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소설 5화] 늦게 멈춘 그림자
대리석 바닥에 비친 그림자가 한 박자 늦게 칼을 들었다.
알루카드는 이미 멈춰 있었다. 그러나 바닥 속의 그는 아직 걷고 있었다. 흰 얼굴, 검은 망토, 피가 굳은 손, 연구동에서 걸친 낡은 흉갑. 모든 윤곽이 같았다. 다만 멈추는 시간이 달랐다. 반사된 발끝이 뒤늦게 정지하고, 망토의 끝이 물속 천처럼 천천히 가라앉았다.
회랑의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멀리서 현이 낮게 떨리고, 벽의 촛불은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렸다. 그림 속 귀족들은 여전히 죽은 눈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닥 안쪽에서만 시간이 조금 어긋나 있었다.
알루카드는 검끝을 내렸다.
바닥 속의 검끝도 내려갔다.
이번에는 너무 빠르게.
그는 손목을 아주 조금 돌렸다. 반사된 손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는 무게가 없었다. 손목을 돌릴 때 힘줄이 당겨지는 미세한 주저, 검자루가 손바닥의 상처를 누를 때 생기는 짧은 정지, 어깨의 베인 자국이 당겨져 숨이 아주 얕아지는 순간. 바닥 속의 것은 그런 것을 모른다. 겉모습만 맞추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발을 옮겼다.
그림자도 옮겼다.
하지만 따라오는 소리는 바닥 아래가 아니라 회랑 끝에서 났다. 같은 높이, 같은 간격, 같은 발뒤꿈치의 침묵. 돌 위를 가볍게 스치고, 망토가 뒤늦게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 그는 고개를 들었다. 긴 회랑의 끝, 조각상들 사이로 희미한 인영이 사라졌다. 흰 머리칼 같기도 했고, 촛불의 잔상 같기도 했다.
그는 뒤쫓지 않았다.
대신 대리석 바닥에서 발을 떼며, 비친 그림자를 보지 않도록 시선을 벽 쪽으로 돌렸다. 이 성에는 눈으로 보는 길보다 눈이 속는 길이 더 많다. 그림자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바닥 속 깊은 데에서, 그를 기다리듯 같은 방향으로 얼굴을 돌린 채.
회랑은 넓었다. 천장은 높고, 기둥 사이에는 금박을 두른 조각들이 서 있었다. 그 조각들의 손에는 악기와 잔, 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아름다운 것이 너무 오래 방치되면 위협처럼 보인다. 대리석의 결은 물결 같았고, 그 물결 아래로 방금 본 그림자가 계속 헤엄치는 것 같았다.
알루카드는 걷는 속도를 늦췄다. 너무 빠르면 성이 먼저 반응한다. 너무 느리면 성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그 중간의 속도를 골랐다.
왼쪽 벽의 촛대 하나가 흔들렸다.
금속 받침대 아래에서 작은 테이블이 움직였다. 네 다리가 달린 낡은 탁자였다. 그 위에는 접시도 잔도 없었는데, 다리 끝만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탁자는 갑자기 회랑을 가로질러 돌진했다. 알루카드는 옆으로 비켜섰다. 탁자의 모서리가 흉갑을 긁고 지나가 벽에 부딪혔다. 나무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었다.
그 먼지 속에서 해골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뼈는 얇았고, 손에는 작은 방패와 칼이 있었다. 연구동의 해골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리석 바닥은 미끄럽다. 알루카드는 첫 베기를 바로 넣지 않고, 해골이 먼저 들어오도록 기다렸다. 칼이 내려오는 순간, 그는 한 발을 뒤로 미끄러뜨리고 검을 짧게 올렸다. 손목뼈가 끊겼다. 이어 목뼈. 해골은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뼈 조각이 대리석 위로 굴러갔다.
바닥 속의 반사가 그 조각을 조금 늦게 삼켰다.
알루카드는 다시 걸었다.
회랑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앞서 지나친 낮은 길의 기척과 닮았다. 그때는 여러 갈래가 너무 빨리 자신을 드러냈고, 그는 성이 열어 둔 것과 아직 닫아 둔 것을 구분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높이 닿는 능력은 생겼지만, 모든 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어떤 바닥은 아직 잠겨 있고, 어떤 통로는 아직 다른 열쇠를 기다린다.
아래층은 더 어두웠다. 붉은 카펫이 중간에서 끊겨 있었고, 벽의 그림들은 위층보다 낮은 곳에 걸려 있었다. 눈높이에 맞춰 놓인 초상화는 사람을 더 집요하게 바라본다. 알루카드는 그 시선들 사이를 지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작은 구슬이 떠 있었다.
구슬 안에는 희미한 혼불이 갇혀 있었다. 불은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쪽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듣는 듯했다. 알루카드는 손을 뻗었다. 구슬은 그의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깨지지 않고 스며들었다. 순간, 검자루를 쥔 손가락의 감각이 달라졌다.
상처의 깊이.
충격의 무게.
베인 것이 단단한지, 빈 껍질인지, 죽은 살인지. 이전에도 그는 경험으로 그것을 알았다. 이제는 몸이 조금 더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칼날이 닿는 순간, 적의 버팀과 균열이 아주 얇은 반향처럼 돌아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숫자로 바뀐 것이 아니라, 침묵하던 상처들이 자기 무게를 말하기 시작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손을 거두었다.
방 안에는 더 남은 것이 없었다. 다만 나가기 전, 벽 가까운 곳에서 다시 발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아주 작게. 그의 발이 멈추자 그 소리도 멈췄다. 알루카드는 천천히 돌아섰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검을 다시 고쳐 쥐었다. 손바닥의 유리 상처는 거의 닫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이 아주 가는 실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실을 의식하며 걸었다. 흉내 내는 것은 대개 상처를 모른다. 상처를 모르는 것은 움직임의 이유를 모른다.
회랑은 곧 긴 통로로 변했다.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는 계단들이 서로 엇갈리고, 때때로 벽이 열려 짧은 방을 보여 주었다. 어떤 방에는 촛불이 지나치게 많았고, 어떤 방에는 하나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칼날 달린 갑옷이 걸어 나왔다. 둥근 접시 같은 방패를 들고, 몸 전체를 앞으로 밀며 다가왔다.
알루카드는 정면을 피했다. 방패를 쳐 내기보다 발목을 노렸다. 대리석 위에서 갑옷은 무거웠다. 무거운 것은 멈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첫 돌진을 흘리고, 갑옷의 뒤쪽으로 들어가 무릎 뒤를 베었다. 금속이 꺾이는 소리. 갑옷이 한쪽으로 기울자, 그 틈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속은 비어 있었다. 빈 것일수록 쓰러질 때 크게 울린다.
그 소리 뒤에서, 또 다른 소리가 겹쳤다.

같은 검을 같은 각도로 뽑는 소리.
알루카드는 이번엔 회랑 끝을 향해 뛰었다. 망토가 뒤로 길게 펴졌다. 계단을 두 개씩 넘고, 난간을 짚어 몸을 돌렸다. 어둠 속 인영은 다시 한 번 기둥 사이로 사라졌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보여 주는 움직임이었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인위적이었다. 알루카드가 갈 수 있는 거리만큼만 앞서고, 그가 멈추면 멈춘다.
성은 먹이를 부를 때도 길을 쓴다.
그는 그 길을 따라갔다.
통로 끝에서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대리석의 냄새가 갑자기 얇아지고, 돌벽 사이로 밤의 차가움이 새어 들어왔다. 문턱을 넘자 성의 외벽이 나타났다.
바람이 먼저 얼굴을 쳤다.
Outer Wall은 밤 위에 세운 수직의 길이었다. 안쪽 회랑이 수평의 미로라면, 이곳은 위와 아래로 길이 갈라졌다. 왼쪽에는 성의 검은 몸체가 끝없이 이어졌고, 오른쪽은 허공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숲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먼저 있고, 그 어둠 속 어디에 숲이 있을 것이다. 깃발은 찢어진 채 벽에 붙어 있었고, 낡은 돌난간에는 오래된 비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람은 이곳에서 음악 대신 움직였다. 높이 올라갈수록 음이 가늘어지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낮은 울림이 벽 속으로 사라졌다. 알루카드는 한 손으로 망토를 붙잡았다. 연구동에서 걸친 붉은 천은 방금 전보다 훨씬 불안하게 펄럭였다. 바깥의 적은 소리보다 바람을 먼저 타고 온다.
돌계단 위쪽에서 활시위가 당겨졌다.
그는 몸을 낮췄다. 뼈 화살이 머리 위를 지나가 외벽 밖으로 사라졌다. 뼈 궁수는 난간 위에 앉아 있었다. 살점 하나 없는 손가락이 두 번째 화살을 당겼다. 알루카드는 계단을 곧장 오르지 않았다. 왼쪽 벽을 향해 뛰어오르고, 두 번째 도약으로 난간의 높이를 맞췄다. 궁수의 화살이 아래를 향한 순간, 그는 이미 옆에 있었다. 칼끝이 목뼈를 끊었다. 해골은 활과 함께 허공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착지하기도 전에 노란 메두사의 머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뱀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눈은 작고 밝았다. 움직임은 곡선이었다. 직선으로 피하면 따라온다. 알루카드는 멈추지 않고 아래로 반 걸음 내려섰다. 메두사의 머리는 그가 있던 높이를 지나 벽에 부딪힐 듯 휘었다. 그는 돌아오는 곡선을 기다렸다가 검등으로 쳐냈다. 머리는 깨지며 노란 빛을 흩뿌렸다.
그 빛 아래에서 파란 메두사의 머리가 또 올라왔다.
성은 외벽에서도 반복을 좋아했다. 하나를 읽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둘째는 조금 다른 높이로 온다. 셋째는 바람이 방향을 바꾼 뒤 온다. 알루카드는 계단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뛰지 않았다. 뛰는 순간 곡선을 잃는다. 발 하나를 놓고, 검을 낮게 세우고, 머리들이 그려 내는 물결 사이를 걸었다.
위쪽 통로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서 있었다. Armor Lord라 부르기에 알맞은 덩치였다. 양손에 든 긴 칼은 사람의 키만 했고, 갑옷의 어깨는 문틀처럼 넓었다. 기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알루카드가 세 걸음 안으로 들어가자, 칼끝이 바닥을 긁었다.
첫 공격은 넓었다.
알루카드는 뒤로 물러나며 칼의 끝을 보았다. 큰 무기는 시작보다 끝이 위험하다. 휘두른 뒤에 늦게 따라오는 칼끝이 한 박자 더 공간을 지배한다. 그는 그 끝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짧은 검이 갑옷의 옆구리를 쳤다. 낮은 울림. 새로 얻은 구슬의 감각이 손목으로 돌아왔다. 속이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빈 것은 아니다. 무언가가 갑옷 안에서 칼을 들고 있었다.
기사가 두 번째로 휘둘렀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였다. 알루카드는 옆으로 피하고, 계단 한 칸을 내려갔다. 큰 칼이 돌을 쳐서 불꽃을 냈다. 그 순간 손도끼를 던졌다. 도끼는 갑옷의 투구를 맞히지 못했다. 대신 어깨 장식에 박혀 균형을 조금 흐트러뜨렸다. 그 작은 기울기가 충분했다. 알루카드는 올라서며 검을 찔렀다. 갑옷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기사는 칼을 떨어뜨리고 무너졌다.
그가 손도끼를 회수하려 몸을 낮추는 순간, 위쪽에서 또 발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숨지 않았다.
같은 발소리였다. 그러나 외벽의 돌계단 위에서 들으니 더 불길했다. 대리석의 반사가 아니라, 실제 무게를 가진 발. 알루카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위쪽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안쪽에서 희미한 색이 흔들렸다. 무지갯빛이라고 부르기엔 탁하고, 피막 안쪽에서 빛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바닥의 먼지가 두 줄로 밀려 있었다. 누군가 방금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간 흔적.
알루카드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까운 저장실을 확인했다. 붉은 빛이 조용히 떠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짧게 숨을 돌렸다. 피로가 낮아지고, 어깨의 상처가 조금 닫혔다. 그러나 마음속의 조임은 풀리지 않았다. 쉬는 방의 침묵은 전투를 없애지 않는다. 전투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만들 뿐이다.
그는 다시 나왔다.
문 너머 방은 길었다. 외벽 안쪽에 숨은 전투실이었다. 천장은 높지 않았지만 좌우로 충분히 길었다. 벽 한가운데에는 원형의 거대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태양을 닮은 돌판. 사람의 얼굴도, 짐승의 얼굴도 아닌 중심부가 회전하듯 빛나고 있었다. 문양의 둘레에는 이빨 같은 조각들이 맞물려 있었고, 그 사이로 무지갯빛 어둠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바닥은 이상할 만큼 깨끗했다.
싸움이 일어날 장소는 종종 이렇게 깨끗하다. 피가 닿기 전, 성이 일부러 비워 둔 자리.
알루카드는 방 중앙까지 걸어갔다.
원형 문양이 회전했다.
처음 나온 것은 손이었다. 그의 손과 같은 길이, 같은 창백함, 같은 손가락의 마른 선. 이어 팔, 어깨, 망토, 얼굴. 문양 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액체가 사람 모양을 얻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미 완성된 형상을 문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알루카드였다.
아니, 알루카드의 외곽이었다.
같은 머리칼이 어깨에 닿아 있었고, 같은 망토가 등 뒤로 흘렀다. 얼굴의 선도 같았다. 그러나 눈은 같지 않았다. 눈동자에는 기억이 없었다. 사람이 오래 살아남으면 눈보다 먼저 피로가 생긴다. 저것의 눈에는 피로가 없었다. 상처도 없고, 망설임도 없었다.

도플갱어는 고개를 기울였다.
알루카드가 하지 않은 동작이었다.
그 짧은 차이가 조우의 신호였다.
도플갱어가 먼저 달려왔다. 거리 재는 시간이 없었다. 짧은 검이 낮게 들어오더니 가슴을 향해 위로 베어 올랐다. 알루카드는 정면으로 받았다. 칼과 칼이 부딪혔다. 소리까지 닮아 있었다. 하지만 힘의 배분이 달랐다. 도플갱어의 손목은 지나치게 깨끗하게 움직였다. 부상당한 어깨를 피하려는 작은 틀어짐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빠르다.
알루카드는 두 번째 공격을 흘리려 했다.
실수였다.
도플갱어는 검을 거두는 대신 왼손을 들어 단검을 던졌다. 작은 은빛이 아주 낮게 날아왔다. 알루카드는 뒤늦게 몸을 틀었다. 단검은 허벅지 옆을 스치고 지나가 벽에 박혔다. 얇은 통증이 늦게 올라왔다.
저것은 그의 현재를 베끼지 않았다.
그가 잃어버린 가능성까지 가져온 듯했다. 아직 손에 없는 능력, 아직 몸이 배우지 않은 변형, 그러나 알루카드라는 이름의 그림자 안에 숨어 있는 것들. 성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도플갱어가 다시 뛰었다.
점프의 각도도 닮았다. 그러나 공중에서 몸이 꺾이는 순간, 망토가 날개처럼 벌어졌다. 박쥐의 형상이 잠깐 겹쳤다. 도플갱어는 몸을 사선으로 내리찍으며 내려왔다. 알루카드는 뒤로 빠졌다. 발끝이 바닥을 긁었다. 날개 같은 충격이 코앞을 지나가고, 이어 검이 아래로 꽂혔다. 바닥에 금이 갔다.
도플갱어는 착지하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그 물러나는 모습까지 알루카드의 것이었다. 적의 사정거리 밖으로 반 걸음 빠지고, 손목을 낮게 내려 다음 베기를 숨기는 버릇. 자신의 버릇이 타인의 몸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는 일은 거울보다 불쾌했다. 거울은 적어도 표면에 갇혀 있다. 이것은 숨을 쉬었다.
알루카드는 검끝을 낮췄다.
도플갱어도 낮췄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갔다. 도플갱어도 한 걸음 앞으로 왔다. 둘 사이의 거리는 변하지 않았다. 방 중앙의 태양 문양이 느리게 돌아가고, 벽의 빛이 두 사람의 머리칼에 같은 색을 입혔다. 어느 쪽이 먼저 움직여도, 다른 쪽이 같은 길을 따라올 것이다.
알루카드는 손도끼를 뽑았다.
도플갱어는 단검을 꺼냈다.
알루카드가 던지자 도플갱어도 던졌다. 도끼와 단검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알루카드는 고개를 숙였고, 단검은 머리칼 몇 가닥을 끊었다. 도끼는 도플갱어의 어깨를 스쳤다. 손목에 반향이 돌아왔다. 깊지 않다. 그러나 비어 있지도 않다. 상처가 생기는 몸. 그렇다면 쓰러질 수 있다.
도플갱어가 맞은 어깨를 한 번 보았다.
처음으로 반응이 늦었다.
그 늦음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손상을 이해하려는 지연이었다. 알루카드는 그 순간 앞으로 들어갔다. 짧은 검이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도플갱어는 간신히 옆으로 피했지만, 검끝이 망토 아래를 찢었다. 검은 천 조각이 떨어졌다. 떨어진 조각은 바닥에 닿자마자 물처럼 녹았다.
그러나 도플갱어도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알루카드의 팔이 뻗은 순간, 그것은 몸을 낮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같은 방식.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짧은 검이 옆구리를 그었다. 흉갑이 막지 못한 틈이었다. 알루카드는 숨을 짧게 뱉고 뒤로 물러났다.
피가 손가락 아래로 내려갔다.
도플갱어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어깨의 상처에서 검은 안개가 아주 조금 새어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안개는 곧 피부처럼 닫혔다. 회복이 빠른 것이 아니라, 형태가 상처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알루카드는 옆구리를 누르지 않았다. 손으로 막으면 손 하나를 잃는다. 그는 대신 발을 바꾸었다. 오른발을 반 걸음 뒤로, 왼쪽 어깨를 낮게. 부상당한 쪽을 감추는 자세. 도플갱어는 그 자세까지 따라 했다.
그때 알루카드는 처음으로 그것이 모르는 것을 보았다.
저것은 따라 한다.
그러나 왜 그렇게 서는지는 모른다.
옆구리를 다친 알루카드에게 그 자세는 방어였다. 다치지 않은 도플갱어에게는 의미 없는 흉내였다. 그래서 균형이 어긋난다. 왼쪽 어깨를 낮추었는데, 오른발에 실어야 할 무게가 없다. 허리가 너무 곧다. 눈이 너무 앞을 본다.
알루카드는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성급한 발견은 곧 덫이 된다. 그는 다시 두 걸음 물러났다. 도플갱어가 같은 간격으로 따라왔다. 검이 부딪혔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는 도플갱어가 갑자기 안개로 흩어졌다.
검이 허공을 베었다.
차가운 기운이 뒤쪽으로 미끄러졌다. 알루카드는 몸을 돌렸다. 안개가 그의 등 뒤에서 다시 사람의 형상을 얻었다. 검이 내려왔다. 그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어깨 위로 칼날이 스쳤다. 연구동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도플갱어는 이어서 박쥐처럼 몸을 접고 들이받았다. Wing Smash. 날개 같은 망토가 단단한 타격으로 변해 옆에서 밀어붙였다. 알루카드는 팔을 들어 막았지만 충격은 몸 전체를 밀었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그는 벽 가까이까지 튕겼다. 등 뒤의 돌이 어깨를 받았다. 숨이 한순간 끊겼다.
도플갱어는 기다리지 않았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아래로 베어 내렸다. 첫 번째는 머리를 향했다. 알루카드는 옆으로 굴렀다. 두 번째는 착지 직후 허리를 향했다. 그는 검으로 받았다. 세 번째는 받는 동작을 예상하고 더 늦게 들어왔다. 그의 팔이 밀렸다. 칼끝이 뺨을 스쳤다. 피가 한 줄 흘렀다.
도플갱어의 반복은 정확했다.
그러나 너무 정확했다.
살아 있는 몸은 전투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변한다. 숨이 흔들리고, 발목이 늦어지고, 통증이 선택을 줄인다. 도플갱어는 상처를 입고도 같은 각도로 뛰었다. 같은 거리에서 단검을 던지고, 같은 높이에서 내려 베었다. 처음엔 그것이 무서웠다. 이제는 길이 보였다. 흉내의 선이 바닥 위에 그려졌다.
알루카드는 검을 낮게 늘어뜨렸다.
지친 척은 아니었다. 실제로 피로했다. 숨은 무겁고, 옆구리는 뜨거웠다. 그는 그 피로를 숨기지 않았다. 대신 더 분명히 드러냈다. 어깨를 조금 떨어뜨리고, 오른손의 힘을 약간 풀었다. 검끝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도플갱어도 검끝을 내렸다.
그러나 그 손에는 피로가 없었다. 그래서 너무 느슨했다.
알루카드는 눈을 들지 않은 채 발만 움직였다. 바닥의 반사로 도플갱어의 무릎을 보았다. 저것은 지금 그가 올려 베기를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과거의 알루카드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상처를 감추고, 낮은 자세에서 위로 파고들어 단숨에 끝내려는 움직임. 그 버릇을 성은 훔쳐 갔다.
그는 반대로 했다.
검을 버리듯 손목을 풀었다.
도플갱어의 눈이 아주 짧게 검끝을 따라 내려갔다. 그 한 순간, 알루카드는 왼손으로 망토를 잡아 앞으로 던졌다. 붉은 천이 피처럼 펼쳐졌다. 도플갱어는 그것을 베었다. 칼날이 천을 가르는 동안, 알루카드는 검을 위로 들지 않고 아래로 더 낮췄다. 발목. 무릎. 허벅지.
사람의 모습을 한 것들은 낮은 상처를 늦게 경계한다.
칼날이 도플갱어의 다리를 베었다.
이번에는 깊었다. 손목으로 돌아온 반향이 달랐다. 겉껍질이 아니라 중심으로 이어진 균열. 도플갱어가 처음으로 자세를 잃었다. 그 몸이 안개로 흩어지려 했지만, 다리의 상처가 형태를 붙잡았다. 검은 안개가 아래쪽에서 말려 올라오다가 다시 살처럼 굳었다.
알루카드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도플갱어가 단검을 던졌다. 알루카드는 피하지 않고 망토의 찢어진 자락으로 그것을 감쌌다. 단검이 천 안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는 그대로 도플갱어의 손목을 밟듯 밀고 들어갔다. 두 검이 가까이서 부딪혔다. 불꽃이 튀었다. 같은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 눈은 아직도 비어 있었다.
알루카드는 그 눈을 보며 아주 낮게 숨을 들이마셨다. 말하지 않았다. 저것은 말을 들을 귀가 없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할 영혼이 없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처럼 보였으나, 실은 자기 자신의 껍질을 입은 성의 기관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붙잡았다. 그래야 검이 흔들리지 않는다.
도플갱어가 갑자기 입을 벌렸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몸이 붉은 빛에 젖었다. 문양 속 무지갯빛이 그 등으로 흘러 들어갔다. 상처 난 다리가 잠깐 떨리더니, 형태가 다시 매끄러워졌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메워졌다. 변화였다. 이제 그것은 단순히 따라 하지 않는다. 따라 하다가 틀어진 부분을 억지로 다시 맞춘다.
도플갱어가 안개가 되었다.
이번에는 등 뒤가 아니었다. 알루카드의 발밑을 스쳤다. 낮은 안개가 돌바닥 위를 미끄러지고, 그의 그림자를 감싸듯 지나갔다. 알루카드는 두 번째 도약으로 위로 빠졌다. 그러나 도플갱어는 이미 박쥐 형상으로 따라 올라왔다. 날개가 접히고, 몸이 옆에서 들이받았다. 그는 공중에서 검을 세워 충격을 받았다. 팔이 저렸다. 몸이 회전하며 떨어졌다.
착지 직전, 그는 손끝으로 바닥을 짚었다.
넘어지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는 데 힘을 다 쓰지도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몸을 낮췄다. 도플갱어는 이미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로 베는 공격. 같은 각도. 같은 속도. 그러나 이번에는 알루카드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칼날이 내려오는 선보다 반 걸음 안쪽으로 들어갔다. 칼의 위험한 부분은 끝이다. 손잡이 가까이는 좁고 둔하다.
도플갱어의 검이 그의 어깨 뒤를 스쳤다. 알루카드의 칼은 도플갱어의 가슴 아래로 들어갔다.
짧은 거리라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몸으로 밀었다.
두 사람의 어깨가 부딪혔다. 같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루카드는 검자루를 양손으로 잡고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상처가 갈라졌다. 도플갱어의 몸속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뒤로 빠지려 했다. 알루카드는 따라갔다. 검을 뽑지 않고, 박힌 채로 한 걸음 더 밀었다.
원형 문양이 뒤에 있었다.
도플갱어는 그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것도 알았다. 처음으로 저항의 방향이 달라졌다. 왼손으로 알루카드의 손목을 잡고, 오른손의 검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려 했다. 알루카드는 손목을 빼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아주 조금 숙였다. 칼날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는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도플갱어의 무릎을 걷어찼다.

상처 난 다리였다.
도플갱어가 무너졌다. 알루카드는 검을 뽑았다. 검은 안개가 상처에서 쏟아졌다. 그는 한 번 더 베었다. 이번엔 목. 그러나 머리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형태가 흐려지며 칼날을 피했다. 도플갱어는 뒤로 굴러 문양 앞에 섰다.
그 몸이 빠르게 바뀌었다. 안개, 박쥐, 사람. 다시 안개. 다시 사람. 형태들이 서로를 밀어내며 겹쳤다. 흉내가 깨지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에 박쥐의 날개가 붙고, 망토가 피부처럼 들러붙었다가 떨어졌다. 눈동자 속에 처음으로 공포 비슷한 흔들림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빌려 온 감정처럼 얕았다.
알루카드는 다가갔다.
도플갱어가 마지막 단검을 던졌다. 그는 검으로 쳐 냈다. 단검은 원형 문양의 둘레에 박혔다. 문양이 크게 흔들렸다. 도플갱어가 달려들었다. 칼을 높이 들었다. 처음 조우했을 때의 첫 공격과 거의 같은 자세였다. 위에서 아래로, 가슴을 가르기 위한 베기.
알루카드는 왼쪽으로 피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들어가, 상대의 팔 안쪽으로 몸을 붙였다. 칼이 완전히 내려오기 전, 팔꿈치 아래를 왼손으로 밀었다. 도플갱어의 칼끝이 빗나갔다. 동시에 알루카드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가슴에서 어깨까지, 그림자의 중심을 가르는 선.
이번에는 반향이 돌아오지 않았다.
칼날이 중심을 지나간 뒤, 도플갱어의 몸은 텅 빈 종처럼 울렸다.
그것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원형 문양에 등이 닿았다. 문양 속 빛이 갑자기 강해졌다. 도플갱어는 문 밖으로 처음 나왔을 때와 반대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무너지고, 망토가 안개처럼 빨려 들어갔다. 얼굴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알루카드와 같은 얼굴. 그러나 이제 그 얼굴은 닮았다는 사실만 남아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알루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플갱어의 얼굴이 문양 속으로 접혀 들어갔다. 원형의 돌판이 한 번 크게 떨리더니 빛을 닫았다. 방 안에 남은 것은 찢어진 붉은 천 조각, 부러진 단검 하나, 그리고 알루카드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이 끝나면 성은 곧바로 다음 소리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침묵이 길었다. 자기와 같은 발소리가 사라진 자리라서인지, 방 전체가 더 비어 보였다. 알루카드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칼날에는 검은 안개와 붉은 피가 함께 묻어 있었다. 어느 쪽이 자신의 것인지 한눈에 구분되지 않았다.
그는 망토의 찢어진 끝을 잘라 냈다.
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녹지 않았다.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방 중앙에 흰 빛이 떠올랐다. 연구동에서 보았던 것과 닮은, 그러나 조금 더 차가운 빛. 알루카드는 손을 뻗었다. 빛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폐의 깊이가 다시 넓어졌다. 옆구리의 통증이 한층 가라앉고, 심장의 박동이 안정되었다. 성의 보상은 늘 무심했다. 누구를 쓰러뜨렸는지 묻지 않고, 다음 방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만 살아 있게 한다.
오른쪽 문이 열렸다.
그 너머 작은 방에는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 쓰던 짧은 칼보다 길고, 곧았다. 장식은 거의 없었다. 고대 병사의 손에 어울릴 법한 단순한 검. 알루카드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 무게가 손목에 가라앉았다.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둔하지도 않았다. 칼날의 길이는 방금 전 전투에서 그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거리만큼 더 나아가 있었다.
그는 새 검을 허리에 맞췄다.
낡은 검은 버리지 않았다. 성 안에서는 짧은 칼도 어느 순간 문 하나를 여는 열쇠가 된다. 그는 두 칼의 무게를 잠시 비교한 뒤, 긴 칼을 오른손에 들었다. 손목의 각도가 바뀌었다. 걸음도 조금 달라질 것이다. 다음에 또 누군가가 그의 모습을 훔치려 한다면, 적어도 방금 전과 같은 알루카드는 훔칠 수 없을 것이다.
방 위쪽 항아리에서 작은 빛이 하나 더 깨어났다. 그는 두 번째 도약으로 그곳에 닿았다. 항아리가 깨지고, 빛이 손바닥으로 들어왔다. 심장의 주변이 짧게 조여졌다가 풀렸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몸. 더 깊은 방까지 갈 수 있는 숨. 성은 길을 멀리 두고, 살아남은 자에게만 조금씩 몸을 넓혀 준다.
알루카드는 다시 외벽으로 나왔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아래에서는 메두사의 머리들이 느린 곡선을 그리며 오갔고, 위쪽에서는 쇠로 된 승강기가 멈춘 채 서 있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장치. 아직 손이 닿지 않는 스위치. 아직 다른 형태를 요구하는 길. 그는 그것들을 눈에 담았다가 지나쳤다.
위로 올라갈수록 돌계단은 좁아졌다. 벽 안쪽에서 종이 냄새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처음엔 착각처럼 얇았다. 그러나 계단을 하나 더 오르자 분명해졌다. 먼지, 가죽 표지, 오래 마른 잉크. 바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대리석의 향수나 연구동의 기름과는 다른, 더 오래된 침묵의 냄새였다.
Long Library.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다만 안쪽에서 빛이 아주 낮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책장들이 벽보다 높게 서 있는 곳. 종이가 소리를 삼키고, 늙은 손이 오래된 장부 위에서 값을 헤아리는 곳. 알루카드는 문턱 앞에서 멈추었다. 방금 전 도플갱어가 남긴 발소리가 아직 귀 안쪽에 남아 있었다. 같은 높이, 같은 보폭, 같은 검.
그는 새 검의 손잡이를 조용히 쥐었다.
안쪽 어둠에서 책장 하나가 저절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어 아주 낮은 기침 소리. 사람의 기침 같았지만, 성 안에서 사람의 소리를 곧 사람으로 믿는 일은 위험하다.
알루카드는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종이 냄새가 그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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