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 어둠은 목소리의 뼈를 남긴다
악몽에서 깨어난 뒤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알루카드는 관 옆에 선 채 손바닥을 펼쳤다. 금반지가 촛불도 없는 방에서 흐린 빛을 품고 있었다. 서큐버스의 몸이 재로 무너진 자리에서 얻은 물건이었다. 그 작은 원 안에는 피도 보석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쥐고 있으면 불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여인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이 진짜였는지, 악마가 만든 것이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악마는 거짓된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 거짓된 목소리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거짓이 파고든 상처는 이미 알루카드 안에 있던 것이었다.
그는 반지 안쪽을 엄지로 문질렀다.
묵은 검댕 아래에서 마모된 글자가 드러났다.
Wear… Clock…
문장의 나머지는 지워져 있었다.
착용하라.
시계에서.
알루카드는 대리석 회랑의 거대한 시계방을 떠올렸다. 마리아와 처음 마주쳤던 곳. 두 석상이 시간을 나누어 지키고, 한쪽이 길을 열 때 다른 쪽은 입을 다물던 방이었다.
그곳에서 반지를 착용하라는 뜻이라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성이 남기는 명령은 언제나 일부가 잘려 있었다. 부족한 문장을 완성하려다 사람이 죽도록 만들어진 수수께끼였다.
그는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지 않고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반지가 희미하게 뜨거워졌다.
누군가가 멀리서 같은 문장의 나머지 절반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알루카드는 눈을 들었다.
관이 놓인 방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지하 동굴의 물 냄새 사이로 재와 녹슨 쇠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미 한 번 지나온 지하묘지 쪽이었다.
그리고 바람 속에 기묘한 소리가 있었다.
스으윽.
쇠가 돌을 긁는 소리.
잠시 뒤 다시 들렸다.
스으윽.
검을 가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훨씬 느렸다. 누군가 공격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리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있는 소리였다.
알루카드는 Mormegil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마검이 검집 속에서 가늘게 떨었다. 죽음과 가까워질 때마다 검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기뻐했다.
“네가 부르는 길은 아니다.”
알루카드는 검에서 손을 떼고 방을 나섰다.
그가 떠난 뒤 관의 뚜껑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검은 틈 사이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드리안.”
알루카드는 돌아보지 않았다.
---
지하 동굴에서 버려진 광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젖어 있었다.
폭포의 울림이 멀어질수록 물은 검게 변했고, 바닥의 이끼 사이로 작은 뼛조각들이 나타났다. 인간의 손가락뼈와 짐승의 이빨이 구별 없이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광산 아래에는 불이 꺼진 뒤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탄 나무, 유황, 오래된 피. 벽을 긁은 발톱 자국과 부서진 사슬은 이전의 전투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성은 죽은 자를 애도하지 않았다. 빈자리가 생기면 더 작은 것들이 기어 나와 그 자리를 채웠다.
알루카드가 지하묘지에 들어서자 보랏빛 점액들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망토를 젖히며 앞으로 나아가자 그의 그림자가 먼저 움직였다. 어둠이 한 번 접혔다 펴지는 사이, 점액 괴물들의 몸이 둘로 갈라졌다. Mormegil이 검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검은 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지하묘지의 왼쪽에는 그란팔룬이 있던 거대한 묘실이 있었다.
수백, 수천 구의 시체가 하나의 생명인 척 움직이던 장소. 알루카드는 그곳에서 인간의 육체가 죽은 뒤에도 얼마나 오래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인간을 하찮다고 말했지만, 성은 인간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단 한 조각도 버리지 않았다.
피를 마셨다.
뼈로 벽을 쌓았다.
살로 괴물을 만들었다.
기억을 훔쳐 악몽으로 사용했다.
멸시와 탐욕은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아니었다. 가장 깊이 멸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하게 소유하려 드는 법이었다.
알루카드는 그란팔룬의 묘실로 가지 않았다.
쇠가 돌을 긁는 소리는 오른쪽 통로에서 들려왔다.
아직 탐색하지 않은 길이었다.
통로 입구에는 오래된 핏자국이 있었다. 한 사람이 벽을 붙잡고 되돌아 나오려 했던 흔적이었다. 손자국은 입구에서 불과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끊겨 있었다.
시체는 없었다.
대신 바닥에 잘린 손가락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알루카드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절단면은 놀라울 만큼 매끄러웠다. 짐승의 이빨도, 무딘 칼날도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려놓고 작은 돌을 어둠 속으로 던졌다.
돌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금속음이 터졌다.
카앙!
잘린 돌조각 두 개가 통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알루카드는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흡혈귀의 눈은 별 하나 없는 밤에서도 형체를 구분했다. 그러나 이 통로에는 빛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 자체가 벽과 바닥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마치 성이 공간 한 조각을 밤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채워 둔 듯했다.
그는 망토 끝에서 실 한 가닥을 뽑아 안으로 날렸다.
바람을 탄 은빛 실이 어둠에 닿았다.
곧 수십 번의 금속음이 연달아 울렸다.
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루카드는 눈을 감았다.
눈이 쓸모없어지는 순간, 인간은 먼저 공포를 본다.
그러나 박쥐는 달랐다.
그에게 어둠은 보이지 않는 벽이 아니라, 아직 질문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어깨뼈가 안쪽으로 접혔다. 몸이 가벼워지고 망토가 검은 날개로 변했다. 은빛 머리카락과 창백한 얼굴이 한순간에 줄어들며 작은 박쥐의 형상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통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고 목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울림을 내보냈다.
키이익—
소리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혔다.
바닥을 훑었다.
금속의 날을 따라 미끄러졌다.
수백 갈래로 부서진 뒤 다시 돌아왔다.
그 순간 알루카드의 머릿속에 빛 없는 형상이 그려졌다.
바닥에서 솟은 가시.
천장에서 내려온 칼날.
벽과 벽 사이를 가로지른 창.
그 끝에 붙어 있는 마른 살점과 천 조각들.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죽음의 모양은 보였다.
그는 날개를 펼쳤다.
첫 번째 가시 사이를 빠져나가자 등 뒤에서 쇠가 맞물렸다.
카아앙!
날개의 끝이 잘렸다. 검은 피가 허공에 흩어졌다.
알루카드는 다시 울음을 내보냈다.
키이익—
반향이 돌아왔다.
오른쪽 벽에 빈틈이 나타났다. 그는 몸을 비틀어 그곳으로 날았다. 그러나 도착하기 직전 빈틈이 닫혔다. 가시가 벽에서 밀려 나오며 그의 몸을 꿰뚫으려 했다.
알루카드의 형상이 검은 안개로 풀렸다.
가시는 안개를 가르고 지나갔다.
반대편에서 몸을 다시 만들려 했지만 통로의 공기가 그를 붙잡았다. 안개가 바위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흩어졌다. Form of Mist를 오래 유지하면 오히려 몸의 경계를 잃을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의 팔을 먼저 되찾아 벽을 움켜쥐었다. 이어 어깨와 얼굴, 몸통이 어둠 속에서 응집했다.
그 순간 바닥이 움직였다.
알루카드는 벽을 차고 뛰었다.
Leap Stone의 힘이 발밑에서 폭발했다. 허공을 한 번 더 밟은 몸이 천장 가까이 솟았다. 아래에서는 가시들이 짐승의 턱처럼 닫혔다.
그는 다시 박쥐로 변했다.
키이익—
반향이 다음 길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알루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가 가리킨 빈 공간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그곳에서 세 개의 가시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성은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Echo of Bat이 보여 주는 길을 미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반향이 도착한 순간에는 비어 있지만, 그가 날아드는 순간 닫히도록 만들어진 통로였다.
알루카드는 벽에 매달려 가시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스으윽.
카앙.
스으윽.
카앙.
처음에는 불규칙한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각 충돌음 뒤에는 아주 짧은 침묵이 있었다. 모든 가시가 다음 위치로 이동하기 전, 서로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한순간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니, 어머니의 얼굴을 한 서큐버스를 떠올렸다.

악마는 진실과 똑같은 목소리로 거짓을 말했다. 진실을 닮았다는 이유로 첫 번째 목소리를 믿었다면 그는 어머니의 심장을 찔렀다는 환상 속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눈이 보여 주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었다.
소리가 돌려주는 첫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들었는가가 아니었다.
그 대답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가였다.
알루카드는 다시 울음을 내보냈다.
키이익—
반향이 오른쪽 위의 빈틈을 가리켰다.
그는 반대쪽으로 날았다.
가시들이 미끼를 닫으려 오른쪽으로 몰려갔다. 왼쪽 아래에 잠시 길이 열렸다. 알루카드는 날개를 접고 추락하듯 그 틈을 통과했다.
스으윽.
앞쪽의 칼날이 움직였다.
그는 벽에 부딪히기 직전 Form of Mist를 사용했다. 몸이 안개로 풀려 두 가시 사이를 통과했다. 반대편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오며 바닥을 굴렀다.
망토가 찢어졌다.
왼쪽 어깨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겼다.
피 냄새가 퍼지자 통로 전체가 떨렸다.
가시들이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루카드는 달렸다.
앞을 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연속해서 반향을 내보냈다. 소리의 파문이 겹치며 죽음의 형상을 만들고 지웠다.
한 걸음.
몸을 낮췄다.
머리 위로 칼날이 지나갔다.
두 걸음.
왼쪽 벽을 밟고 뛰었다.
바닥의 가시가 장화 밑창을 스쳤다.
세 걸음.
허공을 다시 밟았다.
천장에서 내려온 쇠창이 망토를 꿰뚫었다.
몸이 뒤로 당겨졌다.
알루카드는 망토의 잠금쇠를 풀었다. 붉은 안감이 달린 검은 천이 가시에 남았다. 그는 망토 없이 앞으로 몸을 던졌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문이었다.
푸른 봉인이 어둠 속에서 미약하게 빛났다.
알루카드는 Jewel of Open을 들어 올렸다.
보석에서 나온 빛이 봉인으로 흘러들었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몸을 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등 뒤의 모든 가시가 한꺼번에 닫혔다.
콰아앙!
충격이 문을 흔들었다.
알루카드는 바닥에 무릎을 짚었다.
문이 닫히자 어둠의 소리도 끊겼다.
남은 것은 그의 숨소리뿐이었다.
---
방 안에는 수십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불꽃은 따뜻하지 않았다. 푸른 불빛 아래, 한 벌의 갑옷이 돌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가슴과 어깨를 덮는 검은 판금 갑옷이었다. 표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처가 있었다. 찔리고, 긁히고, 내려찍힌 흔적들. 어떤 자국은 새것처럼 선명했고 어떤 자국은 수백 년 동안 녹이 스며든 듯 깊었다.
알루카드는 천천히 다가갔다.
갑옷 앞에는 해골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그 사람은 거의 통과한 모양이었다. 몸의 앞부분은 멀쩡했지만 등뼈는 수십 조각으로 잘려 있었다. 손은 아직 갑옷을 향해 뻗어 있었다. 손가락 끝과 받침대 사이의 거리는 한 뼘도 되지 않았다.
한 뼘.
한 사람이 죽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알루카드는 해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도 처음에는 이곳을 통과할 힘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가시의 움직임을 읽고, 몇 번의 상처를 견디고, 마지막 문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옷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었다.
성의 잔혹함은 죽이는 데 있지 않았다.
가능성을 보여 준 뒤 마지막 한 걸음을 빼앗는 데 있었다.
알루카드는 해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뼈 사이에 녹슨 금속판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금속판에는 짧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가시를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

가시와 싸우는 자는 여기서 죽으리라.
가시를 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것을 부술 수 있다.
알루카드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그는 갑옷에 손을 얹었다.
차갑지 않았다.
갑옷은 아주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가시의 진동을 듣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단단한 쇠가 아니라, 자신을 상처 입힌 것들의 형상을 기억하는 물질이었다.
알루카드는 Walk Armor의 잠금쇠를 풀었다.
성의 지형을 걸을수록 강해지던 갑옷이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오래 함께한 갑옷을 벗는 순간, 지하의 냉기가 얇은 옷을 파고들었다.
그는 검은 갑옷을 들어 몸에 걸쳤다.
어깨판이 닫혔다.
흉갑의 잠금쇠가 스스로 맞물렸다.
마지막 고리가 채워지는 순간 갑옷 표면의 상처들이 붉게 빛났다. 가느다란 빛이 수백 개의 흠집을 따라 흐르며 하나의 문양을 만들었다.
부러진 가시의 형상이었다.
알루카드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갑옷 안쪽에서 심장과 다른 박동이 느껴졌다.
쿵.
잠시 뒤 그의 심장이 대답했다.
쿵.
두 박동은 같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기다렸다.
알루카드는 문을 바라보았다.
“Spike Breaker.”
그가 갑옷에 남은 이름을 읽었다.
문 너머에서 가시들이 움직였다.
스으윽.
조금 전까지는 위협이었던 소리였다.
이제는 두려움보다 먼저 형태가 떠올랐다.
알루카드는 문을 열었다.
검은 통로가 다시 입을 벌렸다. 첫 번째 가시가 그의 가슴을 향해 튀어나왔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가시 끝이 갑옷에 닿았다.
날카로운 충격이 전신을 통과했다. 동시에 갑옷 표면의 흠집 하나가 붉게 타올랐다.
가시가 부서졌다.
금속 조각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두 번째 가시가 바닥에서 솟았다.
알루카드는 발을 내디뎠다.
장화가 가시를 밟았다. 쇠가 비명을 지르며 휘어졌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가시가 양쪽 벽에서 덮쳐 왔다.
그는 계속 걸었다.
양쪽 어깨에 금속이 충돌했다. 갑옷이 울렸다. 가시들은 그 울림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부터 갈라졌다.
카앙.
한 걸음.
카앙.
또 한 걸음.
그가 지나갈 때마다 통로를 지배하던 칼날들이 부서졌다.
그러나 알루카드는 자신이 무적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충격은 그대로 몸에 전해졌다. 갈비뼈가 울리고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Spike Breaker는 고통을 없애는 갑옷이 아니었다.
고통이 길을 막지 못하게 하는 갑옷이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였지만,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나누기에는 충분했다.
통로 중간에서 알루카드는 멈췄다.
바닥에 버려진 자신의 망토가 보였다. 가시에 꿰뚫린 채 붉은 안감이 피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는 망토를 잡아당겼다.
가시가 갑옷에 닿으며 부서졌다. 알루카드는 찢어진 천을 어깨에 다시 둘렀다. 잠금쇠는 없었지만 붉은 천 조각으로 목에 묶었다.
그리고 남은 길을 걸었다.
마지막 가시가 부서지자 통로 양옆의 촛대에 불이 붙었다.
완전한 어둠이 물러났다.
빛 아래 드러난 벽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모두 이 길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이었다.
알루카드는 가장 아래에 새겨진 빈 줄을 바라보았다.

성은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 것이라 믿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빈 돌을 쓸었다.
“아직 아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성에게 한 말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한 말일 수도 있었다.
혹은 악몽 속에서 자신을 부르던 어머니에게 한 대답일 수도 있었다.
알루카드는 통로를 떠났다.
그의 뒤에서 촛불이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 불꽃이 사라지기 직전, 빈 줄 위에 글자가 저절로 새겨졌다.
ADRIAN FAHRENHEIT ȚEPEȘ
그러나 이름 끝에 죽음을 뜻하는 연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성도 아직 그의 결말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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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묘지를 벗어나자 안주머니 속 금반지가 뜨거워졌다.
알루카드는 반지를 꺼냈다.
안쪽의 불완전한 글자가 붉은 빛을 품고 있었다.
Wear… Clock…
그는 반지를 귀 가까이 가져갔다.
금속 안에서 아주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전,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여자의 숨소리였다.
알루카드는 걸음을 멈췄다.
“리히터…….”
마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기도하듯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믿음보다 두려움이 많았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찾아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소리는 왕실 예배당 방향에서 왔다.
알루카드는 오래전 그곳에서 보았던 통로를 떠올렸다. 푸른 문 뒤를 가득 채운 하얀 가시. 박쥐도, 안개도 통과하지 못했던 길.
Spike Breaker가 낮게 진동했다.
갑옷 또한 그 가시들을 기억하는 듯했다.
금반지의 열기가 강해졌다. 동시에 아주 먼 곳에서 다른 금속이 응답했다.
금과는 다른, 차갑고 맑은 울림.
은이었다.
두 번째 반지.
잘린 문장을 완성할 다른 절반.
그리고 그 곁에 마리아가 있었다.
알루카드는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갑옷 표면의 상처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성의 길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이제 어둠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가 질문하면 벽이 대답했다.
그가 들으면 가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술 수 있었다.
계단 끝에 도달했을 때 왕실 예배당의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열두 번이었다.
마지막 종소리가 사라지자 금반지 안쪽에서 새로운 글자 하나가 떠올랐다.
Wear… in Clock…
여전히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루카드는 남은 문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그는 왕실 예배당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마리아가 다시 리히터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 뒤에서, 다른 누군가가 웃었다.
마리아의 곁에 있는 존재였다.
인간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 않았다.
알루카드는 Mormegil을 뽑았다.
검은 칼날 위로 금반지의 빛과 Spike Breaker의 붉은 상처가 동시에 비쳤다.
그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이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성의 대답을 들으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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