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4화] 사라지는 이름

마르는 자신이 왕비가 된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푸른빛과 차가운 바람,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성에서 멀지 않은 숲에 누워 있었다. 옷은 젖어 있었고, 펜던트는 사라진 뒤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나무 사이를 헤매다가 말을 탄 병사들과 마주쳤다.

병사들은 마르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에서 내렸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모두가 실종된 리네 왕비가 살아 돌아왔다고 믿었다. 마르는 처음에는 오해를 풀려고 했고, 그다음에는 이곳이 어디인지 물으려 했으며, 마지막에는 성으로 가야 크로노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마르를 왕비로 맞이한 서기 600년 가르디아 성의 방 - ちょろ
마르를 왕비로 맞이한 서기 600년 가르디아 성의 방 - ちょろ

“겁이 났어.”

마르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말했다.

왕비의 방에서 자신은 리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마르
왕비의 방에서 자신은 리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마르 - PANDA Chronicle Plus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울면서 다행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더라. 무엇보다…… 네가 올지 몰랐어.”

크로노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타고 있었지만 방은 따뜻하지 않았다. 두꺼운 돌벽과 높은 천장이 열기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촛불을 한쪽으로 기울였다.

마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왔네.”

말끝에 웃음이 조금 돌아왔다.

크로노가 펜던트를 내밀자 그녀는 두 손으로 받았다. 보석을 손바닥에 놓고 한참 바라본 뒤 목에 걸었다. 사슬이 피부에 닿는 순간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은 것뿐인데, 제 이름을 다시 돌려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왕비의 방에서 리네로 오인된 마르와 재회한 크로노 - ArrPeeGeeZ
왕비의 방에서 리네로 오인된 마르와 재회한 크로노 - ArrPeeGeeZ

“이게 우리를 여기로 보낸 걸까?”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루카라면 알아낼 수 있을 텐데.”

마르는 창밖을 보았다.

성 아래의 훈련장에서는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대열을 맞추고 있었다. 멀리 숲 너머로 검은 연기가 가늘게 올라왔다. 천년제 광장에서는 장식용 대포 한 번에도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이 시대의 연기는 누군가의 집이나 식량 창고가 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여긴 전쟁 중이래.”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왕이라는 자가 이끄는 군대가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대. 성 사람들은 왕비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전쟁이 끝난 것처럼 기뻐했어.”

마르는 손가락으로 펜던트의 사슬을 만졌다.

“진짜 왕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크로노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마르도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나도 그게 마음에 걸려. 사람들이 수색을 멈췄다는 말을 들었어. 내가 나타났으니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네가 왔으니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 성 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처음 떨어진 곳을 찾자. 그곳에 다시 문이 열릴지도 몰라.”

말은 단호했지만 그녀는 한 발을 내딛은 뒤 잠시 멈췄다. 복도 밖에서 시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왕비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걱정과, 전하가 곧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마르는 문으로 다가갔다가 손잡이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사라져 버리면…… 이 사람들은 다시 왕비를 찾을까?”

크로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마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도 몰랐다. 경비병들은 그녀를 왕비로 믿고 있었고, 왕비가 바람을 쐬겠다고 하면 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 진짜 리네를 찾는 수색이 재개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왕실은 혼란을 감추려 할 수도 있고, 납치한 쪽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었다.

크로노는 창가에 놓인 작은 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지도와 여러 장의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마르는 글씨의 형태가 낯설어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성 주변에 표시된 붉은 선과 수색대의 이동 경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지도 쪽으로 다가가자 마르도 옆에 섰다.

숲과 강, 제난 다리, 성 서쪽의 작은 건물에 검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보고서 한 장에는 왕비의 마차가 습격받은 장소와 발견된 흔적이 적혀 있었다. 바퀴 자국은 숲 안에서 끊겼고, 호위병 몇 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

마르가 성 서쪽의 표식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이곳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를 낮췄어. 성당이라고 했던 것 같아.”

크로노는 지도를 접지 않고 위치를 기억했다.

복도에서 갑옷 소리가 가까워졌다.

마르는 급히 지도에서 물러났다. 문이 열리고 나이 든 왕이 들어왔다. 넓은 어깨에는 붉은 망토가 걸려 있었지만 얼굴은 지쳐 있었다. 눈가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다.

왕은 크로노를 보고 잠시 멈췄다.

“그대가 크로노인가.”

크로노는 고개를 숙였다.

왕의 시선은 그를 오래 살피지 않았다. 곧바로 마르에게 향했다. 그 순간 전쟁을 지휘하는 사람의 경계심은 사라지고,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은 남자의 안도만 남았다.

“리네.”

마르의 어깨가 굳었다.

왕은 그것을 납치의 충격으로 받아들인 듯 천천히 다가왔다.

“아직 쉬어야 하오. 의관은 몸에 큰 상처가 없다고 했지만, 기억이 흐린 것은 당연한 일이오.”

마르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대를 잃은 동안 내가 얼마나—”

목소리가 갈라지자 왕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손에는 오래된 흉터와 새로 생긴 상처가 함께 있었다. 직접 전장에 나갔다 돌아온 사람의 손이었다.

마르는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진실은 눈앞의 사람에게 아내를 다시 빼앗는 일이기도 했다.

“미안해요.”

마르가 말했다.

왕은 그 말을 다른 뜻으로 들었다.

“그대가 사과할 일이 아니오.”

그는 마르의 손등을 감싼 뒤 크로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왕비가 그대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는 놀랐네. 어디에서 인연을 맺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군.”

크로노는 마르를 보았다.

그녀는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말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대가 왕비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성에 머물러도 좋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종장에게 말하게.”

왕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남쪽 전선에서 온 전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나서기 전 그는 마르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혼자 두지 않겠소.”

문이 닫힌 뒤 방 안에는 긴 침묵이 남았다.

마르는 왕이 잡았던 손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저 사람은 내가 아니란 걸 모르는데.”

크로노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내가 사라지면 또 잃게 되는 거잖아.”

그는 마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르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광장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함께 구경하자고 말할 만큼 거리낌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는 한참 뒤에야 결론을 입 밖으로 꺼냈다. “돌아갈 길을 찾기 전에 진짜 왕비를 찾아야 해.”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는 지도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성당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은 뒤, 수색 보고서를 한 장씩 살폈다. 낯선 글자와 군사 용어 사이에서 알아볼 수 있는 단어를 찾으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 손이 멈췄다.

펜던트의 보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마르가 목가로 손을 가져갔다.

“크로노.”

보석의 빛은 시연장에서처럼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꺼져 가는 불씨처럼 약해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와 동시에 마르의 손끝이 흐려졌다.

크로노는 처음에 촛불의 그림자가 흔들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 너머로 지도 위의 글자가 비쳤다.

마르도 그것을 보았다.

“이게…… 뭐야?”

그녀가 손을 뒤집었다. 피부와 뼈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몸의 윤곽이 투명해지며 주변 풍경과 겹쳐 보였다. 흐려짐은 손끝에서 손목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크로노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감촉은 있었다. 하지만 물속에 손을 넣은 것처럼 불확실했다. 힘을 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싫어.”

마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공포가 드러났다.

“다시 저쪽으로 가는 거야?”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마르의 어깨와 머리카락까지 빛이 번졌다. 얼굴의 한쪽이 창밖의 회색 하늘과 겹쳤다. 그녀는 크로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놓지 마.”

그는 손목까지 붙잡았다.

마르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몸을 이곳에 붙들어 두려는 듯 발을 바닥에 힘껏 디뎠다. 그러나 발밑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크로노, 진짜 왕비를—”

부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문장이 끊긴 순간, 크로노의 손 안에 남아 있던 감촉도 함께 사라졌다.

마르의 몸은 빛으로 부서지지도, 푸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저 방 안에서 존재하던 자리가 비워졌다. 손을 잡고 있던 온기조차 한순간에 끊겼다.

크로노는 허공을 움켜쥔 채 서 있었다.

마르가 사라진 뒤 아무도 없는 왕비의 방에 혼자 선 크로노
마르가 사라진 뒤 왕비의 방에 혼자 남은 크로노 - Thonky

바닥에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펜던트도 마르와 함께 사라졌다.

그는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 뒤, 커튼 너머, 열려 있는 욕실 문까지 확인했다. 그녀가 숨어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아래에는 성벽과 훈련장만 보였다.

“마르.”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크로노는 방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손가락으로 짚던 지도 위에는 성당의 검은 표시가 남아 있었다. 왕이 잡았던 손의 온기, 자신을 놓지 말라던 목소리, 끝내지 못한 부탁도 방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의 시녀가 놀라 몸을 돌렸다.

“왕비님께서는 쉬고 계십니까?”

크로노는 대답하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크로노 님?”

그녀의 부름이 뒤에서 따라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돌벽에 부딪쳐 커졌다. 아래층의 경비병들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시종들은 왕비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막으려 했다. 크로노는 그들 사이를 지나 중앙 홀까지 내려갔다.

성문으로 향하려는 순간 누군가 계단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크로노!”

익숙한 목소리였다.

루카가 난간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축제 때 입었던 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쳤고, 등에는 공구와 장비가 든 가방을 메고 있었다. 고글 한쪽 렌즈에는 금이 가 있었다. 먼지와 나뭇잎이 머리카락에 붙어 있었지만 안경 뒤의 눈은 살아 있었다.

크로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르는?”

그의 표정을 본 루카의 얼굴이 굳었다.

“찾았던 거 아니야? 성에 왕비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어. 붉은 조끼를 입은 금발 소녀라기에—”

크로노는 고개를 저으며 겨우 말했다. “사라졌어.”

그 한마디를 들은 루카는 더 묻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중앙 홀을 오가는 병사들은 두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왕비의 방에서 내려온 시녀가 위층 경비병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루카가 낮게 말했다.

그들은 성 안뜰의 비어 있는 창고 뒤로 이동했다. 장작더미와 부서진 수레가 바람을 막아 주었다. 루카는 가방을 내려 작은 금속 장치를 꺼냈다. 시연장에서 보였던 기계에 여러 개의 전선과 둥근 수정이 더 붙어 있었다.

“이걸 만들고 바로 따라왔어. 문이 닫히기 직전의 파동을 붙잡는 장치야.”

그녀가 손잡이를 돌리자 바늘이 떨렸다.

“도착 지점은 같은 것 같아. 적어도 시간의 차이는.”

“시간?”

크로노가 물었다.

루카는 그가 이미 들은 연도를 확인하듯 주변의 성벽을 보았다.

“여긴 서기 600년이야. 우리가 있던 시대보다 정확히 사백 년 전.”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내린 결론의 크기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순간 이동 장치가 만든 건 이동 통로가 아니었어. 펜던트가 어떤 힘과 공명하면서 시간의 문을 연 거야. 왜 하필 이곳인지, 누가 그런 통로를 만들었는지는 아직 몰라.”

크로노는 마르가 사라진 방향, 성의 높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마르는 어디로 갔지?”

루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시대로 이동한 흔적은 없어.”

그녀는 장치의 수정판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네가 말한 것처럼 몸이 흐려지다가 사라졌다면…… 이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영향을 받은 걸 수 있어.”

크로노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루카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없어졌다는 뜻으로 단정하는 건 아니야. 원인을 바로잡으면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

그녀는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트루스 여관에서 얻은 것인지 왕비 수색 공고문이었다.

“오는 길에 들었어. 이 시대의 리네 왕비가 납치됐다가 오늘 갑자기 돌아왔다고. 그런데 실제로 돌아온 사람은 마르였던 거지.”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는 왕비와 아주 닮았을 거야. 왕비를 찾던 사람들이 마르를 보고 수색을 중단했겠지.”

루카는 종이 위의 왕실 문장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마르의 진짜 이름은 나디아야.”

크로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르디아 왕국의 공주. 우리 시대 국왕의 외동딸.”

광장에서 마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전 잠깐 망설였던 순간이 떠올랐다. 성 안 사람들에 관해 지나치게 자연스럽게 말하던 태도, 좋은 천과 장화를 걸치고도 평범한 여행자처럼 행동하려 했던 모습도 이어졌다.

루카는 그의 반응을 살폈다.

“말하지 않았구나.”

크로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 몰래 성을 빠져나온 모양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루카는 숨을 고른 뒤 가장 중요한 말을 꺼냈다.

“나디아 공주는 리네 왕비의 후손이야. 이 시대의 왕비가 죽으면 그 뒤의 혈통도 이어지지 않아. 나디아가 태어날 수 없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야.”

크로노는 장작더미에 손을 짚었다.

“마르가 여기 나타나면서 수색이 멈췄고, 진짜 왕비는 아직 붙잡혀 있어. 왕비가 죽을 가능성이 커질수록 마르의 존재는 이 역사에서 밀려나는 거야.”

루카의 설명은 차분했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시간에 관한 이론을 증명했다는 흥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발명품이 한 사람을 사라지게 했다는 책임만 남아 있었다.

“우리가 왕비를 구하면 돼.”

그녀가 말했다.

“납치된 사건을 원래대로 되돌리면 마르도 돌아올 거야.”

“확실해?”

크로노가 물었다.

루카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녀는 안경을 벗어 렌즈의 먼지를 닦았다. 눈 밑에는 밤새지 않았는데도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

크로노는 지도에서 보았던 검은 표식을 떠올렸다.

“성당.” 크로노가 서쪽 숲을 가리켰다.

“성당이 서쪽에 있다고?” 루카가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왕비의 수색 보고서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추던 장소를 짧게 설명했다.

루카는 곧장 장비를 가방에 넣었다.

“가 보자.”

두 사람이 안뜰을 빠져나가려 할 때 성 안에서 종이 울렸다.

왕비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병사들이 탑으로 달려갔고, 명령을 외치는 목소리가 성벽 사이로 번졌다. 한 병사는 성문을 닫으라고 외쳤다. 루카가 크로노의 팔을 잡아 장작더미 뒤로 끌었다.

“우리가 잡히면 설명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려.”

그녀는 주변을 살피다가 부서진 수레 옆의 작은 통로를 발견했다. 주방과 외부 우물 사이를 잇는 배수문이었다. 사람이 겨우 몸을 숙여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축제 날에 성 배수로를 기어가게 될 줄은 몰랐네.”

루카가 철망의 나사를 풀며 중얼거렸다.

크로노가 수레를 옮겨 입구를 가렸다. 루카는 마지막 나사를 빼고 철망을 들어 냈다.

안에서는 차갑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들이 통로를 지나 성 밖의 풀숲으로 빠져나왔을 때, 성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성벽 위의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루카는 무릎에 묻은 진흙을 털며 성을 올려다보았다.

“마르가 돌아오면 이 이야기를 먼저 해 줘야겠어.”

크로노가 그녀를 보았다.

“공주가 되기 싫어서 성을 빠져나왔다가, 사백 년 전 성의 배수로 때문에 친구들이 진흙투성이가 됐다고.”

농담은 짧았고 웃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을 조금 풀어 주었다.

크로노는 서쪽 숲을 바라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낮은 첨탑 하나가 보였다. 성의 탑보다 작고, 전쟁의 깃발도 걸려 있지 않았다. 저녁빛이 기울며 첨탑 끝을 검게 만들었다.

루카는 허리춤의 작은 무기를 확인하고 가방끈을 조였다.

“왕비를 구하면 마르가 돌아온다.”

그녀는 자신에게 확인시키듯 말했다.

크로노는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마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도 같았다.

두 사람은 성벽의 그림자를 벗어나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왕비를 찾는 종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잘못된 사람을 위한 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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