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7화] 돌아갈 길을 가진 사람들
마르는 밤새 세 번이나 드림스톤의 자리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족장의 움막 안에 두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대신 출구가 하나뿐이었다. 다음에는 마을 중앙의 불 가까이 옮겼다. 사람들이 돌아가며 지켜볼 수 있었지만 붉은 돌은 불빛을 받을 때마다 너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고른 곳은 부상자들이 쉬는 움막이었다.
그곳에는 늘 두세 사람이 깨어 있었고, 물과 약초를 나르는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돌은 가죽 여러 겹에 싸서 침상 아래에 넣었다. 누군가 훔치려면 다친 사냥꾼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야 했다.
마르는 출입구에 앉아 언덕을 바라보았다.
크로노와 루카, 에이라가 숲으로 들어간 뒤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레프타이트가 마을을 습격하지는 않았지만, 밤중에 멀리서 신호가 여러 번 들렸다. 그때마다 아이오카 사람들은 불을 높이고 창을 챙겼다.
족장이 없는 동안에도 누구 하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냥꾼은 바깥 경계를 돌았고, 노인들은 아이들을 안쪽 집으로 모았다. 물을 맡은 사람과 불을 맡은 사람이 따로 움직였다. 에이라가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해야 할 일을 알고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마르는 뒤늦게 알았다.
해가 나무 끝을 넘을 무렵 언덕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키노였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팔에는 말라붙은 피가 남아 있었다. 혼자 돌아온 것을 본 경계병 둘이 곧장 달려갔다. 마르도 움막에서 일어섰다.
“에이라는?”
키노는 숨을 고르며 숲을 가리켰다.
“크로노, 루카와 같이 갔다. 레프타이트 둥지.”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 왜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키노는 에이라가 돌아가라고 했다고 답했다. 그다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마르를 찾았다.
“키노, 말할 거 있다.”
마르는 그의 얼굴에서 이미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나한테만 하지 마.”
키노가 눈을 들었다.
“네가 돌아와서 말해야 할 사람은 여기 전부야.”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공터에 모였다.
키노는 처음에는 바닥을 보았다. 에이라가 크로노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화가 나서 밤중에 루카의 가방을 연 것, 반짝이는 장치를 가져가 숨기려 한 것, 레프타이트에게 빼앗긴 것까지 끊어 말할 때마다 침묵이 무거워졌다.
아이들까지 웃지 않았다.
돌칼을 만들던 노인이 물었다.
“그 물건 없으면 손님들 집에 못 가나?”
키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라도 위험한 곳 갔나?”
이번에는 대답이 더 작았다.
“응.”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 편이 오히려 키노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네가 에이라 다음에 사람들 이끌고 싶다고 했지.”
키노가 입술을 깨물었다.
“응.”
“그러면 사람들이 네 잘못 때문에 어디로 갔는지 봐라. 족장은 앞에서 걷는 사람만 아니다. 자기 뒤에 생긴 길도 보는 사람이다.”
키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르는 왕궁의 회의실을 떠올렸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책임의 끝처럼 사용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사과 뒤에는 대신 수습하는 사람들이 남았다.
“루카가 돌아오면 직접 말해.”
그녀는 키노의 발목을 살폈다. “그리고 그전까지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에이라가 없으니까 경계를 두 배로 서야 하잖아.”
키노가 마르를 보았다.
용서해 준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인 뒤 절뚝이며 경계병 쪽으로 갔다.
정오가 가까워질 때까지 숲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르는 부상자의 붕대를 갈고, 아이들이 물통을 엎지르지 않게 도왔다. 가죽 속의 드림스톤도 틈날 때마다 확인했다. 돌은 처음 받았을 때와 같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한낮의 열기가 가장 짙어졌을 무렵 언덕의 경계병이 뿔피리를 불었다.
짧게 두 번.
적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르는 움막에서 뛰어나왔다.
가장 먼저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에이라가 앞장서 언덕을 오르고 있었고, 뒤에는 크로노가 루카의 팔을 받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걸어서 돌아왔지만 온전하지는 않았다.
크로노의 옆구리에는 시퍼런 멍이 번졌고, 소매 끝은 불에 그슬렸다. 에이라의 양팔에는 가는 화상 자국이 뻗어 있었다. 루카는 오른손을 가슴 앞에 붙인 채 왼손으로 가방끈을 쥐고 있었다.
마르는 반가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었다.
“열쇠는?”
루카가 가방을 열었다.
세 겹으로 묶은 끈 안에서 시간의 문 열쇠 장치가 나왔다. 수정판에 빛이 켜지자 마르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다친 건?”
“감전됐어.” 루카가 말했다. “아마 며칠은 손목이 나한테 잔소리할 거야.”
“누가?”
에이라가 두 팔을 넓게 벌려 크기를 표시했다.
“니즈벨. 아주 크고, 아주 단단하다. 번개 먹고 다시 뱉는다.”
“그 설명으로 알아듣기를 기대해?”
“루카 설명 길다. 에이라 설명 맞다.”
루카는 반박하려다 지친 듯 입을 다물었다.
크로노가 마르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부상자 움막으로 향했다.
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도 무사해.”
그제야 크로노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아이오카 사람들이 에이라를 둘러쌌다. 누군가는 팔의 상처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레프타이트가 뒤따라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에이라는 질문마다 짧게 답하면서도 먼저 마을의 밤 상황과 부상자 상태를 확인했다.
키노는 사람들 바깥에 서 있었다.
에이라가 그를 발견했다.
“말했어?”
“응. 전부.”
“루카한테도.”
키노는 루카 앞으로 갔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가방을 연 것과 열쇠를 가져간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다시 말했다. 루카는 다 듣고 나서 붕대로 감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질투한 것까지 내가 판단할 생각은 없어.”
그녀는 가방의 풀렸다 묶인 흔적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하지만 이 장치는 우리 셋만 위험하게 만든 게 아니야.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면 마르는 여기에 남고, 로보는 시간의 끝에서 기다리고, 보슈는 검을 고치지 못해. 네가 모르는 사람들한테까지 일이 이어져.”
키노의 눈이 가방에서 마르로 옮겨갔다.
“미안.”
“다음부터 남의 공구에 손대지 마.”
루카는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궁금하면 물어봐. 보여 줄 수 있는 건 보여 줄 테니까.”
키노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루카는 이미 치료할 자리를 찾고 있었다.
“용서했다는 뜻은 아니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야.”
오후는 상처를 씻고 쉬는 데 쓰였다.
마르는 물을 데워 크로노의 옆구리와 에이라의 팔을 닦았다. 루카의 손목에는 차가운 물을 얇게 감아 열을 내렸다. 에이라는 치료받는 동안에도 니즈벨의 크기를 매번 더 크게 설명했고, 루카는 누운 채 수치를 줄였다.
“방 절반.”
“방 거의 전부.”
“꼬리까지 합치면.”
“그러면 에이라 맞다.”
크로노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드림스톤의 가죽끈을 다시 묶었다.
마르는 루카에게 아자라에 관해 물었다.
“어땠어?”
“에이라 말대로 머리가 좋아. 우리가 다른 시대에서 왔다는 답 바로 앞까지 갔어.”
“말했어?”
“집으로 돌아가는 물건이라고만.”
루카는 천장을 보았다. “아자라는 열쇠가 인간을 더 데려올까 봐 두려워했어. 자기들 땅을 빼앗을까 봐.”
에이라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도 레프타이트 많아질까 무섭다.”
두려움이 양쪽에 있다는 사실이 싸움을 멈춰 주지는 않았다. 마르는 아이오카의 성벽 없는 집들과 레프타이트 굴의 다듬어진 길을 생각했다. 둘 다 자기 아이들이 걸을 땅을 지키고 있었다.
해가 기울기 전에 크로노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
보슈에게 드림스톤을 가져가야 했다. 무엇보다 그랜드리온을 고쳐야 카에루가 다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에이라는 함께 가지 않았다.
“레프타이트 신호 많아졌다. 에이라 여기 있어야 한다.”
그녀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지만 판단은 빨랐다. 족장이 니즈벨을 쓰러뜨리고 돌아왔다는 소식은 아이오카에 힘이 되는 만큼 레프타이트를 자극할 수도 있었다.
마르가 물었다.
“검 고치면 보여 달라고 했지?”
“응.”
“꼭 다시 올게.”
에이라는 큰 붉은 돌을 품에 안은 크로노 앞에 섰다.
“검 고치고, 강한 적 만난다. 이기면 좋다.”
그녀는 크로노의 어깨를 잡았다. “못 이기면 살아서 다시 온다. 죽으면 왜 졌는지 못 배운다.”
크로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노는 언덕 아래까지 길을 안내했다. 갈림길에서 그는 멈추어 가방을 멘 루카를 보았다.
“열쇠, 잘 지켜.”
루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누구 때문에 세 번 묶었는데.”
“그래서 말한다.”
키노는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신비산의 비탈은 내려올 때보다 올라갈 때 훨씬 가팔랐다. 루카의 손목과 크로노의 옆구리 때문에 여러 번 쉬어야 했다. 마르는 드림스톤을 번갈아 들었고, 마지막 절벽에서는 물의 기운으로 뜨거워진 얼굴들을 식혔다.

시간의 문이 있던 바위 위에는 푸른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루카가 열쇠 장치를 꺼냈다.
잠금끈을 하나씩 푸는 동안 모두가 말없이 지켜보았다. 수정판에 손을 대자 바늘이 크게 흔들린 뒤 한 지점에서 멎었다.
푸른 빛이 바위 사이에서 벌어졌다.

처음 이 시대에 떨어졌을 때 맡았던 젖은 흙과 짐승 냄새가 소용돌이의 차가운 바람에 밀려났다.
에이라가 문 앞까지 따라왔다.
그녀는 안으로 손을 넣지 않았다. 빛이 팔을 삼킬 듯 흔들리자 한 걸음 물러섰다.
“이게 집 가는 길?”
“우리한테는.” 마르가 대답했다.
에이라는 뒤에 펼쳐진 평원과 아이오카 방향을 보았다.
“에이라 집은 여기.”
그 말에 망설임은 없었다.
세 사람은 차례로 빛 속에 들어갔다. 크로노가 마지막으로 돌아보자 에이라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붉은 머리카락이 뜨거운 바람 속에서 흔들렸다.
시간의 끝에 발을 디디자 공기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로보가 화로 곁에서 일어났다.
“귀환 인원 세 명. 부상 징후를 확인했습니다.”
루카가 가방부터 들어 보였다.
“열쇠 회수. 드림스톤 확보. 부상은 그다음.”
가스파는 크로노가 내려놓은 붉은 돌을 오래 바라보았다. 화로의 불빛과 돌 안쪽의 빛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흔들렸다.
“아주 먼 길을 다녀왔군.”
마르가 말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냥 옆 숲이었어요.”
가스파가 미소를 지었다.
로보가 세 사람의 상처를 살피는 동안 잠깐의 휴식이 이어졌다. 그러나 크로노는 드림스톤 곁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마침내 루카가 붕대를 새로 감고 일어섰다.
“보슈한테 가자.”
메디나의 오후는 그들이 떠났을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보슈의 작업장에서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크로노가 문을 열자 노인은 눈도 들지 않고 말했다.
“이번에는 뭘 부러뜨렸나?”
크로노가 가죽 꾸러미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묶인 끈이 풀리고 드림스톤의 붉은 면이 드러났다.
보슈의 망치가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 위에 손을 올린 순간, 작업대 아래 잠금 상자 안에서 맑은 금속음이 울렸다.
부러진 그랜드리온의 두 조각이 대답하고 있었다.

보슈는 작업장 뒤편의 바닥문을 열었다.
아래에서 붉은 화덕빛이 올라왔다.
“가지고 내려오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놀란 장인의 것이 아니었다.
오래 기다린 일을 시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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