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6화] 천둥을 품은 비늘

니즈벨의 포효가 멎은 뒤에도 방 안의 뼈 장식은 한동안 서로 부딪쳤다.

루카는 소리보다 먼저 바닥을 보았다. 거대한 발이 돌가루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올 때마다 발톱이 같은 홈에 들어갔다. 이 방은 우연히 비어 있는 굴이 아니었다. 니즈벨이 움직이고 싸우도록 오래전부터 다듬은 자리였다.

아자라와 니즈벨의 방까지 이어지는 레프타이트 둥지 전체 지도 - Pixel Guides / SNES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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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위의 아자라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흰 비늘과 푸른 장식을 지닌 아자라의 게임 스프라이트 - SNES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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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돌려주면 싸울 필요 없어.”

루카의 말에 아자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말은 이 물건이 싸울 만큼 중요하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너희에게 쓸모없는 물건이야.”

“쓸모를 정하는 건 가진 자다.”

아자라는 열쇠 장치의 금속 테두리를 손톱으로 훑었다. “너희 셋은 아이오카의 옷을 입지 않았다. 돌로는 만들 수 없는 이빨과 불을 가졌고, 하늘이 갈라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물건을 잃자 땅 밑까지 따라왔지.”

가느다란 눈동자가 더 좁아졌다.

“새로운 인간 무리가 넘어오는 문을 여는가?”

루카는 바로 부정하려다 멈췄다.

아자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반짝이는 금속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낯선 인간들이 끝없이 나타나 레프타이트의 땅을 차지하는 가능성이었다. 그 두려움은 도구를 빼앗긴 자신들의 조급함만큼이나 구체적이었다.

“군대를 부르는 물건은 아니야.”

루카는 발사기를 조금 내렸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여는 물건이야.”

아자라가 크로노와 에이라를 번갈아 보았다.

“셋의 집이 같은 곳도 아닌데?”

에이라가 이를 드러냈다.

“말 많다, 아자라.”

“생각이 짧으면 말도 짧아지지.”

“짧아도 맞으면 아프다.”

에이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자 니즈벨이 머리를 낮췄다.

크로노가 그녀의 어깨 앞에 팔을 뻗었다. 먼저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는 니즈벨의 등과 목을 천천히 살폈다. 메가사우루스보다 몸집이 두 배는 컸고, 겹친 비늘에는 오래된 흉터가 흰 선처럼 남아 있었다. 목 아래와 앞다리 안쪽을 제외하면 검이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겹친 비늘과 굵은 뿔을 지닌 니즈벨의 게임 스프라이트 - Vor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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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라가 단 아래로 열쇠 장치를 내려놓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지만 니즈벨의 앞발 바로 옆이었다.

“가져가라.”

루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걸 지나서?”

“주인이라면 자기 물건까지 갈 수 있겠지.”

아자라의 손이 내려갔다.

니즈벨이 돌진했다.

크로노와 에이라는 양쪽으로 갈라졌다. 루카는 뒤로 물러나며 발사기를 쐈다. 불덩이가 니즈벨의 뺨에서 터졌지만 머리만 조금 돌아갔다. 그 짧은 틈에 크로노가 앞다리 안쪽을 베었다.

금속이 돌을 긁는 소리가 났다.

칼날은 비늘에 얕은 흠집만 남겼다.

니즈벨의 꼬리가 돌아왔다. 크로노가 몸을 숙였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옆구리를 스친 꼬리가 그를 기둥 쪽으로 밀어냈다.

에이라가 뒤에서 목을 끌어안았다.

다른 짐승이라면 쓰러졌을 힘이었다. 니즈벨은 앞발을 들었다가 몸 전체를 바닥에 내리쳤다. 충격이 방을 흔들었다. 에이라의 손이 풀렸고 그녀는 등 위를 굴러 꼬리 너머로 떨어졌다.

“껍질 너무 세다!”

루카는 대답하지 않고 천장을 보았다.

횃불 사이로 검은 그을음이 모여 있었다. 불을 크게 쓰면 공기가 먼저 나빠질 것이다. 출구는 그들이 들어온 계단과 니즈벨이 나온 돌문뿐이었다. 아자라는 높은 단 위라 연기에서도 유리했다.

“크로노!”

그가 그녀를 보았다.

루카는 손가락 두 개를 번개 모양으로 꺾었다.

크로노가 검을 바닥에 짚고 몸을 일으켰다. 니즈벨이 다시 머리를 숙이는 순간,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터졌다.

번개가 굵은 뿔 사이를 때렸다.

니즈벨의 네 다리가 굳었다.

등을 덮은 비늘판이 들리며 사이마다 푸른 선이 달렸다. 숲의 메가사우루스와 같은 변화였지만, 니즈벨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문 채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지금!”

에이라가 먼저 달렸다.

그녀는 니즈벨의 앞발을 밟고 어깨까지 올라가 들린 비늘 사이를 양 주먹으로 내리쳤다. 크로노는 반대편 무릎 뒤로 파고들어 검등으로 관절을 쳤다. 루카의 불꽃이 목 아래의 연한 부분에서 터졌다.

니즈벨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울음을 냈다.

그러나 비늘 아래에 흐르던 푸른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목에서 등으로, 등에서 꼬리로 모였다. 공기에서 머리카락이 일어설 만큼 전기가 짙어졌다.

루카는 숲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떨어져! 곧 돌려줘!”

크로노는 즉시 물러났지만 에이라는 짐승의 등 위에 있었다.

그가 망설이지 않고 되돌아갔다. 니즈벨의 옆구리를 밟아 손을 뻗자 에이라가 그 손목을 잡았다. 두 사람이 바닥으로 뛰어내린 순간, 축적된 번개가 폭발했다.

빛이 방의 색을 지웠다.

루카는 팔을 얼굴 앞에 세웠다. 몸 안의 뼈가 한 번에 울리는 것 같았다. 등으로 바닥을 치고 나서도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타는 냄새가 났지만 옷인지 머리카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눈앞이 돌아왔을 때 크로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에이라는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니즈벨의 비늘은 다시 닫혀 있었다.

단 위에서 아자라가 말했다.

“니즈벨은 하늘의 불도 먹는다.”

에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먹고 토한다. 더럽다.”

평소라면 웃었을 루카도 입술만 움직였다.

니즈벨이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쓰러진 루카를 향했다.

크로노가 앞을 막았다. 오른손이 감전으로 떨렸지만 검은 놓지 않았다. 그는 발을 넓게 벌리고 니즈벨의 뿔이 아니라 눈을 보았다.

루카는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옆으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에이라가 바닥의 돌조각을 집어 니즈벨의 머리에 던졌다. 돌은 아무 피해도 주지 못했지만 짐승의 시선이 움직였다.

“여기! 큰 입!”

니즈벨이 방향을 틀었다.

에이라는 기둥 쪽으로 달렸다. 뿔이 등을 스칠 듯 다가왔을 때 옆으로 몸을 던졌다. 니즈벨은 멈추지 못하고 기둥을 들이받았다. 걸려 있던 거대한 갈비뼈와 뿔 장식이 쏟아졌다.

그중 하나가 니즈벨의 앞발 사이에 끼었다.

크로노가 루카를 일으켜 세웠다.

“한 번 더 해야 해.”

루카는 자신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움직임은 돌아왔지만 손목 안쪽이 타는 듯했다. 발사기의 격발 장치도 빛을 잃고 있었다.

“이번에는 번개가 빠져나올 때를 이용해.”

에이라가 니즈벨의 반대편에서 숨을 골랐다.

“어떻게?”

루카는 바닥을 보았다.

기둥이 흔들리며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방 가장자리의 배수 홈을 따라 얇은 물길이 흘렀다. 니즈벨이 서 있는 중앙만 마른 흙과 모래로 덮여 있었다.

“저 물길로 몰아. 방전할 때 바닥에 닿아 있으면 우리도 같이 맞아.”

그녀는 가방에서 금속 집게와 전선 한 뭉치를 꺼냈다.

에이라가 물건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작다.”

“힘으로 이기려는 게 아니야. 길을 만들어 주는 거야.”

루카는 전선 한쪽을 배수 홈의 물에 담그고 다른 쪽을 긴 금속 막대에 감았다. 열쇠를 찾은 도구가 이번에는 번개가 빠져나갈 길이 되었다.

크로노가 의도를 이해했다.

그는 니즈벨의 왼쪽으로 달려 검으로 바닥을 쳤다. 에이라는 오른쪽에서 소리치며 기둥의 뼈를 걷어찼다. 짐승이 두 사람 사이에서 머리를 흔들다가 더 가까운 에이라를 향해 돌진했다.

에이라는 물길을 넘은 뒤 돌아섰다.

“느리다!”

니즈벨의 앞발이 젖은 홈을 밟았다.

크로노의 번개가 다시 내려왔다.

비늘이 열렸다.

에이라가 물러나지 않고 뿔을 붙잡았다. 전기가 그녀의 팔까지 번져 붉은 머리카락이 퍼졌지만, 이를 악문 채 짐승의 머리를 아래로 눌렀다.

크로노는 첫 번째 싸움에서 흠집 낸 무릎 뒤를 다시 쳤다. 이번에는 칼날이 비늘 사이로 들어갔다. 피가 아니라 뜨거운 김과 함께 짙은 체액이 조금 튀었다.

니즈벨의 다리가 꺾였다.

루카는 금속 막대를 들린 비늘 사이에 끼웠다. 손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놓지 않았다.

“나와!”

세 사람이 동시에 물러났다.

모여 있던 전기가 터졌다.

푸른빛은 가장 가까운 몸으로 퍼지지 않았다. 금속 막대와 전선을 타고 배수 홈으로 흘렀다. 물이 끓으며 흰 증기가 솟았고, 방 가장자리의 횃불이 줄지어 꺼졌다.

니즈벨은 소리 없이 몸을 떨었다.

닫히려던 비늘이 힘을 잃고 벌어진 채 남았다.

크로노와 에이라가 양쪽에서 뛰었다.

검자루와 주먹이 같은 순간 목 아래를 때렸다. 니즈벨의 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거대한 몸이 한 번 일어나려다 다시 내려앉았다.

방 안에는 끓는 물소리와 세 사람의 숨만 남았다.

크로노는 검끝을 니즈벨에게 향한 채 기다렸다.

짐승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더 움직이지 못했다.

에이라가 먼저 주먹을 내렸다.

“끝.”

그녀는 숨을 고르며 니즈벨의 목에 손바닥을 댔다. 맥박을 확인한 뒤 아자라를 올려다보았다.

“살아 있다.”

아자라의 시선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패배보다 니즈벨의 생사를 먼저 확인하고 있었다.

루카는 그 짧은 틈에 단 아래로 갔다. 시간의 문 열쇠 장치를 집어 들자 수정판이 희미하게 켜졌다. 테두리에 작은 긁힌 자국이 늘었지만 내부 파동은 정상 범위였다.

“돌아왔어.”

말하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릴 뻔했다.

크로노가 옆에서 그녀의 팔을 받쳤다.

아자라는 단 위에서 내려왔다.

에이라가 앞을 막았지만 그는 니즈벨 곁에 무릎을 꿇었을 뿐이었다. 거대한 눈꺼풀에 손을 얹고 호흡을 확인한 뒤에야 세 사람을 보았다.

“오늘은 너희가 가져간다.”

“원래 루카 거다.” 에이라가 말했다.

“가진 자가 주인이라 했지.”

아자라는 루카의 손에 든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물건이 여는 길이 우리 땅으로 더 많은 인간을 데려온다면, 다음에는 니즈벨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루카가 열쇠를 가방 가장 안쪽에 넣고 끈을 세 번 묶었다.

“그런 일은 없어.”

“네 약속을 믿어서 보내는 게 아니다.”

아자라는 어둠 속 통로를 가리켰다. 이미 그 너머에서 많은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희가 여기서 죽으면 아이오카는 보복하러 올 것이다. 오늘의 싸움을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낫다.”

에이라가 그를 노려보았다.

“싸움 끝내고 싶으면 우리 땅 오지 마.”

“강은 매년 길을 바꾼다. 짐승 떼도 움직인다. 땅은 네가 돌로 그어 놓은 선을 기억하지 않아.”

아자라는 일어섰다.

“우리도 사라지지 않는다.”

에이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주먹을 펴고 크로노와 루카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도.”

아자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그가 가리킨 옆 통로로 향했다. 돌문이 닫히기 전에 루카가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아자라는 패한 지도자처럼 서 있지 않았다. 쓰러진 니즈벨 옆에서 몰려오는 동족들에게 짧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상처를 살폈고, 누군가는 젖은 바닥의 전선을 치웠다.

동굴 통로로 몰려오는 초록 레프타이트의 게임 스프라이트 - SNESMaps
동굴 통로로 몰려오는 초록 레프타이트의 게임 스프라이트 - SNESMaps

그들도 자기편을 데리고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로 끝에서 밤공기가 밀려왔다.

세 사람은 땅 위로 나왔다. 숲의 열기조차 굴 안보다 시원했다. 루카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방을 다시 열었다.

열쇠 장치의 수정판에 손을 대자 익숙한 진동이 손끝으로 올라왔다.

돌아갈 길이었다.

크로노가 장치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루카는 이번에는 직접 잠금끈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이오카로 돌아가자.”

멀리 동쪽 하늘이 옅어지고 있었다.

긴 밤이 끝나고 있었지만 숲 뒤편에서는 레프타이트의 신호가 다시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패배를 알리는 소리인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소리인지, 세 사람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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