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15화] 형제들의 공장
여섯 기체의 목소리는 한곳에서 나온 것처럼 겹쳤다.
“인간과 함께 있는 이유를 보고하라.”
로보는 크로노와 루카보다 반걸음 앞에 섰다. 공장 천장의 비상등이 켜졌다 꺼질 때마다 같은 얼굴들이 붉은빛 속에 나타났다.
“이들은 프로메테 돔의 격리문을 열고자 합니다. 나는 귀환을 돕기로 선택했습니다.”
가장 앞의 기체가 고개를 바로 세웠다.
“선택은 임무 체계에 없는 항목이다.”
“기존 임무가 손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불량이다.”
판정은 대화보다 빨랐다. 양옆의 두 기체가 동시에 움직여 로보의 팔을 붙들었다. 크로노가 금속 막대를 들어 올렸지만 로보가 손바닥을 펴서 막았다.
“대기하십시오. 동일 계열 간의 인증 절차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번째 기체의 주먹이 로보의 얼굴을 때렸다.

둔한 충격음이 공장을 울렸다. 로보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고, 눈의 푸른빛이 흔들렸다. 두 팔을 붙잡은 기체들이 그를 운반대 쪽으로 끌고 갔다.
루카가 발사기를 들었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탄창은 비어 있었고, 공구 가방에 남은 축전지로 한 번쯤 불꽃을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그를 놓아줘.”
“인간의 명령은 수신하지 않는다.”
“명령이 아니라—”
두 번째 주먹이 로보의 가슴을 찌그러뜨렸다.
루카의 말이 끊겼다.
그녀는 자신이 연결한 선과 바로잡은 무릎축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로보의 몸에서 작동하던 부품들이 충격을 받을 때마다 어긋났다. 고쳐 놓은 것을 눈앞에서 파괴당하는 분노보다, 그 안에 깨어난 목소리가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올라왔다.
크로노가 바닥의 빈 운반 상자를 발로 밀었다.
상자가 레일을 타고 가장 가까운 기체의 무릎을 쳤다. 놈이 균형을 잃는 순간 그는 금속 막대를 관절 사이에 끼우고 몸 전체로 비틀었다. 고정축이 빠지며 한쪽 다리가 접혔다.
루카는 벽의 조작판으로 달려갔다.
“보안 체계를 다시 켤 거야!”
“그러면 우리도 공격해.”
“모두 같은 표적이 되면 적어도 여섯 대 둘은 아니지.”
그녀가 두 선을 맞붙이자 천장의 감시 팔들이 되살아났다. 붉은 광선이 방 안을 훑으며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겨눴다. R 계열 기체들이 즉시 흩어졌다.

로보는 바닥에 떨어졌다. 일어나려 했지만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로노.”
그가 처음으로 번호나 질문 없이 이름만 불렀다.
크로노는 달려가려다 멈췄다. 두 기체가 로보와의 사이를 막았고, 뒤에서는 감시 팔의 빛이 좁혀지고 있었다. 그는 반대편 컨베이어의 손잡이를 보았다.
금속 막대를 던져 손잡이를 내리자 멈췄던 벨트가 갑자기 역방향으로 움직였다. 발판 위의 기체 셋이 서로 부딪쳤다. 루카가 매달린 사슬을 풀어 운반 집게를 떨어뜨렸고, 무거운 갈고리가 두 놈 사이를 갈랐다.
크로노는 그 틈으로 들어갔다.
그가 쓰러진 로보의 어깨를 잡는 순간, 뒤에서 기계의 손이 외투를 움켜쥐었다. 몸이 들려 올라갔다. 옆구리의 상처가 당겨지며 숨이 막혔다.
“인간은 생산을 중단시켰다.”
기계가 그를 벽으로 던지려 팔을 뒤로 뺐다.
로보의 오른손이 놈의 손목을 잡았다.
한쪽 눈만 남은 푸른빛이 선명해졌다.
“이 인간은 나를 가동시켰다.”
로보가 손목을 비틀었다. 금속이 찢어지고 크로노의 외투가 풀려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몸을 굴려 충격을 흘렸다.
“그것은 수리일 뿐이다.”
“나에게는 시작이었습니다.”
로보가 어깨로 상대를 밀어냈다. 찌그러진 가슴 안에서 불규칙한 회전음이 났다. 그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루카가 비상등의 전력선을 뽑았다.
공장이 어두워졌다.
R 계열의 눈과 감시 장치만 남아 서로를 붉게 비췄다. 크로노는 빛의 방향으로 위치를 읽었다. 한 기체가 달려들 때 옆으로 피한 뒤, 바닥에 흘러 있던 기름 통을 걷어찼다. 루카가 축전지의 두 극을 맞대 불꽃을 튀겼다.
기름 위로 불이 번졌다.
불길은 적을 태우기보다 시야를 갈랐다. 열을 피하려 R 계열이 한쪽으로 모이자 로보가 마지막 힘으로 운반대를 밀었다. 수백 킬로그램의 금속판이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며 세 기체를 벽에 눌렀다.
남은 셋이 동시에 방향을 바꾸었다.
하나는 로보를 향했고, 둘은 크로노와 루카를 갈라놓으려 했다. 크로노는 금속 막대를 짧게 잡아 첫 공격을 흘렸다. 칼처럼 자르지는 못했지만 무게를 옆으로 밀어내는 데는 충분했다. 루카는 바닥을 기어 컨베이어 아래로 들어간 뒤, 놈의 발목에 느슨한 사슬을 걸었다.
크로노가 사슬 끝을 당겼다.
기체가 뒤로 넘어졌다. 루카는 곧바로 머리 덮개를 열어 전력선을 끊었다. 손목에 통증이 올라와 손가락이 떨렸지만, 두 번째 선까지 정확히 찾아냈다.
다른 한 대가 그녀를 향해 팔을 내리쳤다.
크로노가 사이에 금속 막대를 세웠다. 충격이 양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랐다. 막대가 휘며 그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로보가 옆에서 기계의 허리를 붙잡았다.
“아래로 이동하십시오.”
루카와 크로노가 몸을 낮추자 로보의 가슴 덮개가 열렸다. 내부의 축전 장치에서 모인 에너지가 짧은 빛으로 방출되었다. 섬광은 상대 기체의 감각부를 정면으로 때렸다. 놈이 비틀거리는 사이 크로노가 휘어진 막대를 두 다리 사이에 밀어 넣었고, 루카가 운반대의 제동 장치를 풀었다.

벽에 눌려 있던 세 기체와 마지막 두 기체가 한꺼번에 레일 아래로 쏟아졌다. 깊은 처리 구역에서 연속된 충돌음이 들렸다. 잠시 뒤 붉은 눈들이 하나씩 꺼졌다.
로보만 서 있었다.
그는 크로노와 루카를 확인한 뒤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오른쪽 무릎이 꺾였고, 무거운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루카가 곁으로 달려갔다.
“로보, 내 말 들려?”
한쪽 눈에서 가느다란 빛이 남아 있었다.
“귀환 조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나중에 해도 돼.”
“프로메테 돔의 문은 주전원이 필요합니다.”
크로노가 공장 지도를 펼쳤다. 주전원실은 바로 아래층이었다. 로보를 두고 갈 수는 없었지만, 전원을 바꾸지 않으면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문도 열리지 않았다.
루카는 로보의 전력선을 확인했다.
“보조 회로를 분리하면 잠깐은 버틸 수 있어. 대신 그동안 완전히 꺼질 거야.”
로보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다시 가동할 수 있습니까?”
루카는 대답하기 전에 손상된 가슴과 끊어진 팔을 보았다.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자신 있게 말하는 습관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멈췄다.
“해 볼 거야.”
“정확하지 않은 답변입니다.”
“그래. 하지만 포기한다는 답보다는 정확해.”
로보의 빛이 짧게 깜박였다.
“동의합니다.”
루카가 선을 분리하자 눈이 꺼졌다.
두 사람은 로보를 운반대 위에 눕히고 아래층으로 밀었다. 주전원실의 문은 네 단계의 신호를 입력하자 열렸다. 안쪽에는 거대한 회전축이 지하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공장이 멈춘 뒤에도 중심부는 느리게 돌아가며 열을 뿜었다.
“전원을 켜는 게 아니었어.”
루카가 배치를 살폈다.
“공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 프로메테 돔으로 가는 선만 차단돼 있었던 거야. 이걸 풀면 과부하가 시작될 수 있어.”
“얼마나?”
“모르겠어.”
크로노는 로보를 보았다. 그리고 벽의 우회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둘이 함께 당겼다.

바닥 아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깨어나는 소리가 났다. 푸른 전류가 천장의 선을 따라 공장 밖으로 달려갔다. 멀리 프로메테 돔 쪽에서 희미한 빛이 켜졌다.
그 직후 경보가 울렸다.
회전축의 속도가 빨라지고 벽마다 붉은 글자가 번졌다. 냉각 장치가 오래전에 고장 나 전력 우회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경고였다.
“이제 뛰어야 해.”
두 사람은 운반대를 밀었다.
올 때 지나온 길은 같은 모양이 아니었다. 컨베이어가 제멋대로 속도를 바꾸고, 천장에서 부품이 떨어졌다. 불이 번진 운송 구역에서는 검은 연기가 길을 가렸다. 크로노가 앞에서 잔해를 치웠고 루카는 뒤에서 로보가 떨어지지 않게 몸을 눌렀다.
입구를 앞두고 바닥이 크게 기울었다.
운반대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크로노가 손잡이를 잡았지만 한 손의 붕대가 벗겨지며 상처가 다시 찢어졌다. 무게에 끌려 발이 가장자리로 밀렸다.
루카가 운반대 반대편 바퀴에 공구를 끼웠다. 바퀴가 멈추는 동안 크로노가 몸을 세워 방향을 바꿨다. 두 사람은 마지막 경사로를 거의 굴러 내려왔다.
공장 밖의 바람이 얼굴에 닿았을 때 뒤쪽 입구가 무너졌다.
프로메테 돔까지 이어진 전력선은 푸른 불꽃을 튀기며 살아 있었다. 하지만 로보의 몸은 사람이 둘이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운반대의 한쪽 바퀴마저 부서져 더 움직이지 않았다.
크로노가 로보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루카는 반대쪽에서 허리를 받쳤다. 금속 발이 땅을 끌며 깊은 자국을 남겼다.
두 사람의 걸음은 곧 느려졌다.
그때 프로메테 돔의 문이 열렸다.
마르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한 손에는 길게 묶은 케이블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말을 아끼고 로보의 몸에 고리를 건 뒤, 돔 안의 모터를 작동시켰다.
세 사람이 함께 케이블을 당겼다.
금속 몸체가 문턱을 넘는 순간 외부 전력선이 폭발했다. 격리문은 열린 상태로 멈췄지만 공장 쪽의 푸른빛은 모두 사라졌다.
마르는 바닥에 눕힌 로보를 보았다.
“왜 눈을 안 떠?”
루카는 대답하지 않고 공구 가방을 열었다. 손상된 덮개를 분리하고 끊어진 선을 바닥에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손목은 붓고 손끝에는 검은 기름이 묻었지만, 움직임은 차분했다.
크로노가 조명 장치를 가져왔고 마르는 남은 천과 물을 모았다.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로보가 단지 기계이기 때문에 다시 고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를 깨웠을 때는 작동 여부만 확인하면 되었다. 이제 그들이 되찾으려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름으로 불렀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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