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소설 16화] 하늘에 매달린 두 번째 성
첫 번째 가시는 알루카드의 심장을 겨누었다.
왕실 예배당의 계단 끝, 푸른 봉인이 풀린 문 너머에서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쇠가 벽 속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먼저 났고, 희고 긴 끝이 촛불 한 점 없는 통로를 가르며 그의 가슴에 닿았다.
알루카드는 피하지 않았다.
Spike Breaker의 흉갑이 붉게 빛났다. 충격이 갈비뼈 안쪽까지 밀려들었다가 되튕겼다. 가시는 갑옷에 닿은 자리부터 금이 가더니 마른 뼈처럼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그의 뺨을 스쳤다.
피 한 줄기가 턱으로 흘렀다.
그는 손등으로 그것을 닦고 문턱을 넘었다.
스으윽.
양쪽 벽에서 가시들이 나왔다. 바닥의 철판이 들썩이고, 천장에 매달린 창끝들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통로는 지하묘지에서 지나온 길보다 짧았지만 더 악의적이었다. 어둠으로 숨기지 않았다. 모든 칼날을 보여 주면서도 피할 곳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보폭을 줄이지 않았다.
왼쪽 어깨에 가시가 부딪혔다. 갑옷의 오래된 흠집 하나가 타오르고 쇠끝이 으스러졌다.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솟은 가시는 장화 옆을 찢기 전에 무너졌다. 부서질 때마다 Spike Breaker 안쪽의 두 번째 박동이 빨라졌다.
쿵.
쿵.
갑옷은 가시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을 찌르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기억하고 있던 파괴의 모양을 돌려주었다.
통로 중간에서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히터…….”
이번에는 가까웠다. 가시들이 맞물리는 소리 사이로 가쁜 숨까지 섞여 있었다.
알루카드의 발이 잠시 멈췄다.
“대답해 줘. 제발.”
목소리는 오른쪽 벽 너머에서 났다. 그러나 그곳에는 문이 없었다. 돌의 두께를 가늠한 알루카드는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렸다. 속이 꽉 찬 소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마리아의 말이 끝난 곳에서 웃음이 이어졌다.
낮고 젖은 웃음이었다. 숨을 들이마시지 않은 채 길게 늘어지는 소리.
계단 아래에서 처음 들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알루카드는 눈을 감고 짧은 반향을 내보냈다.
소리가 통로를 훑고 돌아왔다. 벽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천장 가까이에 검은 덩어리 하나가 달라붙어 있었다. 목도 얼굴도 없이, 얇은 막 안에 훔친 소리만 가득 채운 작은 악마였다. 막이 오므라들 때마다 마리아의 숨과 웃음이 번갈아 흘렀다.
알루카드는 Mormegil을 반쯤 뽑았다.
악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드리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검은 칼날이 완전히 뽑혔다.
한 번의 베기 뒤, 천장에 붙어 있던 막이 갈라졌다. 그 안에서 여자와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살려 달라는 외침, 누군가의 이름, 끝내 전하지 못한 고백. 훔친 말들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가 가시 파편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마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럴 리 없어.”
알루카드는 검을 털어 검집에 넣었다.
그 말만은 악마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실제로 흘러나온 목소리를 훔쳐 온 것이었다.
그는 다시 걸었다.
마지막 가시는 다른 것보다 굵었다. 사람의 몸통만 한 쇠기둥이 정면에서 밀려 나왔다. 알루카드는 왼발을 뒤로 빼고 어깨를 낮췄다. 피하는 대신 가슴으로 받아 냈다.
굉음이 예배당의 첨탑을 울렸다.
Spike Breaker의 모든 상처가 붉게 타올랐다. 쇠기둥이 가운데부터 찢어졌다. 갈라진 두 조각이 알루카드의 양옆을 스치며 벽에 박혔다.
그 뒤에 작은 방이 드러났다.
빛은 없었지만 바닥 한가운데 놓인 은빛 원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반지였다.
알루카드는 받침대 앞에 멈춰 섰다. 금반지를 꺼내 가까이 대자 두 금속이 서로를 알아본 듯 울렸다. 금은 낮고 따뜻한 소리를 냈고, 은은 차갑고 맑은 소리로 대답했다.
은반지 안쪽에는 짧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in Clock Tower.
금반지의 마모된 문장이 그의 기억에서 이어졌다.
Wear… Clock…
두 개의 불완전한 명령은 한곳을 가리켰다.
시계방에서 착용하라.

알루카드는 Silver Ring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방 한쪽의 돌벽이 갈라지며 좁은 출구를 열었다. 틈 너머로 왕실 예배당의 높은 회랑이 보였다.
회랑 끝에 마리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손에 작은 단검을 쥔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옷자락에는 먼지가 묻었고, 오른쪽 소매는 찢겨 있었다. 그러나 다친 곳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정이었다. 알루카드를 보았을 때 안도보다 질문이 앞섰다.
“리히터를 찾았어?”
알루카드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은 채 대답했다.
“벨몬트를 만났다.”
마리아의 손이 단검을 조금 세게 쥐었다.
“그럼 여기 있는 거네.”
“그는 자신을 이 성의 주인이라 했다.”
회랑 위의 촛불 하나가 꺼졌다.
마리아는 알루카드의 얼굴을 살폈다. 거짓말을 찾는 눈이었다. 곧 그 눈은 그의 뒤, 가시가 부서진 통로로 옮겨 갔다. 무언가가 그 안에 숨어 있어 지금이라도 그의 말을 뒤집어 주길 바라는 듯했다.
“그럴 리 없어.”
악마의 막 속에 남아 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내가 아는 리히터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성이 사람에게서 가장 약한 순간을 골라내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알루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의 침묵에서 동의를 찾지 못했다. 단검을 거두고 돌아섰다. 두 걸음을 옮긴 뒤 멈췄지만, 다시 보지는 않았다.
“내 눈으로 확인할 거야.”
그녀가 회랑 너머로 사라졌다.
알루카드는 빈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기억은 사람을 지켜 주기도 했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어느 쪽인지는 기억을 가진 자가 선택한다고 믿지만, 성은 그 선택마저 미리 준비해 둔다.
그는 Gold Ring과 Silver Ring을 한 손에 쥐었다.
이번에는 성이 준비한 답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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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회랑의 시계방에는 시간이 두 개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시곗바늘은 자정을 향해 움직였고, 좌우의 석상은 서로 다른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쪽 문은 열려 있었고 다른 쪽은 닫혀 있었다. 알루카드가 중앙의 원 안으로 들어서자 위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먼저 금반지를 끼웠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멈췄다.
은반지를 다른 손가락에 끼웠다.
긴 바늘이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좌우 석상의 창이 동시에 바닥을 쳤다.
대리석 중앙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금은 알루카드의 장화 끝에서 시작해 시계 아래까지 뻗더니 원을 그리며 닫혔다. 바닥 전체가 거대한 뚜껑처럼 아래로 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솟아올랐다.
알루카드는 열린 구멍 앞에 서서 아래를 보았다. 나선 계단이 성의 중심으로 깊이 이어지고 있었다. 벽에는 촛대도 창도 없었지만, 두 반지가 번갈아 빛나며 다음 발판을 보여 주었다.
계단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마리아가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회랑에서 보았던 확신은 사라져 있었다. 단검은 바닥에 놓여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맞잡혀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래 그 자세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알루카드.”
그가 계단을 내려오자 마리아가 일어섰다.
“네 말이 옳았어. 리히터는 적과 손을 잡았어.”
알루카드는 방의 벽을 훑었다. 오래된 성화들이 걸려 있었지만 인물들의 눈만 검게 지워져 있었다.
“그의 뜻인가?”
마리아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믿을 수 없어.” 그녀가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누군가가 그를 조종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리히터를 해쳐서는 안 돼.”
“하지만 멈춰야 한다.”
“알아.”

마리아는 목에 걸린 가느다란 사슬을 풀었다. 옷깃 안에서 작은 안경이 나왔다. 은빛 테두리에 투명한 렌즈가 끼워져 있었다. 장식은 없었고, 오래된 기도의 흔적처럼 가장자리만 닳아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이걸 쓰면 사악한 환영 너머를 볼 수 있어.”
알루카드는 안경을 받았다. 렌즈는 차가웠다. 하지만 손가락이 닿자 시계방 아래의 어둠이 한 겹 벗겨졌다. 지워진 성화의 눈 위에 검은 실들이 보였다. 실은 모두 천장을 뚫고 성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Castle Keep.
“리히터를 구해 줘.”
마리아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알루카드는 안경을 접어 품에 넣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약속이라 부르기에는 차가운 말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돌아서서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마리아가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는 그가 듣지 못할 만큼 낮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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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le Keep의 문을 밀어 열자 밤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정상부의 전당은 지붕 절반이 무너져 있었다. 검은 구름 사이로 달이 드러났다 사라졌고, 부러진 기둥들은 하늘을 떠받치다 실패한 뼈처럼 서 있었다. 바닥의 붉은 융단은 중앙에서 찢겨 양쪽으로 벌어져 있었다.
그 끝에 리히터 벨몬트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Vampire Killer를 쥐고 있었다. 채찍 끝이 돌바닥 위에서 느리게 움직였다. 쇠사슬의 마디마다 오래된 성유와 마물의 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드라큘라의 혈족을 찾아 죽여 온 무기였다.
알루카드의 피를 알아본 채찍이 가늘게 떨었다.
리히터가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성스러운 안경을 꺼내 썼다. 렌즈 너머로 전당의 색이 바뀌었다. 달빛은 창백해지고, 기둥의 그림자에는 검은 핏줄이 나타났다.
리히터의 머리 위에는 구체 하나가 떠 있었다.
맨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자리였다. 녹색 빛을 품은 투명한 막 안에서 검은 눈동자 같은 것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가느다란 실들이 구체에서 내려와 리히터의 관자놀이와 목, 채찍을 쥔 손목에 박혀 있었다.
“벨몬트가 어째서 드라큘라의 부활을 꾀하지?”
리히터의 미소가 굳었다. 잠시, 눈동자가 구체의 움직임보다 늦게 흔들렸다.
“백 년에 한 번.” 그가 말했다. “드라큘라는 백 년에 한 번 돌아온다. 나는 그를 쓰러뜨렸고, 내 역할은 끝났지.”
그는 채찍을 들어 올렸다.
“내가 그를 되살릴 수 있다면 싸움도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알루카드는 검을 뽑았다.
“그것이 네 진심이라면.”
말끝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채찍이 날아왔다.
첫 타격은 정면이 아니었다. 리히터가 손목을 꺾자 Vampire Killer가 기둥을 감고 방향을 바꾸었다. 알루카드는 칼날로 앞을 막았다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성스러운 기척을 느꼈다.
몸을 낮췄다.
채찍 끝이 은빛 머리카락을 몇 가닥 끊었다. 이어 되돌아오는 사슬이 그의 옆구리를 때렸다. Spike Breaker가 충격을 받아 냈으나 성스러운 힘까지 부술 수는 없었다. 흰 불꽃이 갑옷의 틈을 파고들었다.
알루카드는 세 걸음 밀려났다.
리히터가 거리를 좁혔다. 채찍을 짧게 잡은 채 연달아 휘둘렀다. 첫 번째는 얼굴, 두 번째는 무릎, 세 번째는 피할 방향을 막는 바닥이었다. 알루카드는 검등으로 두 번 쳐 냈다. 세 번째 공격 앞에서는 몸을 안개로 풀었다.
채찍이 검은 안개를 갈랐다.
그러나 성스러운 불꽃이 안개 속에 남았다. 몸을 되찾은 알루카드의 왼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고통보다 먼저 구체를 보았다.
리히터가 공격할 때마다 머리 위의 구체는 뒤로 물러났다. 알루카드가 검을 들어 올리면 리히터의 몸을 방패 삼아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조종하는 자는 리히터의 힘뿐 아니라, 그를 살리려는 알루카드의 의도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리히터가 작은 병을 바닥에 던졌다.
유리가 깨지며 푸른 불길이 융단을 타고 번졌다. 불은 좌우로 갈라져 알루카드의 퇴로를 막았다. 리히터는 불꽃 너머에서 채찍을 원으로 휘둘렀다.
낮게 피하면 불에 닿는다.
뛰면 채찍에 걸린다.
알루카드는 Leap Stone의 힘으로 솟았다. 채찍이 발밑을 지나가는 순간 허공을 다시 밟아 더 높이 올랐다. 구체와 눈높이가 같아졌다.
Mormegil이 검은 궤적을 그렸다.
칼끝이 구체에 닿기 직전 리히터가 몸을 던졌다. 채찍 손잡이가 알루카드의 손목을 후려쳤다. 검이 빗나가 리히터의 어깨를 스쳤다.

붉은 피가 그의 옷을 적셨다.
마리아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히터를 해쳐서는 안 돼.
알루카드는 착지하며 검을 뒤집었다. 다음부터는 칼날이 아니라 검등을 리히터에게 향하게 했다.
구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리히터는 상처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더.”
그가 양팔을 벌렸다.
“더 싸워라. 아직 피가 마르지 않았다.”
전당의 공기가 위로 끌려 올라갔다. 바닥에 번진 성수가 빗방울처럼 떠올랐다. 수백 개의 푸른 물방울이 천장 없는 밤 아래 모였다.
그리고 한꺼번에 떨어졌다.
성스러운 폭우가 돌바닥을 두드렸다. 알루카드는 망토를 몸에 감았지만 천은 첫 방울에 타들어 갔다. Spike Breaker의 판금 사이로 빛이 파고들었다. 그의 피부에서 연기가 솟았다.
숨을 곳은 기둥 뒤뿐이었다.
알루카드는 부러진 기둥을 향해 뛰다가 멈췄다.
구체는 비를 피하지 않았다.
성수는 리히터와 구체를 지나쳐 떨어지고 있었다. 조종하는 힘은 벨몬트의 성스러운 공격 안에서 안전했다.
그렇다면 같은 성스러운 힘이 구체의 막도 지켜 주고 있었다.
알루카드는 Mormegil을 검집에 넣었다.
검으로 막을 깨려 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그는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리히터가 채찍을 휘둘렀다. 알루카드는 피하지 않고 왼팔로 사슬을 감았다. 성스러운 불꽃이 팔을 태웠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채찍을 잡아당겼다.
리히터의 몸이 앞으로 끌려왔다.
동시에 구체도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실이 팽팽해지며 리히터의 머리 위 낮은 곳까지 내려왔다.
알루카드는 리히터의 가슴을 발로 찼다. 죽이기 위한 힘이 아니라 둘 사이의 거리를 벌리기 위한 일격이었다. 리히터가 뒤로 밀려났고, 구체는 실에 붙잡혀 한 박자 늦게 따라갔다.
그 짧은 지연.
그것이 빈틈이었다.
알루카드는 박쥐로 변했다.
검은 날개가 성수의 빗방울 사이를 꿰뚫었다. 구체는 다시 높이 도망치려 했지만 팽팽해진 실이 리히터의 몸에 묶여 있었다. 알루카드는 구체 위로 솟은 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손으로 Mormegil의 손잡이를 잡았다.
칼끝을 구체가 아니라 그 아래의 검은 실에 겨눴다.
낙하하는 몸의 무게가 검에 실렸다.
한 줄이 끊어졌다.
리히터의 왼손이 풀렸다.
두 번째 줄이 끊어졌다.
채찍이 바닥에 떨어졌다.
구체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목소리도 짐승의 소리도 아니었다. 유리 안에 갇힌 수백 개의 못이 한꺼번에 긁히는 듯한 울림이었다.
마지막 실은 리히터의 목 뒤에 박혀 있었다.
알루카드는 검을 멈췄다. 구체가 그 실을 당기자 리히터의 몸이 칼날 앞에 세워졌다.
그의 눈이 잠시 맑아졌다.
“지금…….”
리히터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 한마디가 구체의 명령인지, 남아 있던 자신의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알루카드는 검을 놓았다.
Mormegil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빈손이 된 그는 리히터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비틀었다.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구체가 당긴 마지막 실이 리히터를 뒤로 끌어당기는 순간, 알루카드는 Spike Breaker의 어깨로 구체를 들이받았다.
갑옷의 붉은 상처들이 모두 빛났다.
가시의 형상을 기억한 갑옷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가시를 부러뜨렸다.

구체 표면에 금이 갔다.
알루카드는 주먹을 그 금 위에 박아 넣었다.
녹색 빛이 폭발했다.
조종 구체가 수천 조각으로 부서졌다. 유리 같은 파편들은 바닥에 닿기 전에 검은 재로 변했다. 리히터의 목 뒤에 남아 있던 실도 불타 없어졌다.
전당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리히터가 무릎을 꿇었다.
Vampire Killer는 그의 손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누워 있었다. 주인을 잃은 채찍은 더 이상 알루카드의 피를 향해 떨지 않았다.
부서진 구체의 중심에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검은 사제복. 마른 얼굴. 눈구멍 안에서 타오르는 보랏빛 불.
형상은 몸이라기보다 멀리 있는 존재가 남긴 그림자에 가까웠다.
알루카드는 바닥의 검을 집어 들었다.
“네가 벨몬트를 조종했군.”
사제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렇다. 나는 어둠의 사제 샤프트.”
그의 목소리가 전당의 모든 벽에서 동시에 울렸다.
“이 세계는 혼돈의 불길로 씻겨야 한다.”
알루카드가 검을 휘둘렀다. 칼날은 사제의 가슴을 갈랐지만 형상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웃음만이 밤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성 전체가 기울었다.
아니, 기울어진 것은 성이 아니었다.
구름이었다.
검은 구름이 좌우로 갈라지며 달 위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그림자를 드러냈다. 첨탑이 아래를 향하고, 지붕이 허공에 매달리고, 가장 높은 탑의 끝이 이쪽 성의 정상과 마주 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성.
같은 벽과 같은 탑을 지녔으나 모든 방향이 뒤집힌 성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전당의 부서진 돌조각들이 바닥에서 떠올랐다. 작은 파편들은 위쪽 성을 향해 떨어졌다. 알루카드의 은빛 머리카락도 하늘을 향해 끌려 올라갔다.
문이 열리며 마리아가 달려 들어왔다. 그녀는 무릎 꿇은 리히터를 보자 곁으로 몸을 낮췄다.
리히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마리아는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고마워, 알루카드.”
리히터가 고개를 들었다. 흐려졌던 눈이 이제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알루카드의 얼굴을 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멈췄다.
“알루카드라면…… 설마 내 조상 트레버와 함께 싸웠던 그 알루카드인가? 삼백 년 전의—”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알루카드는 하늘의 성을 보았다.
“너를 조종한 자가 저곳에 있나?”
리히터도 뒤집힌 성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그래. 아마도.”
두 성의 정상 사이에 검은 빛이 모였다. 문도 다리도 아니었으나 건널 수 있는 길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위로 떨어지는 돌가루가 그 길을 따라 역성의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알루카드는 Mormegil을 검집에 넣었다.
“마리아. 리히터를 데리고 이 성을 나가라.”
“넌?”
“끝내러 간다.”
마리아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성스러운 안경 너머의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돌아와.”
알루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길 앞에 섰다. 발밑에는 익숙한 성의 바닥이 있었고, 머리 위에는 같은 성의 천장이 땅처럼 펼쳐져 있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 바람이 거꾸로 불었다.
그리고 하늘에 매달린 성의 가장 낮은 창문에서, 거대한 날개 하나가 천천히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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