨어뜨리는 장치였다.

카에루가 검끝으로 문 옆 촛대를 밀었다.

무거운 촛대가 철선 위로 쓰러졌다.

천장에서 쇠창살이 떨어져 식탁을 둘로 갈랐다. 괴물 둘이 그 아래 깔렸고, 나머지들이 비명을 지르며 문으로 몰려왔다.

“이제 들어가시오.”

세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크로노가 첫 번째 놈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 옆 벽에 흘렸다. 카에루의 칼날이 아래에서 올라와 놈의 옆구리를 갈랐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만든 빈틈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맞았다.

루카는 문 밖에 남아 날개 달린 작은 괴물들을 노렸다. 빠르게 날아다녀 총구를 맞추기 어려웠다. 그녀는 천장을 향해 한 발을 쏘았다. 탄환이 돌에 부딪쳐 파편을 흩뿌리자 놈들이 방향을 바꿨다.

“아래로 몰았어!”

크로노는 그녀가 만든 길을 읽었다. 식탁 위로 뛰어올라 몸을 낮게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날개 두 쌍이 찢어지고 작은 몸들이 접시 사이로 떨어졌다.

왕비의 모습을 한 것은 뒤로 물러나 벽을 더듬었다.

손이 숨겨진 손잡이에 닿기 전 카에루가 검을 던졌다. 칼날은 괴물의 손등을 꿰뚫고 벽에 박혔다. 놈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카에루는 식탁을 밟아 거리를 좁혔다. 맨손으로 검자루를 잡아 비틀자 손등과 벽 사이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가짜 얼굴이 녹아내렸다.

금빛 머리카락은 검은 점액이 되었고, 아름다운 얼굴 아래에서 길쭉한 주둥이가 드러났다. 카에루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 목을 그었다.

전투가 끝난 뒤 루카는 식탁 위의 음식에 작은 금속 막대를 찔렀다. 막대 끝이 검게 변했다.

“독이야. 먹었으면 몇 분도 못 버텼을걸.”

카에루는 쓰러진 가짜 왕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크로노가 그의 어깨를 보았다. 망토 아래의 근육이 굳어 있었다. 카에루는 왕비의 얼굴을 이용한 모욕에 분노했지만, 분노를 검보다 먼저 내세우지 않았다.

“이놈들은 사람의 기억을 읽지는 못하오.”

그가 말했다.

“그러니 얼굴과 옷만 흉내 냈지. 왕비님이라면 이런 곳에서 타인의 굶주림을 두고 홀로 잔을 들지 않으실 것이오.”

루카는 방 안쪽의 손잡이를 조사했다. 가짜가 당기려 했던 장치는 벽 뒤의 통로를 여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꺼뜨리는 함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포로를 여기로 끌어들일 때 쓰는 것 같아.”

그녀는 바닥의 틈을 비추었다. 아래에서는 오래된 뼈와 녹슨 갑옷이 보였다.

세 사람은 방을 나와 왼쪽 복도로 향했다.

촛대와 붉은 융단이 놓인 성당 본당에서 다음 통로를 살피는 크로노 일행
다음 통로를 찾아 성당 안을 살피는 크로노 일행 - 不惑の惑星

금속 소리가 들리던 곳에는 작은 감옥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안쪽 두 칸에는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는 부상당한 병사 둘이 쓰러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회색 수도복을 입은 노인이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카에루가 창살 앞으로 다가가자 병사 중 한 명이 눈을 떴다.

“카에루 경…….”

그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부끄러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왕비님은?”

“더 안쪽으로…… 대신관실 너머로 끌고 갔습니다. 재상께서 직접.”

카에루의 눈이 좁아졌다.

“재상?”

“왕비님이 사라진 직후부터 수색을 지휘하던 분입니다. 저희는 성당을 확인하라는 명을 받고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뒤에서 공격받았습니다.”

루카가 물었다.

“재상도 여기 붙잡힌 거야, 아니면 저것들과 한패야?”

병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왕비님께서는 그를 보자 크게 놀라셨습니다. 이름을 부르시기도 전에 끌려가셨고…….”

말을 끝내지 못하고 기침했다. 입가에 피가 묻어났다.

카에루는 창살을 살폈다. 자물쇠는 크고 단단했지만 벽에 박힌 경첩은 습기로 약해져 있었다. 그는 검을 틈에 넣어 지렛대처럼 비틀었다. 한 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크로노가 옆에서 검을 같은 방향으로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이 힘을 맞추자 돌가루가 떨어졌다. 경첩 하나가 빠지고, 두 번째는 루카가 망치로 고정못을 두드려 느슨하게 만들었다. 창살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병사들을 꺼낸 뒤 카에루는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말린 약초를 물에 적셔 상처 위에 올리고 붕대를 단단히 감았다. 손놀림이 익숙했다.

“걸을 수 있겠나?”

“한 명은 부축하면 가능합니다.”

노인은 자신이 그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원래 이 성당에서 봉사하던 사제였다. 몇 달 전 낯선 수녀들이 들어오면서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를 성에 알리려다 붙잡혔다고 했다.

“저들은 예배를 흉내 냈습니다.”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믿는 말을 외워 두었다가, 가장 두려운 순간에 그 말을 뒤집어 사용했지요.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죽은 이를 만날 수 있다고 속여 지하로 끌고 갔습니다.”

루카는 이를 악물었다.

“출구는 우리가 연 계단이 유일한가요?”

“동쪽 복도 끝에 종탑으로 이어지는 비상 통로가 있습니다. 잠겨 있지만 안쪽에서는 열 수 있을 겁니다.”

카에루는 병사들에게 자신의 짧은 칼을 건넸다.

“노인을 지키며 밖으로 나가시오. 성에 도착하면 기사단장에게 왕비님께서 이곳에 계시다고 전하게.”

병사는 칼을 받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경의 무기는—”

“내게는 이것이 있소.”

카에루가 긴 검을 들어 보였다.

그들은 동쪽 통로로 향했다. 문 너머에서 한동안 자물쇠를 부수는 소리가 들린 뒤, 차가운 바람이 복도 안으로 들어왔다. 출구가 열린 것이다.

세 사람은 반대쪽, 노랫소리가 들리던 오른쪽 복도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전투의 흔적이 없었다. 벽에는 왕국 병사와 마왕군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처음 몇 장은 왕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평범한 그림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쪽으로 갈수록 내용이 달라졌다. 쓰러진 병사들 위에서 검은 형체가 잔을 들고 있었고, 마지막 그림에서는 가르디아 성이 불타고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다.

‘왕의 마음이 무너지면 문이 열린다.’

루카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갔다.

“왕비를 죽여 왕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건가.”

카에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복도 끝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안을 보니 검은 로브를 입은 괴물들이 둥글게 서 있었다. 가운데에는 가르디아 왕실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작은 왕과 왕비 인형, 성벽과 깃발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괴물 하나가 왕비 인형을 들어 불 위에 올리자 나머지들이 일제히 웃었다.

크로노는 카에루의 손이 검자루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움직였다.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가 가장 가까운 괴물의 팔을 베었다. 카에루는 뒤따라 들어와 반대쪽을 막았고, 루카는 문밖에서 빠져나가려는 놈들을 쏘았다.

공간은 좁고 적은 많았다.

마노리아 성당의 괴물들과 맞서는 크로노·루카·카에루 - 不惑の惑星
마노리아 성당의 괴물들과 맞서는 크로노·루카·카에루 - 不惑の惑星

크로노와 카에루의 검이 서로 부딪칠 듯 가까워졌다. 처음 몇 번은 상대의 움직임을 피하느라 공격이 늦었다. 카에루가 낮게 말했다.

“내 왼쪽을 맡으시오.”

크로노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카에루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면 그 뒤의 빈 공간을 채웠고, 그가 검을 높이 들면 크로노는 낮은 쪽을 노렸다. 한 사람의 공격을 피한 적이 다른 사람의 칼날 앞으로 밀려났다. 완벽한 연계는 아니었다. 어깨가 부딪치고, 서로의 검풍에 옷자락이 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싸움이 이어질수록 두 사람의 호흡은 짧은 신호만으로 맞아 갔다.

루카는 그 움직임을 보며 총구를 조정했다. 처음에는 빈틈이 너무 빨리 바뀌어 쏘지 못했지만, 크로노가 몸을 낮출 때마다 카에루가 적을 오른쪽으로 몰아낸다는 규칙을 찾아냈다.

“셋 센다!” 루카가 외쳤다.

하나를 세는 순간 크로노가 상대의 무기를 쳐 올렸고, 둘에 맞춰 카에루가 몸을 돌려 사선의 길을 열었다. 셋이 떨어지자 금속탄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 마지막 괴물의 가슴에 박혔다.

놈은 왕비 인형을 손에 쥔 채 뒤로 넘어졌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크로노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인형을 주웠다. 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드레스가 섬세하게 칠해져 있었다. 마르를 닮았지만 마르는 아니었다. 이 시대에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본뜬 물건이었다.

그는 인형을 불에서 먼 탁자 위에 놓았다.

카에루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맙소.”

짧은 말이었다.

방 뒤쪽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 벽은 다른 곳보다 건조했고, 횃불도 일반적인 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을 가두는 지하를 지나 성당 본관의 깊숙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세 사람은 잠시 멈춰 장비와 상처를 확인했다.

크로노의 왼팔에는 발톱이 스친 상처가 있었고, 카에루의 갑옷 옆구리는 찢겨 있었다. 루카는 손목이 부어 발사기를 들 때마다 통증을 느꼈다. 누구도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자 넓은 회랑이 나왔다.

창문은 없었지만 천장에 매달린 등불들이 밝게 타고 있었다. 바닥에는 새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왕실 문장이 걸려 있었다. 성당 지하라기보다 가르디아 성의 복도를 흉내 낸 공간처럼 보였다.

카에루는 융단 위에 난 자국을 살폈다.

무거운 드레스 자락이 끌린 흔적과, 갑옷 장화를 신은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이어졌다.

“왕비님이 이 길을 지나셨소.”

회랑 끝에는 황금색 문이 있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손잡이에는 피 묻은 흰 천이 걸려 있었다. 카에루가 천을 집어 들었다. 왕실 시녀들이 사용하는 손수건이었고, 모서리에는 리네의 이름 첫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왕비님.”

성에서 크로노에게 길을 알려 주던 목소리와 같았다.

지나치게 달콤한 향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전하께서는 왕비님을 두 번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시겠지요. 왕국의 군대도 마음을 잃을 테고.”

카에루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루카가 입 모양으로 물었다.

‘재상?’

크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 너머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재상이 아니군요.”

두려움이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남자가 웃었다.

“너무 늦게 알아보셨습니다.”

카에루가 문 앞에 섰다.

그는 검을 두 손으로 잡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았다. 방의 크기와 안쪽 사람들의 위치를 소리로 짐작하고 있었다.

크로노는 반대쪽 벽을 보았다. 금색 문 양옆의 장식 기둥에는 가느다란 구멍들이 줄지어 있었다. 문을 열면 화살이나 독침이 발사될 수 있었다.

그가 구멍을 가리키자 루카가 가까이 다가가 구조를 살폈다.

“압력식이야. 손잡이를 당기면 작동해.”

그녀는 가방에서 얇은 철사를 꺼내 손잡이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 손목의 통증 때문에 몇 번이나 철사가 미끄러졌다. 크로노가 장치를 받쳐 주자 루카는 이를 악물고 내부의 걸쇠를 찾았다.

작은 금속음이 났다.

“됐어.”

카에루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방 안의 남자가 말을 멈췄다.

“손님이 왔군요.”

문이 안쪽에서 저절로 열렸다.

넓은 방 한가운데 리네 왕비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드레스는 찢어지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졌지만, 고개를 들고 세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또렷했다.

그녀의 뒤에는 재상의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성에서 보았던 뾰족한 얼굴과 단정한 수염, 웃지 않는 눈까지 같았다. 다만 향 냄새 아래에서 짐승의 숨결이 들렸다.

남자는 크로노와 루카를 차례로 본 뒤 카에루에게 시선을 멈췄다.

“끝까지 냄새를 쫓아왔군, 실패한 기사.”

카에루의 검끝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리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카에루, 가까이 오지 마세요. 바닥에—”

남자가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왕비가 옆으로 넘어졌다.

카에루가 한 걸음 나가는 순간 크로노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문 안쪽 바닥에는 원형으로 이어진 홈이 있었고, 홈 사이에서 검은 액체가 끓고 있었다.

재상의 얼굴이 길게 찢어졌다.

“좋다.”

그가 웃었다.

“모두 함께 왕국의 마지막을 보도록 하지.”

사람의 피부 아래에서 두꺼운 가시들이 솟아났다.

방의 문이 세 사람 뒤에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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