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3화] 불 가까이 앉은 사람들
아이오카 마을에는 성벽이 없었다.

대신 집들이 서로를 향해 둥글게 모여 있었다. 굵은 나무기둥과 짐승 가죽으로 만든 움막들이 넓은 공터를 둘러쌌고, 바깥쪽에는 뾰족하게 깎은 말뚝과 불 피운 구덩이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무엇을 안으로 막기 위한 벽이 아니라, 밖에서 오는 것을 일찍 보고 함께 맞기 위한 구조였다.
에이라가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에이라!”
누군가는 그녀의 허리에 매달렸고, 누군가는 손에 들린 사냥감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한 얼굴을 했다. 어른들은 조금 늦게 크로노 일행을 발견했다.
대화가 멈췄다.
돌칼을 갈던 남자가 일어섰고, 가죽을 말리던 여자는 아이를 자기 뒤로 당겼다. 세 사람의 옷과 금속 장비는 이곳에서 살아 있는 생물보다 낯설었다.
에이라는 아무렇지 않게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새 친구!”
그녀가 크로노의 어깨를 한 번 쳤다.
“크로노. 칼 빠르다.”
다음은 루카였다.
“루카. 불 만든다. 머리 좋다. 말 많다.”
“마지막은 빼도 되거든.”
아이들이 웃었다.
에이라는 마르를 가리켰다.
“마르. 물 움직인다. 손 잡으면 힘 약하다.”
마르가 바로 항의했다.
“그건 네가 너무 센 거야.”
이번에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
에이라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 족장 움막 쪽으로 걸어갔다. 마르가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원래 손님을 이렇게 소개해?”
“이름 말하고, 잘하는 것 말한다. 그러면 사람 안 잊는다.”
“못하는 것도 같이 말하던데.”
“그것도 안 잊는다.”
루카는 공터 가장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집이 아니라 물건들에 붙들려 있었다. 돌날을 나무 손잡이에 고정한 방식, 동물 힘줄을 꼬아 만든 끈, 속을 파낸 뼈에 액체를 담아 운반하는 법까지 하나씩 살폈다.
“접착제가 없어.”
마르가 돌아보았다.
“뭐가?”
“저 도끼. 나무 홈을 파서 돌을 끼우고 젖은 가죽끈으로 조였어. 마르면 수축하면서 더 단단해지겠지.”
에이라가 말했다.
“루카 또 말 많다.”
“관찰하는 거야.”
“보고 말한다. 말 많다.”
크로노의 입가가 움직였다.
루카는 그를 노려보았다.
“너까지 웃지 마.”
족장의 움막은 다른 집보다 크지 않았다.
안에는 낮은 침상과 말린 고기, 여러 종류의 돌과 뼈가 걸려 있었다. 중앙 기둥에는 붉은 돌조각들이 끈에 묶인 채 장식처럼 늘어져 있었다. 루카는 들어오자마자 그 앞에 섰다.
드림스톤과 닮은 색이었다.
에이라가 물그릇을 내밀었다.
“먼저 마셔.”
루카는 돌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받았다.
마르가 대신 물었다.
“이 붉은 돌은 어디서 구해?”
“강 건너, 산 아래. 땅 파면 나온다. 큰 건 적다.”
“가져도 돼?”
에이라는 마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둥에 매단 작은 조각 하나를 풀어 손바닥에 올렸다. 그런 뒤 밖을 가리켰다.
“이거로 칼 만든다? 아니. 너무 약하다. 불 옆에 둔다? 예쁘다. 목에 건다? 족장 표시.”
자신의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돌 많다. 하지만 큰 붉은 돌, 아이오카 것.”
루카가 보슈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먼저 값을 묻지 말라는 말.
“우리는 그 돌이 필요해.”
에이라의 눈이 루카에게 향했다.
“왜?”
“부러진 검을 고치려고.”
“검 고치면 뭐 해?”
“강한 적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누구?”
이번에는 세 사람이 잠시 망설였다.
마르가 말했다.
“마왕이라는 사람이 있어. 우리보다 훨씬 뒤 시대에.”
에이라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뒤 시대’라는 말보다 ‘강한 적’이라는 부분에 먼저 반응했다.
“마왕 강해?”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게 있을 수도 있어.” 루카가 덧붙였다. “라보스라는 존재.”
에이라가 그 이름을 따라 하지 않았다.
“보지도 않은 적?”
“미래에서 그 결과는 봤어.”
루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세상이 거의 죽어 있었어.”
에이라는 물그릇을 바닥에 놓았다.
“그러면 왜 마왕 먼저?”
“그가 라보스를 불렀다는 말을 들었거든. 사실인지 확인해야 해.”
에이라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모르면 만나서 본다.”
“그래.” 마르가 말했다. “우리도 그러려고.”
에이라는 그것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돌을 달라는 부탁에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밤 먹는다.”
“돌 얘기는?” 루카가 물었다.
“먹고 한다.”
“왜 모든 결론이 먹는 다음에 나와?”
에이라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배고프면 생각 약해진다.”
루카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아이오카에서 오후는 일하는 시간이었다.
낯선 손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르는 강가에서 물을 나르다가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죽 주머니까지 채웠고, 루카는 돌촉을 가죽끈으로 묶는 법을 배우며 두 번이나 매듭을 풀어뜨렸다. 크로노는 사냥감을 손질하려다 싸우는 검과 먹는 칼을 따로 쓰는 법을 배웠다.
도구는 거칠었지만 쓰임은 세밀했다. 언어가 짧다고 기술과 판단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해가 기울 무렵, 마을 바깥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에이라가 가장 먼저 언덕으로 올라갔다.
북쪽 평원에서 사냥꾼 세 명이 돌아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부축을 받고 있었고, 어깨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뒤에서는 두 사람이 커다란 짐승 다리를 끌고 왔다.
아이들은 고기보다 부상자 쪽으로 먼저 몰렸다.
에이라는 사람들을 물리고 상처를 보았다.
“레프타이트?”
부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 북쪽. 다섯. 고기 가져가려 했다.”
에이라의 얼굴에서 낮의 웃음이 사라졌다.
“따라왔어?”
“못 봤다.”
“못 본 것과 없는 것 다르다.”
그녀는 즉시 두 사람을 언덕 양쪽으로 보냈다. 아이들은 집 안쪽으로 들어가게 했고, 불구덩이에 장작을 더 넣었다.
루카가 다가왔다.
“아까 우리를 공격한 것들이 레프타이트야?”
“응.”
“사람처럼 도구를 쓰던데.”
에이라는 그녀를 보았다.
“레프타이트 사람 아니다.”
루카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자신들의 시대에서 마족을 두고 들었던 말과 너무 닮았다.
마르도 같은 생각을 한 듯 에이라를 바라보았다.
에이라는 둘의 표정을 읽었지만 불쾌해하지 않았다.
“레프타이트 말하고, 생각한다. 우리 땅 원한다. 우리도 땅 원한다. 그래서 싸운다.”
그녀는 부상자의 어깨를 깨끗한 물로 씻었다.
“생각한다고 친구 되는 거 아니다. 다르다고 짐승 되는 것도 아니다.”
루카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에이라는 상처에 씹은 약초를 붙이며 말했다.
“아자라, 레프타이트 우두머리. 머리 아주 좋다. 에이라보다 많이 생각한다.”
“그걸 인정해?” 마르가 물었다.
“왜 안 해? 적 약하다고 생각하면 내가 죽는다.”
그 말에는 증오보다 경험이 있었다.
크로노는 서기 1000년 메디나에서 마왕의 석상 아래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한 시대의 적이 다른 시대에는 이웃이 되고, 한 시대의 영웅이 다른 곳에서는 패전의 이름이 되었다. 육천오백만 년 전이라고 그 구조가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찰을 나간 사람들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돌아왔다.
추격 흔적은 없었다.
마을의 긴장이 풀리자 준비하던 잔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공터 중앙에 큰 불이 피어올랐다.

낮에 손질한 고기가 나무 꼬치에 꿰어졌고, 커다란 잎 위에 열매와 뿌리가 쌓였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발효 음료가 뼈잔에 담겼다. 냄새만 맡은 루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마시면 내일 기억 없을 것 같은데.”
에이라가 잔을 빼앗아 한 번에 마셨다.
“그러면 오늘 더 재미있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마르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원을 만들어 춤을 배우고 있었다.
춤이라고 해도 정해진 동작은 많지 않았다. 발을 세 번 구르고 손뼉을 치고,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친 뒤 방향을 바꾸었다. 마르가 두 번 틀리자 아이들이 더 크게 웃었고, 세 번째에는 일부러 반대로 돌았다.
크로노는 불 가장자리에서 고기 꼬치를 들고 있었다.
에이라가 옆에 앉았다.
“크로노 안 춘다?”
그는 춤추는 마르와, 잔을 피해 도구 구경만 하는 루카를 보았다.
“먹는 중.”
“먹으면서 춘다.”
에이라는 그의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크로노는 전투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데는 익숙했지만, 수십 명이 제각각 뛰는 리듬을 맞추는 데는 재능이 없었다. 첫 번째 회전에서 옆 사람의 발을 밟았고, 두 번째에는 손뼉을 한 박자 늦게 쳤다.
마르가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검보다 어렵지?”
크로노는 대답 대신 그녀가 다음에 돌 방향을 보고 미리 반대로 섰다.
이번에는 마르가 부딪쳤다.
“일부러 했지?”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불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누군가 오늘 사냥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과장된 몸짓을 더했고, 아이들은 이미 열 번 들은 이야기인데도 처음처럼 웃었다. 레프타이트와 싸운 이야기도 나왔지만, 죽인 숫자를 자랑하기보다 누가 누구를 끌고 돌아왔는지가 더 오래 이야기되었다.
에이라는 가운데 앉아 모든 사람의 말을 들었다.
족장이라고 해서 가장 좋은 고기를 먼저 먹지 않았다. 오히려 부상자와 아이들에게 큰 조각을 넘긴 뒤 남은 것을 뜯었다.
마르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왕궁의 긴 식탁이 떠오른 얼굴이었다.
에이라가 알아차렸다.
“왜 봐?”
“족장은 원래 좋은 걸 먼저 먹는 줄 알았어.”
“왜?”
“음…… 우리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서.”
에이라는 고기 한 점을 씹었다.
“족장 먼저 배부르면, 다른 사람 굶는 거 못 본다.”
마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루카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가스파 말이 맞았네.”
“뭐가?”
“오래됐다고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거.”
밤이 깊어지자 에이라는 움막에서 붉은 돌을 가져왔다.

낮에 목에 걸고 있던 조각보다 훨씬 컸다. 두 손으로 감싸야 할 만큼 굵었고, 표면은 거칠었지만 불빛을 받으면 안쪽에서 여러 층의 붉은색이 움직였다.
루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큰 붉은 돌.”
에이라는 돌을 무릎 위에 올렸다.
“족장 돌. 아이오카 힘 표시.”
마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걸 달라고 하면 너무 큰 부탁이겠네.”
“응.”
에이라는 아주 쉽게 인정했다.
루카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필요해.”
에이라는 불 건너의 세 사람을 보았다.
“에이라 낮에 들었다. 부러진 검. 강한 적. 아직 모르는 것 확인.”
그녀는 돌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좋은 이유다. 하지만 좋은 이유 있다고 아이오카 것 그냥 가져가면, 아이오카 사람 화난다.”
“그럼 우리가 뭘 하면 돼?”
에이라의 눈이 빛났다.
마르가 그 표정을 보고 불안해했다.
“왜 갑자기 즐거워 보여?”
에이라는 옆에 놓인 큰 항아리를 끌어왔다.
안에서는 진한 고기와 향신료 냄새가 났다. 표면에는 기름이 두껍게 떠 있었고, 그 아래로 붉은 국물이 끓지 않는데도 천천히 움직였다.
루카가 한 걸음 물러났다.
“설마.”
“아이오카는 강한 사람 좋아한다.”
에이라는 항아리 옆에 두 개의 뼈그릇을 놓았다.
“크로노, 에이라랑 먹기 싸움.”
마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식사량이 조건이었어.”
루카는 이마를 짚었다.
“역사보다 오래된 광석을 얻는 방법이 왜 이래.”
에이라는 알아듣지 못한 채 크로노에게 그릇 하나를 건넸다.
“이기면 큰 붉은 돌 준다.”
크로노는 그릇 안을 내려다보았다.
고기 조각과 뿌리, 이름 모를 잎이 진한 국물 안에 떠 있었다.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에이라가 이미 저녁 내내 자신보다 세 배는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도 부담이 없어 보였다.
마르가 크로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세계의 미래가 네 위장에 달렸네.”
루카가 말했다.
“과장하지 마. 드림스톤이 달린 거야.”
“그 검이 마왕을 막고, 마왕이 라보스와 관련 있다면 결국 비슷하지 않아?”
“그 논리로 부담 주지 마.”
크로노는 두 사람을 돌아본 뒤 에이라를 보았다.
에이라는 벌써 자기 그릇을 들고 있었다.
“준비?”
그는 허리띠를 한 칸 느슨하게 풀었다.
공터에서 환호가 터졌다.
아이오카 사람들은 어느새 둘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누군가는 에이라의 이름을 외쳤고, 마르는 크로노 쪽에서 두 손을 입에 모아 소리쳤다.
루카는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시작을 기다리며 발을 구르자 결국 한쪽 손을 들었다.
“좋아. 규칙부터 정해.”
에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먹는 사람이 이긴다.”
“끝?”
“끝.”
루카는 잠시 멈췄다.
“이 시대 경기 규칙은 마음에 드네.”
에이라가 웃었다.
불꽃이 밤하늘로 튀어 올랐다.
루카의 손이 내려갔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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