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16화] 시간이 끝나는 곳
프로메테 돔에는 밤이 오지 않았다.
바깥의 회색빛은 몇 시간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세 사람은 조명 장치의 전지가 줄어드는 속도로만 시간을 짐작했다.
루카는 로보의 가슴을 연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공장에서 가져온 끊어진 선을 이어 붙이고, 찌그러진 축을 작은 망치로 펴고, 타 버린 회로를 다른 부품으로 우회했다. 부은 손목을 쓸 때마다 숨이 짧아졌지만 공구를 놓지는 않았다.
마르는 처음에는 옆에서 필요한 것을 건넸다. 나중에는 루카가 가리키기 전에 같은 모양의 나사와 선을 찾아냈다. 크로노는 로보의 무거운 팔을 들어 관절이 맞는 위치에 고정했다.
“이 선을 연결하면 전력이 가슴에서 머리까지 올라가.”
루카가 말했다.
“대신 손상된 기억 구역도 같이 켜져. 거기서 과부하가 나면 다시 끊어야 해.”
마르가 물었다.
“기억을 포기하면 더 안전해?”
“작동은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로보가 아니잖아.”
루카는 선 끝을 들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그를 깨울 때는 회로가 이어지는지만 보았다. 이제는 이어진 뒤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안전한 다른 기계를 만드는 건 수리가 아니야.”
루카는 기억 구역을 우회하지 않았다.
마지막 연결부에 불꽃이 튀었다. 로보의 손가락이 한 번 떨렸으나 눈은 켜지지 않았다. 루카는 전류를 낮추고 다시 높였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마르는 가슴의 찌그러진 덮개 위에 손을 올렸다.
“이름 기억해?”
대답이 없었다.
“R66-Y 말고, 우리가 부른 이름.”
기계 안쪽에서 아주 느린 회전음이 시작되었다.
푸른빛이 한쪽 눈에 들어왔다가 꺼졌다. 두 번째에는 조금 더 오래 남았다. 로보의 머리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호칭…… 로보.”
마르는 웃으며 눈가를 닦았다.
“그럼 우리도?”
푸른 눈이 마르, 루카, 크로노를 차례로 보았다.
“마르. 루카. 크로노.”
루카는 뒤로 주저앉았다. 기쁨을 표현할 말보다 먼저 피로가 온몸을 덮었다.
“다시는 여섯 대랑 혼자 말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
“대화 성공 가능성을 잘못 계산했습니다.”
“그건 계산 문제가 아니었어.”
로보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크로노가 어깨를 눌렀다.
“아직.”
짧은 말에 로보가 동작을 멈췄다.
“대기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만 돌려 열린 격리문을 보았다.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푸른 소용돌이가 벽과 바닥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귀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르가 물었다.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기존 관리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장의 동일 계열 기체도 정지했습니다. 프로메테 돔에 남아 수행할 임무는 없습니다.”
로보는 자신의 손을 폈다가 접었다. 수리한 손가락 하나가 다른 것보다 조금 늦게 움직였다.
“나는 여러분의 귀환을 돕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귀환 이후의 목적은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같이 찾으면 돼.”
마르의 대답은 빨랐다.
루카는 로보의 회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덮개를 닫았다.
“우리도 라보스를 어떻게 막을지 모르는 건 똑같아.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크로노가 손을 내밀었다.
로보는 그 손과 자신의 금속 손을 번갈아 보았다. 힘을 조절해 천천히 잡은 뒤 몸을 일으켰다.
네 사람은 열린 문 앞에 섰다.
시간의 문은 이전보다 불안정했다. 루카가 열쇠 장치를 가까이 대자 수정판의 바늘이 한 방향을 가리키지 못하고 원을 그렸다. 프로메테 돔의 전력이 끊겼는데도 소용돌이는 스스로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 시대와 연결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
루카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 남으면 문은 언제 닫힐지 모른다.”
마르는 로보를 보았다.
“처음에는 많이 어지러울 거야.”
“어지러움은 균형 감각의—”
“설명보다 직접 겪는 게 빠를 거야.”
크로노가 먼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마르와 루카가 뒤따랐고, 로보가 마지막으로 문턱을 넘었다.
네 번째 몸이 시간의 문에 닿는 순간,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평소에는 한 방향으로 흐르던 빛이 사방에서 안쪽으로 접혔다. 크로노는 앞에 있던 마르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거리가 갑자기 늘어났다. 루카의 외침은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로 갈라졌고, 로보의 금속 몸은 여러 개의 잔상으로 흩어졌다.
발밑이라는 감각이 사라졌다.
크로노는 떨어지는 대신, 세상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서기 600년의 숲 냄새, 천년제의 종소리, 폐허의 차가운 먼지가 순서 없이 스쳐 갔다. 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뻗은 손끝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그는 놓지 않았다.
다음 순간 네 사람은 돌바닥 위로 쏟아졌다.
바람도 천장도 없었다.
작은 광장 같은 공간이 검은 허공 한가운데 떠 있었다. 낡은 가로등 하나가 황금빛을 비추고, 옆에는 불이 켜진 화로와 기둥 몇 개가 서 있었다. 가장자리 너머에는 별처럼 보이는 빛들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르는 크로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루카가 로보의 팔에 매달린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여긴 서기 몇 년이지?”
루카가 열쇠 장치를 보았다. 바늘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화로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모자를 들어 올렸다.
“연도를 묻는다면 틀린 곳에 온 게지.”
그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태연했다. 깊게 눌러쓴 모자 아래의 눈은 졸린 듯했지만 네 사람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는 시간이 흘러가다 남긴 끝자락이야. 갈 곳을 잃은 문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지.”
“당신은 누구예요?” 마르가 물었다.
“이름이 꼭 필요하면 가스파라고 부르게.”
루카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다가갔다.
“왜 우리가 여기로 떨어졌죠?”
가스파는 네 사람을 손가락으로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같은 문에 너무 많은 존재가 한꺼번에 들어갔으니까. 시간도 길이 좁아지면 가장 덜 막히는 곳으로 흘러. 네 명 이상이 한 문을 건너면 대개 여기로 밀려오지.”
“그런 법칙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오래 앉아 있으면 길을 잃는 방법부터 많이 보게 되거든.”
가스파는 광장 가장자리의 빛나는 기둥들을 가리켰다. 기둥 안에는 서로 다른 풍경이 흔들렸다. 비 내리는 산과 눈부신 숲, 돌로 지은 마을의 지붕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 번 닿은 시대의 문은 이곳에 흔적을 남긴다. 앞으로는 셋이 움직이고, 남은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안전할 게야.”
로보가 물었다.
“이 장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남았다고 해야 할지 나도 확신할 수 없군.”
가스파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루카는 질문을 이어 가려 했지만, 광장 뒤편의 닫힌 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손님을 세워 두고 이야기만 할 셈인가, 영감?”
문 안쪽에는 둥근 방이 있었다. 벽도 바닥도 같은 회색 돌로 이어져 방향 감각을 흐렸다. 중앙에는 키가 작은 생물이 서 있었다. 토끼와 도깨비와 아이의 모습을 조금씩 빌린 듯했으나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는 스페키오. 전쟁을 아주 오래 지켜본 자지.”
그는 네 사람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크로노의 상처 난 손과 빈 허리, 마르의 붕대, 루카의 부은 손목, 로보의 새로 이은 가슴 덮개를 차례로 보았다.
“무기는 망가지고 몸은 지쳤는데, 안쪽의 흐름은 이제야 깨어나려는군.”
루카가 눈을 좁혔다.
“무슨 흐름?”
스페키오는 크로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번개처럼 먼저 길을 내는 힘.”
다음은 마르였다.
“물을 닮아 이어지고 살리는 힘.”
루카 앞에서는 손가락을 튕겼다.
“불처럼 형태를 바꾸는 힘.”
마지막으로 로보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자연의 흐름 대신 인간이 만든 힘을 이미 품고 있구나. 길은 다르지만 비어 있는 건 아니야.”
“그게 마법이라는 뜻이야?” 루카가 물었다.
“이름은 배우는 자가 편하라고 붙이는 것뿐.”
스페키오는 네 사람에게 방의 벽을 따라 세 바퀴 돌라고 했다. 루카는 그런 행동에 무슨 원리가 있느냐고 따졌지만, 가만히 선 채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크로노가 먼저 움직였다.
첫 바퀴에는 발소리만 들렸다. 두 번째 바퀴부터 벽의 온도가 달라졌다. 세 번째에는 크로노의 손끝이 저릿해지고, 마르의 숨에서 차가운 수증기가 피어났다. 루카의 발이 닿은 자리에는 희미한 열이 남았다.
스페키오가 손뼉을 쳤다.
방의 공기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크로노의 팔을 푸른 섬광이 타고 올랐다. 상처를 태우지 않으면서도 뼈 안쪽까지 밝히는 힘이었다. 그는 놀라 손을 펴 보았다. 작은 전류가 손가락 사이를 건넌 뒤 사라졌다.
마르의 주위에는 맑은 물방울이 모였다. 허공에서 생긴 물은 그녀의 피 묻은 붕대 위를 지나며 열을 식혔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욱신거리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루카의 손바닥에는 불꽃이 피어났다. 기름도 심지도 없는 불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털었으나 불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집중을 늦추자 빛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원리를 모르겠어.”
루카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좋은 시작이군.” 스페키오가 웃었다. “모르는 힘을 안다고 믿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는 곧바로 더 큰 힘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 만들어 본 것과 위험 속에서 정확히 쓰는 것은 다르며, 힘은 피로와 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로노는 손끝에 남은 저림을 느끼며 금이 간 검을 떠올렸다.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해서 부러진 칼과 다친 몸, 잘못된 선택의 대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네 사람은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가스파는 화로에 나무 한 조각을 넣었다. 불꽃은 흔들렸지만 연기는 어느 방향으로도 흐르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저쪽에 있네.”
그가 가리킨 기둥 안에 서기 1000년의 마을 지붕이 보였다. 리네 광장과는 다른 곳이었지만, 같은 시대의 햇빛이었다.
마르는 그 빛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리스 돔으로 이어지는 기둥도 멀지 않은 곳에서 회색으로 흔들렸다.
“이곳 사람들에게 씨앗이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겠네.”
로보가 대답했다.
“그리고 라보스에 관한 기록도 계속 조사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열쇠 장치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이제 그것은 하나의 문을 억지로 여는 도구가 아니라, 여러 시대 사이에서 돌아올 방향을 확인하는 물건이 되었다.
크로노는 기둥들 사이에 섰다.
천년제 아침에는 길이 하나뿐이었다. 집에서 광장으로, 광장에서 마르에게로. 이제는 서로 다른 시대가 사방에 열려 있었고, 어느 길도 그들을 처음의 자리로만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가 서기 1000년의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세 사람이 뒤따랐다.
시간의 끝에서 얻은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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