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13화] 죽은 땅에 심는 것

아리스 돔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려올 때보다 길었다.

세 사람은 부서진 배관을 붙잡고 지하 계단을 올랐다. 마르가 앞장서서 위쪽 문에 끼워 둔 쇠막대를 확인했고, 크로노는 마지막까지 뒤를 살폈다. 천으로 감싼 검이 가방 옆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둔하게 흔들렸다. 칼날은 남아 있었지만 더는 믿고 휘두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들렸다.

도안은 세 사람이 모두 돌아왔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그다음에야 빈손을 보았다. 홀 안의 기대가 작게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애초부터 바라지 않았다는 듯 화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달려왔다.

“아빠는요?”

마르는 무릎을 굽혔다. 지하에서 가져온 금속 팔찌와 얼룩진 종이를 아이의 어머니에게 건넸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덜 아픈지 찾으려는 동안, 여자는 팔찌를 알아보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분은 식량이 있는 곳까지 갔어요.”

마르가 말했다.

“끝까지 모두에게 가져올 것을 찾고 있었어요.”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아이는 어머니가 주저앉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팔찌에 손을 얹었다. 울음은 한참 뒤에야 나왔다. 돔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말리지 않았다. 오래 굶은 곳에서는 슬픔조차 크게 내보낼 힘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았다.

크로노는 씨앗 주머니를 도안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손바닥 위에 떨어진 몇 알을 오래 바라보았다.

“식량은 아니군.”

루카가 고개를 숙였다.

“저장고는 전부 썩었습니다. 이것만 남았어요.”

도안은 씨앗 하나를 손끝으로 굴렸다. 너무 가벼워서 바닥의 먼지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것이었다.

“물이 모자라고, 햇빛은 이렇소. 흙도 병들었지.”

“그래도 시험해 볼 수는 있어요.” 마르가 말했다. “한꺼번에 다 심지 말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자리마다 흙을 나눠 써요. 싹이 하나라도 나면 그다음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도안은 그녀의 피 묻은 손바닥을 보았다.

“그대들은 돌아갈 길을 찾았소?”

루카가 정보센터에서 베껴 온 지도를 펼쳤다. 아리스 돔 동쪽, 프로메테 돔이라 표시된 지점에 시간의 문과 닮은 파동이 남아 있었다.

“저곳까지 가 봐야 확실해요.”

“그렇다면 씨앗을 가져갈 수도 있었겠군.”

마르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시대로 가져가면 더 좋은 흙과 물로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이 몇 알이 없어도 내일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건 여기서 발견됐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자라야 해요.”

도안의 굽은 어깨가 아주 조금 펴졌다. 그는 홀 안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씨앗을 보여 주었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의 어머니가 일어나 물받이 통 옆의 검은 흙을 손으로 모았다. 다른 사람이 깨진 금속 접시를 가져왔고, 아이는 팔찌를 한 손에 쥔 채 가장 작은 돌을 골라냈다.

씨앗을 건네받은 아리스 돔의 도안과 생존자들 - のんびり、ドラクエプレイ日記
씨앗을 건네받은 아리스 돔의 도안과 생존자들 - のんびり、ドラクエプレイ日記

사람들이 미래를 믿어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움직였고, 그 행동이 믿음의 자리를 조금씩 만들었다.

도안은 창고에서 낡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32호 구역을 지나야 프로메테 돔으로 갈 수 있소. 예전 운송용 주행기가 입구에 남아 있을 거요. 작동한다면 이 열쇠가 깨울 수 있겠지.”

루카가 열쇠의 접촉면을 닦았다.

“작동하지 않으면?”

“그곳을 걸어서 건넌 사람은 많지 않소.”

도안은 그 말 뒤에 붙을 이유를 생략했다. 밖에서 먼 바람이 돔의 외벽을 긁었다.

홀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벌써 심을 자리를 두고 낮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이들이었다. 씨앗은 아직 싹을 틔우지 않았지만, 그 주변에서는 먼저 말이 자라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떠날 때, 아이가 크로노에게 달려왔다. 작은 손에는 씨앗 한 알이 들려 있었다.

“이건 가져가요.”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아빠가 찾은 거니까, 하나는 아저씨들이 지켜 줘요.”

크로노는 자신이 아저씨라고 불린 데 잠시 눈을 깜박였다. 마르의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생겼다. 그는 결국 씨앗을 받아 붕대 안쪽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32호 구역의 입구에는 도안이 말한 주행기가 반쯤 모래에 묻혀 있었다.

32호 구역의 주행기 앞에 모인 크로노 일행 - ちょろ
32호 구역의 주행기 앞에 모인 크로노 일행 - ちょろ

길고 낮은 차체에는 세 사람이 붙어 앉을 만큼의 자리가 있었고, 뒤쪽 추진부는 녹으로 얼룩져 있었다. 루카가 덮개를 열자 안쪽 축전지가 희미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부은 손목으로 전선을 잇다가 두 번이나 공구를 놓쳤다.

마르가 옆에 앉아 손잡이를 잡아 주었다.

“시키는 대로 할게.”

“빨간 선은 건드리지 마. 아니, 그 옆의 빨간 선도.”

“빨간 게 왜 두 개야?”

“만든 사람에게 물어봐.”

금속음이 두 번 끊긴 뒤 추진부에서 푸른 불이 살아났다. 사막처럼 펼쳐진 구역의 잔해 사이로 좁은 직선로가 드러났다.

주행기가 출발하려는 순간, 앞쪽 차단벽 위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렸다.

붉은 차체를 가진 기계가 경사로를 타고 내려왔다. 사람의 상반신을 흉내 낸 몸체 아래에 거대한 바퀴 하나가 달려 있었다. 양팔을 벌린 자세와 번쩍이는 눈은 이 폐허가 자기 무대라고 믿는 자의 것이었다.

“내 길을 그냥 지나가겠다고?”

기계는 자신을 조니라고 소개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컸고, 문장 끝마다 엔진을 울렸다.

“이 구역의 규칙은 하나다. 나보다 빠른 자만 반대편을 본다.”

루카가 차단벽의 잠금 구조를 살폈다.

“옆으로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저쪽 감시 기계들이 몰려오겠지.” 마르가 멀리 움직이는 검은 점들을 가리켰다.

크로노는 주행기의 앞자리에 앉았다. 왼손으로 조향대를 잡고, 붕대 감긴 오른손은 추진 손잡이 위에 올렸다.

조니가 웃었다.

“말 없는 친구가 마음에 드는군. 패배할 때 핑계도 짧겠어.”

출발 신호는 총성이 아니라 두 엔진의 폭발음이었다.

폐허의 도로에서 조니와 벌이는 주행기 경주 - ちょろ
폐허의 도로에서 조니와 벌이는 주행기 경주 - ちょろ

주행기가 앞으로 튀어나가자 마르가 크로노의 허리를 붙잡았고, 루카는 뒤쪽 덮개가 열리지 않게 온몸으로 눌렀다. 직선로라던 길은 곳곳이 솟아 있고 갈라져 있었다. 크로노는 무너진 표지판과 차량 잔해 사이의 빈틈을 골랐다.

조니는 속도로 밀어붙였다. 붉은 바퀴가 옆으로 붙을 때마다 차체가 부딪쳐 세 사람의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왼쪽 앞, 바닥 꺼졌어!”

루카의 외침에 크로노가 조향대를 꺾었다. 주행기는 끊어진 도로의 가장자리를 비스듬히 탔다. 조니가 같은 길을 막으려 했지만, 마르가 뒤를 보며 타이밍을 읽었다.

“지금 똑바로!”

크로노가 차체를 바로 세우자 조니만 기울어진 잔해 위로 올라갔다. 붉은 기계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욕설과 웃음을 함께 쏟아 냈다. 착지한 뒤에는 오히려 더 빠르게 따라붙었다.

결승의 차단벽이 가까워질 무렵 주행기의 추진음이 낮아졌다.

“전지가 끝나 가!” 루카가 덮개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한 번은 더 밀어낼 수 있어. 대신 끝나면 완전히 멈춰.”

크로노는 앞을 보았다. 조니는 반 바퀴쯤 앞서 있었다. 그를 추월하려면 지금 힘을 써야 했다. 그러나 차단벽 너머까지 나아갈 여유가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당기지 않았다.

마르가 먼저 알아차렸다. “마지막까지 남겨 두려는 거지?”

조니가 결승선 직전에서 차체를 돌렸다. 이겼다는 것을 보여 주려 뒤를 향해 달리는 순간이었다.

크로노는 그때 남은 힘을 열었다.

푸른 불꽃이 길게 뻗었다. 주행기가 붉은 차체 옆을 스치며 차단벽을 통과했다. 조니의 웃음이 잠깐 끊겼다가, 곧 폐허 전체를 울릴 만큼 커졌다.

“다음에는 내 길을 외우고 와라!”

그는 차단벽을 열어 둔 채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패배를 인정하는 말은 없었지만 닫힌 길은 열려 있었다.

프로메테 돔은 아리스 돔보다 더 조용했다.

안쪽 홀에는 인간이 머문 흔적이 거의 없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작은 경비 기계들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크로노는 부러진 난간을 뽑아 앞을 막았고, 마르는 늘어진 전선을 기계의 바퀴에 감았다. 루카가 벽의 전력판을 열어 전류를 끊자 놈들의 눈이 차례로 꺼졌다.

홀 중앙에는 다른 기계 하나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프로메테 돔에서 멈춰 있는 R66-Y를 발견한 일행 - ちょろ
프로메테 돔에서 멈춰 있는 R66-Y를 발견한 일행 - ちょろ

사람과 비슷한 크기였다. 둥근 머리와 넓은 어깨, 녹색 금속으로 덮인 몸체는 곳곳이 녹슬었지만 파괴된 흔적은 없었다. 가슴에는 `R66-Y`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루카는 통증도 잊은 채 그 앞에 앉았다.

“고장 난 게 아니라 멈춰 있어. 전력 회로 몇 개만 이어 주면 될지도 몰라.”

마르가 기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깨우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어.”

루카는 솔직하게 대답하고 공구를 꺼냈다.

크로노가 금속 막대를 든 채 기계 옆에 섰다. 그러나 그의 자세는 부수기 위한 것보다, 깨어난 뒤 서로를 볼 시간을 벌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루카가 마지막 선을 연결했다.

기계의 가슴 안쪽에서 오래 멈춰 있던 톱니가 한 번 움직였다. 먼지가 관절 사이에서 떨어지고, 손가락이 천천히 접혔다.

어두웠던 두 눈에 푸른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세 사람을 차례로 훑은 뒤,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루카 앞에서 멈췄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참고자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