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21화] 시간을 건넌 장인의 이름

보슈라는 두 글자는 등불 아래에서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카에루는 칼자루를 들지 않은 채 그 이름만 바라보았다. 오래된 금속 표면에는 손때와 작은 흠집이 겹겹이 남아 있었지만, 밑면에 새겨진 각인만은 마치 어제 파낸 것처럼 깊었다.

루카가 손가락 끝으로 홈을 훑었다.

“같은 이름일 가능성은?”

“낮아.”

그녀는 스스로 대답했다. “글자의 간격도, 마지막 획을 꺾는 방식도 같아. 메디나에서 본 그 노인의 공구에도 이런 표식이 있었어.”

마르는 카에루를 보았다.

“그 보슈가 이 검을 만들었다는 거야?”

카에루의 눈이 천천히 들렸다.

“그 이름을 알고 있나.”

“서기 천 년에 살고 있어.”

말을 마친 뒤 마르는 자신이 한 문장을 다시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카에루도 마찬가지였다. 방 안에는 서기 천 년이라는 숫자보다, 그 사이에 놓인 사백 년이 더 크게 남았다.

카에루는 칼자루를 집어 들었다.

“사이러스가 이 검을 받았을 때에도 장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네. 왕실의 오래된 보관고에서 전해졌다고 들었지. 검이 누구 손에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그는 칼자루의 부러진 단면을 엄지로 눌렀다.

“나는 그저 이 이름을, 오래전에 죽은 장인의 것이라 생각했네.”

크로노는 데나도로 산에서 가져온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란과 리온은 살아 있는 사람이 말해야 할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검의 처음을 알지 못했다.

루카가 두 조각을 천으로 다시 감쌌다.

“그럼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돼.”

카에루가 고개를 들었다.

“그대들의 시대에 있는 장인에게?”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거야.”

루카는 가방끈을 고쳐 멨다. “하지만 이걸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후보는 한 명뿐이야.”

마르가 카에루 앞에 영웅의 표식을 밀었다.

“이건 네 거야.”

카에루의 손이 멈췄다.

“타타가 돌려달라고 했어. 자기가 직접 말해야 할 사과는 나중에 하겠대.”

“그 아이는 잘못이 없네.”

“그 말도 네가 직접 해.”

마르는 표식에서 손을 떼었다.

카에루는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목에 걸지 않고 칼자루 옆에 놓았다. 금속 두 개가 나란히 놓이자 방은 조금 전보다 더 좁아진 듯했다.

“나는 아직 이 검을 들 수 없네.”

루카가 입을 열려 했지만 크로노가 먼저 손을 들었다.

그는 카에루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천에 싼 칼날을 들어 보였다.

“고쳐 올게.”

카에루의 눈이 크로노에게 향했다.

짧은 말에는 돌아온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검이 고쳐진다고 사람이 함께 고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러진 채로 두는 이유도 될 수 없었다.

카에루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네.”

세 사람이 저주받은 숲을 나왔을 때 새벽빛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다.

타타의 집에서 저주받은 숲으로 돌아가는 길 - Vorxu
타타의 집에서 저주받은 숲으로 돌아가는 길 - Vorxu

전쟁의 연기는 남쪽에 남아 있었고, 가르디아 성 방향에서는 교대 나팔이 들렸다. 제난 다리가 버틴 덕분인지 길을 오가는 병사의 수가 전날보다 늘어 있었다. 누구도 숲에서 나온 세 사람을 막지 않았다. 왕비를 구한 사람들이라는 기억은 아직 이 시대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트루스 협곡의 시간의 문은 바위 사이에서 낮게 울렸다.

루카가 열쇠 장치를 가까이 대자 푸른 빛이 얇게 벌어졌다. 그녀는 들어가기 전에 부러진 검 조각을 다시 확인했다.

“이걸 들고 시간의 문을 건너는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해.”

“왜?” 마르가 물었다.

“그란과 리온이 시간의 문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잖아. 정확히는 검 안에 남은 그 힘이.”

마르는 천 꾸러미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두고 갈까?”

루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피하면 아무것도 못 해. 대신 이상 반응이 생기면 바로 돌아와.”

크로노가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몸을 감싸는 순간, 천 꾸러미 안에서 아주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데나도로 산의 제단에서 들었던 것과 닮았지만 훨씬 멀었다. 시간의 틈 어딘가에서 두 금속 조각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소리 같았다.

다음 순간 발밑에 돌바닥이 돌아왔다.

시간의 끝이었다.

화로 옆의 로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리한 오른손은 이제 거의 지연 없이 움직였다.

“귀환을 확인했습니다.”

마르는 곧장 말했다.

“로보, 이번엔 좋은 소식이랑 이상한 소식이 같이 있어.”

“분류 기준을 요청합니다.”

“검을 찾았어. 그런데 부러져 있어. 만든 사람 이름도 찾았는데 사백 년 뒤에 살아 있어.”

로보의 눈빛이 한 번 밝아졌다.

“두 번째 항목은 시간 여행이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 이상으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루카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점점 말이 늘고 있네.”

가스파는 화로 건너편에서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보슈라는 이름을 듣자 모자 아래의 눈이 열렸다.

“장인의 이름은 물건보다 오래 남기도 하지.”

루카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이에요?”

“이름을 안다고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가스파는 대답 대신 화로에 장작 하나를 넣었다. 불꽃이 튀며 잠깐 그의 얼굴을 밝혔다.

“메디나로 가려면 저 기둥을 쓰게. 다만 지금 그 마을에서 인간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알아요.” 마르가 말했다. “전에 가 봤으니까.”

로보가 세 사람을 따라오려 하자 루카가 그의 가슴 덮개에서 아직 남아 있는 찌그러짐을 보았다.

“이번에는 여기 있어.”

“전투 기능은—”

“그 말 지난번에도 했어.”

로보는 잠시 멈췄다가 크로노를 보았다.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화로 옆으로 돌아갔다.

“귀환을 기다리겠습니다.”

메디나로 통하는 기둥의 빛은 다른 문보다 짧고 거칠었다.

세 사람은 다시 잠긴 벽장 안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식탁까지 굴러가지는 않았다. 크로노가 문에 귀를 대자 집 안은 비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였다.

마왕의 석상 앞에는 여전히 작은 등불들이 놓여 있었지만, 지난번보다 사람 수가 적었다. 제난 다리의 패전 소식이 사백 년을 건너 이 마을의 기억에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크로노는 석상을 볼 때마다 방금 떠나온 전쟁터의 냄새를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보슈의 집은 마을 남서쪽에 그대로 있었다.

저주받은 숲에서 보슈의 집까지 이어지는 길 - Vorxu
저주받은 숲에서 보슈의 집까지 이어지는 길 - Vorxu

굴뚝에서는 연기가 났고, 문 너머로 망치가 세 번 울렸다가 멎었다. 크로노가 두드리기 전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문이 죄를 지은 건 아니니까.”

노인은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세 사람보다 먼저 크로노의 허리에 찬 검을 보았다. 자신이 내준 짧은 검의 칼집에 새 상처가 여러 개 생겨 있었다.

“돌아왔군. 돈 받으라는 뜻은 아니네.”

“그보다 보여 줄 게 있어요.”

루카가 천 꾸러미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보슈의 표정은 천이 풀리는 동안까지는 변하지 않았다.

부러진 칼날이 드러났다.

노인의 손이 멈췄다.

그다음 칼자루가 나왔다.

작업장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화덕에서 숯이 터지는 소리와 바깥의 바람만 남았다.

보슈는 물건에 손대지 않았다.

“어디서 찾았지?”

“서기 600년.” 루카가 대답했다.

노인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장소.”

“칼날은 데나도로 산. 칼자루는 카에루가 가지고 있었어요.”

카에루라는 이름에 보슈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크로노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보슈는 마침내 칼자루를 들어 밑면의 각인을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오래 들여다보았다.

마르가 물었다.

“당신이 만든 거예요?”

“내 손의 흔적은 맞다.”

“사백 년 전에요?”

보슈는 칼자루를 내려놓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루카가 즉시 받아쳤다.

“우리한테는 꽤 중요한데요.”

“궁금한 것과 필요한 건 다르지.”

노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아졌다. “자네들이 이걸 들고 왔다는 건, 고치고 싶다는 뜻이겠지.”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슈는 두 조각의 단면을 맞춰 보았다. 칼날과 칼자루 사이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빈자리가 있었다. 단순히 용접하거나 금속을 덧대는 것으로 끝날 파손이 아니었다.

“이 검은 보통 쇠로 만든 물건이 아니네. 금속은 모양을 잡아 줄 뿐이고, 중심은 다른 데 있어.”

그는 화덕 옆 서랍에서 붉은 가루가 묻은 작은 돌조각을 꺼냈다. 빛을 받자 안쪽에서 유리처럼 반짝였지만, 그랜드리온에 가까이 가져가자 아무 반응도 없었다.

“드림스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붉은 광석이지. 오래전에는 왕관과 장식품에 쓸 만큼 흔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내가 아는 시대에는 이미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루카가 돌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드림스톤이 아니죠?”

“흉내만 낸 물건이야. 성질을 설명하려고 남겨 둔 거지.”

“얼마나 오래전으로 가야 해요?” 마르가 물었다.

보슈는 대답하기 전에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아주 오래.”

“숫자로.” 루카가 말했다.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인간이 왕국을 만들기 전. 쇠를 녹이는 법도 모르기 전. 기록이 역사가 아니라 뼈와 돌에 남아 있던 때.”

마르는 시간의 끝에서 본 빛나는 기둥들을 떠올렸다.

“가스파라면 길을 알지도 몰라.”

보슈의 손이 또 한 번 멈췄다.

이번에는 아주 짧았다.

루카가 물었다.

“가스파도 알아요?”

“자네들은 질문을 참 많이 하는군.”

“시간을 건너다니면 원래 그래요.”

보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두 조각을 부드러운 천 위에 나란히 놓고, 작업대 한쪽의 잠금 상자를 열었다.

“드림스톤을 가져오게. 충분한 양이 있어야 해. 가루 몇 줌으로는 안 돼.”

부러진 그랜드리온을 살펴보는 보슈 - Vorxu
부러진 그랜드리온을 살펴보는 보슈 - Vorxu

“검은 여기 두고?”

“들고 다니며 더 부러뜨릴 생각이 아니라면.”

크로노는 잠시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란과 리온의 기척은 조용했다. 맡길 사람을 스스로 고르는 물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국 선택하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그는 천 꾸러미를 보슈 쪽으로 밀었다.

노인은 상자를 닫았다.

“그리고 하나 더.”

세 사람이 문 쪽으로 돌아서다 멈췄다.

“그 돌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먼저 값을 묻지 말게.”

마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오래된 물건일수록 돈보다 다른 이유로 손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보슈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그 이유를 빼앗으면 돌만 가져와도 검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어.”

밖으로 나오자 해가 낮아져 있었다.

마왕의 석상 뒤로 긴 그림자가 뻗었다. 크로노는 잠시 자신의 빈 손을 보았다. 데나도로 산에서 얻은 검도, 카에루가 지켜 온 칼자루도 이제 보슈의 작업대에 남았다.

마르는 시간의 문 열쇠를 꺼냈다.

보슈의 집을 나서 원시 시대로 향하는 길 - Vorxu
보슈의 집을 나서 원시 시대로 향하는 길 - Vorxu

“인간이 왕국을 만들기 전이라.”

루카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가스파가 가장 오래된 기둥을 어디까지 연결해 뒀는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크로노는 두 사람보다 먼저 벽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향했다.

그들이 찾으려는 것은 이제 마왕을 쓰러뜨릴 검이 아니었다.

그 검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역사보다 오래된 붉은 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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