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5화] 발자국 아래의 길

레프타이트의 신호는 한 번 더 울린 뒤 멎었다.

돌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숲의 다른 소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잎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보이지 않는 벌레 떼가 나무 위에서 날개를 갈았다. 그러나 루카에게는 조금 전의 규칙적인 세 박자가 계속 귓속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이 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숲 미로의 발자국 앞에서 몸을 낮춘 에이라와 숨어 있는 레프타이트 - VoVatia
숲 미로의 발자국 앞에서 몸을 낮춘 에이라와 숨어 있는 레프타이트 - VoVatia

에이라는 몸을 낮춘 채 진흙을 살폈다. 수십 겹의 발자국 사이에서 가장자리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만 골라냈다.

“열쇠 가져간 셋. 여기 지나갔다.”

루카가 금속 막대를 앞으로 내밀었다. 끝에 묶인 가는 바늘은 남쪽을 가리키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였다. 그곳에는 짐승도 지나가기 힘든 가시덤불뿐이었다.

“흔적은 남쪽인데 반응은 저쪽이야.”

에이라가 덤불 가까이 다가가 잎을 들추었다. 줄기 아래에는 발자국 대신 납작한 돌조각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레프타이트 길.”

“발자국을 숨기려고?”

“발 안 베려고.”

에이라는 가시 사이로 맨발을 넣어 돌만 밟았다. 길을 아는 사람에게는 통로였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벽이었다. 루카는 남쪽으로 이어진 선명한 자국을 돌아보았다. 그쪽은 일부러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컸다.

크로노가 먼저 덤불 안으로 들어갔다.

가시는 옷 위로도 살을 긁었다. 그는 검등으로 가지를 밀어 루카가 지날 자리를 만들었다. 에이라는 몇 걸음 앞에서 돌의 기울기만 보고 방향을 바꾸었다. 길은 곧 물이 고인 낮은 지대로 내려갔다.

숲의 바닥이 무릎까지 잠겼다.

탁한 물에서는 썩은 잎 냄새와 유황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진흙 속에서 기포가 터졌다. 루카가 막대를 높이 들고 균형을 잡다가 손목을 움켜쥐었다.

크로노가 돌아보았다.

“괜찮아.”

그녀는 먼저 대답하고 나서 손을 풀었다. “지난번에 다친 데가 조금 당긴 것뿐이야. 열쇠 반응은 더 강해졌어.”

물 한가운데서 바늘이 빠르게 떨렸다.

그 순간 에이라가 두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내렸다.

머리 위로 돌창이 지나가 나무에 꽂혔다.

맞은편 뿌리 사이에서 레프타이트 둘이 일어섰다. 하나는 빈 손으로 목에 건 뼛조각을 세 번 두드렸고, 다른 하나는 두 번째 창을 겨누었다.

크로노가 물을 박차고 나갔다.

창끝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내려왔다. 그는 몸을 비틀어 날을 흘린 뒤 창대를 검자루로 쳤다. 레프타이트는 무기를 놓치지 않고 오히려 당겨 크로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숲에서 처음 만났던 무리보다 움직임이 짧고 정확했다.

에이라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그녀는 신호를 보내던 쪽의 손목을 붙잡아 물속으로 메쳤다. 상대가 꼬리로 다리를 후려치자 에이라도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카는 발사기를 들었지만 불꽃을 쏘지 못했다. 물 위에는 유황 냄새가 밴 기름 같은 막이 떠 있었다. 불이 붙으면 누구부터 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막대 끝으로 물속의 나무뿌리를 찔렀다. 뿌리 아래에 걸려 있던 덩굴이 풀리며 진흙에 잠긴 통나무가 떠올랐다.

“크로노, 오른쪽!”

그가 즉시 몸을 낮췄다.

루카가 통나무를 밀었다. 물살을 탄 굵은 나무가 창을 든 레프타이트의 무릎 뒤를 쳤다. 상대가 쓰러지는 순간 크로노가 창을 걷어 차 멀리 보냈다.

에이라는 자기 앞의 레프타이트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리고 목을 누르지 않은 채 양팔만 등 뒤로 꺾었다.

“몇 마리 더 있어?”

상대는 이를 드러냈다. 에이라가 같은 질문을 레프타이트의 언어로 짧게 되풀이했다. 목구멍에서 굴리는 소리와 혀를 차는 소리가 섞였다.

루카가 놀라 그녀를 보았다.

“말할 줄 알아?”

“조금. 싸우면서 배운다.”

붙잡힌 레프타이트가 날카롭게 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어 멀리서 같은 소리가 둘, 셋 겹쳐 돌아왔다.

에이라는 즉시 손을 놓았다.

“많이 온다.”

상대는 물속으로 몸을 굴려 뿌리 사이로 사라졌다. 크로노가 쫓으려 하자 에이라가 팔을 잡았다.

“놔둬. 저쪽 가면 우리도 저쪽 간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쪽의 거짓 발자국을 가리킨 뒤 반대편 바위틈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물길을 벗어나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뒤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가까워졌지만, 추격대는 달아난 동료가 향한 남쪽으로 몰려갔다.

발자국과 굽이진 길이 이어지는 숲 미로 전체 지도 - Pixel Guides / SNESMaps
발자국과 굽이진 길이 이어지는 숲 미로 전체 지도 - Pixel Guides / SNESMaps

비탈 위에는 잘린 나무들이 원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밑동은 돌날로 여러 번 찍어낸 흔적이 있었고, 잘린 면에는 검은 수액이 발라져 썩는 것을 막고 있었다. 원 안쪽의 땅은 발로 다져져 단단했다. 나무 사이에는 깃털과 뼈를 묶은 표식이 걸려 있었다.

루카는 그것을 손대지 않고 바라보았다.

“경계 표시겠지?”

“응.” 에이라가 말했다. “여기부터 둥지 길.”

경계 안으로 들어가자 숲은 오히려 걷기 쉬워졌다. 낮은 가지가 잘려 있었고 물이 고이는 곳에는 돌이 깔려 있었다. 군데군데 말린 열매 껍질과 깨진 돌칼이 모여 있었다. 레프타이트가 단지 숨어 다니는 숲이 아니라 매일 오가며 다듬은 장소였다.

크로노가 걸음을 멈췄다.

앞쪽 땅이 아주 조금 들썩였다.

흙을 뚫고 검은 등껍질이 올라왔다. 사람 몸통만 한 벌레가 앞다리로 땅을 파헤치자 바닥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에이라가 뒤로 뛰었고 크로노는 루카의 가방끈을 잡아당겼다.

세 사람이 서 있던 곳에 둥근 구멍이 생겼다.

아래에서는 따뜻한 공기가 솟았다.

금속 막대의 바늘이 구멍을 향해 곧게 내려갔다.

루카가 엎드려 안을 보았다. 벽면에는 뿌리와 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발판이 파여 있었다. 벌레가 만든 굴을 레프타이트가 길로 사용하고 있었다.

“열쇠는 아래야.”

에이라가 귀를 기울였다.

땅 밑에서 돌 끄는 소리와 여러 발이 오가는 진동이 올라왔다.

“둥지 맞다.”

크로노가 구멍 가장자리에 손을 짚었다.

루카는 그의 어깨 너머로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따라잡는 것이 목표였는데, 막상 입구 앞에 서자 자신들이 다른 집단의 생활공간 한가운데로 들어가려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열쇠만 찾고 나와.”

그 말이 명령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확인인지 알 수 없었다.

크로노가 먼저 내려갔다.

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흙벽의 발판을 밟고 두 사람 키만큼 내려간 뒤, 굵은 뿌리를 잡아 다음 층으로 옮겨야 했다. 에이라는 손잡이 없이도 빠르게 내려갔지만 루카는 한 손으로 가방을 붙잡느라 두 번 미끄러졌다.

바닥에 닿자 빛이 있었다.

벽의 홈마다 푸른 이끼가 발려 희미하게 빛났다. 통로는 벌레가 판 둥근 굴과 돌도구로 넓힌 각진 벽이 번갈아 이어졌다. 천장에는 말린 고기와 약초 다발이 매달려 있었고, 한쪽에는 같은 크기로 다듬은 창촉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여긴 임시 은신처가 아니야.”

에이라가 벽의 긁힌 그림을 보았다.

강과 산, 숲을 닮은 선 사이에 두 종류의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손가락 다섯 개의 붉은 자국과 세 갈래 발톱의 검은 자국이 강을 사이에 두고 겹쳐 있었다.

“땅 기억하는 곳.”

에이라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없었다.

그들이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통로가 네 갈래로 나뉘었다. 금속 막대는 모든 방향에서 반응했다. 땅속 광물 때문인지 열쇠의 흔적이 여러 번 오갔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루카가 무릎을 꿇고 바늘의 흔들림을 지켜보았다.

“방향 말고 세기를 봐야 해.”

그녀는 막대를 바닥에 수평으로 놓고 한 바퀴 천천히 돌렸다. 북쪽 통로를 지날 때 떨림이 짧고 빠르게 바뀌었다.

그쪽으로 열 걸음도 가지 않아 거대한 그림자가 길을 막았다.

네 발로 엎드린 생물의 등에는 돌처럼 단단한 비늘판이 겹쳐 있었다. 머리 양옆의 뿔이 벽을 긁자 푸른 이끼 가루가 떨어졌다. 뒤에는 레프타이트 셋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에이라가 이를 악물었다.

“메가사우루스.”

단단한 비늘로 몸을 감싼 메가사우루스의 게임 스프라이트 - SNESMaps
단단한 비늘로 몸을 감싼 메가사우루스의 게임 스프라이트 - SNESMaps

짐승이 머리를 숙이고 돌진했다.

통로는 피하기에 너무 좁었다. 크로노가 앞을 막고 검을 비스듬히 세웠지만, 날이 이마의 비늘을 긁으며 튕겨 나갔다. 충격에 그의 등이 벽에 부딪쳤다.

루카가 발사기를 쏘았다.

불덩이가 어깨에서 터졌지만 비늘 표면만 그을렸다. 짐승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레프타이트 둥지에서 메가사우루스와 레프타이트를 상대하는 크로노·에이라·루카 - ArrPeeGeeZ
레프타이트 둥지에서 메가사우루스와 레프타이트를 상대하는 크로노·에이라·루카 - ArrPeeGeeZ

크로노의 손에서 푸른빛이 번졌다.

번개가 뿔 사이로 떨어졌다.

메가사우루스의 몸이 굳었다. 겹쳐 있던 비늘판이 순간 들리며 그 아래의 연한 살이 드러났다. 루카는 불이 통하지 않은 이유와 번개 뒤에 생긴 변화를 동시에 보았다.

“지금이야! 비늘 사이!”

에이라가 벽을 밟고 뛰어올라 들린 판 사이에 발뒤꿈치를 꽂았다. 크로노의 검자루가 반대쪽 관절을 쳤다. 짐승은 무릎을 꿇었지만, 몸 안에 남은 빛이 등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루카의 안경에 푸른 섬광이 비쳤다.

“떨어져!”

세 사람이 몸을 던진 순간 전기가 사방으로 터졌다.

벽의 이끼가 한꺼번에 꺼졌다. 어둠 속에서 레프타이트의 비명과 돌창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빛이 돌아왔을 때 메가사우루스는 옆으로 쓰러져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죽지는 않았다. 뒤에 있던 경비들은 감전된 팔을 붙잡고 물러났다.

크로노는 쫓지 않고 길을 열었다.

에이라가 쓰러진 짐승을 넘어가며 말했다.

“번개 맞으면 껍질 열린다.”

루카는 아직 저린 손으로 막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모아 뒀다가 돌려줘.”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북쪽 통로 끝에는 돌계단이 있었다.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건조해졌다. 푸른 이끼 대신 붉은 횃불이 벽을 밝혔다. 맨 위의 방은 천장이 높았고, 기둥마다 날개와 뿔이 달린 짐승의 뼈가 걸려 있었다.

방 건너편의 낮은 단 위에 한 레프타이트가 서 있었다.

다른 개체들보다 작고 가늘었다. 흰 비늘 위로 청색 무늬가 이어졌고, 목과 팔에는 붉은 돌조각이 정교하게 엮여 있었다. 손에는 루카의 시간의 문 열쇠 장치가 들려 있었다.

금속 막대의 바늘이 미친 듯이 떨렸다.

에이라가 앞으로 나섰다.

“아자라.”

레프타이트의 지도자는 열쇠 장치를 빛에 비춰 보다가 루카를 바라보았다.

“이 작은 물건 때문에 인간 족장이 직접 땅 밑까지 왔군.”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아이오카 말과 억양은 달랐지만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루카가 발사기를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 물건이야. 돌려줘.”

아자라는 열쇠의 수정판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돌도, 뼈도 아닌데 살아 있는 빛을 품었다. 너희 몸에 걸친 것과 같은 냄새가 나지.”

시선이 크로노의 검과 루카의 고글을 차례로 훑었다.

“아이오카는 이런 것을 만들지 못한다. 라루바도 아니다. 너희는 어느 땅에서 왔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자라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 물건은 주인보다 오래 버티고, 오래 본 자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하니까.”

루카는 단 아래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걸 열어 볼 수는 없어.”

“그래서 주인을 불렀다.”

아자라가 손을 들었다.

방 뒤편의 돌문 너머에서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마다 바닥의 모래가 흔들렸다.

에이라의 어깨가 낮아졌다. 크로노는 검을 다시 쥐었다.

어둠 속에서 먼저 나타난 것은 두 개의 굵은 뿔이었다. 뒤이어 돌보다 두꺼운 비늘과, 방의 절반을 채우는 거대한 몸이 횃불 아래로 나왔다.

아자라가 열쇠 장치를 가슴 앞에 들어 보였다.

“니즈벨이 너희가 그 빛의 주인인지 확인할 것이다.”

짐승이 입을 벌렸다.

포효가 기둥과 뼈 장식을 울리며 땅속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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