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14화] 이름을 얻은 기계

기계의 목소리는 오래 쓰지 않은 금속처럼 갈라져 있었다.

루카는 연결한 선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나는 루카. 이쪽은 크로노, 그리고 마르.”

푸른 눈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한 사람씩 향했다. 기계는 일어나려 했지만 오른쪽 무릎이 접히지 않아 다시 벽에 부딪쳤다. 크로노가 어깨를 받치자 녹슨 관절에서 낮은 마찰음이 났다.

“손상 상태를 확인 중입니다.”

“그건 내가 하고 있어.”

루카가 무릎 덮개를 열었다. 먼지와 굳은 윤활유를 닦아 내고 휘어진 축을 바로잡는 동안, 마르는 가슴에 남은 글자를 읽었다.

“R66-Y. 이게 이름이야?”

“기체 식별 번호입니다.”

“번호는 부를 때 너무 길어.”

마르는 잠시 생각하다가 기계의 둥근 얼굴을 보았다.

“로보는 어때?”

“로보.”

그가 새 단어를 내부에서 굴리듯 천천히 반복했다.

수리를 마치고 로보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R66-Y - ちょろ
수리를 마치고 로보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R66-Y - ちょろ

“호칭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야?” 루카가 물었다.

로보의 눈이 한 번 깜박였다.

“마음에 든다는 판단 기준이 없습니다.”

마르는 웃으려다 멈췄다. 그 대답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웃음이 그를 놀리는 일이 될까 생각한 얼굴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만들어 보면 되겠다.”

수리를 마친 로보가 일어섰다. 머리는 크로노보다 조금 높았고,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는 홀을 둘러본 뒤 쓰러진 경비 기계들과 천장이 무너진 자리를 차례로 확인했다.

“인간 관리 인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시각과 시설 상태를 요청합니다.”

루카는 대답하기 전에 마르를 보았다. 서기 1999년의 기록을 다시 말하는 일은 화면을 보는 것과 다른 무게를 가졌다.

“지금은 서기 2300년이야.”

그녀가 말했다.

“이곳은 오래전에 파괴됐어. 사람들은 조금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시설은 멈췄고.”

로보는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벽면 단말기에 손을 대어 내부 기록을 불러냈다. 화면에는 마지막 점검일과 수백 년 동안 반복된 오류 보고가 빠르게 지나갔다. 마침내 `인간 관리자 응답 없음`이라는 문장이 떠오른 뒤 더 바뀌지 않았다.

“왜 파괴되었습니까?”

“라보스라는 존재가 땅에서 나타났어.” 마르가 말했다. “우리는 기록만 봤고,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

로보는 홀 바깥의 회색빛을 바라보았다.

“나의 임무 기록이 손상되었습니다. 관리자가 없다면 수행할 목적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는 슬픔이 없었다. 그러나 목적이 사라진 사실을 보고하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정확해서, 오히려 빈자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루카는 정보센터에서 베껴 온 지도를 펼쳤다.

“우리는 이 돔 안에 있다는 시간의 문을 찾고 있어. 원래 있던 시대로 돌아가야 해.”

로보는 지도보다 루카의 열쇠 장치에 먼저 반응했다. 푸른 눈에서 가느다란 빛이 나와 수정판의 표면을 훑었다.

“유사 파동을 감지했습니다. 북쪽 격리실에 공간 이상이 있습니다.”

그가 앞장서자 닫혀 있던 문들이 하나씩 열렸다. 로보의 손바닥을 인식한 장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돔 가장 안쪽의 문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꺼운 합금판 중앙에 희미한 푸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너머에서 열쇠 장치의 바늘이 거칠게 흔들렸다.

“저 뒤야.”

루카가 말했다.

로보는 벽의 전력 상태를 확인했다.

“격리문 개방에는 외부 주전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보조 전력으로는 잠금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외부 주전원은 어디에 있어?”

“북쪽 생산 시설.”

천장이 갈라진 틈 너머로 검은 굴뚝들이 보였다. 아리스 돔에서부터 지평선에 서 있던 공장 폐허였다.

마르는 문에 손을 대었다. 차가운 금속 너머에서 시간의 문이 내는 낮은 울림이 손바닥 상처를 간질였다.

“저 공장을 움직이면 돌아갈 수 있는 거네.”

“가능성은 있습니다.” 로보가 말했다. “그러나 생산 시설의 보안 상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위험하다는 뜻이지?”

“그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로보는 북쪽 출구를 열었다.

바깥의 공기는 얇고 차가웠다. 공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바람에 닳은 기계 부품이 묻혀 있었다. 로보는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서서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귀환을 돕는 것이 나의 새 임무입니까?”

루카가 공구 가방의 끈을 고쳐 멨다.

“우리가 명령할 수는 없어. 네가 선택하는 거야.”

“선택.”

“하기 싫으면 여기 있어도 돼.” 마르가 덧붙였다. “우리가 깨웠다고 해서 우리 것이 된 건 아니니까.”

로보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이름이 적힌 자리였다.

“기존 임무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현재 나의 기능은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동행하겠습니다.”

그것이 선택인지 계산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크로노가 먼저 공장 쪽으로 몸을 돌렸고, 로보는 그의 옆에 맞춰 걸었다.

생산 시설 입구는 거대한 금속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안에서는 데운 쇠와 오래된 기름 냄새가 흘러나왔다. 바깥의 폐허가 모든 움직임을 잃은 곳이라면, 이곳은 멈춰야 할 때를 잊은 채 혼자 일하고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안쪽 통로는 두 갈래였다. 왼편은 제어 구역, 오른편은 운송 설비로 이어졌다. 벽면의 안내도에는 주전원을 끄거나 돌리는 장치가 가장 깊은 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격리문을 열려면 공장 전력을 프로메테 돔으로 우회시킨 뒤, 누군가 돔에 남아 잠금 장치를 작동해야 했다.

“한 사람은 돌아가야 해.” 루카가 말했다.

마르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기다리기만 하라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문을 여는 거야. 전력은 오래 유지되지 않을 수 있어. 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조작해야 해.”

“그건 너밖에 못 하잖아.”

“아니.”

루카는 프로메테 돔의 잠금판을 종이에 그려 간단한 순서를 표시했다.

“이 회로는 옛날 방식이라 네가 할 수 있어. 공장 안쪽은 로보의 기록과 내 공구가 필요하고.”

마르는 반박할 말을 찾다가 크로노를 보았다. 그는 말없이 지도를 가리켰다. 공장 안의 세 사람과 돔에 남을 한 사람, 어느 쪽도 덜 중요한 자리가 아니었다.

“전력이 들어오면 바로 열게.”

마르는 종이를 받아 접었다.

“대신 세 사람 모두 돌아와. 문만 열어 놓고 기다리게 하지 말고.”

로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귀환 조건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마르가 프로메테 돔으로 돌아간 뒤, 크로노와 루카, 로보는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감시 장치가 붉게 켜졌다. 천장 레일에서 세 개의 팔이 내려와 침입자를 겨눴다. 로보는 앞을 막아선 채 벽면 단말기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접속 핀이 나와 녹슨 홈과 맞물렸다.

“보안 체계 00을 정지합니다.”

공장 입구의 보안 체계 00을 해제하는 로보 - ちょろ
공장 입구의 보안 체계 00을 해제하는 로보 - ちょろ

기계 팔들이 크로노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붉은 불빛이 흰색으로 바뀌고 첫 번째 방화문이 열렸다.

루카는 로보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이 공장에 접근 권한이 있네.”

“동일 계열 기체의 공통 권한입니다.”

“동일 계열이 더 있다는 말이야?”

로보는 답하기 전에 내부 기록을 검색했다.

“R 계열 배치 정보가 손상되었습니다.”

공장 안쪽에서는 여전히 컨베이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싣지 않은 벨트가 수백 년째 같은 방향으로 돌며 검은 기름을 흘렸다. 위층의 운반 기계들은 존재하지 않는 화물을 집어 옮겼고, 녹슨 상자들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빈 건물 전체가 울렸다.

컨베이어와 경비 기계가 움직이는 공장 운송 구역 - ちょろ
컨베이어와 경비 기계가 움직이는 공장 운송 구역 - ちょろ

세 사람은 먼저 운송 구역으로 향했다.

주전원실의 보안 암호가 그곳 관리 단말기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노는 돌아가는 벨트와 압착기의 간격을 살폈다. 검이 없는 손은 자꾸 허리로 갔지만, 손잡이 대신 차가운 공기만 잡혔다.

로보가 앞에서 떨어지는 상자를 받아냈다. 두 팔에 실린 무게 때문에 바닥이 내려앉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크로노와 루카가 그 아래를 지나자 상자를 옆으로 밀어 길을 만들었다.

“꽤 튼튼하네.” 루카가 말했다.

“작업용 기체라면 이 정도 하중은—”

“칭찬한 거야.”

로보는 몇 걸음 뒤에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관리실은 붉은 운반 통 두 개에 막혀 있었다. 천장 크레인을 움직여야 했지만 조작판의 표시는 닳아 읽을 수 없었다. 루카가 배선을 추적하는 동안 로보는 창 너머의 크레인 움직임을 계산했다. 크로노가 서로 다른 두 손잡이를 순서대로 당기자 집게가 내려와 첫 번째 통을 들어 올렸다.

두 번째 통이 옮겨진 자리에서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아래쪽 단말기에는 색과 소리로 된 네 단계의 보안 순서가 남아 있었다. 루카는 그것을 종이에 옮겼다. 마지막 신호가 입력되자 멀리 주전원실로 이어진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컨베이어가 멈췄다.

공장에 가득하던 반복음이 사라지자 침묵은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로보가 고개를 들었다.

“외부 접속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디서?”

“공장 내부입니다. 복수의 R 계열 신호.”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푸른 눈들이 차례로 켜졌다.

공장 복도에서 여섯 R 시리즈와 마주한 로보 일행 - ちょろ
공장 복도에서 여섯 R 시리즈와 마주한 로보 일행 - ちょろ

하나, 둘, 셋. 빛은 여섯까지 늘어났다.

로보와 같은 높이, 같은 어깨, 같은 걸음의 기계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녹이 슨 정도만 달랐고 가슴에는 모두 R로 시작하는 번호가 남아 있었다.

가장 앞의 기체가 로보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R66-Y.”

그 목소리는 로보가 처음 깨어났을 때의 소리와 닮아 있었다.

“인간과 함께 있는 이유를 보고하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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