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5화] 기도가 닿지 않는 곳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거의 없었다.
가르디아 성과 트루스 마을 사이의 큰길은 마차 바퀴와 군화 자국으로 패여 있었지만, 서쪽 숲으로 갈라지는 길은 젖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길목에는 오래된 이정표가 기울어져 있었고, 성당을 가리키는 글자는 비와 바람에 반쯤 지워져 있었다.
루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성벽 위의 횃불이 나무 사이로 멀어지고 있었다. 왕비가 다시 사라졌다는 소식은 이미 성 전체에 퍼졌을 것이다. 수색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알 수 없었다.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히면 진실을 설명할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우리가 미래에서 왔다고 말하면 믿을까?” 루카가 물었다.
크로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외투 주머니에서 작은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다가 갑자기 흔들리며 서쪽으로 돌아갔다. 몇 걸음 더 움직이면 다시 북쪽을 찾았다.
“이 시대의 자기장이 다른 건지, 문을 통과할 때 망가진 건지 모르겠네.”
루카는 나침반을 흔들었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평소라면 분해해서 확인했을 텐데, 지금은 부품 하나라도 잃으면 안 돼.”
크로노는 그녀의 가방을 보았다. 축제 시연장에서 급히 챙겨 온 공구와 전선, 시간의 문을 추적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가방 옆에는 손잡이가 짧은 금속 발사기가 매달려 있었다. 루카가 직접 만든 무기였다. 작은 폭발력으로 금속탄을 밀어내는 구조였지만, 비에 젖거나 내부에 먼지가 들어가면 쉽게 작동하지 않았다.
“왜?”
루카가 그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크로노는 가방과 그녀의 어깨를 번갈아 가리켰다.
“무겁냐고? 당연히 무겁지.”
그녀는 가방끈을 고쳐 멨다.
“그렇다고 네가 들면 내가 필요한 순간마다 꺼내 달라고 해야 하잖아. 그게 더 불편해.”
크로노가 손을 내밀었다.
루카는 잠시 버티다가 결국 가방을 벗어 건넸다.
“시간의 문 추적 장치는 충격에 약해. 뛰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싸울 때는 먼저 내려놔.”
크로노가 가방을 등에 메자 무게가 어깨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는 루카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알아차린 루카가 먼저 방어적으로 말했다. “뭐. 필요한 것만 챙겼어.”
그는 가방 옆에서 삐져나온 세 종류의 망치와 금속 집게를 바라보았다.
“전부 필요해.”
루카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숲은 성에서 멀어질수록 조용해졌다. 새 울음은 드물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높은 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무 사이에는 작은 석상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얼굴은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몇몇 석상에는 새 꽃이 놓여 있었다.
“완전히 버려진 길은 아닌가 봐.”
루카가 꽃잎을 만지지 않고 살폈다.
크로노는 석상 아래의 흙을 보았다. 꽃을 놓은 사람의 발자국은 성당 쪽에서 와 다시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을에서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이라면 반대였을 것이다.
그는 루카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왜?”
크로노가 발자국을 가리켰다.
루카는 무릎을 굽혀 흔적을 살폈다. 발자국은 맨발처럼 보였지만 발가락의 형태가 길고 뾰족했다. 흙에 찍힌 깊이도 사람의 체중과 맞지 않았다.
“신발을 이상하게 만든 걸 수도 있어.”
그녀는 말하면서도 허리춤의 발사기를 꺼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속도를 늦췄다.
숲이 끝나는 곳에서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회색 돌로 지은 건물이었다. 붉은 지붕과 가느다란 첨탑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단정했고, 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에는 작은 흰 꽃이 피어 있었다. 건물 뒤로는 잔잔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전쟁 중인 왕국 한가운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온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정문 옆 화단의 흙에는 무거운 물건을 끌고 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창문 안쪽에는 빛이 있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처마 밑에는 박쥐들이 낮인데도 매달려 있었다. 종탑의 줄은 최근에 사용한 흔적 없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루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을 맞는 곳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해.”
크로노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안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러 여자의 목소리가 느린 선율을 반복하고 있었다. 발음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가사는 이상했다. 빛과 구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마지막 구절에서는 누군가의 굶주림과 피를 찬양하는 말로 바뀌었다. 음이 아름다워 의미를 놓치기 쉬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뒤 문을 열었다.
향 냄새가 밀려왔다.
내부에는 긴 붉은 융단과 여러 줄의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양쪽 벽에는 날개 달린 성인과 왕국 기사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앞쪽 제단에는 여신을 본뜬 흰 석상이 서 있었다. 촛불 수십 개가 흔들림 없이 타고 있었다.
수녀 네 명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문이 닫히자 노래가 멎었다.
가운데 있던 수녀가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지나치게 붉었다.
“길을 잃으셨나요?”
루카가 크로노보다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가르디아 성에서 왔어요.”
그 말에 수녀들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왕비님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가운데 수녀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
“왕비님께서는 무사히 성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압니다.”
“그분이 다시 사라졌어요.”
루카는 일부러 사실을 섞었다.
“성에서는 납치 당시의 흔적을 다시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곳도 곧 수색대가 올 거예요.”
수녀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촛불은 그대로였는데 향 냄새 아래에서 눅눅한 비린내가 올라왔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수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병사들이 찾을 것이 없습니다. 저희는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녀의 손은 소매 안에 감춰져 있었다.
크로노는 제단 주변을 살폈다. 붉은 융단 한쪽에 젖은 흙이 묻어 있었고, 제단 뒤의 돌바닥에는 긁힌 흔적이 있었다. 무거운 문이나 석상을 반복해서 움직인 흔적이었다.
그가 옆으로 걸음을 옮기자 수녀 한 명이 길을 막았다.
“제단 가까이에는 들어오지 마십시오.”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눈동자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루카는 반대쪽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래된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건반에는 먼지가 없었고, 바닥에는 최근에 누군가 의자를 끌어당긴 자국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러 온 건 아니군요.”
가운데 수녀가 말했다.
루카는 발사기를 든 손을 외투 뒤로 감췄다.
“왕비님이 여기 왔었나요?”
“아니요.” 수녀의 대답은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지나치게 빨랐다.
그때 크로노의 발치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융단 가장자리, 의자 그림자 아래에 은빛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시선을 수녀들에게 둔 채 몸을 숙였다.
가느다란 머리핀이었다.
끝부분에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고, 금속 표면에는 가르디아 왕실의 문장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르의 펜던트에서 보았던 문양과 같았다.
루카가 숨을 삼켰다.
“왕실 문장.”

수녀들의 미소가 동시에 사라졌다.
가운데 수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 아래에서 뼈가 꺾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다른 셋도 뒤따라 일어났다. 검은 수도복 아래의 몸이 사람답지 않게 길어졌다.
“그것을 내려놓으세요.”

목소리가 두 겹으로 울렸다.
크로노는 머리핀을 품에 넣고 검을 뽑았다.
수녀의 얼굴이 찢어졌다.
입술이 귀밑까지 벌어지고, 창백한 피부 아래에서 녹색 비늘이 솟았다. 수도복이 찢어지며 길고 굽은 몸이 드러났다. 팔은 뱀처럼 가늘었지만 손끝에는 검은 발톱이 돋아 있었다. 남은 셋도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루카가 발사기를 겨눴다.
“역시 신발 문제가 아니었어.”
첫 번째 괴물이 의자 위를 뛰어넘었다.
금속탄이 발사되며 짧은 폭음이 성당 안을 울렸다. 탄환은 괴물의 어깨를 뚫지 못했지만 몸을 옆으로 돌려세웠다. 크로노는 그 틈으로 들어가 옆구리를 베었다.
두 번째가 긴 팔을 휘둘렀다.
그는 몸을 낮췄다. 발톱이 머리카락 끝을 스쳤고, 뒤의 의자 등받이가 갈라졌다. 크로노는 검을 되돌려 손목을 노렸지만 괴물은 몸을 비틀어 피했다. 허리가 사람보다 훨씬 유연했다.
“오른쪽!”
루카의 외침과 함께 또 한 발이 날아왔다.
크로노는 총구의 방향을 보고 먼저 몸을 숙였다. 탄환이 그의 어깨 위를 지나 뒤에서 달려오던 괴물의 가슴을 때렸다. 완전히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숨을 끊어 놓을 만큼 충격을 주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놈의 다리를 베었다.
괴물이 쓰러지며 꼬리처럼 길어진 하체를 휘둘렀다. 크로노는 검으로 막았지만 몸이 밀려 의자에 부딪쳤다. 등 뒤에서 나무가 부서졌다.
루카는 다음 탄환을 넣으려 했지만 셋째가 제단 옆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장전할 시간을 포기하고 발사기 손잡이로 괴물의 턱을 올려쳤다. 충격에 손목이 꺾일 듯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괴물이 발톱을 세우자 가방에서 작은 금속통을 꺼내 얼굴에 던졌다.
통이 바닥에 부딪치며 밝은 불꽃을 뿜었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지금!”
크로노는 의자를 밀어내고 몸을 돌렸다. 시야를 잃은 놈의 가슴을 검끝으로 깊이 찔렀다.
남은 둘은 제단 양쪽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크로노를, 다른 하나는 루카를 노렸다. 서로 등을 맞대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크로노는 자신에게 오는 공격을 막으면서 루카 쪽을 보았다. 그녀는 장전을 끝냈지만 괴물이 너무 가까웠다. 발사하면 자신도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크로노는 검을 아래에서 위로 걷어 올렸다. 상대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몸을 틀어 루카 쪽으로 달렸다.
괴물의 발톱이 루카의 외투를 붙잡았다.
그녀가 몸을 빼려 했지만 천이 찢어지지 않고 목을 조였다. 발사기가 손에서 떨어졌다. 괴물이 입을 벌리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크로노가 도달하기 전에 위쪽에서 그림자가 떨어졌다.
짧고 넓은 검날이 번쩍였다.
괴물의 팔이 잘려 나갔다. 루카는 뒤로 넘어졌고, 검을 든 형체는 그녀와 괴물 사이에 착지했다. 망토 자락이 바닥을 스쳤다.
사람만 한 개구리였다.
녹색 피부와 넓은 입, 둥글게 튀어나온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낡은 갑옷과 푸른 망토를 걸친 자세에는 우스꽝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두 손으로 검을 쥔 모습은 성의 어떤 병사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그는 팔을 잃고 달려드는 괴물의 공격을 옆으로 흘렸다. 검자루로 턱을 치고, 돌아서는 힘을 이용해 목을 베었다.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었다.
마지막 괴물이 출입문 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크로노가 길을 막았다.
놈은 방향을 바꿔 제단 위로 뛰어올랐지만, 개구리 기사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의자 등받이를 밟고 높이 뛰어올라 괴물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둘은 제단 앞에 함께 떨어졌다. 괴물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성당 안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루카는 바닥에 앉은 채 찢어진 외투 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크로노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일어나면서도 개구리 기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사는 검의 피를 털어 낸 뒤 칼집에 넣었다.
“방심은 적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과 같소.”
낮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루카의 얼굴이 굳었다.
“말했어. 정말 말을 했어.”
기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말하오.”
“개구리가.”
크로노가 루카의 팔을 가볍게 쳤다.
“알아. 지금 굉장히 무례하다는 건 아는데,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해.”
기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이미 비슷한 반응을 셀 수 없이 겪은 사람처럼 루카를 잠시 바라보다가 크로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왕실의 머리핀을 찾은 이들이 그대들인가?”
크로노는 품에서 머리핀을 꺼냈다.
기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손을 뻗지 않고 문양만 확인했다.
“리네 왕비님의 것이오.”
목소리에 억눌린 감정이 스쳤다.
“왕비님은 이곳에 계셔.”
루카가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것들이 이 물건을 숨길 이유가 없어.”
기사는 제단과 오르간, 쓰러진 괴물들을 차례로 살폈다.
“나 또한 같은 흔적을 쫓아왔소. 왕비님의 마차를 습격한 자들이 숲 서쪽으로 빠졌으나, 기사단은 다른 방향만 수색하였지.”
“왜 혼자 왔어?”
“성에서 내 말을 믿는 이는 많지 않소.”
그는 자신의 손과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루카가 조금 전의 반응을 떠올린 듯 입을 다물었다.
기사는 크로노 앞에 섰다.
“나는 카에루라 하오.”
그 이름이 본래 이름인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받아들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
“왕비님을 구하러 왔다면 목적은 같소. 하지만 안쪽에는 이보다 많은 적이 기다릴 것이오.”
크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겠다는 뜻인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루는 그의 검과 자세를 살폈다. 성당 입구에서 싸우는 동안 이미 충분히 보았을 텐데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듯했다.
“검을 다루는 손에는 힘이 있으나, 죽인 뒤의 무게를 아직 버리지 못했군.”
크로노의 손이 검자루에서 조금 떨어졌다.
“버리지 마시오.”
카에루가 말했다.
“다만 그 무게 때문에 다음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일도 없어야 하오.”
루카는 떨어진 발사기를 주워 상태를 확인했다. 총열이 휘지는 않았지만 장전 장치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천으로 닦으며 물었다.
“입구밖에 없는데 어디로 들어가지?”
카에루가 오르간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숨어 있다면 길 또한 기도하는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터.”
그는 제단 뒤와 벽의 이음새를 살폈다. 크로노는 바닥의 긁힌 자국을 따라갔다. 자국은 오르간 앞에서 끊겨 있었다.
루카가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이 시대의 악기는 잘 모르는데.”
아무 건반이나 누르자 낮고 무거운 음이 성당을 채웠다. 벽과 천장이 함께 울렸다. 죽은 괴물들의 몸에서조차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카에루가 악보대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찬송가가 아니라 네 개의 음표만 적힌 낡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루카는 순서대로 건반을 눌렀다.
첫 음과 두 번째 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세 번째 음에서 제단 뒤쪽의 돌벽 안에서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 음이 길게 울리자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차가운 공기가 열린 틈에서 흘러나왔다.
향 냄새 아래 숨겨져 있던 썩은 고기와 습기, 오래된 피 냄새가 한꺼번에 퍼졌다.
좁은 계단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벽에는 촛불 대신 푸른 불꽃이 타는 작은 접시들이 걸려 있었다. 불빛은 열을 내지 않았고, 계단 끝은 보이지 않았다.
루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도실 뒤에 이런 통로를 만든 사람은 분명 좋은 의도가 아니었겠지.”
카에루가 먼저 계단 앞에 섰다.
“내가 선두에 서겠소.”
크로노는 가방을 내려 루카에게 돌려주고 검을 뽑았다. 그러나 카에루는 그의 어깨를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가운데에 서시오. 앞만 보는 자와 뒤만 보는 자 사이에서 둘을 이어야 하오.”
그 말이 명령인지 시험인지 알 수 없었다.
루카는 가방을 멘 뒤 발사기의 장전을 확인했다.
“나는 뒤를 볼게. 대신 갑자기 혀를 뻗거나 하지는 말아 줘.”
카에루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대가 먼저 나를 쏘지 않는다면 고려하리다.”
루카는 대꾸하지 못했다.
크로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세 사람은 계단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돌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성당의 촛불과 흰 석상, 인간의 기도처럼 꾸며 놓은 모든 것이 가느다란 틈 너머로 사라졌다.
마지막 빛이 끊기자 푸른 불꽃만 남았다.
그 아래에서 카에루가 검을 뽑았다.

“이제부터는 발소리를 믿지 마시오.”

지하 어딘가에서 어린아이의 웃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숨으로 낸 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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