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8화] 다시 하나가 된 이름
보슈의 작업장 아래에는 또 하나의 작업장이 있었다.
위층보다 넓고 오래되었다. 벽은 메디나에서 쓰는 벽돌이 아니라 이음새 없는 검은 돌로 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굴뚝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관들이 뻗어 있었다. 화덕은 꺼져 있었는데도 방 안에는 금속을 오래 달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루카는 계단을 내려가다 멈췄다.
벽에 걸린 공구 가운데 절반은 쓰임을 알 수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손잡이를 어느 방향으로 잡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금속을 자르는 톱 옆에는 수정으로 된 집게가 있었고, 모루처럼 보이는 판 아래에는 작은 바늘 수십 개가 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작업장이 있으면서 위에서는 평범한 망치만 두드렸어요?”
보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평범한 망치로 되는 일에 이걸 쓸 이유가 없지.”
그는 방 중앙의 긴 작업대 위에 그랜드리온의 두 조각을 꺼내 놓았다.
칼자루와 부러진 칼날 사이에는 여전히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빈자리가 있었다. 드림스톤을 곁에 놓자 두 단면에서 희미한 빛이 흘렀다. 붉은 돌 안쪽의 결도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마르가 물었다.
“돌이 검을 알아보는 거예요?”
“돌은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네.”
보슈는 얇은 금속침으로 드림스톤 표면을 긁었다. 붉은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침 끝을 따라 실처럼 늘어났다.
“다만 힘이 지나간 자리를 오래 붙들지. 어떤 금속보다 오래, 어떤 사람의 기억보다도 오래.”
그는 말을 마치고 크로노를 보았다.
“이걸 어디서 얻었나?”
“아이오카.”
크로노의 짧은 대답에 마르가 덧붙였다.
“기원전 육천오백만 년. 에이라라는 족장이 줬어요. 자기 마을의 중요한 돌이었어요.”
보슈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만한 것을 내주던가.”
“그냥 받은 건 아니에요.”
루카가 붕대한 손목을 들어 보였다. “돌을 얻은 뒤가 더 힘들기는 했지만.”
보슈는 상처와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보였으나 더 묻지 않았다.
“그럼 함부로 줄여서는 안 되겠군.”

그는 드림스톤을 화덕 앞의 둥근 받침에 내려놓았다. 먼저 수정 집게로 가장자리의 작은 조각을 떼어 불에 넣었다. 손톱보다 작은 시험 조각이 붉게 풀리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낮게 울렸다. 보슈는 색과 울림을 확인한 뒤 큰 돌 전체를 받침째 화덕 안으로 밀었다.
크로노는 작업대 가까이 다가갔다.
두 검 조각 안에서 종소리 같은 기척이 났다.
데나도로 산에서 들었던 그란과 리온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힘이 서로를 찾으며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보슈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오래 걸린다. 기다리게.”
루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울게요.”
“손을 다쳤는데?”
“오른손만.”
“공구는 고집으로 잡는 게 아니야.”
“그래서 왼손으로 잡으려고요.”
보슈와 루카가 잠시 서로를 보았다.
노인이 먼저 한숨을 쉬었다.
“저쪽의 세 번째 조절륜을 돌리게. 내가 말하기 전에는 눈금 하나도 넘기지 말고.”
루카의 얼굴에서 피로가 조금 사라졌다.
마르가 크로노에게 속삭였다.
“저 둘,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슈는 두 사람을 위층으로 보냈다. 화덕에 불이 붙으면 아래 공기가 뜨거워지고,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바닥문이 닫히자 작업장에는 다시 평범한 저녁 소리가 돌아왔다.
창밖에서 메디나의 종이 울렸고, 마왕의 석상 쪽으로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골목을 지나갔다. 크로노는 작업대가 있던 빈자리에 앉았다. 허리에는 보슈가 준 짧은 검이 있었고, 그랜드리온이 담겨 있던 잠금 상자는 열려 있었다.
마르는 창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서기 육백 년에서는 저 이름 때문에 전쟁 중인데.”
석상 앞의 작은 등불들이 하나씩 켜졌다.
“여기서는 저렇게 오래 남아 있네.”
크로노는 카에루의 거처에 놓여 있던 영웅의 표식을 떠올렸다. 마왕의 이름도, 사이러스의 이름도, 보슈의 이름도 물건과 사람을 따라 서로 다른 시대에 남아 있었다. 그중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기억하는 사람의 바람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바닥 아래에서 첫 번째 망치 소리가 났다.
맑고 짧았다.
잠시 뒤 두 번째 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낮았다.
두 음이 번갈아 울리기 시작했다.
마르는 빈 의자를 끌어와 크로노 맞은편에 앉았다.
“카에루가 받을까?”
크로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마르는 카에루가 검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자신은 아직 들 수 없다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부러진 칼은 고칠 수 있어도 그가 피하고 있는 기억까지 보슈가 두드려 붙일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져가는 데까지겠지.”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은 카에루가 정하고.”
밤이 깊어질수록 아래의 망치 소리는 느려졌다.
중간에 한 번, 루카가 바닥문을 열고 올라왔다. 얼굴에는 검은 재가 묻어 있었고 머리카락 끝이 땀에 붙어 있었다.
“물.”
마르가 잔을 내밀었다.
루카는 한 번에 마시고 다시 내려가려 했다.
“어떻게 되고 있어?”
“보슈 말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대.”
“몇 시간째인데?”
“그걸 아래에서 물으면 공구 닦는 일만 늘어나.”
루카는 투덜거렸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저 노인, 금속을 붙이는 게 아니야. 두 조각이 같은 힘의 흐름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어. 온도를 한쪽만 올렸다가 반대쪽으로 보내고, 드림스톤으로 빈 부분을…….”
그녀는 설명하다가 멈췄다.
“직접 봐도 모르겠어.”
루카가 모른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슈한테 물어봤어?” 마르가 말했다.
“물어볼 때마다 망치 하나씩 더 닦으래.”
크로노의 입가가 올라갔다.
루카가 그를 가리켰다.
“웃을 힘 있으면 내려와서 풀무 밟아.”
바닥문 아래에서 보슈가 외쳤다.
“조절륜!”
“가요!”
루카가 다시 사라졌다.
크로노와 마르는 의자에 기대 잠깐씩 잠들었다. 눈을 뜰 때마다 창밖의 어둠이 옅어져 있었다. 망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새벽 직전, 바닥문이 열렸다.
보슈가 먼저 올라왔다.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수염 끝은 그을렸고 양손에는 붉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뒤따라온 루카는 왼팔에 길고 좁은 천 꾸러미를 안고 있었다.
크로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카는 꾸러미를 작업대 위에 놓았다.
천을 풀자 하나가 된 검이 드러났다.

새것처럼 매끈하지 않았다. 칼날에는 데나도로 산과 오래된 전투에서 생긴 흠집이 남아 있었다. 칼자루의 손때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러졌던 자리에는 틈이 없었다. 금속 속으로 붉은 선 하나가 아주 가늘게 이어져 칼날과 자루를 묶고 있었다.
마르가 숨을 삼켰다.
“그랜드리온…….”
이름이 불린 순간 검에서 두 음이 울렸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이번에는 분명 서로 다른 두 기척이었다.
크로노가 손을 뻗자 보슈가 막았다.
“자네 것이 아니야.”
크로노는 손을 거두었다.
“알아.”
보슈는 그 대답을 듣고서야 검을 천으로 다시 감쌌다.
루카가 물었다.
“드림스톤은 어떻게 됐어요?”
보슈가 아래를 가리켰다.
받침 위에는 검붉은 껍질과 유리처럼 굳은 가루만 남아 있었다. 아이오카에서 가져온 돌의 형태는 무너졌고, 안쪽을 움직이던 붉은 결도 사라졌다.
“검의 빈자리를 채운 건 돌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붙들려 있던 힘이네. 남은 것은 다시 쓸 수 없어.”
마르는 한동안 빛을 잃은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에이라에게 보여 줄 돌은 없어졌네.”
크로노는 에이라가 돌을 내주며 했던 부탁을 떠올렸다. 검을 고치면 보여 달라는 말은 이제 더 무거워졌다. 그는 하나가 된 그랜드리온의 꾸러미를 등에 멨다.
보슈는 문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작업대에 손을 짚은 채 말했다.
“검을 건넬 때 답을 재촉하지 말게.”
마르가 돌아보았다.
“왜요?”
“부러진 동안에도 검은 기다렸으니까.”
시간의 끝에 돌아왔을 때 가스파는 천 꾸러미를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로보만 수리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했으나 루카가 카에루에게 먼저 보여야 한다며 막았다.
세 사람은 긴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서기 600년으로 향하는 기둥 앞에서 크로노가 그랜드리온의 끈을 다시 조였다. 빛 속으로 들어가자 등 뒤의 검에서 맑은 종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두 조각이 서로를 찾는 소리가 아니었다.
같은 길을 함께 건너는 소리였다.
트루스 협곡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쟁 중인 시대의 바람은 선사시대의 열기와 달랐다. 젖은 풀과 흙, 멀리 병사들이 피운 연기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세 사람은 숲길을 돌아 카에루의 거처로 향했다.
문 앞에는 그들이 떠날 때 없었던 발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가르디아 병사들이 찾아왔다 돌아간 듯 장화 자국이 길가까지 이어졌다.
크로노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움직임이 멎었다.
잠시 뒤 카에루가 문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세 사람의 얼굴을 지나 크로노의 등에 멘 꾸러미에서 멈췄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크로노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낮은 탁자 위에 검을 내려놓았다. 천을 한 겹씩 풀었다.
붉은 선이 이어진 칼날이 등불 아래 드러났다.
카에루는 움직이지 않았다.
떠날 때 탁자 끝에 놓여 있던 영웅의 표식은 등불 바로 앞에 나와 있었다.
마르가 그것을 알아보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카에루의 손이 검 위에서 멈췄다. 손가락이 아주 조금 떨렸다. 칼자루에 닿기도 전에 그랜드리온에서 두 개의 맑은 음이 울렸다.
방 안의 등불이 흔들렸다.
카에루는 눈을 감았다.
오래전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크로노는 검을 그의 쪽으로 밀어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카에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정말 고쳐 왔군.”

“약속했으니까.”
크로노의 대답은 짧았다.
카에루는 마침내 칼자루를 잡았다.
검을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힘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의 팔은 무거운 문을 여는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칼날이 칼집에서 손바닥만큼 나왔다.
붉은 선이 빛났다.
카에루의 눈에 그 빛과 전혀 다른 밤이 스쳤다. 비에 젖은 절벽, 검은 옷자락, 자신보다 먼저 앞을 막아선 사람의 등.
그는 곧 칼날을 다시 넣었다.
“오늘 밤만 시간을 주게.”
마르는 보슈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올게.”
세 사람이 문 쪽으로 향하자 카에루가 불렀다.
“크로노.”
크로노가 돌아보았다.
카에루는 그랜드리온과 영웅의 표식을 함께 쥐고 있었다.
“검을 고치는 길에서 무엇을 보았나?”
크로노는 붉은 돌을 내준 족장과, 자기 잘못을 말하러 돌아간 키노와, 쓰러진 니즈벨 곁을 떠나지 않던 아자라를 생각했다.
“돌아간 사람들.”
카에루는 그 짧은 말을 오래 들었다.
문이 닫힌 뒤 집 안에는 그 혼자 남았다.
탁자 위의 등불이 낮아지고 빗소리가 지붕을 채웠다. 카에루는 검을 무릎 위에 올렸다.
칼자루의 오래된 손때 위로 자신의 손이 겹쳤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피했던 이름을, 이번에는 입 밖으로 꺼냈다.
“사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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