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소설 1화] 천년제의 종소리
가르디아의 아침은 종소리보다 먼저 대포 소리로 시작되었다.
창문이 가볍게 떨리고, 침대 머리맡에 세워 둔 목검이 벽을 두드렸다. 둔탁한 진동이 방바닥을 훑고 지나간 뒤에야 멀리서 환호성이 밀려왔다. 아직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마을 위로 축제의 첫 불꽃이 터진 모양이었다.
크로노는 이불 속에서 눈만 떴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길쭉한 사각형을 만들고 있었다. 빛 속에서는 먼지가 느리게 떠다녔다. 평소라면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어머니의 발걸음만 들렸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집 밖에서부터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 누군가 골목을 달려가며 친구를 불렀고, 마차 바퀴가 돌길을 긁었다. 갓 구운 빵 냄새와 태운 화약 냄새도 바람에 섞여 들어왔다.
침대 발치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고양이가 귀를 한 번 움직였다. 두 번째 대포 소리가 들리자 녀석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자신을 깨운 범인을 찾겠다는 듯 창문 쪽을 노려보았다.
“크로노.”
아래층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년제가 끝날 때까지 잘 생각은 아니겠지?”
문밖의 계단이 삐걱거렸다. 고양이는 크로노보다 먼저 상황을 판단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문틈으로 빠져나가더니,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꼬리를 낮추고 달아났다.
잠시 뒤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는 한 손에 앞치마를 쥔 채 서 있었다. 머리카락 몇 올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뺨에는 화덕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잔소리를 하러 온 사람치고는 입가가 지나치게 느슨했다.
“광장에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대. 루카도 아침부터 자기 발명품을 옮긴다고 난리였고.”
루카라는 이름을 듣자 크로노가 상체를 일으켰다. 붉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루카 얘기를 해야 일어나는구나.”
크로노는 침대 옆에 벗어 둔 윗옷을 집어 들었다. 대답 대신 한쪽 눈썹을 조금 올렸지만, 어머니는 그런 항의를 받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정말 안전하다더라.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절반 정도만 믿으면 되겠지.”
그녀는 문을 닫기 전에 덧붙였다.
“밥은 먹고 나가.”
아래층 식탁에는 따뜻한 수프와 빵이 놓여 있었다. 창가에는 천년제를 기념해 시장에서 나눠 준 작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푸른 바탕 위에 왕국의 문장이 수놓인 깃발은 들어오는 바람을 받을 때마다 힘없이 흔들렸다.
크로노가 의자에 앉자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 발목에 몸을 비볐다. 조금 전까지 대포 소리에 불만을 품고 있던 태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빵 가장자리를 조금 떼어 바닥 가까이 내렸다.
“식탁에서는 안 돼.”
어머니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크로노는 손을 멈췄다.
고양이는 빵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 끝에 그는 조각을 자기 입에 넣었다. 고양이는 배신당한 표정으로 꼬리를 세우고 돌아섰다.
어머니는 수프 냄비의 뚜껑을 덮으며 웃었다.
“다 보고 있어.”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동전 몇 닢이 안에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전부 군것질에 쓰지는 말고.”
크로노가 주머니를 허리띠에 매는 동안 어머니는 그의 목에 두른 천을 바로잡았다. 어린아이에게 하듯 손을 대려다, 이제는 자신보다 훨씬 커진 아들의 어깨를 잠시 바라보았다.
손끝이 멈춘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늦기 전에 돌아와.”
크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여는 순간, 집 안에 머물던 아침의 고요가 뒤로 밀려났다.
골목에는 이미 축제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검을 휘두르며 병사 흉내를 냈고, 어른들은 광장으로 가져갈 음식 바구니와 술통을 나르고 있었다. 창문마다 천 조각과 꽃줄이 걸렸으며, 지붕 사이에는 푸른색과 흰색 깃발이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광장 방향에서 종을 울렸다.
이번에는 대포처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높고 맑은 음이 지붕을 넘어와 골목 안을 채웠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실제로 어떤 무게를 갖는지는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가 그 시간을 손에 잡을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기고 있었다.
크로노는 사람들의 흐름에 섞여 북쪽 길로 향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리네 광장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보였다. 평소에는 풀 냄새와 새소리뿐인 길이었지만 오늘은 노점상과 여행객, 경비병들로 가득했다. 왕국의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억양으로 값을 흥정했고, 음악가들은 언덕 중간에 자리를 잡고 빠른 곡을 연주했다.
광장 입구에는 꽃과 천으로 장식된 커다란 문이 세워져 있었다.
그 너머로 색과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잔디밭에는 둥근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물결처럼 오갔다. 고기를 굽는 연기가 햇빛을 받아 희게 번졌으며, 벌꿀 과자를 파는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무희들이 손을 맞잡고 돌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젊은이들이 거대한 망치로 종을 울리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크로노는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성 쪽 언덕 위로 시선을 올리면 가르디아 성의 첨탑이 보였다. 축제의 깃발들이 성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거대한 성조차 사람들의 웃음과 음악 뒤로 물러난 배경처럼 느껴졌다.
광장 안쪽, 종탑 근처에서는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루카가 시연 장치를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당장 그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입구를 막고 선 사람들 때문에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크로노가 사람들 사이의 빈틈을 찾던 순간이었다.
오른쪽에서 누군가 뛰어들었다.
붉은 천이 시야를 스쳤다.
그는 몸을 틀었지만 피하기에는 늦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쳤고, 상대는 중심을 잃은 채 잔디 위로 넘어졌다. 크로노도 두 걸음쯤 밀려난 뒤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주변의 몇 사람이 돌아보았으나 곧 각자의 구경거리로 관심을 돌렸다.
넘어진 사람은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밝은 금발을 뒤로 묶었고, 여행자들이 입을 법한 흰옷 위에 붉은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옷차림은 수수했지만 천의 결이나 장화의 가죽은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소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야…….”
크로노는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의 손과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놀란 눈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녀는 입술 끝을 올리며 손을 잡았다.
“괜찮아. 내가 앞을 안 봤어.”
그가 소녀를 일으키자 그녀는 옷에 묻은 풀을 털었다. 크로노는 다친 곳이 없는지 얼굴과 팔을 살폈다. 소녀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양팔을 가볍게 펼쳐 보였다.
“멀쩡해. 너는?”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때, 햇빛을 받은 무언가가 잔디 사이에서 반짝였다.
은빛 사슬이었다. 끝에는 푸른빛이 도는 보석이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이 부딪칠 때 소녀의 목에서 빠진 모양이었다.

그가 몸을 숙여 목걸이를 집었다.
보석은 햇볕 아래에서도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얼음처럼 손끝을 찌르는 냉기는 아니었다. 오래 닫혀 있던 지하의 공기, 혹은 별빛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의 온도를 작은 돌 안에 가둬 둔 듯했다.
크로노가 보석을 살피는 동안 소녀의 손이 비어 있는 목가로 올라갔다.
“내 펜던트…….”
그녀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까지의 여유가 사라졌다.
크로노는 곧바로 목걸이를 내밀었다.
소녀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쥐었다. 사슬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보석에 흠집이 생기지 않았는지 빠르게 확인한 뒤에야 긴 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행이다.”
펜던트를 다시 목에 걸면서도 그녀의 손은 보석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값비싼 장신구를 되찾은 사람의 반응이라기보다,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놓칠 뻔한 사람의 모습에 가까웠다.
“고마워. 이건……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거든.”
크로노는 옷깃 안으로 사라지는 푸른빛을 바라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소녀는 그런 그의 침묵이 마음에 든 듯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제야 광장을 제대로 본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춤추는 깃발과 회전하는 풍차 장식이 보였다. 냄비에서 끓는 설탕 냄새, 구운 고기 냄새, 젖은 풀 냄새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차례로 지나갔다.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말투에는 이곳에 처음 나온 사람의 들뜸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천년제가 열리는 날을 모르는 사람은 왕국 안에 거의 없었다. 먼 지방에서 온 여행자라 해도 혼자 다닐 나이는 아니었다.
소녀는 크로노를 다시 바라보았다.
“너, 여기 잘 알아?”
크로노가 광장 안쪽을 가리키자 그녀의 눈이 밝아졌다.
“그럼 혹시 같이 구경해 줄 수 있어?”
질문을 던져 놓고도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한 걸음 먼저 다가왔다가,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뒤늦게 거리를 두었다.
“혼자 다녀도 되지만, 방금처럼 또 누군가와 부딪칠지도 모르고.”
크로노는 종탑 쪽을 바라보았다. 루카의 실험이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군중 위로 장치의 금속 고리가 조금 보였지만, 아직 시연을 알리는 불빛은 켜지지 않았다.
그가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짧게 끄덕였다.
“정말?”
그녀의 목소리가 주변 음악보다 한층 높아졌다.
“좋아. 그럼 어디부터 갈까?”
소녀는 몇 걸음 앞서 나갔다가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크로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광장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잔을 부딪치며 이름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간이 조금 어색했다.
“크로노.”
짧은 대답이었다.
소녀는 그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려 보듯 따라 했다.
“크로노.”
그녀가 웃었다.
“나는 마르야.”
이름을 말하기 전 아주 짧은 망설임이 있었다. 크로노는 그것을 들었지만 굳이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잘 부탁해, 크로노.”
마르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을 맞잡자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잠깐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손을 세게 흔들고는 먼저 광장 안으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천막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마르는 보이는 것마다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고기 꼬치를 굽는 화덕 앞에서는 발걸음을 늦췄고, 춤추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는 음악에 맞춰 어깨를 움직였다. 왕국 역사 전시관 앞에 서 있는 근엄한 병사 모형을 보고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날에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크로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르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손을 저었다.
“그냥 궁금해서.”
광장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둥근 울타리를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었다. 작은 짐승 네 마리가 등에 색깔 천을 두른 채 흙길을 돌고 있었다. 선두가 바뀔 때마다 관중의 함성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마르는 울타리 곁으로 다가가 발끝을 들었다.
“뭐가 이길 것 같아?”
크로노는 짐승들의 움직임을 잠시 살폈다. 가장 앞선 녀석은 이미 숨이 거칠었고, 세 번째로 달리는 녀석은 곡선 구간마다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는 세 번째 짐승을 가리켰다.
“저쪽?”
마르는 첫 번째를 골랐다. 두 사람은 울타리에 기대어 마지막 바퀴를 지켜보았다. 결승 직전, 크로노가 고른 짐승이 안쪽 틈을 파고들며 앞으로 나왔다. 마르가 고른 선두는 흙먼지 속에서 발을 헛디뎠다.
결승선이 지나가자 마르는 패배한 사람답지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 이런 것도 잘 아는구나.”
크로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본 것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맞힐 거야.”
마르는 이미 다음 경기가 열릴 때 다시 오겠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춤판이 길을 막았다. 악사들이 현을 빠르게 튕기고 북을 울리자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았다. 마르는 처음에는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한 무희가 손을 내밀자 아무 망설임 없이 원 안으로 들어갔다.
두 걸음 뒤에서 크로노를 돌아본 그녀가 손짓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춤의 원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크로노의 손목을 낚아채 안으로 끌어들였다.
발을 맞출 틈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스치며 돌았고, 음악은 따라잡으려 할수록 더 빨라졌다. 크로노는 처음 몇 걸음 동안 주변 사람의 신발을 밟지 않는 데만 집중했다. 마르는 그의 어색한 몸짓을 보고 웃다가 자신도 균형을 잃을 뻔했다.
두 사람은 원에서 빠져나온 뒤 한동안 숨을 골랐다.
마르의 뺨이 햇빛과 움직임 때문에 붉어져 있었다.
“성공했어.”
무엇이 성공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춤을 끝까지 춘 것인지, 크로노를 끌어들인 것인지, 넘어지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어느 쪽이든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때 광장 가장자리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무 그늘 아래 어린 여자아이가 두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곁에 선 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달래고 있었지만, 아이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분명 여기까지 같이 왔단 말이에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디론가 숨어 버린 모양이구나.”
“혼자서는 집에 못 가요.”
마르의 웃음이 멎었다.
“무얼 잃어버렸지?”
그녀가 먼저 다가가 묻자 아이는 흐느끼며 작은 고양이라고 대답했다. 갈색 털에 붉은 끈을 매었고, 끈 끝에는 방울이 달려 있다고 했다.
마르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발 사이와 천막 아래를 들여다보았지만, 축제의 소음 속에서 작은 짐승의 움직임을 찾기는 어려웠다.
크로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딸랑.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와는 달랐다. 낮고 가벼운 방울 소리였다.
그는 소리가 들린 천막 뒤쪽으로 향했다. 마르도 아무 말 없이 뒤따랐다. 음식 상자와 빈 술통 사이에 작은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녀석은 낯선 사람 둘을 보자 몸을 더 낮췄다.
크로노가 다가가려 하자 고양이가 짧게 하악질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시선을 비켜 주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채 기다렸다. 마르는 옆에 앉으려다가 치맛자락이 땅에 닿는 것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 그러나 곧 신경 쓰지 않고 무릎을 굽혔다.
“이쪽은 안 무서워.”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는 대답 대신 코를 몇 번 움직였다. 화덕에서 흘러온 고기 냄새가 천막 뒤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크로노는 가까운 상자 위에 놓인 사과 조각을 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한동안 망설인 뒤 상자 밑에서 나왔다. 사과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믿어 보기로 한 듯했다.
녀석이 가까워지자 크로노는 천천히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마르가 먼저 천막을 젖혀 길을 열었다.
아이의 울음은 고양이 목의 방울 소리를 듣는 순간 멎었다.
“찾았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달려왔다. 고양이는 크로노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얌전해졌다. 그가 내려놓자 녀석은 아이의 치맛자락에 몸을 비볐다.

아이의 아버지가 거듭 고개를 숙였다. 마르는 자신이 찾아낸 것처럼 흐뭇한 얼굴로 고양이와 아이를 바라보다가, 크로노가 먼저 자리를 뜨자 서둘러 따라왔다.
“처음부터 방울 소리를 들은 거야?”
크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울음소리만 들었는데.”
마르는 잠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넌 말보다 먼저 보는구나. 아니, 듣는다고 해야 하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칭찬이야.”
마르는 그렇게 덧붙이고 앞을 향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한 거리가 조금 줄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밀릴 때면 마르는 자연스럽게 크로노의 소매를 잡았고, 길이 갈라지면 어느 쪽으로 갈지 묻기 전에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광장 중앙의 힘겨루기 장치 앞에서는 커다란 망치를 든 청년이 온몸을 휘둘렀다. 쇠뭉치가 받침대를 때리자 추 하나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 중간쯤에서 멈췄다. 구경꾼들이 야유하자 청년은 손바닥에 침을 뱉고 다시 줄을 섰다.
마르는 망치를 바라보다가 크로노에게 물었다.
“해 볼래?”
그는 장치와 줄을 번갈아 보았다. 루카의 시연장 쪽에서는 아직 특별한 신호가 없었다.
크로노가 동전을 내자 진행자가 망치를 건넸다. 손잡이는 여러 사람의 땀으로 매끄러웠고, 쇠머리의 무게는 아래쪽으로 강하게 쏠렸다.
마르는 울타리 밖에서 두 손을 모았다.
“제일 위까지 올려.”
주변 사람들이 웃었다.
크로노는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드는 대신 몸을 낮추었다. 발을 벌리고 손잡이 끝을 잡은 뒤, 허리와 어깨를 함께 돌려 쇠머리를 내려놓듯 휘둘렀다.
충돌음이 광장 소리를 잠시 갈랐다.
추가 기둥을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꼭대기의 종 바로 아래에서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남은 힘으로 금속판을 건드렸다.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마르가 누구보다 먼저 환호했다.
크로노가 망치를 돌려주자 진행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작은 기념 은화를 내밀었다. 마르는 그 은화를 빼앗듯 받아 햇빛에 비춰 보았다.
“오늘 첫 전리품이네.”
그녀는 크로노에게 돌려주려다 생각을 바꾸고 그의 동전 주머니에 직접 넣었다. 은화가 다른 동전들과 부딪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때 광장 안쪽에서 푸른 불빛이 번쩍였다.
금속이 울리는 소리가 뒤따르고, 종탑 근처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환호했다. 천막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으며, 깃발들이 바람을 받아 크게 펄럭였다.
마르는 발끝을 들어 사람들 너머를 보려 했다.
“저건 뭐지?”
크로노는 입구의 안내판에서 보았던 순간 이동 장치의 방향을 가리켰다.
“루카.”
그가 친구의 이름을 말하자 마르가 고개를 돌렸다.
“네 친구가 만든 거야?”
크로노가 끄덕였다.
푸른빛이 다시 한 번 번졌다.
먹거리와 춤, 경주를 볼 때와는 다른 호기심이 마르의 얼굴에 떠올랐다.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도 가까이 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저쪽부터 보자.”
마르는 크로노의 손목을 붙잡았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가 달리기 시작했다. 펜던트의 사슬이 옷깃 아래에서 작게 흔들렸고, 붉은 조끼 자락이 햇빛 속으로 펼쳐졌다.
크로노는 붙잡힌 손목을 내려다본 뒤, 사람들 사이를 달리는 소녀의 보폭에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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