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소설 15화] 가시가 길의 일부가 되는 순간

금반지 안쪽의 검댕을 엄지로 문지르자 마모된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Wear… Clock….

관 옆에 선 알루카드는 불완전한 문장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악몽에서 얻은 작은 원은 피도 보석도 품지 않았으나, 손바닥 위에 놓일 때마다 불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리사의 눈을 떠올리게 했다. 악마가 만든 얼굴과 목소리는 거짓이었지만, 그것이 파고든 상처까지 가짜였던 것은 아니었다.

대리석 회랑의 시계방에서 착용하라는 뜻이라면 한 조각이 부족했다. 성이 남기는 명령은 늘 일부를 잘라 낸 채, 나머지를 찾으려는 자가 죽을 때까지 통로를 헤매도록 만들었다. 알루카드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지 않고 안주머니에 넣었다. 금속이 희미하게 뜨거워지면서, 멀리 어딘가에서 같은 문장의 다른 절반이 응답하는 듯했다.

Underground Caverns의 물 냄새 사이로 재와 녹슨 쇠의 기운이 흘러왔다. 그 뒤를 따라 아주 느린 마찰음이 들렸다. 공격을 앞두고 날을 가는 소리라기보다, 오랫동안 기다리기 위해 스스로를 돌에 문지르는 수많은 금속 끝의 움직임이었다.

알루카드는 지하묘지 쪽으로 향했다. 버려진 광산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검은 물과 이끼가 번지고, 진흙 속에는 인간의 손가락뼈와 짐승의 이빨이 구분 없이 박혀 있었다. Cerberus가 죽은 뒤에도 탄 나무와 유황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비어 버린 굴에는 더 작은 것들이 기어 나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Catacombs에 들어서자 보랏빛 점액들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그는 멈추어 하나씩 베지 않고, 망토를 젖힌 채 짧은 궤적으로 길만 열었다. 몸이 지나간 뒤에야 둘로 갈라진 점액이 바닥을 검게 적셨다.

왼쪽에는 Granfaloon이 수많은 시체를 한 몸처럼 매달았던 묘실이 있었다. 성은 인간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피와 뼈, 살과 기억 어느 것도 버리지 않았다. 멸시하는 것을 가장 잔인하게 소유하려는 탐욕은 모순이 아니었다. 알루카드는 그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쇠가 돌을 긁는 오른쪽 통로를 택했다.

입구의 오래된 핏자국은 누군가 벽을 짚고 되돌아 나오려 했음을 보여 주었다. 손자국은 세 걸음 만에 끊겼고 시체 대신 잘린 손가락 세 개가 바닥에 남아 있었다. 절단면은 짐승의 이빨이나 무딘 날이 만들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다.

어둠 속 가시 미로를 박쥐의 반향으로 통과하는 Alucard - PortForward
어둠 속 가시 미로를 박쥐의 반향으로 통과하는 Alucard - PortForward

알루카드는 작은 돌을 주워 어둠 속으로 던졌다. 돌이 바닥에 닿기 전에 수십 개의 금속음이 한꺼번에 터졌고, 반으로 잘린 조각들이 입구 밖까지 튀어나왔다. 흡혈귀의 눈조차 안쪽의 형체를 찾지 못했다.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둠 자체가 벽과 바닥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망토에서 뽑은 은빛 실 한 가닥을 바람에 띄우자 연속된 칼날 소리가 그것을 삼켰다. 돌아온 것은 잘린 천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루카드는 눈이 먼저 공포를 만들기 전에 인간의 몸을 접어 통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박쥐의 목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울림이 나갔다. 파문은 벽과 바닥을 훑고 금속의 날을 따라 미끄러진 뒤 수백 갈래로 부서져 돌아왔다. 빛 없는 공간이 머릿속에 형상을 얻었다. 바닥에서 솟은 가시, 천장에서 내려온 칼날, 양쪽 벽을 가로지른 창, 그리고 날마다 붙어 말라버린 살과 천 조각들까지 거리와 방향을 가졌다.

알루카드는 첫 번째 틈으로 날았다. 등 뒤에서 쇠가 맞물리며 날개 끝을 잘랐고, 작은 몸의 피가 검은 점으로 흩어졌다. 두 번째 파문은 오른쪽 벽의 빈 공간을 보여 주었지만 도착하기 직전 그곳에서 가시가 밀려 나왔다. 그는 안개가 되어 날 사이를 통과하려 했다.

가시는 형체 없는 몸을 베지 못했으나 통로의 공기 자체가 흩어진 안개를 바위틈으로 빨아들였다. 오래 머물면 몸의 경계를 되찾지 못할 것 같았다. 알루카드는 인간의 팔을 먼저 응집시켜 벽을 움켜쥐고, 어깨와 몸통을 차례로 되돌렸다.

바닥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벽을 차고 뛰었다. 허공의 두 번째 발판까지 몸을 밀어 올리는 동안 아래의 가시들이 짐승의 턱처럼 닫혔다. 그는 다시 작은 날개로 변해 파문을 보냈으나, 이번에는 소리가 가리킨 빈 곳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잠시 뒤 세 개의 날이 그 빈 공간을 동시에 꿰뚫었다. 성은 Echo of Bat가 돌려주는 길을 미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반향이 도착할 때는 비어 있으나 날개가 닿는 순간 닫히도록 움직임을 늦춘 것이다.

벽에 매달린 알루카드는 위협의 형상보다 기계가 움직이는 순서를 들었다. 마찰음 뒤에 충돌이 오고, 모든 가시가 다음 위치를 정하기 전에 서로를 기다리는 아주 짧은 침묵이 있었다. 불규칙해 보이는 움직임에도 공동의 박자는 존재했다.

그는 리사의 얼굴을 훔친 Succubus를 떠올렸다. 진실과 똑같은 목소리로 거짓을 말하는 존재 앞에서 첫 인상만 믿었다면 기억 자체가 자신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눈이 보여 주는 장면만이 아니라, 소리가 돌려주는 첫 대답 또한 의심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듣는지가 아니라 그 대답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지였다.

Catacombs 깊은 곳에서 Spike Breaker를 얻은 Alucard - PortForward
Catacombs 깊은 곳에서 Spike Breaker를 얻은 Alucard - PortForward

다시 보낸 파문이 오른쪽 위의 틈을 가리켰다. 알루카드는 정반대인 왼쪽 아래로 날았다. 가시들이 미끼를 닫으려고 오른쪽으로 몰리는 동안 잠깐 열린 길로 날개를 접고 추락했다. 앞쪽 칼날이 움직이자 벽에 부딪치기 직전 안개가 되어 두 날 사이를 빠져나간 뒤, 반대편에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바닥을 굴렀다.

망토가 찢어지고 왼쪽 어깨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겼다. 피 냄새가 퍼지자 통로 전체가 살아 있는 짐승처럼 떨며 속도를 높였다. 알루카드는 시야를 포기한 채 연속해서 파문을 내보내고, 겹쳐졌다 사라지는 죽음의 형상 사이로 달렸다.

머리 위의 칼날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바닥의 가시를 피해 왼쪽 벽을 밟았다. 허공을 다시 차는 순간 천장에서 내려온 쇠창이 망토를 꿰뚫어 몸을 뒤로 당겼다. 그는 천을 지키려 버티지 않고 잠금쇠를 풀었다. 붉은 안감이 달린 검은 망토가 가시에 남는 동안, 앞으로 던진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푸른 봉인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Jewel of Open을 들어 올리자 보석의 빛이 문으로 흘러들었고, 틈이 생기는 즉시 몸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등 뒤의 모든 가시가 한꺼번에 닫히며 문짝을 흔들었다.

안쪽 방에는 수십 개의 푸른 촛불과 돌 받침대 위의 검은 판금 갑옷이 있었다. 가슴과 어깨를 덮는 표면에는 찌르고 긁고 내려찍힌 흔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 자국은 방금 생긴 듯 선명했고, 어떤 것은 수백 년 묵은 녹을 품고 있었다.

받침대 앞에는 거의 다 도달한 사람의 해골이 엎어져 있었다. 몸의 앞부분은 온전했지만 등뼈가 수십 조각으로 잘렸고, 뻗은 손가락과 갑옷 사이에는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가 남아 있었다. 그만한 거리는 한 사람이 죽기에 충분했다.

알루카드는 해골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녹슨 금속판을 꺼냈다.

가시를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 가시와 싸우는 자는 여기서 죽으리라. 가시를 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것을 부술 수 있다.

문장을 두 번 읽은 뒤 갑옷에 손을 얹자, 금속은 차갑지 않고 아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움직이는 모든 가시의 진동을 듣는 듯했다. 단단함만으로 버티는 쇠가 아니라 자신을 상처 입힌 것들의 형상을 기억하는 물질이었다.

알루카드는 걸어온 지형만큼 힘을 더하던 Walk Armor의 잠금쇠를 풀었다. 오래 함께한 금속이 몸에서 떨어지자 지하의 냉기가 얇은 옷을 파고들었다. 새 갑옷을 들어 어깨에 걸치자 흉갑과 고리들이 스스로 맞물렸고, 표면의 수많은 흠집을 따라 붉은 빛이 흘러 부러진 가시의 문양을 만들었다.

가시 통로 너머에서 Richter의 행방을 묻는 Maria - PortForward
가시 통로 너머에서 Richter의 행방을 묻는 Maria - PortForward

갑옷 안쪽에서 심장과 다른 박동이 한 번 울렸다. 잠시 뒤 그의 심장이 대답했다. 서로 다른 두 박동은 같은 속도로 뛰지 않았지만, 다음 울림을 기다리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Spike Breaker.”

알루카드는 금속에 남은 이름을 한 번 읽고 문을 열었다. 검은 통로가 다시 입을 벌리며 첫 가시를 가슴 한가운데로 밀어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끝이 갑옷에 닿는 순간 충격이 갈비뼈까지 밀려들었고, 표면의 상처 하나가 붉게 타올랐다. 이어 가시는 마른 뼈처럼 뿌리부터 갈라졌다. 바닥에서 솟은 두 번째 날을 장화로 밟자 쇠가 비명을 지르며 휘었고, 양쪽 벽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공격도 어깨에 부딪치는 즉시 산산이 깨졌다.

알루카드는 보폭을 줄이지 않았다. 걸음마다 금속이 부서졌지만 충격과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이 울리고 이미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새 갑옷은 몸을 무적으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고통이 길을 막지 못하게 하는 물건이었다.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살아 돌아온 자와 이곳에 이름을 남긴 자를 가르기에는 충분했다.

통로 중간에는 가시에 꿰뚫린 망토가 남아 있었다. 알루카드가 천을 잡아당기자 그것을 붙들던 날이 흉갑에 부딪쳐 부서졌다. 잠금쇠를 잃은 망토는 붉은 천 조각으로 목에 다시 묶였다. 찢어진 자락이 뒤를 끌었으나 그는 남은 길을 끝까지 걸었다.

마지막 가시가 부서지자 양쪽 촛대에 불이 붙고 완전한 어둠이 물러났다. 벽에는 이 길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가장 아래의 빈 줄을 손가락으로 쓸며 알루카드는 성이 그 자리에 누구를 기다렸는지 알아차렸다.

“아직 아니다.”

그 말이 성을 향한 것인지, 아버지나 악몽 속 어머니의 얼굴을 향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알루카드가 통로를 떠난 뒤 촛불은 하나씩 꺼졌고, 마지막 불꽃 아래 빈 줄에 ADRIAN FAHRENHEIT ȚEPEȘ라는 글자가 저절로 새겨졌다. 그러나 이름 끝에 죽음을 뜻하는 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성조차 아직 그의 결말을 알지 못했다.

Maria와 헤어진 뒤 Silver Ring을 발견한 Alucard - PortForward
Maria와 헤어진 뒤 Silver Ring을 발견한 Alucard - PortForward

지하묘지를 벗어나자 안주머니의 금반지가 뜨거워졌다. 그가 금속을 귀 가까이 가져가자 아주 작은 종소리가 두 번 울리고, 세 번째가 오기 전에 여자의 숨소리가 끼어들었다.

“리히터….”

왕실 예배당 쪽에서 흘러온 마리아의 목소리에는 믿음보다 두려움이 많았다. 누군가를 찾는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발견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호흡이었다. 그 방향에는 푸른 문 뒤를 가득 채운 하얀 가시의 통로가 있었고, 새 갑옷은 멀리 떨어진 그 날들을 기억하듯 낮게 진동했다.

동시에 금반지의 열이 강해지며 아주 먼 곳에서 차갑고 맑은 금속음이 대답했다. 금과 다른 은의 울림, 잘린 문장을 완성할 두 번째 반지의 소리였다. 그 곁에 마리아가 있었다.

알루카드는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흉갑의 상처들이 희미하게 빛났고, 벽과 가시는 더 이상 침묵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질문을 보내면 어둠은 형상을 돌려주었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술 수 있었다.

계단 끝에서 왕실 예배당의 종이 열두 번 울렸다. 마지막 울림이 사라지자 반지 안쪽의 문장이 조금 더 길어졌다.

Wear… in Clock….

아직 완전하지 않았으나 나머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마리아가 다시 리히터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그 목소리 뒤로 숨 쉬지 않는 존재가 인간의 웃음을 흉내 냈다.

알루카드는 검을 뽑아 들지 않고 손만 자루 위에 얹은 채 계단을 올랐다. 다음 방에서 필요한 것은 이름난 무기의 위세가 아니라, 마리아의 목소리와 그 뒤에 붙은 웃음을 정확히 가르는 판단이었다.

참고자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