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소설 2화] 데스가 길을 거둔 자리

숲은 성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다.

바람이 나무 끝을 스칠 때마다 검은 잎들이 한 방향으로만 기울었다. 오래전부터 그쪽에 있어야 할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차지했다는 듯이. 땅은 젖어 있었고, 뿌리 사이엔 밤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기가 고여 있었다. 알루카드는 그 사이를 거의 소리 없이 달렸다. 망설임 없는 발놀림이었지만 서두르는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던 것이 다시 움직일 때 생기는, 차갑고 정확한 리듬이었다.

은빛 머리카락 끝이 어둠 속에서 잠깐씩 빛을 받았다. 망토 자락이 젖은 풀을 스치고, 장화 밑창이 낮은 돌을 밟을 때마다 무른 소리가 짧게 끊겼다. 손에는 알루카드 소드가 들려 있었다. 왼팔에는 알루카드 실드, 머리에는 드래곤 헬름. 알루카드 메일과 트와일라이트 클록, 목에 걸린 네클리스 오브 J까지. 잠에서 막 깨어난 자의 차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완전했고, 오히려 그 완전함이 이 밤과 어울리지 않았다.

숲이 끝나는 곳에서 성이 보였다.

절벽 위로 솟은 탑들은 달빛을 받아도 밝아지지 않았다. 빛을 받는 대신 삼키는 돌이었다. 창문들은 눈처럼 떠 있었고, 그 안엔 아무도 없는 듯 보이면서도 누군가 보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게 했다. 네 해 전 한 번 무너졌던 곳. 사라졌어야 할 곳. 그런데도 성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강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었다.

알루카드는 강가에 닿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래된 도개교는 이미 내려와 있었다. 젖은 널빤지와 쇠사슬, 물을 머금은 나무 냄새가 새벽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강물은 아래에서 검게 움직였고, 다리 밑을 스치는 물살 소리가 성벽에 부딪혀 낮게 돌아왔다. 다리 위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함정처럼 느껴질 만큼, 성은 조용했다.

그 적막을 먼저 깨뜨린 것은 워그였다.

왼쪽 그늘에서 튀어나온 것은 늑대라기보다 늑대의 모양을 흉내 낸 근육 덩어리에 가까웠다. 털 사이로 갈빗대가 비치고, 입가엔 오래된 피가 굳어 있었다. 눈빛은 살아 있는 짐승의 것이 아니라 명령받은 것의 것이었다. 한 마리가 먼저 달려들자 그 뒤로 두 마리가 더 그림자에서 몸을 뺐다.

알루카드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첫 번째 놈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비틀어 올렸다. 젖은 살이 찢어지는 둔한 소리가 났다. 몸이 공중에서 한 번 뒤집혔고, 착지하기도 전에 두 번째 놈이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방패가 짧게 부딪쳤다. 충격은 컸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검끝을 낮게 끌어 두 번째 놈의 앞다리를 베었고, 쓰러지는 몸 위로 세 번째가 뛰어오르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받아냈다. 칼날이 아래에서 위로 번뜩였다. 짐승의 울음은 길지 않았다. 다리 위에 남은 것은 검은 털과 식지 않은 증기, 그리고 다시 돌아온 물소리뿐이었다.

계단 아래 숨겨진 아이템을 확인하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성 입구 복도에서 워그와 맞붙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그는 검을 한 번 털어 피를 흘려보냈다. 물방울처럼 떨어진 어두운 자국이 널빤지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성문 쪽에서 썩은 냄새가 밀려왔다.

문턱 안쪽에는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비틀거리며 모여 있었다. 군복의 흔적이 남은 어깨, 목 없는 몸통, 턱이 반쯤 떨어진 채 이를 드러내는 얼굴. 그들은 생전의 기억이 아니라 움직이는 방식만 남긴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시체가 팔을 뻗는 순간 손목이 날아갔고, 두 번째 것은 가슴 한가운데가 갈라졌다. 몸통은 이상하게도 잠깐 버티다가 한 박자 늦게 무너졌다. 세 번째가 등 뒤에서 달라붙듯 다가오자 알루카드는 몸을 반쯤 틀어 어깨로 밀어냈고, 방패 가장자리로 턱을 쳐 올린 뒤 검을 깊게 찔렀다. 뼈에 닿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성 입구 복도에서 워그와 맞붙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계단 아래 숨겨진 아이템을 확인하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성 안의 공기는 바깥보다 차가웠다. 돌바닥은 습기를 품고 있었고, 벽의 촛불은 바람이 없는데도 가끔 불꽃 끝을 떨었다. 위쪽 어둠에선 이름 모를 작은 날개 소리들이 스쳤다가 멀어졌다. 알루카드는 복도를 지나 바깥으로 다시 열린 입구 쪽 회랑에 닿았다.

그 방은 입구라기보다 전망대에 가까웠다. 성의 바깥을 향해 열린 공간, 난간 너머로 절벽과 어둠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그리고 그 아래 땅에 박힌 것들이 있었다.

뼈였다.

사람이었던 것들의 잔해가 길게 꿰여 있었다. 창처럼 뾰족한 말뚝 위에 해골과 갈비뼈가 비에 씻긴 채 남아 있었다. 어떤 것은 이미 반쯤 흩어졌고, 어떤 것은 아직도 자세를 유지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뼈들이 서로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장식처럼 세워 둔 죽음이었다. 이 성은 늘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성 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성 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알루카드 · PortForward

알루카드는 난간 앞 몇 걸음 되는 곳에서 멈췄다.

처음엔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졌을 뿐이었다. 촛불이 흔들리며 바닥에 검은 얼룩을 만들었고, 그 얼룩이 벽을 타고 천장까지 번졌다. 그다음에 냉기가 왔다. 공기가 식는 정도가 아니라 방 안의 시간 자체가 한순간 얇아지는 느낌. 망토 자락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촛불의 불꽃이 모두 한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검은 로브가 어둠에서 분리되듯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해골이었다. 뼈의 흰색은 오래된 상아처럼 누렇게 죽어 있었고, 텅 빈 눈구멍 안쪽엔 실제 불꽃도 아닌 붉은 기운이 잔잔히 맺혀 있었다. 로브 아래의 형체는 완전한 육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 바로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낫날이 어둠 속에서 희게 식어 있었다.

그 존재가 멈추자 방 안의 소리들이 한 겹 더 멀어졌다. 아래에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도, 멀리서 울던 물소리도 모두 두꺼운 천 뒤로 물러난 듯했다.

데스의 턱뼈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런, 알루카드 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데스의 목소리가 돌벽을 타고 번졌다. 오래전부터 이 성의 일부였던 목소리였다. 질문의 형식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알루카드는 검끝을 조금 낮췄다. 공격을 거두는 동작이 아니라 대답에 앞서 자세를 바로잡는 움직임이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일을 끝내러 왔다.”

짧고 흔들림 없는 대답. 그 말이 떨어지자 촛불 하나가 탁, 하고 터질 듯 흔들렸다가 다시 제 불꽃을 세웠다.

데스는 웃지 않았다. 웃는 얼굴을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다음 말엔 분명한 조소가 실려 있었다.

“아직도 인간의 편을 드시는군요… 우리 쪽으로 돌아오라 청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공격을 멈추십시오.”

우리 편. 그 말은 돌보다 오래된 혈통의 무게를 가볍게 불러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이미 끝난 선택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들렸다. 방 안의 냉기는 더 짙어졌다. 난간 아래 말뚝에 걸린 해골 하나가 바람에 돌아가며 텅 빈 눈구멍을 위로 향했다.

알루카드는 조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

그 한마디는 결심을 드러내기보다 이미 끝난 논쟁을 다시 시작하지 않겠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더 말할 것이 없다는 뜻. 더 설득당할 이유도 없다는 뜻.

잠깐, 아주 잠깐 정적이 길어졌다.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말뚝 박힌 해골 앞에서 알루카드에게 경고하는 데스 · PortForward
말뚝 박힌 해골 앞에서 알루카드에게 경고하는 데스 · PortForward

그 문장이 끝나는 순간 검은 로브 주위로 빛도 그림자도 아닌 무언가가 번졌다. 마법진이라고 부르기엔 형태가 또렷하지 않았고, 안개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검은 실선들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알루카드의 발밑을 스치더니 곧장 몸을 타고 올라갔다. 차가운 손이 아니라 규칙 그 자체가 살갗을 훑는 느낌이었다.

그는 즉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늦었다.

가장 먼저 알루카드 소드가 사라졌다.

손아귀에 있던 무게가 갑자기 비어 버리자 손가락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칼날도 손잡이도, 뽑혀 나가는 움직임조차 없이 그저 없어진 것이었다. 다음 순간 알루카드 실드가 빛을 잃듯 흐려지더니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도, 떨어지는 소리도 없었다. 존재가 제거되는 데는 소음이 필요 없었다.

드래곤 헬름이 보이지 않는 손에 뜯기듯 벗겨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곧바로 머리칼과 피부에 닿았다. 이어 알루카드 메일의 무게가 사라졌다. 금속이 풀리는 감각도 없이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트와일라이트 클록이 검은 연기처럼 풀려 나갔고, 마지막으로 네클리스 오브 J가 미세한 울림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정확했다. 처음부터 그것들만 골라낸 것처럼.

알루카드는 빈손이 된 오른손을 천천히 내렸다. 남은 것은 안쪽 옷감과 장화, 그리고 벗겨지지 않은 침묵뿐이었다. 갑옷이 사라진 자리로 성의 냉기가 직접 스며들었다. 그러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식이 걷힌 뒤에야 더 선명해지는 윤곽이 있었다. 빼앗긴 것은 무기와 보호구였지만, 빼앗기지 않은 것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는 듯이.

데스가 웃었다.

사람의 목에서 나는 웃음이 아니었다. 돌벽 안쪽 빈 공간에서, 묘실의 뚜껑 밑에서, 오래된 관의 나무결 사이에서 한꺼번에 새어 나오는 듯한 웃음. 높지도 낮지도 않은데 방 전체를 채우는 웃음이었다. 그것이 한 번 길게 울리고 나자 촛불이 동시에 흔들렸고, 검은 형체는 로브의 주름만 남긴 채 사라졌다. 냉기만이 잠시 더 머물렀다가 천천히 풀렸다.

방 안엔 다시 성의 소리들이 돌아왔다.

아래에서 뼈가 서로 부딪혔다. 먼 복도에서 작은 날개가 벽에 스쳤다. 난간 밖으로 바람이 지나가며 말뚝 끝의 해골을 천천히 돌려 놓았다. 알루카드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손에 남은 감각이 아직 검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손이 더 또렷하게 무거웠다.

오른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왼팔을 들어 올렸으나 방패는 없었다. 몸을 덮던 금속의 익숙한 저항이 사라진 자리는 지나치게 가벼워서 오히려 낯설었다. 그러나 낯섦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성에서는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찾아야 했다. 문은 열려 있어도 통로가 아니었고, 위로 보이는 방은 아래에서 닿지 않았다.

알루카드는 시선을 들었다.

앞쪽 복도는 어둡고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길은 낮은 불빛을 품고 있었다. 더 안쪽, 석조 기둥 너머로 유리 기구와 금속 냄새가 어렴풋이 섞여 오는 곳이 있었다. 연금술 연구소. 아직 보이지는 않아도 성 안의 공기가 먼저 그곳의 성질을 알려 주고 있었다. 차갑고 계산적이며 죽은 것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종류의 냄새.

그는 돌아섰다.

빈손으로 걷기 시작한 첫 몇 걸음은 조용했다. 갑옷이 사라진 탓에 발소리마저 전보다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약함과 같지 않았다. 오히려 성 안의 미세한 소리들이 더 잘 들렸다. 촛농이 타는 냄새, 먼지 위를 기어가는 작은 것의 마찰, 멀리 잠긴 문 너머에서 금속이 식는 소리. 길은 더 이상 하나의 복도가 아니었다. 계단, 문, 벽 뒤의 빈 공간, 아직 닿지 않는 높은 발판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성은 적이면서 동시에 구조였다.

빼앗긴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질서가 있었다. 어디를 먼저 지나야 하는지, 어떤 문은 나중에야 열리는지, 지금은 닿지 않는 곳이 반드시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 무장을 잃은 순간부터 이곳은 단순한 귀환의 장소가 아니라 읽어야 할 내부가 되었다. 복도 하나하나가 문장처럼 이어지고, 닫힌 길 하나하나가 나중을 예고하는 표식처럼 남았다.

통로 안쪽에서 뼈가 돌에 닿는 건조한 소리가 났다. 이어서 느리고 서툰 발걸음. 성은 첫 번째 대답을 보내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빈손을 가볍게 들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잃은 것은 이미 사라졌고 돌아올 것은 아직 멀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사이를 건너는 몸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입구 회랑은 뒤에 남아 달빛과 침묵으로 다시 제 모양을 갖추었다. 성문, 계단, 갈라지는 복도, 닫힌 문, 닿지 않는 높이. 그것들은 더 이상 장식이 아니었다. 각각이 방향이 되고 약속이 되고 유예가 되었다. 성은 그를 막는 대신 펼쳐졌다.

이제부터 이곳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읽어야 할 지도였다.

참고자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